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정조차 못 받는 준(準)고시생들
    [청년기자④] 법학적성시험(LEET) 준비생을 만나다
        2017년 04월 13일 01:2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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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앙은 정의당 미래정치센터와 협의하여 청년기자들이 취재하여 작성한 기사들을 약 10여차례 연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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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나 시끄러운 음악이 울려 퍼지고 인파로 북적이는 강남역, 그 뒷골목에는 학원가가 펼쳐져 있다. 토익, 영어회화, 컴퓨터, 대학편입 등등 많은 학원들 사이에 ‘로스쿨 학원‘이 보인다. 오늘은 입시 설명회가 있는 날이다. 사법시험 폐지가 결정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일까, 로스쿨 입시는 대입에 비하면 학원 선택권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시 말해, 정보도 별로 없는 막막한 1만 로스쿨 준비생들의 발걸음은 한 번쯤 이곳을 거칠 것이다. 건물 곳곳에 붙은 안내판을 따라 6층의 한 강의실로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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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쿨 성공전략 설명회 전경/문용훈

    아직 시작까진 20분 넘게 남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다. 이미 입시 레이스가 작년 11월경부터 시작된 마당에, 3월부터 뛰어드려는 간 큰 사람은 별로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강의실 한 편에 자리를 잡는다. 너무 조용한 나머지 긴장한 예비 수험생들의 숨소리만 들린다.

    들어오면서 받은 안내 책자에는 성공한 수험생들의, 아니 이제는 로스쿨 학생일 그들의 수기가 적혀 있다. 수기를 읽어 보면 얼마나 로스쿨 입학에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수반되는지와 이 세상 어딘가에는 GPA(학부 성적 평균) 백분위 97, 99퍼센트 따위가 필연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수 있다.

    이내 수트를 말끔히 빼입고 들어온 상담실장의 현란한 말솜씨는 참석자들의 혼을 빼 놓는다. 로스쿨 입시가 얼마나 어려운지 늘어놓다가도, 곧바로 학원의 노하우와 뛰어난 강사들로 말미암아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 넣는 그는 ‘밀당‘(밀고 당기기)의 귀재임에 틀림없다. 귀가 얇은 기자는 이에 현혹됐다가도 6개월에 400만 원이 넘는 가격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웬만한 한 학기 대학 등록금보다도 비싼 가격이다.

    설명회가 끝이 나면 학생들은 바로 등록을 하거나, 따로 상담을 받는다. 기자는 다른 층에서 수업을 마치고 나온 배재한(26) 씨를 만났다. 3시간 넘게 이어진 강의를 듣고 왔음에도 그의 눈에서는 빛이 났다. 서강대학교 정치외교학과 4학년인 그는, 학교를 다니면서 로스쿨 시험을 준비하는 ‘재학 수험생‘이다. 그리고 역시 높은 학점을 받으면서 동시에 8월에 있을 법학적성시험(LEET)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에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입시 자체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하였듯이 그 과정에 필요한 값비싼 학원비와, 로스쿨 진학에 성공한다 할지라도 장차 감당해야 할 연 2천만 원의 학비, 또한 생활비 절약을 위해 집에서 가까운 로스쿨에 진학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를 짓누르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눈에서 빛이 나게끔 만드는 것은 바로 ‘꿈‘이다. 그는 “언젠간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에 염세를 느낀 배 씨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200만 명을 돌파한 마당에, 앞으로 대한민국이 다문화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불가피하다”며 “이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어떻게 조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나갈지 고민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변호사가 되어 낯선 땅의 열악한 환경에서 편견과 싸우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돕는 것이,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있어 자신이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진정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삶”을 위해 경제적 어려움까지도 각오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에게서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되어 부를 쌓거나 특권을 누리고자 하는 욕심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경제적 압박이 실존하고, 사익만 추구하려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로스쿨 준비생이란 이유만으로 이기적인 금수저 취급을 하는 사회적 풍토를 걱정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면 ‘청년 구직난의 희생자‘라는 등 사회적으로 동정 받는 것과는 정반대의 상황인 것이다. 심지어 로스쿨은 ’음서제‘(부나 지위를 대물림하는 제도)나 ’돈스쿨‘이라는 비난에 직면해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을 막고, 기득권을 대놓고 물려주는 제도라는 뜻이다.

    배 씨에게 이러한 비판에 대한 생각을 묻자, “법학전문대학원은 금수저들의 전유물이라는 시선이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며, “경제적·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특별전형 및 장학금 제도가 마련되어 있는 만큼 잘못된 인식이 하루빨리 극복되어야 한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나아가 배 씨는 “사법시험이야말로 과거의 평판과는 다르게 실제로는 시험에 드는 사회적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되었다”면서, 사법시험이 로스쿨보다 효율적인 ‘계층 이동의 사다리‘라는 세간의 목소리를 비판했다. 사법시험 준비생들 역시 고액의 학원비를 지불해 왔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별전형이 따로 있는 로스쿨보다도 경제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재한 제도임을 꼬집은 것이다.

    다만 입시과정의 불투명성으로 인한 논란이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기에, 이를 개선함으로서 학벌·전공·계급을 막론하여 법조계를 개방하고자 하는 로스쿨의 도입 취지를 살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필자소개
    미래정치센터 청년기자(경희대 언론정보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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