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항쟁과 대선, 전환의 시작
    "심상정, 진보정치 재도약의 적임자"
    단병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평등사회노동교육원 대표
        2017년 04월 19일 10:2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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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항쟁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보수 정치세력을 끌어내리고 치러지는 조기대선이다. 이른바 ‘촛불대선’이라고 불리는 이번 대선은 ‘정권교체’가 아닌 ‘어떤 정권교체’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기존 야당의 두 후보의 양강 구도와 그 구도만을 조명하는 언론 보도들 속에 정권교체의 내용보단,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후보의 지루한 공방전만 가득하다. 이 와중에 노동 중심의 정책과 진정성, 전투력으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있다. 구로공단에서 미싱 노동자로 노동운동에 뛰어 들어 남성 조합원이 다수인 금속노조 간부를 하고 3선 국회의원이 되기까지의 여정 때문에 심 후보에겐 ‘철의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여의도의 호평과는 별개로 여전히 전체 노동, 진보세력의 지지를 받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는 분명하다. 이는 지지율이 3% 박스권에 갇힌 여러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촛불대선에서 정의당의, 심상정 후보의 대선 도전은 진보정치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기회라는 희망과 기대도 적지 않다. 바로 심 후보와 30년간 진보정당·노동운동을 함께 해온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다. 그는 한국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준 민주노동당 전 의원이기도 하다.

    단 전 위원장은 민주노동당이 분당된 후 진보정당에는 거리를 둔 채, 아래로부터의 노동 교육을 목적으로 하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그러다가 이번 대선에서 심 후보의 요청을 받고 심상정 후보 후원회 회장을 맡아 힘을 보태고 있다. 단 전 위원장은 “이번 조기대선이 괜찮은 후보를 통해 진보정치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기회”라며 “개인적 인연을 떠나 나름의 판단으로 심상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레디앙>은 17일 오후 서울 불광동에 있는 평등사회노동교육원 사무실에서 단 전 위원장을 만나 이번 조기대선의 의미와 진보정당과 노동운동 세력의 역할에 대해 들어봤다. 정리는 유하라 기자가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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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이하 사진은 유하라)

    촛불항쟁은 대한민국 전환점의 시작

    정종권 : 천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참여한 촛불집회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격변의 과정에서 치러지는 조기 대선이다. 이번 대선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는 뭐라고 봐야 하나.

    단병호 민주노총 전 위원장 : 나는 촛불집회가 아닌, 촛불항쟁이라고 표현한다. 87년 6월 항쟁 이후 30년 동안 누적되며 집약된 한국사회의 문제들이 (‘박근혜 게이트’라는 결정적 계기로 인해) 표출된 것이라고 본다. 때문에 이번 촛불항쟁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는 것도 중요한 의미이지만, 민주화 이후 30년 만에 새로운 전환의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것을 평가할 수 있다. 새로운 계기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다만 그것이 완성된 것이냐, 라고 묻는다면 아니다. 이제 시작이다. 국민들이 주체가 돼서 권력까지 내려앉게 했던 시민 혁명은, 30년의 누적된 모순을 극복하고 한국사회를 새롭게 만드는 전환점의 시작이라고 본다.

    촛불항쟁 이후 지금의 시기가 매우 중요하다. 한국이 다시 한 번 민주와 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해나가면서 진보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또 한 번의 좌절로 나타날지. 속단하긴 어렵지만, 일단 촛불항쟁으로 계기는 마련됐다. 그 이후의 역할을 전적으로 주체(국민)의 책임이다.

    정종권 : 특정 세력들을 시민들이 징벌했다는 의미도 있지만 30년 동안 모순이 누적된 한국사회의 새로운 전환을 바라는 시민들의 목소리가 나온 것이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갈지 전환점에 와있다는 말씀해주셨다. 앞으로의 과제는 그 진보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방향을 정하는 것이겠다.

    단병호 : 우린 역사적으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4.19혁명, 혁명은 이뤘지만 1년 후 바로 주체가 바로서지 못하면서 도로 5.16 쿠데타가 나타났고 30년 이상 암흑의 시대를 겪었다. 6월 항쟁은 어떤가. 항쟁을 이뤄내긴 했지만 미약한 주체 탓에 더 많이 나아갈 수 있었는데도 더 나아가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촛불항쟁을 통한 시민혁명은, 완성이 아닌 새로운 출발의 지점, 전환기적 상황에 놓여있다는 것이다.

    정종권 : 그런 의미에서 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분출됐고 그 분출의 공간을 뚫고 나온 사건이 같은 해 ‘7·8·9 노동자 대투쟁’이다. 지금은 촛불국면에서 바로 대선이 오다보니 노동자, 민중의 요구가 전개되기보단 선거로 집중되는 것 같다.

    단병호 : 그렇다.

    정종권 :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끝으로 정치활동 일선에서 물러나신 지 벌써 10여년이 됐다. 그럼에도 한국의 대표적인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이자, 대표적인 노동자 국회의원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 이번 대선을 노동자들이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보나.

    단병호 : 잘해야지 (웃음).

    어찌됐든 당장은 대선이 향후 한국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간단치 않기 때문에 이것을 간과하고 다른 얘기를 하기는 힘들다. 정권교체는 기정사실화됐고 ‘안철수냐, 문재인이냐’ 하는 얘기가 있는데, 사람 개인을 놓고 보면 누가 더 나은지도 모르지만 집단이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성격은 있지 않나. 그렇게 볼 때 아무래도 민주와 진보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언덕바지가 될 수 있는 쪽은 문재인이라고 본다. 문과 안, 둘을 비교하자면 말이다.

    과거 정권교체라는 논리 속에 가장 곤혹스러웠던 게 진보진영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큰 틀에서 정권교체를 고민해하고 갈등해야 할 필요는 없게 됐다. 이번 대선에서 진보정치운동 세력은 주체적 입장에서 진보의 자기 세력화나 자기 전망에 대한 토대를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고 자기 역할을 통해 사회적 역량을 확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이후 우리 사회의 변화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상당히 큰 영향을 미칠 거다.

    이게 제대로 구축이 되면 향후 우리가 주도하긴 어렵더라도 견인해나가고, 추동해나갈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계기에 진보정치세력의 구체적 역량을 확장해나가는 이 목표를 분명히 할 필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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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선, 진보정치 역량을 다시 모으고 한국사회 개혁의 추동력이 될 기회

    정종권 : 현재는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진보정치에 대해 힘을 보탤 수 있는 상황인 거 같은데, 오히려 민주노동당 때보다 더 민주당 문재인 후보나,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에게 노동자들의 표심이 기우는 경향이 커진 것 같다.

    단병호 : 그건 전체 상황, 정세에 대한 인식 차이라기보다 우리 내부 구조적 한계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본다.

    일단 민주노총이 단일한 조직적 정치적 방침을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고, 또 그걸 뛰어넘어서 노동자들에게 대안으로 강하게 부각될만한 유력한 진보정치세력이 없다는 점이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정의당이 분투하고 있긴 하지만 아직 노동자 전체로부터의 신뢰와 지도력을 인정받고 있지는 못한 거 같다.

    그렇다면 현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이냐 문제가 남는다. 정의당이 정말 주요한 역할을 하려면 그 역할을 할 만큼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한다. 또 노동 쪽은 지금과 같은 내부적 한계 때문에 언제까지 노동자들이 정치적 소외계급으로 갈 것이냐 하는 자기 성찰부터 해야 한다.

    정종권 : 정권교체 때문에 곤혹스러운 상황에선 자유로워진 측면이 있는 반면, 노동운동이나 진보정치의 내부 조건에선 힘 있는 노동정치, 진보정치의 발전을 도모하기 힘든 어려운 상황이라는 건가.

    단병호 : 노동, 진보정치 세력이 자기 주체를 만드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거다. 과연 문재인과 안철수 쪽으로 가는 그 사람들만 탓하고 욕할 문제일까. 심정적으로 안타깝고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그 사람들이 진보, 노동정치 쪽에서 힘을 모을 수 있는 여력, 공간이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우리가 힘이 없는데 여기에 남아서 지지하라고 개인적으로 강요해서 될 문제도 아니잖나. 기대가 있다면 정권교체 후 진보의 토대를 강화하는 과정 속에서 다시 돌아와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종권 : 저는 동의 안합니다(웃음). 문재인이나 안철수 쪽으로 간 일부 과거 민주노조운동의 사람들, 그 사람들을 탓하기 전에 우리 약점부터 돌아봐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단병호 :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한계를 개인에게 극복해라, 이렇게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거다. 개인이 다른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상황인식과 다른 정치적 판단에 따라 자기 역할을 찾을 수 있다는 거다.

    정종권 : 일정 부분 공감도 하고, 객관적으론 그래야 한다고 보지만 감성적으로 동의가 되진 않는다. 더 어렵고 힘든 시기에도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보정치와 노동정치의 성장이라는 마음으로 함께 했다. 세상을 바꿔 나가야 할 주체라고 자임했고 역할도 많이 했던 분들이 그러니까 더 힘이 빠진다. 그들이 5, 10년 전에 젊은 노동자들에게 한 말이 있고 그 말 때문에 함께 했던 건데, 그런 것에 대한 책임성을 저버린 거라도 본다. 지금에 와서 그 쪽으로 가는 건 권력에 대한 욕망이 더 크게 작용한 것 아닌가 싶다는 생각이다.

    단병호 : 아쉬움은 다 있다. 어렵더라도 한길로 가면 얼마나 좋겠나, 그랬으면 세상이 열 번도 더 바뀌었을 거다.

    2000년도에 민주노동당을 만들고 2004년도 총선에서 원내진출이라는 획기적인 발전을 이뤘다. 공식적인 평가는 아니지만 이런 획기적 발전에 나는 3가지 요인이 있다고 본다.

    첫 번째, 87년부터 시민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의 토대와 지표가 넓어지고 거기에 96, 97년 노동자 총파업이 있었다. 이게 당이 급속도로 성장한 하나의 요인이다.

    두 번째, IMF라고 하는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경제적 상황으로 인해 사회적, 정치적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이 강력한 진보정치 세력화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됐다.

    세 번째, 역설적으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섰기 때문이다. 당시 민주정부로의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많았기 때문에 (진보와 정권교체 사이에서) 갈등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한계가 드러났다. 그 때부터 새로운 판단을 하는 세력이 나타났다. 민주정부를 세웠지만 노동자 기본권, 사회 개혁의 문제 등은 안 되겠다, 했던 사람들이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공감한 것이다. 결국 역설적으로 김대중 정부의 한계가 진보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하는 하나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만 지금에 문재인과 안철수 쪽으로 가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의 면피를 주는 건 아니다. 냉정하게 보게 되면 그런 측면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다.

    단심

    2005년 비정규법안 반대 회견을 하고 있는 심상정 단병호 민주노동당 의원(왼쪽부터)

    심상정, 노동자·서민의 뿌리 잊지 않고, 대중성도 있고 똑똑하다

    정종권 : 정의당 심상정 후보의 후원회장을 맡으셨는데, 그 얘기도 좀 해봐야겠다. 정의당 당원이 아닌데 후원회장을 맡으신 이유가 있나. 전노협, 금속노조(연맹), 민주노총으로 이어지는 한국 민주노조 운동의 역사에서 심상정 후보와의 오랜 인연이 많이 알려져 있다.

    단병호 : 지금 진보정당이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10년을 축소되고 위축되는 길을 걸어왔다. 그동안 수없이 노력했지만 잘 안됐다. 그런데 이번 계기마저 그냥 넘기면 진보정치, 노동정치에 대한 싹을 새롭게 만들어나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됐다.

    촛불 항쟁의 과정을 거치면서 진보정치가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공감대가 시민들 속에 상당히 확장됐다고 본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청년실업, 양극화 문제, 국민이 권력의 주체임에도 국민이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배제되는 정치 환경 등등. 우리가 잘하면 진보정치의 자산으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환경과 조건이 형성됐다고 판단했다.

    사실 개인적인 인연도 무시를 못한다. 심상정 후보를 나이 서른 안쪽에 만났다. 이후 30년 동안 인연을 이어 오면서 미운 정, 고운 정도 많이 쌓였다. 아마 그런 인연이 없었으면 선뜻 후원회장을 맡겠다, 이렇게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봐야 의미가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다면 후원회장 요청은 거부했을 거다.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진보정치, 노동정치에 대한 새로운 모색이 가능할까, 라는 고민 끝에 나름의 판단이 있었고, 무언가 가능성을 만들 수 있겠다고 본 거다.

    특히 후보의 문제를 간단히 넘길 수가 없다. 심상정 후보에 대한 여러 비판도 있지만, 그의 삶의 과정을 보면 노동자, 서민에 대한 뿌리를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살아왔고 그런 심성과 정체성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고 본다. 그러기 때문에 진보 후보로서의 가치관의 문제에 있어선 역대 어떤 진보 후보와 비교해도 빠지지 않는다고 본다.

    심상정 후보는 대중성도 상당히 있다. 국회의원 3선은 정치적 자산으로 소중한 것이고, 정치지도자로서 검증된 이런 부분들은 대중성이 없다면 쉽게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런 대중적 진보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이 대선이라는 공간에서 상당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똑똑하잖나. 이번 토론회를 보니까 토론회가 많을수록 진보정치의 주가가 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5명의 후보 속에 들어가서 토론을 하면 결코 밀리지 않는 역량을 가진 후보다.

    그렇다면 진보정치가 재도약을 모색해볼 수 있는 적기가 아니겠는가. 이런 조건 속에서 이런 후보가 진보, 노동정치를 다시 모색을 하려고 하는데, 나도 의지라도 보태주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대선 완주하고, 그 이후 역할과 포지션은 개혁·진보 방향에서 판단

    정종권 : 심상정 후보에 대한 충고와 조언이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 대선에서 역할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보나.

    단병호 : 열심히 해서 표를 많이 받아야지(웃음).

    일단 이번에 나름대로 열심히 잘 해서 그동안 정의당이나 심상정 후보의 꼬리표를 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소위 노동운동 내에서 부분적으로 제기되는 문제들이, ‘정의당이 정말 진보정당이 맞나’부터 ‘심상정은 당을 깨고 나가 개인적으로 양지바른 쪽만 찾았다’까지. 이런 얘기들이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런 비판을 계속 달고 가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당이 이후에 자기 발전을 도모해나가는 데에 장애가 된다.

    이번 대선 과정을 통해 그런 꼬리표를 떼려면 좀 더 서민적이고, 좀 더 노동적인 모습들이 드러낼 필요가 있다. 토론회 등 지금까지는 잘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그런 모습들이 단순히 선거전략의 일환이 아니라, 정의당이 좀 더 서민, 노동 속에 뿌리를 넓혀나가는 계기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또 그런 심상정 후보와 정의당의 그런 모습들이 진보정치와 노동운동이 가진 내부적 구조적 한계를 극복해나갈 수 있는 요소가 될 거다.

    정종권 : 지금은 그런 말들이 많이 줄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문재인과 단일화하지 않겠나’ 이런 얘기들도 있었다. 그리고 문재인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당과 함께 연립정부 뭐 그런 거 비슷하게 말하면서 장관 자리 한두 개 받아 민주당 2중대로 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 또는 비난의 목소리가, 일부 진보세력 사이에서 나오는 거 같다.

    단병호 : 나한테 후원회 회장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내가 물었던 얘기가 ‘이번에는 완주할 거냐’는 거였다. 이번엔 끝까지 간다고 했고, 끝까지 갈 것 같다. 정권교체로부터 자유로운 상황에서 후보 사퇴를 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만둔다고 하면 진보정치가 자기의 주체와 역량을 만들어가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차기정부 참여 여부는 지금 논의할 문제가 아니다. 선거 결과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논쟁을 만들어내는 그 자체도 딱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차기 정권이 들어선 이후 정말 한국사회가 민주와 개혁, 진보의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견인해내는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 뭐냐는 토론을 한 후에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본다.

    정종권 : 차기 정권에서의 역할은 차기 정부가 보다 민주적 진보적 친노동적 방향으로 나가게끔 하기 위한 역할과 포지션이 무엇이냐를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는 말씀이신가.

    단병호 : 정치적 대중 투쟁을 통해 압박하는 방법이 있고 참여할 수도 있다. 참여한다면 구색 맞추기로 가면 안 되는 거다. 차기 정부가 실질적으로 의지가 있는 건지, 진보정치세력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는 건지도 봐야 한다. 정의당이 이번 선거 과정을 통해서 진보의 영역을 확장시키면서 자기 몸집을 키우고 노동, 시민사회운동 등 다양한 운동 세력들과 함께 원외의 역할을 강화하면서 차기 정부의 정책적 방향을 강제시켜 나가는 방향도 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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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운동 본연의 정신, 다시 돌아보고 성찰해야

    정종권 : 앞서서 87년 7·8·9 노동자 대투쟁에 대해 잠깐 얘기했다. 대선 국면이긴 하지만 올해가 노동자 대투쟁 30주년이 되는 해다. 그런데 87년 6월의 정신은 사회적으로 많이 공유되고 있는 반면, 7·8·9 노동자 투쟁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 사회의 공감대는 아직 그렇게 넓지 않은 거 같다.

    단병호 : 맞다. 6월 항쟁에 비해서 노동자 대투쟁은 간과되는 측면이 있다. 2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노동자 대투쟁이 87년 투쟁의 선도적인 역할이나,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지 않는 시대적 상황에 대한 평가가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6월 항쟁이 나타나고 시간적으로 그 이후 노동자 대투쟁이 일어났으니 하나의 연장선상으로 보는 기류가 강한 거 같다. 상대적으로 노동이 가지는 사회적 정치적 의미가 평가되기 보단 6월 항쟁이 전개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 것으로 그 의미가 평가되는 것이다.

    또 하나는 그럼에도 노동운동 세력이 노동자 대투쟁 이후 30년 동안 자기 위치를 정확히 잡고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걸맞은 자기 성장을 도모했다면 지금의 평가는 달라졌을 수도 있다.

    하나 덧붙이면 시대적으로 노동운동 문제를 떠나서, 그 당시보다 지금의 상황이 노동에 대한 의미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축소됐다. 현재의 비정규직, 중소영세 노동자들 처지는 87년 이전의 노동자 처지와 비교해볼 때 그때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없는 상태다. 양극화, 일자리 문제 등 우리가 보고 있는 노동은 심각한 상태인데도 사회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노동의 의미는 노동운동, 귀족노조, 청년, 조직 노동자로 한정됐고,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 노동자들은 노동의 의미에서 배제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87년 이전엔 노동의 일반적 개념은, 열심히 일하지만 사회적으로 소외받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포함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 정작 이런 노동자들은 자본이나 지배세력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배제됐고 정규직 대공장만 노동인 것처럼 축소 왜곡돼 일반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노동이라는 의제가 축소됐다. 예컨대 일자리 문제가 심각성을 알면서도 이 문제를 노동문제와 연관시켜서 보지 않는다는 거다. 왜 이렇게 됐나. 87년 이후에 87년의 정신들, 지향성을 제대로 살려내지 못한 것에 따른 현상이라고 본다. 그게 가장 큰 문제다.

    그럼에도 당시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면, 사회의 한 축인 노동이 사회의 중심으로 새롭게 부상하게 된 것이 87년 789월 노동자 대투쟁이다. 노동이 우리 사회에서 일궈낸 큰 성과다.

    또 민주노조 운동을 일으키면서 그때까지 왜곡되었던 노동운동을 바로잡은 거다. 그 이후에 노동자들의 권리나 생활 조건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시켜나갈 수 있는 주체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 그런 게 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말했듯이 지금까지 그 정신, 기조를 제대로 발전시켰느냐는 평가는 다양할 수 있다. 자본에, 권력에 의도적 왜곡이든 배제든 노동운동에 대한 철저한 사회적 고립화의 전략을 허용한 것이 돼버린 것 아닌가 싶다.

    정종권 : 기조와 정신을 계승하는 데에 어떤 약점, 한계, 오류가 있었다고 보나.

    단병호 : IMF가 터지고 새로운 경제 환경이 만들어지면서부터 노동운동이 자기 확장성을 만들어가는 데에 한계에 봉착했다. 나름대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항변할 순 있다. 하지만 과연 최선이었는가에 대해선 우리가 성찰해야 할 대목이다.

    정종권 : 확장성이라면 미조직, 비정규 노동자를 민주노조운동 속에서 포괄하고 모아낼 수 있도록 가야 했다는 지적인가.

    단병호 : 그렇다. 또 노동운동의 본래의 정신에 얼마만큼 충실했는가, 그 정신에서 일탈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고민과 자기 평가도 필요하다.

    노동조합도 조직이기 때문에 조직 구성원에 의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조직의 원래 생리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그렇다 치더라도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이기주의적’ 조직이 아니라 ‘이타적’ 성격을 지닌 조직이고 또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 원래 노동운동의 정신이다. 그러려면 노동계급 내에서 가장 소외받는 계층들의 요구와 그 사람들을 대변하는 데에 가장 역점을 둬야 한다. 그런데 우리 노동운동이 그 과제에 얼마만큼 치열하게 해왔는가에 대한 문제에 대해선 평가해볼 여러 지점이 있다.

    교육원

    활동가 기초과정 강사단 역량 강화 교육(사진=평등사회노동교육원)

    정종권 : 마지막 질문이다. 지금 대표를 맡고 있는 평등사회교육원에 대해 소개해달라.

    단병호 :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후 지금 현재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공식 직함이 평등사회노동교육원 대표다. 민주노총 지도위원 이런 거 빼고. 일주일은 3, 4번 정도 다른 일정 없으면 사무실에 나와서 토론도 하고 지역 교육원 몇 군데에서 수료식이나 개강 일에 찾아가기도 한다.

    교육원 문을 연 배경부터 얘기해보면 이렇다. 민주노동당이 분당한 이후에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당이 깨지는 것에 반대했는데, 한국에서 진보정당 하나 만든다는 것이 참 힘든 일인데 이렇게 깨지고 나면 언제 만들어질지 막막했다. 정치적 갈등이 노동운동 내에 그대로 유입될 것도 기정사실이었다. 그러면 그 갈등이 노동운동 내에 엄청난 문제를 가져 올 테고…. 이렇게 당이 깨지고 나면 나타날 현상이 눈에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그동안 활동해온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속된 말로 ‘감방도 가고 밥도 굶어가면서 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이렇게 무너지는 구나’ 이런 충격이었다. 거기에 더해 이런 상황이 올 것을 알면서도 나는 왜 당이 깨지지 않도록 막는 것에 적극적이지 못했나, 자괴감이 들기도 들었다.

    그러다가 이대로 모든 걸 포기하고 주저앉을 순 없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추스르고 고민했던 것이 운동을 밑에서부터 재복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그 역할이 뭘까 고민하다가 교육을 통해 아래서부터 새로운 역량을 재구축하고 그것이 노동조합 운동에, 진보정치 토대에 기여할 수 있는 작은 토대가 된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판단해 한 것이 평등사회노동교육원이다. 2009년부터 준비해서 2011년에 문을 열었다.

    전노협 때부터 금속노조, 민주노총을 거치면서 교육은 엄청 했었다. 그런데 그 교육이 우리 운동을 발전시키는 데 큰 힘이 됐던 것도 사실이지만 한계도 있었다.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뭘까 고민하던 끝에 2가지 부분에 역점을 뒀다. 하나는 교육운동의 전국화, 참여식 교육이다. 교육 참여자가 토론도 하고 문제제기도 하면서 주도적으로 학습하는 거다. 우리 교육원은 강의가 없다. 대신 학습을 한다. 이런 방식의 우리 교육의 문제점,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봤다. 창립하고 130~140개 팀이 가동됐고, 현재 가동되고 있는 팀은 15개 정도다. 노동운동. 정치운동에 자기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참여할 수 있고, 그렇게 토대가 넓어질 수 있다면 우리 교육원으로선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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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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