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의 대선과 나의 선택
“사표라고? 수익률 높은 우량표였다”
절망의 조어 ‘이생망’을 없애기 위해 나는 선택한다
    2017년 04월 26일 12:4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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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년생. 난 올해 환갑이다. 그 동안 대통령 선거 여섯 번, 내가 찍은 후보가 대통령이 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승률 제로다. 이번 대선에서도 나는 유권자들이 당선 가능성을 낮게 보는 후보를 찍는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첫 대통령 선거는 김대중과 박정희가 겨룬 1971년 대선이다. 나는 중학생이었다. 등굣길에 해방촌 육군중앙경리단 옆(지금은 핫플레이스가 된 ‘경리단길’)에 걸려 있던 현수막 문구를 봤다. “이번에는 2번 대중은 김대중” 너무 멋져서 찍어 주고 싶었지만 내겐 투표권이 없었다.

1987년 선거 때 난 어른이 됐다. 1971년 이후 처음 치러지는 직선 대통령 선거였다. 서른한 살에 주어진 대통령 선거권, 그 한 표를 국민들 손에 쥐어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싸우고 죽었다.(옷깃을 여민다) 16년 만에 돌아온 대통령 직선으로 온 나라가 펄펄 끓었던 87년의 선거에서 난 김대중 후보를 찍었다. 민주파의 리더였던 양김(김대중, 김영삼)은 갈라졌다. 그 뜨거움 속에는 그래서 불길함과 두려움이 흘렀고, 그럴수록 더 뜨거워졌다. 선거 결과 군사 정권 생명이 연장됐고, 민주주의는 왜곡됐다. 걱정과 기대 속에 투표한 나는 낙담했다. 노태우가 됐다.

5년 후 대선에서도 난 김대중 후보를 찍었다. 무소속 백기완 후보가 나섰다. 그와 그의 동지들의 선구적인 진보정치 운동을 긍정적으로 봤지만 매력적인 민중 대통령 후보를 찍지 않았다. 김영삼이 됐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그는 더 이상 민주파의 리더가 아니었다.

드디어 김대중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1997년 나는 국민승리21의 권영길 후보를 찍었다. 백에 한 명 정도가 나 같은 선택을 했다.(득표율 1.2%) 내겐 김대중 후보의 당선보다 대중적 진보정당이 뿌리를 내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도 김대중 후보 당선은 기뻤다. 정당, 후보, 대통령은 수단이다. 고루 함께 잘 사는 사회에서 살고 싶었고, 내겐 그것이 목표였다. 대통령 자리가 목표인 자는 전두환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좌를 차지하고, 당선 이후엔 이명박, 박근혜처럼 국가를 사영화한다.

2002년 선거에서도 나는 민주노동당 권영길을 찍었다. 백 명 중 네 명이 그를 찍었다.(득표율 3.9%) 국민승리21은 민주노동당으로 발전했고, 지지율은 3배로 늘었다. 나는 이 두 개의 고무적 징후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을 함께 즐겼다.

이명박이 당선된 2007년 선거에서 소속 의원이 10명이나 된 민주노동당은 당내 경선에서 심상정과 노회찬을 누른 권영길을 후보로 내세웠다. 나는 세 번째 권영길에 투표했다. 그 전보다 신명은 나지 않았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이명박, 이회창 등 보수 후보가 두 명이나 나왔지만 정동영은 패했고, 권영길의 득표율은 전보다 떨어졌다.

2012년 대선에서는 청소 노동자 김순자, 기륭노조 출신 김소연 등 무소속 노동자 후보 두 명이 나왔지만 난 그들을 찍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출마 목표를 이해하지 못했다. 진보정당은 그 사이 외압 없이 ‘내파’돼서 찢어지고 갈라졌다. 사퇴한 후보까지 치면 ‘진보 후보’가 4명이나 나온 선거였다. 민주노동당은 사라졌고, 짧은 시간에 통합진보당, 진보신당, 노동당, 정의당 등으로 이름이 바뀌면서 이합집산을 했다. 국민들은 관심도 없었다. 심상정 후보는 중도 하차했다. 나는 문재인을 찍었고, 박근혜가 됐다.

이것이 나의 개인 투표 역사다. 이런 사람 대한민국에서 다수는 아니지만 나 혼자만도 아니다. 나는 진보적 대중정당 후보에 세 차례 투표했고, 보수 양당 가운데 상대적 진보성을 가졌다고 여겨지는 ‘민주당계’ 정당 후보를 세 번 지지했다.

절망의 조어 ‘이생망’을 없애기 위해

이제 2017년 촛불 대선이 시작됐다. 촛불의 힘은 한국 정치의 영원한 상수가 될 것 같았던 수구․보수 정당의 허리를 동강 냈다. 허리 잘린 구여권을 밟고 구야권 후보 두 명이 선두를 다툰다. 촛불 이전에는 정권 교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울한(누구에겐 기쁜)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촛불은 판을 뒤집어 놓았고, 이제 어떤 정권교체인가를 따지게 됐다.

‘민주화’ 이후 30년 한국의 다수 유권자가 당선시킨 대통령은 6명이다. 번갈아 집권했던 여야 정당과 대통령이 만들어 놓은 게 지금 우리 사회다. 내가 살고 싶어 했던 사회가 아니다. 다수가 행복하지 않다. 내 아들뻘 되는 젊은이들이 만든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이란 절망의 조어를 접했을 때 미안했고, 눈물이 났다. 젊은 시절 내 삶에도 불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상 속에서도 저런 조어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이번 대선에서 청춘의 미래를 잡아먹고, 희망은 소수만 누리는 사치가 돼 버린 우리 사회의 노선을 확 뜯어고치자는 게 촛불의 염원이었다. ‘나라 같지 않은 나라에서 제대로 된 나라로.’ 대통령 하나 바꾸는 걸로 끝내지 말아야 한다는 외침은 배반당한 경험이 많은 대한민국 유권자들의 절규였다. 재벌 중심 노선, 자본 중심 노선, 개발 중심 노선, 성장 제일 노선, 시장 지상 노선을 전면 수정하라는 명령이었다.

기존의 노선이 한때 일정 부분 유효했다 해도 이제는 아니다. 버스 노선은 그대로인 채 운전하는 사람만 바꾸면 변화는 오지 않는다. 그 버스가 지나다니는 동네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다. 두려움 없는 노선 전환, 거침없는 개혁 노선으로 갈아탈 때가 바로 지금이다. 촛불은 쉽게 꺼지지 않지만, 자주 켜지는 것도 아니다. 5월 9일 한 장씩 받게 되는 투표용지는 초가 되고, 붉은 인주는 불이 돼, 청와대와 여의도에서 계속 타오르는 촛불이 되게 해야 한다.

촛불 후보를 자임하는 심상정은 대한민국호가 60년 동안 달려왔던 노선을 확 바꾸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적잖은 사람들은 ‘심상정 후보 말이 맞긴 한데’ 라면서도 ‘유보적 태도’를 보인다. 투표는 다른 후보한테 하지만 마음은 심 후보를 지지한다는 사람도 많다. 그 다음은 ‘지못미’일 터.

이런 생각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정치적 선택을 앞두고 민주주의와 평등한 사회를 염원하는 많은 보통 사람들을 고민하게 만들었다. 나의 가족 중 한 명도 이 문제로 현재 고민 중이다. 이성적 토론으로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는다. 내가 아들과 이 문제를 두고 토론하면서 한 이야기 중 한 조각이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문재인 후보 당선이 아니라, 문재인 당선 이후다. 문재인의 목표는 대통령 당선이 아니라, 성공한 대통령이어야 한다. 성공은 강력한 경쟁자를 필요로 한다. 당락에 위협을 주는 경쟁자, 당선 후 우회전의 유혹을 버리고 왼쪽으로 아래쪽으로 향하게 끌어올 수 있는 경쟁자가 필요하다. 우회전 유혹이 없더라도, 정당 분포로 볼 때 오른쪽으로 잡아끄는 힘이 드셀 것이다. 자유한국당과 경쟁하는 집권당과 정의당과 경쟁하는 집권당을 생각해 보라.”

여섯 번 투표, 사표는 없었다

이번 선거에도 어김없이 등장한 사표론. 하지만 나는 30년 동안 대통령 선거 여섯 번 하면서 투표한 내 표 중에 죽은 표는 하나도 없다고 생각한다. 1987년 김대중 후보 득표수 611만3375표(27.0%)와 2012년 문재인 후보 득표수 1469만2632표(48.02%) 속에 내 한 표는 기록돼 있고, 진보정당 득표율이 1.2%에서 3.9%로 늘고, 국회의원이 10명이 된 것은 수많은 나 같은 한 표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표는 살아서 진보정당발 무상 시리즈 정책을 현실화시켰다. 또 정당명부 비례대표제(1인 2표제), 종합부동산세(부유세), 무상 영유아 예방접종,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저상버스, 주민소환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에너지기본권 개념(에너지기본법) 등을 도입시켰다. 진보정당이 혼자서 한 일은 아니지만 진보정당이 없었으면 불가능하거나 더 지체될 성과들이다. 내 한 표는 거기에 쓰였다.

“민주·새누리 복지 공약, 알고 보니 민주노동당 것 다 베꼈네” 지난 대선이 있었던 2012년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물론 민주노동당 칭찬이 아니라, 두 정당을 비아냥대는 기사였다. 당시 거대 양당은 이처럼 <조선일보>의 조롱을 받으면서도 정책을 베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진보정당의 공약은 거대 양당이 오랫동안 외면해온 다수 국민들의 요구를 대변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유승민 후보가 내걸어서 환영을 받았던 ‘칼퇴근법’도 2008년 진보정당의 총선 공약이었다.

내 표는 이렇게 펄펄 살아서 움직였다. 죽지 않고 살아서 일당백을 행사한 표다. 덩치 큰 정당 사람들이나 수심 깊은 보통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받으면서 던진 한 표들이 한 역할이다. 진보정당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진보정당과 그 후보들이 서민, 노동자들의 요구를 충실히 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니 덩치 큰 정당도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공은 대부분 마지못해 나선 그들에게 돌아갔지만.

다수 국민의 절실한 요구는 정치적 의제로 등장하지 못하면 없는 것이 된다. 2004년 진보정당이 국회 들어가면서 ‘거대한 소수’를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여의도 의석은 소수지만 여의도에서 대표되지 못했던 거대한 다수를 대변하는 임무를 최우선하겠다는 의지였고, 그것은 노력한 만큼 실현됐다. 사표라 눈총 받던 표야말로, 높은 수익률로 되돌아온 우량표였다.

진짜 사표는 ‘깡통표’다

이에 반해 지금은 네 개로 쪼개졌지만, 과거 거대 양당 시절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을 통해 약속한 공정하고 행복한 사회가 올 것으로 믿고 찍은 표들은 결과적으로 ‘사표’가 됐다. OECD 국가 중 출산률 꼴찌, 자살률 1위로 대표되는 우리 사회는 그 표들이 수익률 마이너스인 ‘깡통표’가 됐다는 걸 말해 주는 증거다. 아무도 그런 사회를 바라고 표를 주지 않았다. 이제 노선이 다른 버스를 타야 할 때가 왔다. 행선지가 다른 표를 끊을 때가 왔다. 과감하게 새로운 노선을 개척할 때가 왔다.

제도적으로 사표를 양산하는 선거 시스템 문제는 여기서 길게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사표를 넓게 해석해 낙선한 후보를 지지한 모든 표라고 하면, 그것은 승자 독식 선거제도의 산물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와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통해 단 하나의 사표가 존재할 수 없도록, 복수의 경쟁하는 정당이 사표론에 억압받지 않도록 하면 된다.

나는 지금까지 치렀던 6번보다 적은 횟수의 대통령 선거를 치르고 세상을 떠날 것이다. 나는 사인(死人)이 돼 사라지지만 내가 던진 표는 사표가 되지 않고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대통령 선거를 하기 전까지 ‘이생망’이라는 슬픈 조어가 사라지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내 한 표는 이번에도 그것을 위해 쓰일 것이다.

필자소개
도서출판 레디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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