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공공·복지 대개혁
    [시민혁명 대선⑥]공공적 민주경제
        2017년 05월 02일 11: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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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시민혁명과 대선⑤] 차별철폐·인권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과 노인 권리 보장”

    광장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재벌체제 개혁과 통제

    송원근(경남과학기술대 교수)

    아직 우리 마음과 몸속에 기억되어 있는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이른바 ‘87년 체제’를 만들어냈다. 이 87년 체제의 성격을 놓고 학계의 논쟁이 분분하지만 그것은 ‘민주화’를 향한 험한 여정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그 전환은 정치적 영역에 국한되었다.

    87년 체제의 또 다른 축이었던 노동자대투쟁이 있었음에도 기업규모별 임금격차와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더욱 확대되었다. 87년 개헌으로 경제민주화가 헌법(제119조 2항)에 명시되고 출자총액제한, 상호출자금지 등 경제력집중 방지를 위한 규제책들(공정거래법 제3조)이 만들어지고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에도 1997년의 외환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 규율에 기댄 재벌개혁은 실패로 끝났다.

    정치 민주화가 점점 더 지체되고 경제민주화가 위축되면서 재벌들은 경제권력을 확대했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권력을 장악해갔다. ‘재벌공화국’이란 냉소는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심화로 더욱 증폭되었다. 2012년 대선을 전후해 불거진 ‘갑질’ 논란은 규제받지 않은, 더 정확히는 규제가 불가능해진 독점재벌들에 의한 부(富)의 독식구조, 비용의 사회화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전 국민적 열망을 담은 ‘경제민주화’가 다시 의제로 떠올랐으나, 재벌개혁과 관련된 의제들은 오히려 축소되고 말았다. 대통령에 당선된 박근혜 정부는 이내 경제활성화를 내세우며 경제민주화 공약을 폐기해버렸다. 이것은 시민들의 희생으로 얻은 민주주의를 시민 없는 정치, 시민에 의존하지 않는 개인민주주의 정치로 대체해버린 귀결이며, 노동 없는 민주주의의 또 다른 모습이다.

    최순실-박근혜-이재용 게이트로 진화한 탄핵정국을 이끈 2016년 촛불은 그동안 축소, 왜곡된 민주주의를 대중민주주의로 전환할 수 있는 공간을 열고 있다. 현재진행형인 이 집단동원의 광장민주주의 경험은 통제받지 않는 재벌체제로 대변되는 현재의 경제시스템 개혁―그것을 경제민주화로 부르든 재벌해체라고 부르든―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넘어서는 또 다른 엄중한 전환점이 되어야 한다.

    거대 경제권력은 분할되고 산업적 시민권은 부활되어야

    그렇다면 이 같은 광장민주주의가 요구하고 있는 경제시스템 개혁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무엇보다 먼저 현재와 같은 ‘정경유착’ 혹은 ‘정부-재벌 간 공생’ 프레임만으로는 경제시스템 전반에 대한 개혁에 충분하게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정부-재벌 간 관계는 박정희 모델, 혹은 수출주도형 발전모델이 통하던 정부와 재벌 간 발전지배연합의 국가우위 단계에서 80년대 초반의 공생 혹은 갈등을 유발하기도 하는 재벌우위 단계를 지나 정치권력화한 재벌 우위로 발전해왔다. 따라서 대통령 탄핵, 국정농단 특검을 지나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정경유착’ 극복 차원에서만 이번 문제를 바라보는 한 그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정경유착 극복이 재벌 중심의 경제시스템에 대한 자유주의적 과제의 해결인 동시에 권력으로부터 자율성을 확보한 시민경제 형성이라는 진보적 과제의 해결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거대 경제권력을 그대로 둔 채 이들과 정부 간 유착을 해결하려는 시도는 자유주의적 개혁, 즉 시민 없는 제도개혁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근본적으로 거대 경제권력을 어떻게 분할할 것인가를 분명하게 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과 정책이 필요하다. 순환출자금지, 제2금융권 계열사를 포함한 계열분리명령제, 기업분할명령제, 그리고 법원의 삼성물산 합병비율 재산정 판결이 나올 경우 합병무효화를 요구해야 한다.

    둘째, 거대권력에 대한 공적인 통제를 통한 경제시스템 개혁을 경제민주화라고 할 때, 이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자유를 확대하는 것, 예를 들면, 소비자주권, 주주권의 강화와 같은 것에 머물지 않고, 기업, 산업, 시장, 정부 등 모든 수준에서 경제주체로서 시민들의 참여와 시민권력을 보장하고 실행하는 개혁 구상을 포함하고 있어야 한다. 산업적 시민권의 회복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87년 체제’로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은 하위 법률에서 부정되었고, 기업별노조는 여러 가지 한계를 보였고, 산별교섭은 원천 봉쇄되기 일쑤였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노동권 약화와 주주권 강화의 당연한 귀결이었다. 따라서 종업원 추천 전문가 참여를 넘어 노동자 대표가 직접 참여하는 노동이사제, 현행법에 규정되어 있지만 실효성 낮은 노사협의회 활성화가 필요하다. 개별기업에 국한할 필요는 없다. 즉 기업집단 수준에서도 계열사별로 최소1명 이상의 노동자대표, 일정 수 이상의 비조합원⋅비정규직이 존재하는 경우 이들 대표 1명씩 참여하는 그룹노사협의회나, 그룹 차원의 공동결정법을 만들어 노동의 대항력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산별노조 수준, 노사정 수준에서 노동의 협상력과 대항력을 높이는 실질적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 도입과 함께 대안적 경제시스템 구상도 병행

    셋째, 시민 있는 정치의 전제조건으로서 불평등 해소를 위한 정책적, 제도적 토대를 복원해야 한다. 이 불평등의 해소는 개인으로서 국민들 간의 불평등뿐만 아니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세대 간 불평등 등을 해소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를 위해 앞서 말한 산업적 시민권 부활, 노동의 협상력 강화를 통해 생산성 증가와 실질임금 사이의 연계를 높임으로써 새로운 성장 경로를 만들어가는 것이 필요하다. 이 연계가 높아지려면 기존의 재벌대기업 중심의 약탈적 산업구조를 교정해야 하고, 수출주도, 부채의존, 낙수효과에 기댄 기존의 성장패러다임과 그것을 지지하고 있던 제도나 정책들을 재검토하는 일이 필요하다.

    또 불평등 해소가 단순히 복지제도 개혁이나 몇 가지 새로운 제도 도입 같은 문제로 국한되어서도 안 된다. 그것은 경제 주체들 사이의 힘의 불균형을 교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참여와 시민권 부활을 통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재벌개혁과 보편적 복지, 두 과제는 상호 대체적인 것이 아니라 동반해야 할 문제이다. 그 이유는 ①재벌개혁을 통하여 부당하게 얻은 이익이나 상속재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고, ②계열사 간 출자에 대한 배당과세 등을 신설하여 보편적 복지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고, ③보편적 복지의 출발은 현재와 같이 왜곡된 노동시장을 교정하는 것으로 시작되어야 하는데, 왜곡된 노동시장의 근본 원인은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이기 때문이다.

    넷째, 탄핵 정국에서 국회에 입법 발의되었다가 2월 임시국회에서 입법화되지 못한 ‘경제민주화법’을 빠른 시간 내에 재발의하고, 조기 대선이 확정된 가운데 각 정당의 대선 후보들이 제안하고 있는 재벌개혁 관련 공약들의 실현가능성을 면밀하게 따져보는 것 이외에도 경제시스템 개혁에는 이런 당장의 개혁 대안뿐만 아니라, 조금 더 멀리 보는 중장기적 제안과 구상도 필요하다. 예를 들면 2018년 지방선거 혹은 2020년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시민권이 확대되고 보장될 수 있는 경제시스템 개혁 구상이 담겨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참여정부 핵심 기치이기도 하였던 분권과 자치를 중앙, 지방정부 수준에서 제도화하는 것, 또 대의민주주의에 기초하여 서울시가 시행하고 있는 참여예산제도와 같은 시민참여제도의 한계를 극복하고 시민권력 행사를 실효화하는 일이 그것이다. 정부 정책은 시민들에 의한 정치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이며, 정치는 이를 조직화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공적의식을 가진 시민들의 개입을 통해, 시민들의 공통감을 일깨우고, 공동체 감각을 북돋음으로써 어떤 제도나 정책을 시행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한다.

    광장민주주의로 진정한 정치공동체를 형성해야

    그러나 촛불 정국으로 드러난 시민들의 자각과 엄중한 요구에 비해 경제시스템이나 재벌체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실제 조건이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삼성물산 합병을 도왔던 보건복지부나 공정거래위원회가 보여주었듯 거대 경제권력에 포획된 정부와 관료들, 재벌체제로부터 이득을 챙겨온 기득권 세력과 이재용 체제를 만든 공모자들의 조직적 반발이 그런 경우이다. 또 재벌개혁을 ‘포퓰리즘’이라 하면서 권력의 통제로부터 ‘시장경제’를 지키자고 말하고, 민족적 정서에 기대 ‘국부유출’을 막자고 선동하며, 광장의 경제민주화 요구를 ‘가짜 경제민주화’로 매도하고 있는 지식인들은 어떤가?

    어쩌면 파우스트의 거래에 익숙해진 우리 자신들,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삼성의 위기를 대한민국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우리들이 더 문제일지 모른다. 힘들지 모르지만 이런 오류에서 벗어날 때 광장민주주의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그럴 때라야 거대 권력을 쪼개고, 시장을 통제하며, 산업적 시민권이 보장되는 경제시스템 개혁의 첫 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이다. 광장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자신과 이웃의 이해관계를 연관 짓고,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할 이유를 설명하고 논쟁하며, 무엇을 공동으로 주장할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기회이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은 정치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정치 공간을 열어간다. 이러한 연관과 토론과 주장과 관계 맺음의 핵심에 경제시스템 개혁, 경제민주화 출발점으로서 재벌개혁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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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

    사진=노동과세계

    공공부문의 적폐와 개혁과제

    김 철(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지난해 10월말부터 22차에 걸쳐 이루어진 촛불항쟁에 1천6백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박근혜 정권을 퇴진시키고 조기대선을 열어젖혔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체제의 적폐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으나, 이 가운데 공공부문 개혁은 중심에 있지 않다.

    국정농단의 행동대장 기획재정부

    공공기관은 사회간접자본(SOC), 의료, 국민안전 등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며 고용, 예산 등에서 국민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하지만 지난 20여 년간 공공부문 개혁의 핵심은 신공공관리(NPM) 기조에 입각한 공공부문 구조조정 및 경영효율화였다. 이에 공공부문 개혁 기조의 전환을 통한 공공적 민주경제의 구축과 공공부문 대개혁의 청사진 제시가 요구된다. 공공부문 개혁을 주도해왔던 기획재정부에 책임을 묻고, 비대한 관료권력의 해체, 공공기관운영법의 전면개정을 비롯한 대안적인 공공부문 개혁방안이 제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신문들을 비롯한 보수언론에서는 관료들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피해자로 취급하면서, 공직사회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는 사실을 크게 오도한 것이다. 실제로 정책과 행정에 무지한 비선실세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한 것은 바로 경제관료들이었으며 사실상 ‘이명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을 좌지우지하며 정책 대부분을 결정해 왔다. 국민연금공단의 이재용 삼성그룹 승계 공모,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인 지원금 삭감, 재벌 청부 정책인 성과연봉제 강행도입 및 쉬운 해고 강제 등 기획재정부는 박근혜・최순실・재벌이 공공기관을 이용하여 온갖 국정농단을 저지르도록 조장하고 방관했다.

    더욱이 한국 정부조직에서 경제부처는 정책을 펴나가는 과정에서 시장지상주의와 친투기자본, 친재벌적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냈고, 모피아(MOFIA)로 불리면서 권력 네트워크를 형성해왔으며, 한국경제 체제를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로 바꾸어왔다. 여기에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가 기획재정부로 통합된 결과 경제부처 권력은 훨씬 더 강화되었고, 그에 따른 폐해도 막대하다.

    이를테면 공공기관 운영체계에 있어서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도 기획재정부가 주도하면서 공공기관의 민주적 지배구조를 외면하였다. 공운위는 공공기관에 대해 경제부처로서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효율성 측면으로만 접근하고 있는 기재부장관 소속으로 되어 있어 공공기관 관리의 독립성 및 책임성이 부족한 상황이다.

    청산되어야 할 공공부문의 적폐들

    이명박근혜 정부는 낙하산 인사, 코드인사의 투하 등을 통해 발생하는 정책적 비능률성의 문제를 개선하는 데 소홀한 대신 공공기관의 인력감축, 경영효율화에만 관심을 두어 정작 공공기관의 고질적인 문제들을 방치했다.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등이 평가지표화 되어 공공기관들은 기관의 주요 사업과 본질적 목표보다는 정부의 당면한 요구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 수행하도록 강제되었다. 기획재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복지를 책임지는 공공기관 본연의 공공성을 돈과 바꿔먹으라고 강요했다.

    이명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책에서는 낙하산 인사를 막을 수 있는 방안도 없고, 의지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난 4년 동안 5명 중 1명꼴로 공기업・준정부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투하되었다. 촛불정국에서도 이러한 양상은 변하지 않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시작했던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간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보면 전체 4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24명(54.5%)이 전직 관료들로 채워졌다. 박근혜 정권의 창조경제 정책과 최순실・차은택 라인에 의한 특혜와 비리,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노동개악과 성과퇴출제, 최경환의 채용청탁비리 등에는 모두 낙하산 기관장들이 연루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초기부터 SOC 부문 공기업과 에너지 공기업들에 대한 민영화 맹신에 빠져 있었으며, KTX 분할민영화 계획에서 잘 드러난 것처럼 국민적 동의도 없는 상태에서 운영권 매각 등을 통해 민영화 계획을 임기 말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의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 또한 실제 내용은 공공부문 민영화이고, 공공기관 기능재편은 공공부문 민영화 추진의 다른 이름이었다. ‘민간과의 경합 방지’를 위한다는 공공기관 기능조정의 명목은 설립목적에 맞지 않는 공공기관의 사업을 정리하거나 민간으로 넘긴다는 것이었지만, 실제로는 수익성이 있는 사업의 민간 매각으로 나타났다.

    비대한 관료권력을 해체하고 공공부문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그래서 공공부문 개혁은 비대한 관료권력을 해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공공부문의 적폐들을 일소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경제정책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기획재정부의 역할은 축소되어야 하고, 예산기획 기능과 경제정책 기능은 분리되어야 한다. 경제정책을 사회정책에 종속시키고 시장만능주의의 근본적 해체를 추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획재정부의 현재 기능 중에서 중장기 경제사회발전방향의 정립 및 경제정책의 총괄・조정에 관한 기능, 예산기능, 공공기관 및 정부혁신 기능은 대통령 직속 예산기획부처를 설치하여 이를 통합 관리토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관리・감독 기능은 직무에 관하여는 독립의 지위를 가지며, 소속 공무원의 임면, 조직 및 예산의 편성에 있어서 독립성을 가지는, 예산기획부처 소속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로 실질적으로 이관한다. 나머지 조세정책 및 제도의 기획・입안 및 총괄・조정을 담당하는 세제실의 기능, 국고, 국유재산, 정부회계, 국가채무에 관한 정책의 수립과 관리 총괄을 담당하는 국고국의 기능, 재정관리, 민간투자 등을 관할하는 재정관리국의 기능 등은 재정부에서 담당하도록 한다. 이와 함께 국민참여예산제를 도입하여 정부의 예산편성권과 국회의 예산심의권을 보장하면서 그 과정에서 국민이 직접 참여권을 확보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민영화 정책에 있어서는 이의 비가역성을 고려, 필요시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를 바탕으로 행해져야 한다. 철도산업은 분리가 아니라 통합, 경쟁이 아니라 유기적 조화가 안전과 성장을 가져올 수 있음을 인식하고, 비효율만 양산하고 열차 안전운행의 위험을 철도공사와 국민에게 떠넘긴 고속철도 분할이나 민간에 매각된 인천공항철도(AREX)의 재통합도 철도의 공공성 회복을 위해 원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하며, 추가적인 민자철도 활성화 방안은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 에너지 산업도 전력산업의 재통합 등 공적 재편을 도모하고, 민간의 확대가 아니라, 기업 특혜성 민간 발전을 규제하며, 가스산업에 대한 공적 규제 등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에너지 저소비 체제로의 전환과 함께 원자력과 석탄을 줄이고 LNG의 역할을 중단기적 대안으로 강화하면서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한 공적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의 민주주의 회복이 관건

    필수적인 공공기관은 신설하는 방안을 모색하되, 현재는 시장영역에 속하지만 국민 생활과 직결되는 서비스로 민영화된 기간산업은 사회적 논의를 토대로 재공영화 등 공공성 강화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명시적인 민영화뿐만 아니라 기관 기능의 민간 개방이나 기업 공개, 정부 지분 매각 등 우회적인 민영화로 볼 수 있는 기능조정 계획을 수립하는 경우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의 동의를 반드시 얻도록 하고 노동계와 시민사회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함으로써 국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외부통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재무적 효율성의 잣대로 공공기관을 재단하여 돈벌이평가가 되고 있는 공공기관・지방공기업 경영평가제도도 공공서비스 증진을 전제로 한 민주적이고 자율적인 ‘운영평가’로 바꿀 필요가 있다.

    공운위를 실질적인 심의가 이루어지는 공공기관 최고의사결정기구가 되도록 하기 위해 이를 기획재정부에서 분리하는 한편, 다양한 분야 이해관계자들, 특히 노동계의 참여를 확대해야 한다. 공공기관 임원 및 구성원의 책임을 제도화함은 물론 공공기관 이사회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보장하는 참여형 이사회를 구성토록 하여 공공개혁과 관련한 다양한 의견주체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허용하는 민주적 지배구조가 공공기관에 구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최소한 시민단체나 노동조합, 소비자단체, 책임 있는 협회 등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통해 공공이사회를 구성한다는 원칙부터 확립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시민인사청문회 형태의 인사검증 절차를 두어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적합한 인사가 임명되도록 하는 한편 임명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시민의 안전과 좋은 일자리를 책임지는 공공부문으로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하여 무분별한 규제완화는 오히려 안전을 위축시키고 생존을 위협한다는 점이 드러났다.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기조는 재고되어야 하며, 안전을 위한 규제를 적극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와 시민의 안전을 볼모로 기업의 돈벌이를 조장하는 무분별한 규제완화 정책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

    나아가 공공부문을 좋은 일자리의 창출과 확대의 주체로 만들 필요가 있다. 물론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린다 하더라도 국민에 대한 서비스의 향상 및 확대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의미가 없는 만큼, 사회서비스, 지식노동, 생명⦁안전 업무 등 기능 확대가 필요한 영역을 제시하고, 그 영역에 한해서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기능조정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영역은 과감하게 축소하여 공공부문 일자리 정책의 실효성을 담보해야 한다. 특히 사회서비스는 공공부문이 담당해야 할 주요한 부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서비스의 양적 확충에만 치중한 결과 70여만 일자리가 노동조건이 열악한 저임금 여성 일자리로 인식되고 있다. 사회서비스 노동자의 열악한 불안정노동을 양질의 일자리로 바꾸는 역할을 공공부문이 담당해야 하며,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지자체 산하에 지방공공기관을 설립하여 직영을 도모하고 사회서비스 노동자들을 직고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모범사용자로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앙정부의 보다 구속력 있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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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보

    사진=노동자연대

    복지실태 진단과 새 정부의 개혁 과제

    오건호(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대한민국은 OECD 회원국 중 복지지출이 가장 낮은 국가에 속하고, 향후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어서 대책이 시급하다. 근래 보육, 기초연금 등에서 복지가 일부 늘었으나 국민들이 체감하기엔 빈약한 수준이고, 의료, 주거 영역에서 사적 지출이 커 공적 복지의 효과가 반감된다. 또한 사회보험과 공공부조 영역에서는 사각지대가 커 제도가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OECD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한국의 복지

    현재 복지 실태를 살펴보자. 2017년 중앙정부 복지지출은 129.5조원으로 정부총지출 400.5조원의 32.3%를 차지한다. 지방정부 지출 등을 종합한 전체 복지 규모는 2016년 GDP 10.4%로 OECD 회원국 평균 21.0%의 절반에 불과하다. GDP의 약 30%를 복지에 사용하는 유럽 복지국가와 비교하면 1/3 수준이다. 주요 부문별로 보면, 먼저 의료비는 2015년 기준 보장률이 63.4%로 낮다. 특히 중증질환, 고액환자일수록 비급여 진료가 많아 본인 부담이 무거운 구조로 시민들을 민간의료보험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한국의료패널을 보면, 2013년 전체 가구 중 77%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가구당 월 평균 보험료가 무려 28.8만원이다. 같은 해 직장 가입자들이 국민건강보험에 내는 본인부담 보험료 평균 9.3만원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집 없는 사람에게 주거비도 무거운 부담이다. 2014년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는데도 자가 점유율은 53.6%에 불과하다. 가구 중 절반 가까이가 남의 집에서 살고, 특히 전월세비 고통이 크다. 이는 무엇보다 서민 주거 안정의 토대여야 할 공공임대주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014년 우리나라 공공임대주택의 비중은 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5%(2007)의 절반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부의 임대인 중심의 주택 정책이 문제를 악화시킨다. 한국에서 재계약 시 전월세 상한제가 적용되지 않고, 계속거주권도 인정되지 못하고 있다.

    백세 시대에 노인복지도 중요하나 현재와 미래 모두 어둡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비중은 12.8%로 OECD 평균 16.7%보다 낮다. 그런데도 2014년 기준 노인빈곤율이 무려 49.6%로 OECD 평균 12.4%에 비해 무려 4배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경제활동참가율이 외국에 비해 높은 수준임에도 빈곤율이 높은 이유는 공적연금이 빈약하기 때문이다. 2016년 국민연금 노령연금 수급자의 월평균액이 37만원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역사가 짧아 가입기간이 길지 않은 게 핵심 원인인데 이후에도 가입기간이 길어지지만 법정급여율이 낮아져 역시 금액이 많지 않을 전망이다. 이마저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도 광범위하다. 2016년 국민연금 수급연령인 65세 이상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은 전체 노인 700만명 중 266만명으로 38.0%에 그친다. 따라서 기초연금의 역할이 중요한데, 2014년부터 금액이 20만원으로 올르긴 했으나 매년 소득이 아니라 물가와 연동해 오르는데다가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감액되는 독소조항이 존재해 시간이 흐를수록 기초연금의 증액 효과가 반감된다.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골간인 사회보험이 전체 복지분야 지출에서 65%를 차지하고 고령화에 따른 의료, 연금 증가로 2050년에는 80%까지 이를 전망이다. 문제는 광범위한 사각지대이다. 2016년 8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보면 비정규직 노동자 중 직장 국민연금에 가입한 비중은 31.7%, 고용보험은 38.9%, 직장 건강보험은 39.6%에 불과하다. ‘두루누리 사회보험료 지원사업’을 통해 월급이 140만원 미만 노동자와 사용자에게 사회보험료의 약 절반을 지원하고 있으나 이것만으론 역부족이다.

    공공부조의 핵심인 국민기초생활보장 복지 또한 취약하기 그지없다. 정부가 발표하는 최저생계비 기준 전체 가구(1인가구 포함)의 빈곤율은 2014년 8.6%이다. 그런데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는 2015년 165만명으로 인구의 3.2%에 불과하다. 정부가 정한 절대빈곤층의 일부만 국민기초생활보장제 적용받고 있는 현실이다. 장애인 부문에서도 현실과 제도의 괴리가 존재한다. 우리나라 장애인 출현율(인구 대비 법정 장애인 비율)은 5.6%이다. 이는 OECD 평균 15.0%의 약 1/3에 불과하다. 그만큼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에 대한 정의가 지나치게 엄격하고, 지원 제도도 제한적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장애인 예산 규모에서도 확인된다. 2013년 기준 한국의 장애인 예산은 GDP 0.6%로 OECD 평균 2.1%의 약 30%에 불과하다. OECD 회원국 중에서 멕시코, 터키에 이어 거꾸로 세 번째이다.

    사적 복지를 공적 복지로

    이제 우리나라도 복지국가로 가려면 무엇을 개혁해야할까? 사실 항목으로만 보면 아동수당, 상병수당 등만 제외하면 서구 복지국가에서 운영하는 복지 제도들이 거의 도입돼 있다. 그러나 실제 수준은 빈약하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먼저 의료와 주거 분야에서 사적 복지를 공적 복지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많은 시민들이 복지 수준이 낮다고 느끼는 이유는 사적 복지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우선 민간의료보험 대신 국민건강보험으로 병원비를 해결하자. 의학적 성격을 지닌 비급여를 모두 급여로 전환하고 환자가 1년간 본인부담금을 백만원까지만 내는 ‘백만원 상한제’를 실시하자. 이는 민간의료보험에 내는 보험료의 일부만 국민건강보험으로 돌리면 가능하다. 주거복지도 강화해야 한다. 현재 5.5%에 불과한 공공임대주택을 두 배로 늘려 최소한 OECD 국가 평균 수준에 도달하고, 임대료상한제를 도입해 물가상승률과 연동하고, 계속거주권을 도입해 세입자가 한 곳에 오래 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다음으로 보육과 요양 부문에 있어 공공 복지인프라를 강화해야 한다.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요양・보육 등 돌봄서비스의 중요성이 크다. 현재 우리나라 돌봄서비스가 주로 민간시설에 의해 제공되고 국가의 역할은 재정을 지원하고 감독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요양・보육 서비스가 시장 원리에 의존함에 따라 종사자의 처우도 열악하고 서비스질도 높지 않다. 이제는 국가, 지자체가 돌봄서비스 공급자로 직접 나서야 한다. 보육 영역에서 국공립 시설의 비교우위가 확인된만큼 공공 보육・요양 인프라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사각지대를 없애고 실질적으로 지원해야

    다음으로 우리나라 복지체계의 근간인 사회보험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해야만 한다. 국민연금과 고용보험 보험료의 약 절반을 지원하는 두루누리사업을 전액 지원으로 강화하고, 국민건강보험까지 지원을 확대해 실효성 높여야 한다. 국민연금 지역가입자의 경우 현재 농어민에 대한 지원만 존재하는데 도시 영세 자영자에 대한 보험료 지원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리나라 사회보험의 빈약한 수준은 낮은 사회보험료에 기인한다. 국민건강보험료뿐만 아니라 고용보험, 국민연금 보험료를 상향해 급여수준을 올리고 사각지대 개선에도 사용하자.

    나아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와 장애인복지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복지를 실질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몇 년 동안 급식, 보육, 기초연금 등 보편적 성격을 지니는 복지는 확대되고 있으나 가난한 사람을 위한 복지인 공공부조는 거의 제자리이다. 한정된 예산과 의지 부족으로 인해 복지 공방에서 취약계층 복지가 부메랑을 맞고 있는 셈이다. 정부가 기존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맞춤형’으로 개혁했다지만, 사각지대를 초래하는 독소조항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제 부양의무제와 재산의 소득환산제를 폐지해야 한다. 장애인복지에서도 장애인연금의 대폭 인상, 장애인활동지원 강화, 장애인들의 탈시설 확대 등으로 나아가야 한다.

    복지증세로 조세 기반 복지를 확대

    현재와 같이 노동시장이 불안정한 조건에서는 조세 기반 복지의 역할이 중요하다. 즉 노후복지로서 사각지대를 낳지 않으며 소득재분배 효과가 크고, 특히 노인빈곤율이 높은 우리나라에 긴요한 기초연금 제도를 강화해야만 한다. 현행 20만원의 기초연금을 30만원 이상으로 올리고 물가연동, 국민연금 연계 감액 등의 독소조항도 폐지해야 한다. 고용보험의 경우에도 조세 기반의 실업부조를 도입해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청년, 불안정 노동자, 영세자영자의 소득 결손을 지원해야 한다. 아동, 장애인 등 노동시장 밖 집단에 대한 사회수당을 강화하고 장애인연금은 장애가구 가구지출을 반영해 대폭 인상해야 한다. 근래 다양한 생애주기별 사회수당이 기본소득 이름으로도 제안되고 있다. 이러한 제도 역시 조세 기반 복지 확대의 맥락에서 긍정적 의의를 지닌다.

    이렇게 조세기반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국가재정을 확충해야만 한다. 지출개혁과 함께 강력한 복지증세가 요구되는 것이다. 2015년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GDP 18.6%로 OECD 평균 25.2%(2014)에 비해 6.6% 포인트 낮다. 사회보험료를 포함하는 국민부담률은 GDP 25.3%로 OECD 평균 34.3%(2015)에 비해 9.0% 포인트 낮다. 세입 확충의 여지가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법인세, 소득세뿐만 아니라 상속증여세, 보유세 등과 사회보험료까지 망라한 종합적 복지증세를 추진하자.

    필자소개
    김철(사회공공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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