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수렁'에서 나와야
[한반도와 평화] 6자회담 재개 시급
    2017년 05월 01일 02:3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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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이하드에서 주인공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 분)은 테러리스트들과 싸운다. 그의 아내 홀리(보니 델리아 분)는 인질이었다. 겉으로는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테러리스트들의 진짜 목적은 돈이었다. 돈을 챙기는 두목에게 홀리는 경멸에 찬 눈빛과 함께 “알고 보니 좀도둑이었군..”이라며 쏘아붙인다.

트럼프는 좀도둑인가. 좀도둑이 아니라 큰 도둑일 가능성이 많다. 단돈 10억 달러를 먹기 위해서 사드를 배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상황은 유동적이다. 모든 것은 협상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 그들에게 사드는 대 중국 전략의 일환으로 중요하다. 돈 안받겠다하고 배치하면 생색낼 수 있다. 새 정부에게 “당당하게 협상에 임했다. 이미 배치되었는데 물릴 수는 없었다. 돈 안낸 것만 해도 어디냐”라고 말할 기회도 제공해 줄 수 있다. 대신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고 한미 FTA 재협상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은 덤이다.

그러나 사드 문제는 단순히 군사적 쟁점이 아니듯이 한미 간의 경제적 쟁점도 아니다. 트럼프의 10억 달러 발언 때문에 경제적 쟁점으로 옮겨가는 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는 미국과 중국, 일본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이해와 협조가 필수적이다. 독일의 통일 과정은 독일 통일이 유럽 평화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설득하고 행동으로 보여준 과정이었다. 한국은 주변국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 골치 아픈 것은 미중 관계다. 미국과 중국이 잘 지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힘겨루기가 본격화되고 싸움이 잦아지면서 한국은 시험대에 올랐다. 두 강대국의 대결구도를 바꿀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없다. 다만 우리는 한반도 문제에서 발언권을 충분히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또 미국과 중국의 대결에서 중심을 잡고 현명하게 대응하면 우리의 전략적 가치, 몸값을 높일 수 있다.

문제는 한미동맹이다. 이미 한미동맹은 대북 방어용을 넘어선 지 오래다. 한미동맹은 과거 냉전시대에 북한의 침공을 막는 역할을 했다. 거꾸로 남한 내 호전파들을 견제하기도 했다. 긍정적 역할을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미동맹은 미국이 구축하려는 대중국 한미일 동맹의 하위파트너의 성격으로 바뀌고 있다. 사드의 한국 배치는 자신의 안보 이익에 부합하지 않아도 동맹의 안보 이익에 따라 분쟁에 끌려 들어가거나 군사적 지원을 제공하는 ‘연루’의 위험에 빠지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분명 긍정적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 안보에 한미동맹이 끼치는 부정적 영향에 대해서 주요 정당과 후보는 애써 외면한다. 사드는 정크 푸드(junk food)다. 한미동맹에 배고프면 먹어야 하고, 한미동맹이 과잉이라고 판단하거나 근본적 체질변화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먹지 않아야 한다.

앞으로 들어설 정부가 중심을 잡지 않고 강대국의 한반도 흔들기에 오락가락 하다보면 그 장단에 우리의 국익은 소실되고 만다. 중심을 잡는 것, 자주적 외교는 트럼프의 대한반도 정책 변화로 더 절실해졌다. 트럼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저지하기 위한 ‘최고의 압박과 관여’를 골자로 한 새로운 대북 정책을 내놓았다. 그동안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 아래 한발 물러서 있던 미국이 한반도 문제에 적극 개입하기 시작했다. 트럼프는 오답이든 정답이든 시험을 치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가 시험에 응하기로 한 것, 그 자체는 긍정적일 수 있다. 그러나 앞으로 미국 발 이슈가 한반도를 흔들 가능성이 더 많아졌다. 지금은 잠잠해졌지만 선제타격론은 언제든 다시 나올 수 있다. 기본적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경고의 성격이 있겠지만, 이는 북한 이외의 나라에 대한 다목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 한국민의 안보 불안감을 조성함으로써 무기도 팔고, 한국 내 친미주의자의 입지를 키워주고, 중국에 경사될 수 있는 분위기를 막는 카드로 활용될 것이다.

얼마 전 트럼프가 선제타격의 목소리를 높일 때 한국의 정치권이 기껏 한 이야기는 “우리 동의 없이 선제타격을 해서는 안 된다”였다. 트럼프의 선제타격 위협은 유엔헌장 위반이다. 유엔헌장 제2조는 무력의 ‘행사’뿐만 아니라 무력의 ‘위협’도 금지하고 있다. 그 누구도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 유엔헌장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항의하지 않았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를 따지기 전에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개발은 물론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 정권의 시험 답안지가 정답이 아닌 오답이면 우리 안보에 큰 위협이 된다. 안보 위협은 하나의 카드가 되어 정치적, 경제적 비용을 키운다. 큰 도둑 트럼프는 적당히 판을 흔들며 그 비용을 청구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이든 미국의 트럼프든 신뢰를 가지고 함께 일을 도모할 만한 파트너가 없는 상황에서, 정권교체기의 불안정까지 더해 잘못하면 수렁에서 헤어날 수 없게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은 하루 빨리 다자간 안보협력 테이블을 성사시켜 관계국들이 마주 앉도록 하는 것이다. 새 정부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를 위해 새 정부는 한반도 비핵화와 함께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원칙을 천명함과 동시에 북미회담의 지지와 중재, 한미합동군사훈련의 중지와 북핵‧미사일 개발의 중단을 교환하는 등 6자회담이 조속히 실현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남북 당국자 간의 대화는 기본이다.

필자소개
미래정치센터 정책자문위원,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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