•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향하여
    [시민혁명과 대선⑧] 노동 없는 새 사회는 불가능
        2017년 05월 06일 10: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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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 새 노동체제를 건설하자”

    노중기(한신대 교수)

    지난 겨울 ‘이게 나라냐?’라는 촛불시민들의 분노와 절규는 수년 전부터 제기된 청년들의 ‘헬조선!’의 외침과 정확히 일치한다. 즉 1천만 촛불장기항쟁의 바탕에는 사회경제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다. 촛불은 단순한 정권교체나 정치민주화를 넘어서는 요구였다.

    1987년 노동체제가 남긴 것

    여러 사회경제적 요인 중 노동상황은 지난 20년간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어왔다. 몇 가지 지표를 예로 들어보자. 비정규노동자 비율과 상태는 OECD 최고이자 최악이며 단결권과 파업권 등 노동기본권 축소는 심각한 상황이다. 10% 이하 노조조직률 하에서 전교조・공무원노조의 단결권이 박탈되었고 수백만 특수고용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고 치부되었다. 또 임금 격차, 노동시간 및 산업재해도 OECD 최고수준이다. 정리해고와 기타 해고 등 고용 불안정이 일상화된 지는 오래다. 그 최종 결과가 압도적으로 세계 최고인 자살률이나 심각한 결혼・출산기피였다.

    문제는 노동자 일반의 삶이 악화된 속에서도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 청년과 노령노동자, 여성노동자, 이주노동자, 실업노동자,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 등 하층집단의 상황이 극한에 이른 데 있다. 특정 하층노동자집단의 상황이 더욱 악화되는 이른바 다중(多重) 양극화 현상이다.

    이런 현실은 작금의 과제가 적폐(積幣) 청산만이 아님을 웅변하고 있다. 사실 박근혜정부의 실질적 탄핵사유는 각종 범법행위보다 합법적이지만 노골적인 재벌위주 경제정책들과 ‘노동자 죽이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대통령 탄핵과 단죄, 국정농단의 해소, 나아가 정권교체나 헌법 개정만으로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의 문제가 바뀌어야 한다. ‘1987년 노동체제’의 묵은 과제는 물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20년 이상 누적되어온 구조적 문제들(‘종속 신자유주의노동체제’의 모순들)을 극복할 수 있는 체제 전환의 노력이 절실한 이유다.

    노동체제 전환의 의미

    노동체제(labour regime)의 전환은 단순한 정책변경이나 법 개정, 또는 정권교체로 이루어질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노동시장 구조, 노동운동의 구조와 전략, 그리고 지배블록의 구조와 전략으로 구성되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출발은 정책 전환과 노동법 개정일 수 있으나 정책 전환이 지속적으로 이어져 장기적인 구조변동을 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새로운 제도의 도입과 안착, 관련 국가기구 자체의 개편, 노동운동 조직과 운동양식의 전환, 경제민주화 및 기업 지배구조의 전환 등은 물론 국가정치지형의 변화, 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데올로기 지형의 전환 등도 포함된다. 한마디로 ‘장기 전략적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체제 전환의 과제는 세 가지 차원의 문제들을 포함한다. 먼저, 해방 이후 70년 동안 구조화된 각종 반(反)노동 제도와 이데올로기의 해체 문제가 있다. 1987년 이후 노동민주화 과정에서 그 중요한 일부가 해소되는 변화가 있었으나 충분하지는 않았다. 둘째,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도입되어 강하게 구조화된 신자유주의 시장만능주의 구조도 해체되어야 한다. 셋째, 이명박・박근혜 수구정부가 10년 간 쌓아 놓은 각종 적폐들도 폐기 처리되어야 할 것이다.

    적폐 청산의 첫 발은 박근혜 정부 ‘노동개혁’의 폐기

    지난 4년 간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은 명실상부한 ‘노동개악’이며 최악의 재벌 청부입법이었다. 노동개혁안은 2016년 4.13총선과 하반기 ‘박근혜・최순실 사태’로 실질적으로 폐기됐으나 정책적 오류와 문제점, 그리고 그 책임 소재에 대해 명료한 사회적 규명은 진행되지 못했다. 이에 대한 논의와 사회적 규명, 그리고 책임 추궁은 노동적폐 청산의 출발이 된다.

    쉬;운해고

    박근혜 정권의 노동개악 반대 민주노총 집회 모습

    구체적으로 적폐의 내용은 크게 열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첫째, 이른바 ‘일반해고’ 합법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허용 등 노동부지침을 즉각 폐기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노동 확대와 관련해 기간제 및 파견노동 확대정책을 중단하고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정책’ 등을 중지해야 한다. 셋째, 법정 노동시간을 확대하는 개정법안도 폐기해야 한다. 넷째, 통상임금 등 법정 임금범위를 축소하는 개정 법안을 폐기해야 한다. 다섯째, 공무원노조 전교조에 대한 단결금지도 철회되어야 한다. 여섯째, 공공부문 성과연봉제를 폐기하고 관련 노조탄압도 중단되어야 한다. 일곱째, 민주노조 탄압을 중지하고 관련 손해배상은 폐기되어야 한다. 여덟째, ‘노동개혁’ 관련 정책담당자에 대한 조사와 엄중 문책이 필요하다. 노동부와 기재부장관, 청와대담당관 등 정책결정자와 실무책임자가 대상이다. 아홉째, 진보정당 탄압조치의 진상에 대한 특검조사 및 관련자 처벌이 필요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경련 등 자본단체-정부부처의 정경유착 문제를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

    정권교체가 진행된다면 최소한의 시민적 요구라 할 수 있는 이상의 과제는 큰 어려움 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머무른다면 ‘헬조선’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19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 시기 이후 누적된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 노동통제장치들에 대한 청산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 신자유주의 20년의 적폐를 청산해야

    국가경쟁력 확보, 외환위기 극복, 선진국 진입, 사회적 합의와 노동개혁 등을 명분으로 해서 크게 확산된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정책들도 적폐청산의 대상이다. 외환위기를 전후로 해서 도입된 신자유주의 노동정책이 양산한 적폐는 광범하고 심대하다.

    첫째, 각종 비정규노동 관련 법률들이 개폐되어야 한다. 파견노동 ‘철폐’, 기간제・단시간노동 보호제도 강화, 특수고용노동자 노동기본권 인정 등이 포함된다. 둘째,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정리해고)의 적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 셋째, 노동쟁의에 대한 손해배상청구소송 및 가압류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 넷째, 공안당국에 의한 파업권 제한과 노동쟁의 개입 및 탄압을 금지해야 한다. 특히 관계부처대책회의, 업무방해죄 및 국가보안법 적용 등이 주요한 대상이 된다. 다섯째, 노동행정기구에 의한 자의적 행정지침 행정명령 발표는 금지되어야 한다. 여섯째, 복수노조 창구단일화 폐지로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해야 한다. 특히 어용노조, 용역폭력이 더 이상 용납되어선 안 된다. 일곱째, 전임자임금지급 금지조항을 폐기하고 노사자율원칙을 회복해야 한다. 여덟째, 특별법을 폐지하고 일반 노동법을 적용하여 공무원, 교원(교수)의 노동기본권을 복구해야 한다. 아홉째, 정부의 공공부문 노사관계 개입 금지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성과연봉제 및 각종 민영화조치를 폐지하고 경영평가에 의한 노조탄압 및 기관 불이익처분, 각종 낙하산인사 금지 등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노사정위원회 등 합의기구를 폐지하거나 재검토, 개혁해야 한다.

    이들 중 상당수는 과거 ‘민주정부’시기(1998-2008)에 도입되어 제도화된 것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따라서 지금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더라도 수구정부 시기의 적폐와 달리 상당한 정치적 갈등의 요소가 담겨있고 새 집권세력은 이 요구들 상당 부분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런 적폐들을 그대로 두고 새로운 나라를 만드는 일은 불가능하다.

    새로운 2017 노동체제의 이념과 상(像)

    묵은 적폐를 청산하는 것은 새로운 노동체제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가 된다. 현재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종속 신자유주의노동체제’의 핵심 문제는 노동양극화와 구조적 차별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비정규차별을 필두로 기업규모별 차별, 성차별, 이주노동차별, 청년・고령 세대별 차별 등 각종 차별기제에 의한 구조적 불평등인 것이다. 따라서 연대・평등주의가 새 체제의 이념이 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 노동체제의 이념과 주요 내용>

    노동체제 분류 시 기 핵 심 이 념 주 요 내 용
    억압적 배제 노동체제 1961~1987 국가주의, 선성장후분배 저임금, 장시간노동
    1987년 노동체제 1987~1997 (노동 없는) 민주화 제한적 노동기본권
    종속 신자유주의체제 1997~2017 시장주의, 경쟁력 담론 노동유연화, 법치주의
    2017년 새 노동체제 2017~ 연대주의, 평등주의 비정규연대, 산별노조

    체제 전환의 과제가 난제라는 점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즉 최소 10년이 필요한 중장기적 과제라는 점에서도 그러하고 개혁정부의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정책이 전제조건인 탓이기도 하다. 그러나 체제 전환이 진정으로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전환을 추진할 주체가 부실하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여전한 노동과 노동기본권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 수준은 물론 노동계급의 취약한 계급역량이 체제 전환에 큰 걸림돌로 남아있는 것이다. 노동체제 전환의 일차적 주체가 노동운동 세력임을 감안하면 10%에도 못 미치는 조직률, 미약한 정치역량 등을 극복하는 것은 체제 전환의 관건적 요소가 된다.

    2017 노동체제 건설의 전략적 과제들

    끝으로 노동시장, 노동정책, 노동운동 세 측면에서 2017 새 노동체제 건설의 전략적 과제들을 정리해보자. 먼저 노동시장의 정책 과제들 중 첫째는 비정규노동에 대한 예외적 사용의 원칙을 확립하고 비정규노동 축소를 위한 로드맵을 도입, 실행하는 것이다. 둘째로 여성노동 보호장치를 대폭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육아/보육/모성보호 제도 강화, 할당제 등이 포함될 수 있다. 셋째, 최저임금을 현실화하고 위반하는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한다. 넷째, 년 1,800시간으로 실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이를 일자리 확대정책과 제도적으로 연결한다. 다섯째, 관련법의 제정, 개정을 포함해서 이주노동, 장애인노동, 청년노동, 노령노동 등 각종 약자집단에 대한 차별금지제도를 강화하고 실행한다. 여섯째, 공공부문 일자리를 대폭 확대한다. 공무원의 정원을 확대하고 청년/노령/장애인 할당제를 실시한다.

    다음으로 국가의 노동정책 과제들로는 무엇보다 먼저 노사관계에 대한 부당한 행정개입을 중지하고 노사자율 원칙을 확립하는 것을 들 수 있다. 각종 행정위원회의 중립성을 제고하고 고용노동부를 ‘노동사회부’로 변경하는 등 행정기구 개편을 추진한다. 둘째, 노동자/사용자 개념범주를 확대하기 위해 근로기준법, 노조법 등을 개정한다. 셋째, 사용자단체 의무조직화 등 산별교섭을 제도화하고 협약을 확대 적용한다. 넷째, 결사의 자유, 단체교섭, 강제노동금지 등 ILO핵심 협약들을 비준한다. 다섯째, 노동감독관 대폭 증원 등 감독기능을 강화하고 업무 자율성을 제고한다. 여섯째, 근로기준법/산업재해보상법 전체 노동자 적용, 이주노동관련 법률 개정 등 노동기본권을 확대한다. 일곱째, 중대산재 및 공상처리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원청 책임을 제도화한다. 여덟째, 청년/여성/장애/고령노동자 등에 대한 고용할당제를 확대한다. 아홉째, 고용보험, 청년/노령/실업수당, 산재보험 등 노동복지를 확대하고 사각지대를 해소한다. 열째, 3심제 노동전문법원을 설치하고 국가기구 노동위원회를 폐지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운동의 정책 과제는 첫째, 연대주의 이념, 운동노선을 수립하고 비정규 및 기타 취약노동자 집단은 물론 사회적 약자들과 정규직 노조의 연대를 강화하는 데서 출발한다. 다음으로 조직률을 제고하고 산별노조조직을 완성하는 것이다. 특히 비정규 포괄 조직화, 산별교섭/산별재정/산별 의사결정체제 확보, 총연합단체 기능 재조정 등을 추진한다. 셋째, 제2의 정치세력화운동을 추진한다. 구체적으로 노조-정당관계 재정립, 노동자 (진보)정당가입률 제고,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 확보 등의 과제를 실행해야 한다.

    노동 없는 2017 새민주공화국 건설은 불가능하다

    노동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2017 새 민주공화국 건설은 결코 쉽지 않다. 결정적인 문제는 현재 노동운동의 역량이 매우 취약하며 노동계급 내부가 심하게 균열되어있다는 점이다. 반대로 자본과 보수국가의 힘은 최근의 정치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큰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진정한 노동개혁 없이 새 공화국을 건설하는 것은 연목구어이다. 2016년 촛불항쟁은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부족한 노동의 힘을 보완하고 ‘2017 새 노동체제’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전체 시민이 떨쳐 일어난 것이 촛불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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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정규직 문제는 비정규직 권리입법부터”

    조돈문(가톨릭대 교수,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대표)

    신자유주의 20년 동안 노동시장 유연화 과정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날로 악화되어 왔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핵심적 과제는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비정규직 고용의 남발로 인해 꾸준히 증가하여 전체 피고용자의 절반을 넘어서는 비정규직 규모를 감축해야 한다. 둘째,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과 임금 등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으며 양극화되고 있는 정규직・비정규직의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 셋째, 비정규직 노동자들 스스로 자신들을 보호하고 고용조건 개선을 추진하기 위해 비정규직 주체형성의 조건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비정규직 권리입법을 추진하되, 지켜야 할 원칙들은 첫째, 2006년 식 노사 간 맞바꾸기가 아니라 비정규직 권리입법이 되어야 하고, 둘째, 비정규직의 내적 이질성을 인정하고 전체 비정규직의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며, 셋째, 입법화의 실현 가능성과 실질적인 효과를 동시에 고려하며 전략적으로 사고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상시적 업무 직접고용, 정규직 채용을 원칙으로

    비정규직 정책 대안의 기본 전제는 상시적 업무의 경우 국민 생명・안전 담당 업무와 함께 사용업체가 직접고용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비상시적 업무에 한해 비정규직 사용을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의 책임을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에 대해서는 사용업체가, 비상시적 업무의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사회가 분담한다.

    그것은 개별 기업 차원에서 비상시적 업무의 수요 시점, 기간, 규모를 예측하기 어렵지만, 산업・업종별 광역 지역단위에서는 예측이 상대적으로 수월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통해 비정규직의 총공급량과 사유제한 비상시적 업무의 총수요량을 관리하며 개별 수요와 공급의 매칭을 통해 효율적으로 배분함으로써 개별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하도록 한다. 이러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위한 재정지출은 비정규직을 고용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비정규직 사용을 통한 노동력 사용의 유연성이라는 혜택을 전유하는 사용업체들이 부담하도록 하는 것이 공정하다.

    상시적 업무 정규직 고용 원칙 위에서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비정규직 권리입법의 과제들로 노동자 개념 확대,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규제, (초)단시간 노동자 보호를 꼽을 수 있다.

    특고

    특고노동자 권리보장 관련 기자회견 모습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기본권을 보장

    첫째 과제는 근로자 개념을 확대하고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생산방식 변화와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기존의 고용관계와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고용관계들이 등장하며 전통적인 노동자와는 다른 형태의 종속성을 지니는 노동자 유형들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특수고용 노동자로서 외양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속성을 함께 지니기 때문에 전통적 유형의 노동자와 다르다는 이유로 노동법적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사용자가 노동법・사회보장법상의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고용계약이 아닌 위임・위촉・도급계약 등 민・상법상의 계약을 체결하여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인 것처럼 위장하도록 하는 악의적인 사례들도 많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근로기준법과 노조법의 근로자 개념 정의를 확대하여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포괄적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현행 근로자 개념 규정들을 사용종속성 중심으로 협애하게 해석하고 있어(1994년 대법원판례) 관련 법조항의 개정이 필요하다. 노조법 개정이 상대적으로 더 절박하다고 할 수 있는데, 제2조 제1호를 “‘근로자’라 함은 직업의 종류를 불문하고 임금·급료 기타 이에 준하는 수입에 의하여 생활하는 자를 말한다. 다만,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타인을 고용하지 않은 자로서 다음 각 목의 1에 해당하는 자는 근로자로 본다. () 다른 사업주의 업무를 위하여 노무를 제공하고 그 사업주 또는 노무수령자로부터 대가를 받아 생활하는 자(밑줄: 추가한 부분)”로 개정하여 경제종속성과 조직종속성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

    간접고용 비정규직 규제 강화

    둘째 과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사용의 규제를 강화하는 것으로서, 도급・파견 구분의 법제화와 불법파견 응징, 사용업체의 사용자 책임·의무 부과, 파견·용역업체의 책임・의무 부과로 구성된다.

    용역노동에 대한 별도의 규제 장치가 없는 탓으로 도급을 위장한 파견노동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지만, 현재 법무부․노동부 공동의 ‘근로자파견의 판단기준에 관한 지침’과 함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설에 기초한 판례들에 의존하여 도급과 파견이 구분되고 불법파견 여부가 판단되고 있다. 이러한 법적 구속력이 없는 지침과 학설・판례들에 기초한 도급・파견 구분은 일관성을 지니기 어렵기 때문에 도급과 파견의 구분 기준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사용업체들은 현재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상당정도 면제받고 있는데, 그 자체가 사용업체의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의 핵심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하지 않고 사용함으로써 사용의 편익은 취하되 그를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최소화한다는 점에서 사용업체에 대해 사용자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적정 수준에서 사회적으로 부과하는 것이 필요하다. 근로기준법과 노조법 상의 근로자 개념 확대에 상응하여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여 실질적 사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 사용으로부터 발생하는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분담하고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노동3권을 보장 받음으로써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현재 간접고용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정과 함께 소득불안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파견・용역 업체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고용한 고용업체가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책임지도록 하여 사용업체의 책임 분담을 간접적으로 강제하는 한편 간접고용 노동자들에게 고용안정성과 소득안정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파견・용역업체는 노무제공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도록 해야 하고, 사용업체에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는 비파견 대기기간에도 고용업체는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과제는 초단시간 차별처우 법규정을 철폐하고 시간비례보호원칙의 부정적 효과를 교정하는 것이다. 주당 15시간 미만을 노동하는 초단시간 노동자들에 대해 사회보험, 노동복지, 고용안정성 등에서 차별처우할 수 있도록 법제화되어 있는데, 산재보험을 제외한 고용보험, 국민연금, 국민건강보험의 의무 가입을 면제하고, 유급주휴일・주휴수당과 연차유급휴가・연차수당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며, 1년 이상을 근무하더라도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에 규정된 퇴직금의 수혜 대상에서 제외된다. 사용업체들이 상시적 업무의 정규직 일자리를 쪼개서 다수의 초단시간 노동자들을 사용하는 것은 초단시간 노동 차별처우라는 인센티브가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 폐지하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단시간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채택한 시간비례보호원칙이 차별처우를 보강하는 부정적 효과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비례보호원칙의 부정적 효과를 교정할 필요성이 있는데, 임금을 노동시간에 비례하여 지급하는 교환적 임금과 노무제공 여부에 따라 지급하는 보장적 임금으로 구분하여, 생활보장성 임금은 동등하게 지급하도록 해야 한다.

    비정규직 권리입법은 상보적 노동시장 정책과 함께

    비정규직 권리입법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우선적 과제임은 분명하지만 비정규직 사용의 사회적 규제만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적절한 노동시장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 핵심에 적극적 노동시장정책 강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실시, 고용보험제도의 확충이 있다.

    첫째,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하여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취업보장 방식의 고용안정성을 제공해야 한다. 영리목적의 노동력 중개사업은 구직자 재정부담과 불법파견 등 부작용을 피하기 어렵지만 구직자들이 유료 직업소개업체를 주로 이용하는 것은 공적·비영리 무료 직업소개업체들에 비해 양질의 일자리를 빨리 알아봐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강화하여 중간착취를 해소하고 비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담보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스웨덴을 중심으로 한 스칸디나비아모델은 바람직스런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둘째,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실시하여 취업시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조건의 격차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처우를 금지하고 고용형태를 넘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초기업 수준에서 실현하여 비정규직의 임금 등 노동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비정규직 사용의 인건비절감 인센티브를 제거해야 한다. 또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경우 정규직과 비교하여 차별처우를 받지 않고 동일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하더라도 고용불안정성의 차이는 해소할 수 없기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고용불안정성 수당을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고용안정성 결여를 물질적으로 보상하고 사용업체에 대해서는 비정규직 고용의 사회적 비용을 분담하도록 하여, 비정규직 고용 인센티브를 일정 정도 상쇄할 수 있다.

    셋째, 고용보험 제도를 확충하여 비취업시 소득안정성을 보장해야 한다. 비정규직은 고용보험제도의 비적용율이 60%를 넘는데, 고용보험제도의 적용율이 높은 정규직도 고용보험 수급기간이 짧고 소득대체율도 낮아서 고용보험 혜택을 받더라도 소득불안정을 겪게 되기 때문에 정리해고에 결사반대하는 한편 비정규직을 고용안정의 완충재로 간주하게 된다. 따라서 고용보험 구직급여 수급 요건을 완화하여 비정규직도 고용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고용보험 구직급여 수급기간을 12~24개월로 연장하고 구직급여를 소득보전율 70% 수준으로 증액하여 고용보험이 명실상부한 소득안정성 보장 효과를 지닐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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