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티셔츠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
    [책소개] 《행동을 프린트하다》(라파엘 오르시니/ 동녘 )
        2017년 04월 29일 12: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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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시대의 티셔츠는 옷이 아니라 깃발이다. 집회 현장에 나가며 노란색 리본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는 이유, 무지개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붐비는 도심 한가운데를 활보하는 이유,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공연장에서 굳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티셔츠를 챙겨 입는 이유, 사랑스런 반려견과 반려묘의 눈물이 담긴 티셔츠를 구매하는 이유는 모두 그 티셔츠가 단순히 감각적이고 예쁘기 때문이 아니다.

    사회를 바꾸는 일에 동참하겠다는 강렬한 의지, 광장의 발언대에 오른 용기 있는 누군가에게 보내는 뜨거운 응원, 사랑하는 것들을 지키고 그들을 위해 싸우겠다는 결의의 표현을 티셔츠 입는 걸로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도시에 대한 애정을 티셔츠 입는 행위로 드러낸다(I♥NY). 티셔츠에 새겨진 죽은 자(체 게바라)의 얼굴을 통해 사회에 대한 반항을 드러낸다. 가슴팍에 새겨진 한마디 말로 세상을 비웃고 정치인을 조롱하고 정책을 비판한다.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티셔츠는 단순한 옷이 아니라 깃발이고 표지며 피켓이다.

    2016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이 책 《행동을 프린트하다》에는 지난 70년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티셔츠 1,000여장이 담겨 있다. 기성 사회 주류 문화에 반발하는 젊은이들의 상징과도 같았던 1960년대 히피 문화, 자유와 민주주의 쟁취를 위한 사회 운동의 물꼬를 튼 다양한 사회적 사건들, 들으려하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 약자들의 목소리, 찾으려하지 않으면 쉽게 보이지 않는 소외된 사람들의 삶, 모든 것이 저마다의 티셔츠에 담겨 있다.

    티셔츠는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이며 나를 드러내는 현수막이다. 문화가 담기는 그릇이고 세대의 정체성을 현시하는 매개체다. 그래서 티셔츠를 입는 것은 곧 행동하는 것이며, 티셔츠로는 사회도 문화도 정치도 바꿀 수 있다.

    행동을 프린트하다

    “0416 잊지 않겠습니다”
    “새로운 사회를 위해 투표합시다”
    “성 평등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다”
    사회를 향한 다양한 목소리, 티셔츠에 담겨 세상을 바꾸다

    2016년 파리 패션 위크에서 프랑스의 패션 브랜드 크리스찬 디올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되어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낸 소설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책 《WE SHOULD ALL BE FEMINISTS(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의 제목을 한가운데 크게 새긴 티셔츠를 선보였다. 티셔츠는 앞서 책이 받았던 “우리 자신과 미래 세대에 주는 선물”이라는 찬사에 걸맞게 “다음 세대를 열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뜨거운 호응을 얻었으며, 영화배우 김혜수가 착용한 사진이 유포되며 더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제인송’에서 디자인한 아동 폭력 반대 캠페인 티셔츠 역시 배우 이종석이 입고 드라마에 출연하며 화제의 중심에 섰고, “PLEASE STOP”이라는 슬로건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마리몬드’에서 디자인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꽃 압화가 새겨진 티셔츠는 출시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품절 사태를 빚었고, 티셔츠에 몰린 관심이 고스란히 할머니들에게로 옮겨 가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다. 대문자로 쓴 ‘희망(HOPE)’이라는 글자 위에 빨강, 파랑, 흰색으로 채색한 오바마의 얼굴이 그려진 셰퍼드 페어리의 티셔츠를 두고, 사람들은 “거리 예술가가 정치판, 아니 세상을 바꿨다”고 이야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흑인 인권 운동가였던 넬슨 만델라는 자신이 지지하는 인종 차별 금지, 에이즈 퇴치 등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종종 티셔츠를 입고 국민 앞에 섰다.

    티셔츠는 이렇게 대의를 주장하는 막강하고 효과적인 수단이다. 반전, 평화, 차별 금지, 동물권 보장, 정책 비판, 투표 독려, 희생자 추모 등 위대한 사회적 투쟁은 대개 티셔츠에 새겨지며 불멸성을 획득했고 민심을 얻었다. 이제 사람들은 이루고자 하는 대의를 위해 마이크를 들고 광장의 연단에 오르는 대신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누빈다. 티셔츠에 새겨지는 메시지는 날로 더 다양해지고 ‘티셔츠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진다. 소극적으로든 적극적으로든 자기 자신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 오늘날 우리 세대에게 티셔츠는 언어다. 사람들은 그 언어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 하고 나아가 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한다.

    70년 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티셔츠에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무엇에 열광했고 무엇을 위해 싸웠는가?
    시대정신을 새긴 1000개의 티셔츠
    티셔츠를 통해 과거와 현재의 사회/역사/문화를 보다

    책에는 저항하는 깃발로서의 티셔츠 이외에도 수많은 티셔츠들이 담겨 있다. 무대/축제/음악의 상징인 밴드들의 티셔츠, 그 자체로 걸어 다니는 광고판 역할을 하는 기업들의 판촉 티셔츠, 입은 사람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다양한 메시지 티셔츠, 특정 집단의 성격을 드러내 보여 주는 단체 티셔츠, 경기장의 토템과도 같은 운동선수들의 유니폼, 젊은 예술가들의 캔버스가 되어 그 자체로 예술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는 디자이너 티셔츠 등, 매 세대 가장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티셔츠들이 열 개의 소주제 아래 세밀하게 나뉘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 모든 티셔츠들을 한데 담아낸 저자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1,000여장의 티셔츠를 한눈에 보며 지난 세월 어떤 가치들이 생겨나고 사라졌는지 단숨에 파악할 수 있으며, 평소 관심 있게 보지 않았던 분야나 외집단의 다양한 목소리까지 한꺼번에 들을 수 있다. 덤으로 티셔츠에 담긴 이해하기 힘든 유머나 이상한 기호들, 뜻을 알 수 없는 그림들의 속뜻을 풀이해 놓은 페이지도 이따금씩 만날 수 있다. 책에 수록된 티셔츠들을 ‘읽는’ 과정을 통해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견해를 접하고 다른 세대의 문화를 보다 깊이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나아가 그 새로운 소통을 통해 세상을 더 폭넓게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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