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체제, 왜 한국의 적폐인가?
    [19대 대선의 의미②] 노동자운동의 미래 위한 교훈
        2017년 04월 30일 05: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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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의 글 “2017년 19대 대선, 정당체계 바꾸는 결정적 선거인가” 링크

    재벌체제, 왜 한국의 적폐인가?

    한국에 존재하는 재벌과 같은 기업집단은 20세기 자본주의를 경험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들 대부분은 악덕자본가, 과두지배자라 불리기도 하며, 자본주의가 낳은 경제적 부정의를 상징한다. 자본주의적 발전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기업집단 지배권의 상속이라는 문제는 커다란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된다. 지배권 승계를 둘러싸고 가족집단의 ‘왕자’와 ‘공주’가 벌이는 파열적인 불화는 대중의 냉소를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가 전부가 아니다. 소수의 초거대 피라미드 기업집단의 지배는 더 광범위한 정치경제적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첫째, 대규모 피라미드 기업집단의 존재는 그들이 속한 국가가 ‘중간소득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암시한다. (중간소득 함정이란 빠른 경제성장을 보이던 국가가 고소득 국가로 진입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채 장기간 정체상태에 빠져 있는 상황을 가리킨다.) 즉 소수의 대규모 기업집단이 경제적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제도적 발전을 가로막음으로써 국민경제 전체가 정체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의미다.

    둘째, 기업집단은 이를 지배하는 가족집단의 선호에 따라 투자를 할당한다. 그런데 소수의 초거대 기업집단이 경제의 대부분을 통제하는 곳에서 가족집단, 또는 총수의 판단 착오가 초래한 위험은 시스템적 위험, 즉 국민경제의 붕괴 위험을 야기한다. 나아가, 우리가 1997년 IMF 위기 당시 경험했던 것처럼, 이런 위기가 발생할 때, 기업의 위험은 주주와 노동자가 부담해야 하고, 국민경제의 붕괴 위험은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파괴적 국면이 도래한다.

    셋째, 이미 부유하고 강력한 기업집단은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즉 자신의 기존 기업 내부에 수익성이 낮은 투자계획에 자본을 투여하는 데 익숙하다. 따라서 거대 기업집단은 혁신에 둔감하고, 오히려 가격 경쟁력에 집착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세계 각국과의 무역개방을 유지, 확대하는 데 의존하며, 또 한편으로는 노동비용의 축소, 즉 노동신축화에 결정적으로 의존한다. 한국의 재벌이 세계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매우 적극적이고, 노동신축화를 역전시키는 조처에 기업경영 여건 운운하며 극렬히 반대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라.

    재벌천국

    사진=금속노동자

    지난 세기 자본주의 역사에서 세계 각국의 기업집단이 보인 행태와 비교해보면, 한국의 재벌은 그와 전혀 다를 바 없는 전형적인 경로를 따라가고 있다. 한국의 재벌은 한국사회에 대한 일말의 책임도 느끼지 않으며 개인적 부와 기업에 대한 통제력 유지에 골몰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재벌은 경제적 혁신능력이 없을 뿐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식도 없다.

    그에 더하여, 한국 재벌의 경우, 재벌에 대한 특혜 정책 차원에서 경제성장을 위한 재원조달을 직접투자가 아니라 외채에 의존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그 결과 한국은 외채의존적인 신흥공업국의 하나로 부상했고(한국, 브라질, 아르헨티나, 멕시코), 외채 위기에 지극히 취약한 경제구조가 형성되었다. 그에 따라 1997-98년 외환 위기 이후 한국의 ‘민족경제’가 붕괴하게 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대한 외국인 지분이 1/2을 초과하고, 국민·신한·하나은행의 외국인 지분은 2/3를 초과하게 된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미 한국경제를 지배하게 된 재벌을 축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재벌이 197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육성되기 시작했지만, 이미 1970년대 말부터 재벌체제의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이에 근본적으로 수술 칼을 들이댄 정부는 없었다.

    표1

    이를 테면, 1979-80년 위기 이후, 전두환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개혁을 도입하는데, 시장외부 수단을 축소하고, 기업집단이든 금융이든 ‘시장규율’에 따라 행동하도록 보장하겠다는 정책 방침을 추진했다. 특히 재벌 정책에 관해 정부는 공정거래법을 도입하여 경쟁을 촉진하고,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고 지주회사 설립과 상호출자를 금지했으나, 오히려 순환출자구조라는 한국식 기업집단구조를 창출했을 뿐이었다. 한편 금융을 자율화하고 재벌의 배타적 신용독점을 완화하려 했으나, 오히려 재벌이 비은행권 금융회사에 진입하도록 규제를 완화함으로써 1997-8년 금융위기의 뇌관을 키웠다.

    김대중 정부는 1999년, 드디어 지주회사를 허용하여, 대기업집단이 온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개방했다. 김대중 정부는 지주회사가 복잡한 순환출자를 단선화하여 부실기업의 신속한 퇴출을 용이하게 한다는 명분을 제시했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주회사는 총수나 그 일가가 거대 기업집단을 지배하는 피라미딩을 위한 가장 보편적인 방편이다.

    노무현 정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2003), <대규모기업집단시책 개편안>(2006)을 통해 기존 재벌이 더 쉽게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했다. 또한 2006년 12월, 법인세법이 개정되어, 지주회사가 자회사로부터 받는 배당수익에 대한 법인세 감경 혜택이 확대되었다. 그에 따라 지주회사로 전환한 SK, LG, GS, CJ, 한진중공업, STX는 총수의 확고한 1인 체제를 구축했다. 잘 알다시피, 노무현 정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했다. 한미 FTA는 국내 재벌의 전폭적 지지를 받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노무현 대통령은 2005년, 삼성 이건희 회장의 처남이자 중앙일보 사장 홍석현을 주미대사로 발탁했다. 당시 어느 ‘고위 당국자’는 “홍석현 내정자가 주미 대사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고 나면 아시아 출신 유엔사무총장으로 연결될 가능성도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홍석현 사장은 불과 6년 전인 1999년 증여세와 양도세 탈세, 리베이트 수수로 2000년 대법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30억 원 판결을 받았다가 3개월 후 8·15특사로 사면복권되었다. 이 사안만으로도 그는 부적격 인사인 게 명백했다.

    따라서 홍석현 사장의 발탁은 노무현 정부와 삼성 재벌의 밀월 시대를 상징했다. (하지만 홍석현 사장은 2005년 삼성 X파일 사건으로 5개월 만에 주미대사직을 사퇴하였다. 2019년 4월 17일 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후보는 4월 12일 홍석현 전 중앙일보 회장을 만나 집권 시 입각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는 제 2의 밀월 시대를 의미하게 될까?)

    그래서 2007년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의 보고서 <삼성공화국과 기로에 선 한국 민주주의>는 ‘민간 주도 영리형 서비스산업 육성’, ‘규제완화와 개방을 통한 성장론’을 삼성이 제출하고 노무현 정부가 적극 수용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결론 격으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386으로 대표되는 중도개혁정부에 투신한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은 국가를 운영할 비전과 철학 및 기조가 부재함에 따라 [노무현정부와 삼성의 신자유주의적 성장 동맹이라는] 통치동맹에 결탁하고 있다. 따라서 ‘대자본-파워엘리트-시장근본주의적 지식인’ 간 자발적인 통치동맹이 형성되었으며 이러한 추세는 자유주의 정권이든 정통우파 정권이든 상관없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물론 2000년대에 들어서도 재벌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빈발했다. 2002년 ‘차떼기’ 사건이나 삼성 경영승계 문제를 둘러싸고 2006년 발생한 제일모직 주주의 집단소송사건의 경우도 정치관계법 개정이나 삼성 경영쇄신안과 같이 변죽만 때리다 사태가 무마되었다. 2010년대에 들어, 2013년 남양유업 대리점 상품 강매나, 2014년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처럼, 대기업 ‘갑질’ 논란이 불거지자 대기업 규제 관련 각종 입법안이 다시 발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역시 대기업집단의 존재에 본질적 위협을 가하지 못했다.

    표2

    2016-17년 박근혜 게이트는 재벌총수에 뇌물죄가 적용되어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고,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이 찬성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여 직권을 남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되면서 전례가 없는 국면이 조성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박근혜 게이트가 폭발한 후 지금까지, 한국의 재벌체제에 초래된 실질적 변화란 주요 재벌의 전경련 탈퇴, 또는 활동 중단뿐이다. 전경련의 해체는 재벌 문제의 껍데기 중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현재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재벌 정책 역시 과거 정부가 보여준 정책방향을 반복할 뿐이다. 특히 한국 재벌체제의 근본적 도전세력이 될 노동자운동에 현실의 무기가 될 노동3권의 보장 문제 역시 외면하고 있다.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위한 교훈

    한국 노동자운동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다시 미국 민주당과 노동조합 간 관계로 돌아가 보자.

    1942년 시점까지는 미국 산별노동조합회의(CIO)가 민주당을 조직적으로 지지한다는 게 공식적으로 결정되지 않았고 여러 방안이 동시에 검토되었다. 즉 CIO의 전문적 선거활동기구(정치행동위원회)가 완전히 민주당 내부에서 활동하는 방안, CIO가 주도하여 새로운 노동자정당을 창당하는 방안, (공화당에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민주당 후보가 패배할 가능성이 높은 지역에서는 공화당과 협력한다는 방안. CIO는 1936년 선거에서 로저벨트를 적극 지지했으나 그 대가로 민주당 정부에게 얻은 게 너무나 적었고, 따라서 민주당과 제휴하는 대신 유럽과 같은 방식으로 독자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동조합이 민주당 개혁세력에 지지를 보내지 않는다면 당 내 보수세력의 득세로 민주당에서 다시는 자유주의 개혁정책을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 승리를 거두었고, CIO는 다시금 수백만 노동자를 동원해 민주당 개혁에 힘을 실어주기로 결정했다. 물론 1944년 선거 이후 민주당의 개혁성과 역시 노동조합의 기대에 훨씬 못 미쳤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1946년쯤부터 미국과 소련 간 냉전 무드가 형성되고 노동조합 내에서 반공주의가 고개를 들기 시작하면서부터 노동자정당 건설 가능성은 사라져갔다.

    물론 전후 미국 자본주의의 전성기에는 노동조합이 얼마간 안정적인 타협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 단체교섭의 전범은 제너럴 모터스(GM)의 디트로이트 협정이었다. 그 핵심은 임금결정에 소비자물가 상승과 생산성 향상을 고려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노동자 연금과 의료보험을 기업단위에서 보충한다는 원칙도 비준했다.) 그 대신 노동조합은 기업의 경영권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승인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단체교섭 원리는 미국 자본주의의 황금기가 지나가고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공격이 개시되면서 노동조합의 존립에 위협을 가하기 시작했다.

    첫째, 노조가 기업의 전략적 의사결정을 사용자의 고유 권리로 인정했기 때문에 투자이동, 공장이전, 하청, 임시직 활용에 속수무책이었다.

    둘째, 미국식 노동조합 모델(비즈니스 노조)은 조합원에 대한 서비스 제공에 주력한 반면, 미조직 노동자의 조직화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산업구조의 변화(서비스산업 확대)와 노동신축화에 따라 대규모로 등장한 신규 미조직 노동자를 조직할 수 없었다.

    셋째, 미국식 노동조합 모델은 기업과의 단체교섭에 주력했으므로, 사회개혁이나 사회운동과 연대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정부의 노동법 개악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없었다. 미조직 노동자는 노동조합이 노동자를 위한 진보적 사회운동 조직으로 보기보다는 부패하고 비민주적인 특권적 요새라는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 (미국 노동조합이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채택한 방침이 바로 ‘전략조직화’ 사업, 즉 조직화 모델이었다. 1989년 미국노총 내 <조직화 연수원>이 창립되었다.)

    이러한 변화를 거쳐 결국 미국 노동조합과 민주당의 관계는 형식적으로는 뉴딜연합이 유지되지만, 즉 여전히 미국노총은 선거 때마다 민주당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만, 정책적 합의는 존재하지 않는, 즉 공허한 관계가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노총은 민주당 클린턴 집권에 희망을 걸고 1993년 구성된 던롭위원회(공식명칭, ‘노사관계의 미래에 관한 위원회’)에 기대를 품었지만 위원회의 담론을 살펴보면 ‘경쟁력’, ‘생산성’, ‘노사협조’와 같이 기업의 입장을 반영한 경영학적 개념이 압도했다. 결국 1990년대 미국 민주당이 추구한 노선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사관계 개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미국의 노동운동가 마이크 데이비스는 이 모든 역사를 ‘미국 노동자계급과 민주당의 불임의 결혼’이라고 불렀다.

    사회진보연대가 발간하는 대선 보고서는 이처럼 불행한 역사가 20세기 한국에서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데 일차적 목적을 둔다. 본 보고서는 각 정당 후보, 특히 민주당과 국민의당 후보의 재벌정책, 노동정책을 비롯한 주요정책을 분석함으로써 그들이 경제적, 정치적 위기에 처한 한국사회를 재건, 개조할 수 있는 비전을 결여했음을 확인한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자운동은 어떤 모양새의 ‘정권교체’가 발생하더라도 새로운 도전에 임해야 한다. 따라서 본 보고서는 새로운 국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진보연대의 각오를 담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회진보연대 보고서 관련 링크) <끝>

    필자소개
    사회진보연대에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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