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의 행복한 봄바람
    [그림책이야기] <팔랑팔랑>(천유주/ 이야기꽃)
        2017년 04월 14일 09:0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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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랑빨랑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은 해마다 3월 마지막 주나 4월 첫째 주에 열립니다. 2011년부터 칠 년째 부스를 내고 전시회에 참가하는데도 산다는 건 언제나 새롭고 신기하고 서툽니다. 한국을 떠나던 날, 밤 비행기라 여유를 부리던 북극곰 부부는 공항에 조금 늦고 말았습니다. 마음이 빨랑빨랑 팔다리를 재촉했습니다. 팔다리도 빨랑빨랑 마음을 재촉했습니다.

    그날 밤 공항에서는 정말 소소하고도 많은 일들이 북극곰 부부를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연히 가져와야 할 것들을 가져오지 않았고 심지어 현금인출기의 문이 닫힐 때까지 돈을 꺼내지 않았습니다. 빨랑빨랑 마음이 재촉하는 바람에 실수가 이어졌고 북극곰 부부는 가까스로 출국장에 들어갔습니다. 거의 24시간 만에 볼로냐에 도착했고 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하지만 서평을 쓰려고 골라둔 그림책은 북극곰이 사는 파주 집에 있었습니다.

    팔랑

    팔랑팔랑

    볼로냐 도서전시회 첫날, 그림책을 전시하러 온 제가 한국관의 첫 번째 손님이 되었습니다. 많은 그림책들이 제 눈을 끌어당겼습니다. 그리고 많은 그림책 가운데 제 마음을 끌어당긴 그림책, 『팔랑팔랑』이 있었습니다. 팔랑팔랑.

    표지를 자세히 봅니다. 벚나무 그늘 아래 기다란 나무 의자가 있습니다. 왼쪽에는 고양이가 앉아 있습니다. 고양이는 무릎 위에 도시락을 얹어 놓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집어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양이의 눈은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안경을 쓴 강아지가 앉아 있습니다. 강아지는 책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 표지 그림 전체를 봅니다. 벚나무 그늘 아래 고양이와 강아지가 긴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고양이는 도시락을 무릎 위에 놓고 음식을 먹고, 안경 쓴 강아지는 열심히 책을 보고 있습니다. 그때 봄바람이 일렁입니다. 예쁜 고양이와 안경 쓴 강아지 머리 위로 벚꽃 잎이 날개를 폅니다. 팔랑팔랑.

    그림책 『팔랑팔랑』의 표지는 자세히 보아도 예쁘고 멀리 보아도 예쁩니다. 고양이와 강아지 사이의 에너지가, 그들 위로 날개를 펼친 벚꽃 잎이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깁니다.

    머뭇머뭇

    햇빛 반짝 빛나는 봄날, 고양이 나비는 바구니를 들고 소풍을 나옵니다. 나무 가지마다 파릇파릇 새 잎이 돋고, 불긋불긋 새 꽃이 피어 있습니다. 나비는 봄 나무, 봄 잎, 봄 꽃에 눈과 마음을 모두 빼앗깁니다. 그래서 나뭇가지 위에 앉은 작은 새가 자기를 지켜보는 줄도 모릅니다. 나무 아래에는 긴 나무 의자가 있습니다. 나비는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의자에 내려놓고, 바구니에서 김밥 도시락과 따뜻한 보리차를 담은 보온병을 꺼냅니다.

    바람 살랑 부는 봄날, 강아지 아지도 한손으로 책을 감싸 안고 산책을 나섭니다. 하지만 아지가 좋아하는 벚나무 그늘 아래 긴 나무 의자에는 고양이가 먼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처음 보는 고양이입니다. 아지는 긴 나무 의자 오른쪽에 앉습니다. 아지는 고양이가 궁금하지만 책을 펼치고 헛기침만 흠흠 합니다. 고양이 나비도 강아지가 궁금하지만 보리차를 마시며 곁눈질만 합니다.

    참 소심한 두 친구, 고양이 나비와 강아지 아지는 아름다운 봄날 이렇게 우연히 만났습니다. 이제 둘 중에 누가 먼저 말을 걸게 될까요? 과연 나비와 아지는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또르뗄리니 또르뗄리니

    원래 또르뗄리니는 치즈나 고기, 버섯 등으로 속을 채운 만두 모양의 파스타입니다. 그런데 이태리어를 모르는 제 귀에는 볼로냐의 식당에서 직원과 손님이 대화하는 소리가 이렇게 들립니다. 서로 얼마나 할 말이 많은지 지켜보는 내내 신기할 따름입니다.

    때로는 직원과 손님의 대화에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도 합세합니다. 심지어 어떤 손님은 저에게까지 말을 건넵니다. 물론 저는 꿀 먹은 벙어리입니다. 볼로냐 식당에서는 이런 일이 참 흔합니다. 식사 내내 이어지는 길고 활기차고 행복한 대화 말입니다.

    그런데 식당 직원과 손님의 긴 대화 때문에 종종 다른 테이블의 서빙이 늦어집니다. 때로는 주문을 까먹기도 합니다. 그러면 저는 발을 동동 구릅니다. 저는 ‘빨랑빨랑’의 나라 한국에서 왔으니까요.

    살랑살랑

    살랑살랑 봄바람이 붑니다. 봄은 볼로냐에도 오고 서울에도 옵니다. 봄은 결코 빨랑빨랑 오지 않습니다. 봄은 살랑살랑 왔다가 팔랑팔랑 갑니다. 따라서 마음이 살랑살랑 걷지 않으면 봄을 느낄 수 없습니다. 마음이 빨랑빨랑 달려기 시작하면 행복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림책 『팔랑팔랑』은 잠시나마 우리 마음에서 ‘빨랑빨랑’이라는 단어를 잊게 하는 위력을 지녔습니다. 지금 이 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멈춰 서서 바라보게 됩니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 줍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이 아름다운 봄을 만끽하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깨우쳐 줍니다. 그림책 『팔랑팔랑』은 이 아름다운 봄에 독자들 마음에 행복한 봄바람을 일으켜줍니다. 살랑살랑.

    필자소개
    세종사이버대학교 교수. 동화작가. 도서출판 북극곰 편집장. 이루리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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