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정치,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
[진보정치 공동연재 2-3] 비전 형성이 통합의 조급함에 앞서야
    2017년 05월 06일 10: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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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정경윤, 김상철과 함께 한 총 6번의 연재기획 중 마지막 편이다. 이 연재는 ‘진보정치의 재활성화는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이 질문을 함께 생각해보기 위한 제안에 가깝다. 위기에 처한 진보정치의 원인에 대한 ‘진단’과 재활성화를 위한 ‘제언’이라는 주제는 우리에게도, 누구에게도 벅찬 것이다. 그렇지만 누구라도, 무엇이라도 이야기를 먼저 시작해 볼 수밖에 없다.

진보정치에 대한 제언을 던지는 지난 글에서 정경윤은 흩어진 진보정치세력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제를 중심으로 유대관계를 형성해볼 것을 제안했고, 김상철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아래로부터 공동의 경험이 기반이 되는 정당 만들기 실험을 제안했다. 이 외에도 아직 충분히 무르익지는 않았고 크고 작은 좌절을 경험하고 있기도 하지만 진보정치의 위기를 넘어서려는 다양한 제안과 시도가 진행 중이다.

이런 시도들은 언젠가 반드시 결실을 맺게 될 것이다. 다만 이 글에서는 동의 여부를 떠나 진보정치 재활성화를 위해 한번쯤 고려해볼만한 문제점을 제시하고, 조금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러나 지금 당장 시작해 볼만한 두 가지 제안을 이야기하려 한다.

2011

스페인 진보정당 포데모스의 출발점이었던 2011년의 대중 시위 모습

질문: 물리적 통합이 당면 목표일 수 있을까?

흔히 진보정치의 위기에 대한 해법으로 거론되는 것은 분열의 종식과 통합이다. 2000년 이질적인 진보세력이 대부분 결집한 민주노동당과 2011년의 통합 시도가 잔인한 해체의 결과로 귀결된 이후, 진보정치의 파편화와 이탈이 조직화된 정파 간의 분리로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다. 재기 넘치고 헌신적이었던 소중한 이들이 패배와 냉소에 젖어 뿔뿔이 흩어졌으며, 진보정당을 지탱하던 현장은 상층의 분열을 수동적으로 재현했다. 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을 가진 이들이 정치 냉소주의와 허무주의에 휩싸인 경우도 부지기수다.

오늘 사회 곳곳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전개하고 있는 이들 중 상당수가 민주노동당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라는 사실은 진보정치의 분열이 던져준 상흔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질적인 세력들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공동전선을 꾸린 2000년부터 2004년 총선까지의 민주노동당을 재현하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바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정해야 한다. 과거 영광의 재현은 그 과거의 경험을 공유한 이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며 그것의 온전한 재현도 불가능하다. 진보정치가 처한 위기의 조건은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고 저마다 해법도 다르다. 심지어 ‘지금이 위기인가’에 대한 인식도 같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진보의 위기 극복을 위한 단결’이라는 당위적 목표는 누군가에겐 당위일 수 없으며, 더구나 대중에겐 추상적이며 공허한 담론일 수 있다. 무엇보다, 조직된 대오를 제외한 대중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형성되기 어렵다.

잘못된 기획이 저지르는 대표적인 실수는 다양한 조건의 성숙을 전제로 목표를 구성하지만, 현실은 바로 그 전제들이 대단히 실현하기 어려운 또 하나의 과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단결과 통합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이 무르익지 않은 상황에서 당위적으로 진행되는 통합 논의는 과거 오류였던 상층 중심의 협상과정을 되풀이할 위험이 상존한다. 몇몇 대중조직이 결합했더라도 마찬가지다. 대중과의 괴리는 운동 영역에서도 만연한 문제다.

더구나 지금처럼 진보라는 말이 오염된 적이 있던가? 정치라는 것은 누가 동지이며, 누가 적대의 대상인지를 구분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러나 지금은 ‘진보’의 개념조차 합의되지 못한 채, 과거의 경험과 관성에 근거한 기준선만 혼재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연재에서 제시했듯이 87년체제의 후기 국면으로 접어든 시점에서 기존의 세력관계와 담론구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의 재활성화나 통합을 논의하기 전에 이 시대의 진보는 무엇이며, 어디를 지향해야 하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알다시피, 저마다 진보를 자처하는 세력 간 공론장은 파탄났고 감정적 적대가 그 자리를 대체한 지 오래다. 어쩌면 정파 간 갈등이 논쟁을 대체하면서 서로 간의 대화가 단절된 90년대 이후,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2008년 분당에 이르는 시기까지의 짧은 동거가 예외적인 시기였을지도 모른다.

장면2

통합진보당 창당과 분열의 장면들

제안1: 통합보다 가치 확인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하자

그렇다면 무엇이 적절한 출발점인가? 우선 지금의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고 교류하며, 무엇보다 대중적 메시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공론장의 복원이 필요하다. 이것은 단순히 ‘모여서 이야기하자’고 해서 이뤄지진 않는다. 공론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공동의 프로젝트’다.

누구라도 공동의 프로젝트를 제안해 보면 어떨까? 하나의 방법은 87년체제 이후의 대안사회의 모습을 함께 그려보는 것이다. 무작정 시작하기보다 이를 ‘헌법적 틀’로 구성한다면 더욱 쉬워 진다. 실제로 진행될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대선 이후 개헌 논의가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 개헌 논의가 시작될 것이냐의 문제와 별개로, 헌법적 틀로 진보정치가 추구할 대안사회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은 다양한 측면에서 유의미하다.

헌법은 그것이 가지는 의제의 포괄성과 추상성으로 인해, 이질적인 세력들이 모여 대안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기에 적합한 틀이다. 헌법의 포괄성은 각자가 중시하는 의제의 우선순위 문제를 피할 수 있으며, 헌법이 가지는 추상성은 합의가 어려운 구체적 정책을 넘어 정책방향에 대한 합의를 가능케 한다.

이 과정이 물리적 통합을 전제로 시작될 필요는 없다. 통합을 전제로 한 논의는 이에 대한 각 단위 내부의 선(先) 판단을 필요로 하며, 공론장 참여를 가로막거나 지체시키는 요인이 된다. 대신, 이 공론장에서 ‘공동의 대안’을 만들어 보자는 목표는 제시될 필요가 있다. 공통의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시도는 실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상호 논쟁을 통해 입장의 차이와 공통점, 쟁점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이 무르익는다면, 상호 간의 호불호와 감정적 적대를 넘어 물리적 통합 등 향후 단계를 위한 진지한 대화의 조건이 마련될 수 있다. 무엇보다 ‘적대’를 기반으로 형성된 87년체제의 세력관계는 ‘대안’과 ‘가치’를 매개로 한 형태로 전환될 수 있으며, 이 과정 자체가 진보정치세력의 대중적 메시지를 구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누가 시작해야 하는가? 누구라도! 각 정당과 조직의 중대 판단을 전제하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 대면 접촉과 대화를 시작하자는 제안은 누구라도 시작할 수 있고, 누구라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

제안2: 새로운 세대를 위한 공동의 지원

두 번째로 필요한 것은 진보정치의 가장 중요한 자원에 대해 투자하는 것이다. 5년 뒤, 10년 뒤를 내다보고, 각 정당 청년세대를 위한 지원이 절실한 시점이다.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 최대의 위기는 재생산의 위기다.

한때 바리케이트를 세우고 싸우며 성공과 패배를 맛보았던 진보정치세대의 뜨거운 열정은 시대의 흐름과 함께 점차 소진되어 갔다. 위기와 억압이 반복될수록, 특히 그것을 매 순간 하나 둘씩 이겨 나갈수록, 대중과의 괴리는 더 커졌다. 진보정치를 비롯해 대부분의 진보운동의 인적 자원을 제공하던 저수지였던 대학은 기업의 논리와 불안의 문화에 점령당한지 오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강요되는 무한경쟁과 만성적인 실업, 고용불안의 공포에도 불구하고, 더구나 8~90년대처럼 진보활동가을 향한 박수소리가 잦아들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헬조선의 현실을 넘기 위해 진보정치운동에 동참한 청년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불확실한 진보정치의 미래와 위기, 만연한 냉소와 조롱에도 선배 세대가 걸었던 것보다 더 험난한 가시밭길을 기꺼이 걷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도 않은 과거의 사건과 적대, 냉소의 짐까지도 꼬박 짊어지고 있고, 기성세대가 짜놓은 갈등의 프레임과 정파적 구획에 따라 무차별한 낙인찍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게다가 젊은 시절부터 진보정치의 이론, 성공과 실패를 경험할 기회가 많았던 선배 세대와 달리, 지금의 청년은 실패의 경험조차 제대로 가져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각 정당에는 청년세대를 지원, 육성할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진보정치의 분열과 파편화, 감정적 적대의 환경 속에서, 그들은 동시대의 청년 진보정치 활동가들과 논쟁이든 대화든, 교류할 기회조차 없었다.

각 정당과 조직의 고유한 가치와 방향에 대한 내용은 접어 두고서라도, 공통으로 필요성을 공감되는 초보적 청년 당원 교육과 지원 프로그램이라도 공동운영해 보면 어떨까? 각자가 여력이 없다면, 조금씩 힘을 모아 공통분모를 만들어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같은 세대 청년 정치 활동가들 간의 교류와 토론, 논쟁의 장을 만드는 과정을 모두가 지원하면 어떨까? 이대로 방치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지 않을까?

‘지금 당장’에만 얽매이기보다 5년 뒤, 10년 뒤에 진보정치를 주도할 청년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각 정당조직이 자기 역량의 20% 정도씩이라도 공동 투자하는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 어쩌면 진보정치의 진짜 희망은 여기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른다.

조급함보다 시대를 선도할 준비 갖춰야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고 있다. 현실의 불만과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욕구가 이른바 ‘안철수 현상’을 떠나 심상정 후보에게 옮겨가는 모양새다. 정의당은 전통적 진보노선보다 현실주의를 수용하고 상대적인 것일지라도 체제에 순응하는 모습을 갖추는 데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나타난 대중의 지지와 성원은 그간의 제도화 노력에 대한 반응이라기보다 동성애 문제처럼 비록 대중의 정서와는 일부 대립되더라도 진보적이며 원칙적으로 대응한 것에 대한 호응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이처럼 지난 몇 년간 노골화된 사회 전반의 보수화, 중도화 경향 속에서도 여전히 대변되지 못한 이들을 대변하고, 기존의 문법과는 다른 새로운 대안정치의 상을 제시할 진보정치에 대한 요구와 필요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진보적 가치를 지키고자 헌신하고 있는 이들 역시 존재한다.

지금은 조급성보다, 87년체제의 종식과 함께 도래 할 새로운 시대가 보다 민중친화적 성격을 지닐 수 있도록 시대의 안목을 키우고, 진보정치의 주체를 굳건히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1세대 진보정치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주체를 양성하는 것도 절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은밀한 협상보다 상호 간의 공개적 교류와 대중과의 소통이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

지금은 비록 남루할지라도, 진보정치의 혁신과 도약, 재구성은 여전히 실현 가능한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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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회의 글 “아래로부터의 실질적 ‘창당 경험’ 만들자” 링크

필자소개
성공회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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