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초 열렸던 맛콘서트 얘기
    [나의 현장] 음식과 음식문화를 갖고 진행한 시민교육
        2012년 08월 17일 04:1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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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중의 집은 설립 초기부터 ‘교육과 문화, 생활이 공존하는 대안공간’이라는 방향성 아래 각 부문별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해왔다.

    민중의집의 성인교육 부문 사업은 지역주민이 문턱없이 드나드는 ‘동네시민학교’를 목표로 정치, 사회, 경제, 문화, 역사 등의 카테고리 안에서 ‘시민강좌’ 형태로 개설되어 왔는데, 내용과 방식에서 여태까지 시민단체가 해오던 일반적인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올해 초 장기적이면서 지역과 생활에 밀착한 새로운 시민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민중의 집 자체적으로 연속워크숍을 가졌고, 사회현실, 교육, 심미적 각성, 인류학적 접근, 생태, 지역공동체, 농업, 도농상생 등을 아우를 어젠다로 ‘음식’ 및 ‘음식 문화’를 착안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프로그램으로 ‘맛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고, 지난 7월에 총 4회로 이루어진 시즌1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이 과정에서 음식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신념 아래 바른 먹거리의 즐거움과 사회적 가치를 전달하기 위한 식생활 캠페인과 교육을 하는 사회적 기업, ‘푸드포체인지’(Food for Change)가 민중의 집의 좋은 파트너가 돼주었다.

    ‘먹는 지혜’가 사라졌다?!

    ‘김장전선’이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가. 꽃이 처음 피기 시작한 날을 지역마다 연결해 곡선을 만든 것이 ‘개화전선’이라면, 배추가 가장 맛있을 때를 연결해 곡선을 만든 것이 ‘김장전선’이다.

    이 때를 맞춰 김장을 해야 가장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뚜렷한 김장전선이 형성된다.

    보통 중부지방은 11월 중순, 남부지방은 12월 중하순 정도에 김장을 담그는데, 그 이유는 그때쯤 새벽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배추들이 얼지 않을려고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분들을 날리기 때문이다.

    수분이 빠지면서 배추 당도가 올라가 맛이 들기 시작한다. 그래서 김장철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는 것. 문제는 중부지방은 11월 중순이 김장철이어서 그 때 김치를 담그기는 하는데, 배추는 남쪽 땅끝 해남에서 올라온다는 것이다.

    물류와 유통의 힘이 ‘김장전선’을 교란시키는 사례다. 물론 강제적으로 그 배추를 소비자에게 먹이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의 ‘먹는 지혜’가 점차 사라져가면서 발생하는 웃지 못할 현상이다.

    된장찌개 이야기를 잠깐 해보자. 오늘도 우리는 맛있는 된장찌개를 먹었을 수 있다. 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부직포 포장에 담겨 나온 다시육수를 끓는 물에 넣어 푹 우리고, 마트에서 산 그놈이 그놈 같은 된장을 그 안에 풀고, 해감은 귀찮으니 조개살을 사서 넣는다.

    맛있는 성분과 정말 ‘맛’은 다 빠져버린 포장두부를 송송 썰어 넣고, 마지막으로 마법의 가루(?)를 살짝 넣어 보글보글 된장찌개를 완성한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이것은 요리일까? 공장에서 나온 식자재를 조립한 것일까? 이게 진짜 맛있을까? 맛있다고 느낀 우리의 미각은 어떻게 된 것일까? 인류는 끊임없이 음식 만드는 법을 구전시켜왔다.

    하지만 산업화되면서 우리는 편리한 방법을 찾기 시작했고, 그 방법을 쫓다 보니 이제 원본조차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잊어버린 것도 모자라 식품회사의 마케팅과 농산물 유통상들의 농간에 정신없이 휘둘리고 있는게 현실이다. 나에게서, 우리 집에서, 우리 사회에서 ‘먹는 지혜’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지출처 : 시사IN 252호 '니들이 맛을 알아? 맛을 둘러싼 오해 8가지')

    교란된 맛의 세계.. 맛콘서트가 나섰다

    산업화, 표준화, 대량 생산과 소비의 결과 음식을 둘러싼 환경 전부가 유통과 물류에 압도되다 보니 재료와 조리법은 점점 획일화되고 있다. 이 상황을 “어쩔 수 없는 현실”로 받아들인 관련 산업 종사자와 소비자 모두, 조리하기보다는 ‘반조리제품으로 조립한 음식’에 손발 다 든 지 오래다.

    생산, 유통, 물류가 제 편한 대로 획일화한 재료와 조리법은 맛의 원본, 미각의 본래성을 덮어버렸고 음식 문화는 점차 황폐해지고 있다.

    사실은 맛나지도, 건강하지도 못한 음식이 ‘자극성’ 하나로 제 맨 얼굴을 감추고 있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획일화한 단 한 가지 입맛을 향해 달려가는 생산-가공-유통-물류-소비구조는 다시 음식을 둘러싼 생태와 문화를 획일화해 그 생명력을 죽이고 있다.

    그러면서도 모두들 맛난 것을 찾고, 모두들 건강한 음식을 찾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건강한 먹을거리가 맛있다”라는 식의 웰빙붐에 기댄 유기농 캠페인은 뭔가 공허하다.

    본연의 미각을 잃고, 맛의 원본을 모르는데 어디서 ‘맛있는 것’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음식과 재료, 음식문화의 오늘을 ‘알고 먹음’으로써 먹을거리를 가꾸는 보람, 조리의 즐거움, 참맛이 주는 행복을 일깨우는 일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서 맛콘서트를 기획하게 되었다. 맛콘서트는 음식과 음식문화에 대한 종합적 접근. 조리의 관점 뿐 아니라 인류학, 사회학 접근까지 아우르며 자원, 재료 생산, 유통, 소비의 모든 과정을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점점 단일화되고 자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미각과 맛에 경적을 울리기 위함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 가이드가 진행하는 테이스팅(맛보기)를 통해 음식과 원재료 본연의 맛을 직접 경험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본연의 재료를 보고 만지고 냄새 맡고 맛을 보는 이 특별한 ‘오감 경험’은 새로운 몸의 기억을 만들어낼 것이다. 먹거리의 현황을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피며 일상에서 참맛을 찾고 지키는 방법을 알아가는 노력.. 맛콘서트가 그 첫 단추가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뜨거웠던 맛콘서트 시즌1, 어떻게 진행되었나

    GMO, 환경, 위생, 식품산업, 농업, 유기농, 로하스…  이런 문제로 식품산업을 접근하는 것, 당연히 필요하다. 다만 아쉬운 건 그래도 먹는 것 이야기하는데 ‘맛’을 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맛콘서트는 ‘맛’을 가지고 이야기해보고자 했다.

    [7월 4일] 당신의 미각을 믿지 마세요

    우리가 먹는 것은 자연이다. 산업화 이후 한국인은 농민에서 노동자가 되었고, 그러면서 자연을 잃었다. 하지만 자연을 모르면 음식을 모른다. 자본은 음식을 모르는 노동자에게 ‘음식 비슷한 것’을 먹일 뿐이다.

    자연을 잃은 세월이 길어 이제는 미각조차 왜곡되어 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자신의 미각이 왜곡되어 있는 줄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첫 시간에는 미각 왜곡의 역사를 듣는 시간으로 마련되었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씨가 이야기꾼으로 나서주었고, 이야기 중간 중간에는 진짜 향미와 공장 생산 화학 향미를 비교하는 다양한 시음이 진행되었다.

    [7월 11일] 왜 우리장을 고집해야 하는가

    시중에 팔고 있는 장들의 원재료명에 쓰여져 있는 분리대두단백, 탈리지대두, 산분해간장. 도대체 무슨 말일까?

    두번째 시간에서는 시중에 팔고있는 장의 실체를 알아보았다. 더불어 살아있는 생명의 음식인 우리의 장인 메주, 간장, 된장, 고추장의 고유성, 정체성과 다양성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았다.

    이 날의 테이스팅은 시판 간장과 1년-5년-8년된 집간장을 맛볼 수 있게 준비되었고, 간장이 나물의 맛을 어떻게 살리는지 나물과 함께 먹어보기도 했다. 우리 간장의 풍미를 제대로 즐겨보는 기회였다. 이 날의 이야기와 테이스팅 진행은 발효전문가 고은정씨가 맡아주었다.

    [7월 18일] 음식의 최전선, 음식점을 찾아서 – 에코밥상

    최종 조리와 최종 소비의 현장인 골목길 음식점을 직접 찾아가는 시간이었다. 기본적인 한식을 먹는 것인 오히려 ‘수고’가 되고 ‘별맛’이 된  시대에, 자극적인 조미료를 뺀 건강한 식단, 정상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음식, 합리적 가격의 한식을 고민하는 조리사겸 경영자를 만났다.

    주인공은 에코밥상의 김경애씨. 음식점에서 바로 조리한 음식을 맛보고, 조리사와 경영자와 소비자가 맨얼굴로 마자 앉아 음식점에서 음식 하기 – 팔기 – 사먹기, 한식의 오늘에 대해 툭 터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어떤 시간보다도 질의와 응답이 뜨거웠던 시간.

    [7월 25일] 싱글몰트의 창으로 바라본 순정한 알코올의 세계

    마지막 시간 우리가 만난 음식은 ‘술’이었다. 순정한 알코올 본연의 야성이 살아있는 진짜 증류주, 싱글몰트에 대해 알아보고 음미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싱글몰트 위스키의 탄생과 확산의 역사를 알아보며, 음식과 음식문화가 빚어내는 ‘스토리텔링’의 세계도 아울러 살펴보았다. 더불어 순정한 알코올을 통해 합성감미료 소주, 합성감미료 막걸리 시대를 어떻게 돌파할지를 함께 고민해봤다.

    위스키 라이브 대표 유용석씨가 라이브쇼로 진행했고, 총 4종의 싱글몰트 위스키와 최상의 마리아주를 보여준 수제 초콜릿의 테이스팅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맛콘서트, 시즌2를 열다

    음식과 맛, 음식 문화에 관한 새로운 아젠다를 만들고, 생활 속의 식문화을 바꿔나가기 위한 대안을 모색하는 맛콘서트. 뜨거운 반응 속에서 진행되었던 시즌1에 이어 새로운 이야기와 라인업으로 시즌2 준비를 끝냈다. 백문이 불여일견! 관심있는 분들은 맛의 세계로 함게 탐험을 떠나보는 것도 좋겠다.

     

    필자소개
    마포 민중의 집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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