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 노역투쟁, 그것은 시민불복종
    중증장애인, “권리찾기가 죄라면 차라리 잡아가라!”
        2012년 08월 17일 11: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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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애인은 ‘범죄’를 행할 수는 있어도, 법이 정한 처벌인 노역은 받을 수 없는 걸까? 장애인인권 보장을 요구하며 싸웠던 중증장애인활동가들에게 벌금형이 떨어졌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권자이거나 차상위계층으로 벌금을 낼 수 없었다. 또한 ‘경쟁과 효율’만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의 시장에서 노동력을 팔 수 없는 중증의 장애인들이었다.

    그러나 벌금을 내지 않는 한, 이들은 계속 독촉장과 압류장을 받으며 불안한 수배생활로 일상을 보내야 한다. 그래서 ‘어디 가서 하루 5만 원도 못 벌어 오는’ 이들은 ‘하루 5만 원씩 쳐주는 구치소의 노역’을 택했다.

    장애인들을 수용할 처지도 못되는 구치소 현실

    그러나 노역을 선택했던 중증장애인활동가 8명 중 2명은 그나마 구치소에서 하룻밤도 지내지 못하고 나와야만 했다.

    기초생활수급비 43만 원으로 살아가는 인천민들레장애인야간학교 박길연 교장(지체장애 1급). 박 교장에게 60만 원의 벌금형이 떨어졌다. 장애등급제 폐지하라고, 국가인권위원회 현병철 위원장 물러나라며 점거농성을 했다는 이유다.

    벌금을 내지 못해 수배생활을 하던 그는 지난 7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아래 검찰청)에 자진 출두해 “차라리 잡아가라!”고 외쳤다.

    이동 수단이 없어 6시간 넘게 검찰청에서 기다려야 했던 박 교장은 그날 밤 서울구치소 수감 과정에서 팔이 빠져 119구급차로 병원에 후송됐다. 구치소 수감자들이 그를 휠체어에서 분리해 방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그의 팔이 빠진 것이다.

    박 교장은 심한 류머티스성 관절염을 앓고 있었다. “이 상태로 수감생활을 할 수 있느냐?”라고 묻는 병원 의사의 질문에 동행한 교도관들은 “우리는 전문가가 아니므로 보살필 수 없다”라며 박 교장의 수감에 난색을 보였다.

    진료 후, 박 교장은 다시 구치소로 갔으나 교도관들이 그의 전동휠체어를 옮기는 과정에서 이번엔 전동휠체어가 고장 났다. 결국 구치소 내에서 이동할 수 없게 된 박 교장은 아침에 그곳을 나와야만 했다.

    벌금 120만 원을 선고받은 은평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용기 소장(지체장애 1급)은 아예 구치소에 가지 못했다. 7일 저녁 검찰청 측은 퇴근 시간이라며 저녁 6시에 냉방기를 껐다. 이미 낮 3시부터 검찰청에 8명의 중증장애인 ‘범인’들이 자진출두 했으나 검찰 측은 이동수단을 찾지 못해 허둥댔다.

    당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이상용 조직실장은 “대한민국 검찰이 범인 호송하는 방법을 범인에게 물어보고 있다”라면서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 때문에 체온조절이 잘 되지 않는 최 소장은 에어컨, 선풍기로 몸의 열을 식혀줘야 했지만, 검찰청은 이를 지원하지 않았다.

    결국 더위로 심해진 욕창과 38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던 최 소장은 응급실에 실려 갔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검찰에서는 그에게 전화해 벌금은 나눠서 내라며 귀가하라고 설득했다. 사실상 검찰은 중증장애인의 수감을 거부한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처 노역을 신청한 중증장애인 8명 중 6명이 실제 수감됐다.

    성동장애인자립생활센터 최진영 소장이 구치소에 수용돼 있는 동안, 센터 모임 참여자가 최 소장의 안부를 걱정하며 보낸 문자.

    이날 노역을 하려고 자진출두한 장애인활동가 8명은 30만 원에서 최고 12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이들은 벌금을 낼 방법이 없어 스스로 구치소에 들어갔으나, 수감 과정부터 출소까지의 3일은 중증장애인에게 노역마저 투쟁이었음을 극명하게 보여줬다.

    ‘중증장애인 노역투쟁’은 장애인이라는 존재가 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위치하는지 또렷이 보여줬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에 따르는 벌을 받는 것 또한 시민의 의무라면 장애인은 이 또한 강제로 ‘박탈’당했다.

    장애인은 자신의 ‘죗값을 치를’ 어떠한 방법도 택할 수 없었다. 노역투쟁을 했던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양영희 소장이 지적한 것처럼 국가는 “중증장애인 수감자에 대한 편의 제공을 하기 싫으니 벌금형만 선고”했으나, 사회에서 배제되어 빈곤의 최전선에 방치된 중증장애인은 벌금을 낼 수도 없고, 벌금 대신 노역을 할 수도 없었다.

    중증장애인의 자진출두 뒤 검찰청에서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 과정 역시 장애인에 대한 국가의 몰지각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검찰청 측은 이동수단을 찾지 못한 채 자진출두한 ‘범인’을 서울구치소로 이동하는데 대략 6시간가량을 소요했다.

    또한 이 과정에서 검찰은 24시간 활동보조가 필요한 중증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제공하지 않았으며, 식사시간 때마저 활동보조를 제공하지 않아 몇몇 장애인들은 저녁을 아예 먹을 수 없었다.

    검찰은 애초에 장애인 활동보조에 대한 이해가 없는 듯 보였다. 심지어 검찰은 이동과정에서도 전동휠체어와 장애인의 몸을 분리하려 했고, 휠체어가 탈 수 있는 경찰호송 저상버스도 출두한 지 6시간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사흘 동안 수용됐던 서울구치소 역시 중증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은 엉망이었다. 수감되었던 이들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구치소로 들어가는 과정만큼이나 노역생활도 순탄치 않았다.

    교도관들은 중증장애인 활동보조를 같은 방 수감자들에게 맡겼다. 따라서 그 방에 어떤 사람이 있느냐에 따라 활동보조 지원 편차가 컸다. ‘노인 둘, 장애인 한 명’이 있었던 방을 배정받은 중증장애인은 방에서 활동보조를 전혀 받을 수 없었다.

    식사 보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또한 화장실은 중증장애인이 사용하기엔 턱없이 좁아 사용하기 어려웠다. 한 평 남짓한 방에는 전동휠체어가 들어가지 못해 기어서 생활해야 했다. 감옥 밖에서 배제된 장애인들은 감옥 안에서마저도 배제되어 있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중증장애인활동가는 대부분 언어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 면회요청 시, 이 부분을 고려해 면회시간(10분) 연장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교도소 측은 “언어장애 있는 사람의 면회시간을 늘리면 그만큼 다른 사람의 면회시간이 줄어드니 그것은 차별”이라고 답했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중증장애인활동가들은 외쳤다. “장애인 권리찾기가 죄인가? 그렇다면 잡아가라!” 그렇게 노역을 결정했으나 정작 그들을 거부한 것은 국가였다.  장애인에게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해주지 않은 국가는 죗값을 치르겠다는 이들의 노역할 권리마저도 탄압했다.

    인간의 권리가 박탈당했다. 사람들은 ‘모든 사람에게 인권이 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모든 사람의 인권이 보장받고 있다’라고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예외의 공백에 장애인이 있다.

    그러나 박탈당한 권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의 권리마저 박탈당한 것은 아니다. 아니, 어쩌면 권리 투쟁을 위한 투쟁이야말로 권리가 박탈당했을 때에야 드러나는 참된 자유인의 권리인지 모른다.

    중증장애인들은 형벌을 받으라는 국가에 “그래, 까짓 거 받아주마!”라며 앞으로 달려나왔다. 이들은 이번 노역투쟁에서 국가가 중증장애인에게 가하는 형벌조차도 얼마나 폭력적이고 몰지각한지 보여줬다.

    그들의 노역투쟁은 국가가 가하는 형벌을 ‘받겠다’라는 복종의 행위가 아니라 ‘당당히 받아주겠다’라는 저항의 의미에 닿아있었다. 중증장애인이 감옥에 들어가는 것, 그것은 저항이었고 투쟁이었으며, 그러한 의미에서 진정한 시민불복종이었다.

    <기사 제휴 = 비마이너 www.beminor.com>

    필자소개
    비마이너 기자 skpebble@bemino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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