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술남녀' 청년PD 자살
“CJ E&M의 사회적 살인”
55일간 제작기간 중 휴일 단 이틀
    2017년 04월 19일 01: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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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고단한 삶을 다루며 인기리에 종영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의 청년 방송 노동자가 과중한 업무와 인격모독, 노동착취를 강요하는 조직문화 등에 괴로워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청년을 위로하기 위한 드라마라는 호평을 받았지만 정작 그 드라마를 만드는 노동현장 속의 청년 노동자는 스스로 생을 마감할 정도의 살인적 노동강도와 비인간적 대우에 시달렸던 것이다.

한편 CJ E&M 측은 ‘방송이란 원래 그렇다’는 식의 무책임한 태도로 이 PD의 자살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고 있다. 회사 측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구조적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유가족 측은 “사람을 물건 취급하는 조직문화가 바뀌어야만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며 진심 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노량진을 배경으로 공무원 준비를 하는 이들, 이른바 공시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케이블 드라마임에도 마지막 회에는 닐슨코리아 기준 평균 5.8%, 최고 6.3%를 기록했다. 특히 남녀 20~49세 시청자 층에선 8주 연속 동시간대 1위를 달성할 만큼 젊은 층들의 공감을 불러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청년들의 애환을 다룬 드라마 ‘혼술남녀’. 그러나 정작 이 드라마 제작을 하는 청년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과 노동착취, 갑의 행패를 강요하고 이에 항의하면 비난 받는 구조 속에 괴로워했다.

청년유니온, 민변, 민주노총, 언론노조 등 18개 단체로 구성된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대책위원회에 따르면, 사망한 고 이한빛 PD는 드라마가 종영한 바로 다음 날인 지난해 10월 26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입사 9개월 만이었다. 지난해 1월 CJ E&M 신입사원 공채돼 같은 해 4월 18일에 ‘혼술남녀’ 팀에 배치됐다. 55일간 드라마 제작 중 고인에게 주어진 휴일은 단 이틀이었다.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밤과 아침이 바뀌고, 잠들지 못하고 바로 그냥 아침에 와버리는 그런 상태를 가지고 드라마 제작하시는 분들은 디졸브라고 하는데 이한빛 PD는 디졸브 상태를 계속 경험했다”며 “CJ E&M이 보유한 채널이 tvN, OCN, 이런 회사들의 매출액이 1조 5000억인데 정작 현장에서 제작하는 종사자들은 비인간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PD는 언어폭력 등 인격모독에도 시달렸다. 고인의 동생인 이한솔 씨는 19일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지각한 날이면 7명이 있는 카톡방에서 ‘개xx’라는 비속어가 나왔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이 그런 것도 전혀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PD는 관리자로서 자괴감도 상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혼술남녀 첫 방송 직전 사전제작 분량의 완성도가 낮다는 이유로 촬영, 장비팀 등 외주업체가 대량 교체되는 일이 벌어졌다. 이 PD는 업체 소속 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착취와 정리해고 현장을 직접 목격하는 것을 넘어, 외주업체에 대한 계약 해지, 이미 지출해버린 계약금 회수 등 CJ E&M의 갑질을 강요받았다.

이한솔 씨는 “관리자로서 그런 것들을 막지도 못하고, 자기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면 결국은 회사의 눈 밖에 나는 상황이 너무 애매했다고… 형의 유서에도 그 내용이 정확하게 나온다”고 전했다.

이 PD는 유서에도 이렇게 적었다. “하루에 20시간이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 세 시간 재운 후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 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대책위원회가 “tvN (CJ E&M)의 사회적 살인”이며 “시청률 경쟁에만 혈안이 되어 구성원을 도구화하는 드라마 제작환경과 군대식 조직문화”가 고인의 자살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는 이유다.

고인의 장례를 치른 후 유가족이 CJ E&M 측과의 면담에서 ‘혼술남녀’ 제작환경의 구조적 문제 파악과 고인의 명예 회복을 요구했다. 회사도 진상규명에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후 3차례의 면담과 2차례의 서면 답변 과정에서 태도는 완전히 달라졌다.

CJ E&M 측은 살인적인 제작 시스템이 방송노동자들에게 가하는 구조적 폭력이 ‘방송은 원래 그렇다’며 개인의 나약함이 문제라며 사건을 왜곡했다. 시스템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책임을 회피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셈이다.

이한솔 씨는 “저희는 tvN이나 CJ 측에 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진심어린 사과와 형과 같은 사람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게 형이 원했던 이런 드라마 세계에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였다고 생각한다. 형은 사람을 물건으로 다루는 행태들의 근본적인 원인이 고쳐질 수 있길 바랐기 때문에 유족들도 (진심어린 사과와 재발방지대책을)바라는 바이고, 그게 형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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