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노동당,
    ‘거대한 소수’의 가능성
    [진보정치 공동연재 1-1] 정당·운동
        2017년 04월 13일 10:3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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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레디앙, 민플러스 공동연재 글이다

    촛불운동과 박근혜 파면을 거치며 새로운 민주주의에 대한 요구가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대안체제를 앞장서서 주장해온 진보정치는 불신의 장벽에 갇혀 연대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향후 진보정치운동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냉정한 분석과 평가, 소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진보정치를 연구했거나 진보정당에서 활동한 세 명의 1기 진보정치의 평가와 제언을 6차례에 걸쳐 싣는다. – 글쓴이(정경윤, 김상철, 손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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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는가. 많은 이들이 ‘진보정당 국회의원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며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을 애타게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민주노동당 원내 진출로 그 꿈이 이루어지고 13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무엇을 꿈꾸고 있는가. 새로운 민주주의, 새로운 정치를 원하는 거대한 촛불의 요구 앞에 새로운 사회를 위한 ‘상상력’은 움직이고 있는가.

    촛불운동을 거치며 새로운 정치에 대한 요구는 개헌과 선거법 개정과 같은 것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들의 주요 목적을 꼽는다면 대의민주주의 체제로서의 ‘국회의 정상화’, 특히 선거법 개정에서는 다당제 민주주의가 강조된다. 이와 같은 정당체제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운동은 대의민주주의 강화를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해소되지 않는 질문이 있다. 그 동안 원내에 진출한 진보정당들이 단순히 의석수가 적었기 때문에 정당경쟁체제에서 주변화되었는가?

    창당대회

    민주노동당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우리는 여러 진보정당들의 원내 진출 경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진보진영의 대표성을 가지며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한국 정당 역사상 최초로 사회운동 기반의 대중정당이었다는 점과 이후 등장한 진보정당들에게 이념과 강령적 차원, 인적 연속성에서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민주노동당에 대한 평가는 매우 중요하다.

    지역에서 시민운동을 하시는 어느 분과 대화 중 민주노동당 시절 국회의원 정책보좌진을 했었다는 나의 말에 그 분이 던진 질문이 있다.

    “민주노동당이 법안을 낸 게 있어요? 의원이 10명도 안 됐잖아요”

    2004년 이후 2008년 분당 이전까지 326건, 분당 이후까지 포함하여 민주노동당 시절 601건의 법률안을 발의하고 그와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했음에도 얼마나 원내 활동이 알려지지 않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그동안 민주노동당 실패 원인에 대한 접근은 주로 ‘정파’라는 단편적인 원인에서 찾아왔다. 이는 2004년 이후 본격화된 당내의 정파 간 정치투쟁에 대한 과도한 관심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민주노동당 원내 활동에서 소수정당으로서 한계를 가졌던 원인이 단순히 정파 때문일까? 반대로 ‘소수’라는 구조적 제한 조건을 극복하고 ‘거대한 소수’로서 진보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경우도 정파 때문일까?

    200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이 당선되었다.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위해 기도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슴 벅차했던 그 때, 대중정당인 진보정당의 원내 진출에 긴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0명! 10명만이 국회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그들 뒤에 엄청난 세력이 함께 들어오는 것이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당선된 것에 대비해 비상회의까지 진행했다는 국회 사무처, 그리고 그 때 누군가가 했다는 말이다. 민주노동당 국회의원들 뒤에 민주노총, 전농, 빈민단체, 청년학생들과 같은 대중단체 세력들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도 정치적 포부가 담긴 원내 활동 전략을 발표했다. 국회의원 299석 중 10석이라는 구조적 제한 조건을 광범위한 대중운동에 기초해 강력한 정치력을 가지겠다는 것, 바로 ‘거대한 소수’ 전략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거대한 소수전략을 어떻게 현실화할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정당도 운동도 준비되지 못한 ‘거대한 소수’

    원내진출에 성공한 민주노동당은 기존의 원외정당으로서 할 수 있는 투쟁 방식에서 제도정치 공간에 진입한 원내정당으로서 투쟁 방식의 변화를 요구받게 된다. 그 동안 ‘부르주아 정치’라고 비판했던 제도정치 공간에서 진보정당의 주요 정책과 이슈들을 어떻게 주장하고 반영하여 변화를 만들어 낼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방도를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조직적 지지 기반인 대중단체들과의 관계와 정책 의제별로 연대하는 시민단체들과의 관계도 그에 맞게 설정하도록 요구되었다. 여기에는 ‘운동정당’이라는 당의 성격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민주노동당은 제도정당의 형식을 취하지만 당 활동의 목표와 목표를 이루는 수단 역시 제도정치 영역으로 진입하기 이전의 운동 목표와 운동 방식을 중요하게 취하고 있었다. 때문에 민주노동당은 유기적인 협력과 연대의 관점에서 사회운동과의 관계를 재구성해야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에는 운동정당 노선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존재했다. 크게 집권을 위해 사회운동 동원을 통한 정당 강화, 집권 목표가 아닌 사회운동 성장을 위한 정당으로서의 해석을 들 수 있다. 여기에는 정파별 노선 차이와 더불어 개인별 접근 차이도 존재했다. 운동정당의 해석 차이는 정당과 사회운동 간 관계에 대한 이분법적 관점에서 시작된다. 독일 녹색당이 표방했던 ‘반정치적인 정당(apolitical party)’의 형태처럼 집권과 사회운동을 대립시켜 바라보고 더불어 정당과 사회운동을 정치체제의 내·외부로 분리시켜 이해하는 것에서 비롯된 것이다.

    명확하지 않은 운동정당 노선과 해석의 차이, 당과 사회운동의 이분법적 접근방법은 당의 조직적 체계와 원내 활동 전략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 중심성이 강조되어 도입된 ‘당직‧공직 겸직금지제도’와 정책위를 상위로 하여 의정지원단을 정책위 산하로 두었던 ‘정책위-의정지원단-의원단’의 정책 지원 체계는 당과 의원단의 유기적 소통 관계가 아닌 의원단을 당의 ‘지도대상’으로 보고 제도화한 수직적 지배구조였다. 결국 당과 의원단의 이원적 분리 체계는 원내‧원외 간의 갈등이 일상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다.

    당과 사회운동의 협력관계를 위한 제도도 수립되었다. 중앙당에 운동단위별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운동과의 관계 형성과 활동을 전개했고, 지도부인 최고위원위에 노동·농민 부문 1인씩 선출하여 당과 민주노총·전농 간 ‘연계자’ 역할을 하도록 제도화했다. 그러나 당과 의원단의 이원화된 구조에서 ‘노동부문 최고위원-노동의제 국회의원-민주노총’, ‘농민부문 최고위원-농민의제 국회의원-전농’의 관계와 역할은 구체적으로 모색되지 않았다. 부문 최고위원은 ‘정파적’ 이해에 따라 충당되었고, 현안이 생기면 운동단체는 의원실과 직접 소통하거나 3자 간의 회의가 운영된다 하더라도 집회 일정과 같은 내용을 챙기는 수준에 그쳤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회운동 측의 전략도 명확하지 않았다. 민주노동당에게는 가장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원안을 고수하는 것을 주문하는 대신 중재안·수정안은 열린우리당 쪽에 가서 요구하거나, 회사의 요구를 들고 오거나, 당의 원칙과 어긋나는 해결방안을 가지고 오는 식으로 자신들의 ‘실리적 추구’를 위해 당을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도 많았다.

    명확하지 않은 운동정당 노선과 해석의 차이는 ‘거대한 소수’ 원내 활동 전략의 구체적인 방도에서도 나타났다. 일부에서는 운동을 원내 활동 보장을 위한 자원으로 이해했으며, 다른 일부에서는 제도정치와 운동정치의 병행전략을 위해 상호 협력 관계를 중요시하는 접근으로 여러 차이가 존재했다. 이와 같은 이해와 접근의 차이는 이원화된 지도체계, 정파 갈등, 의원단에 대한 당의 견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최고위원회와 의원단의 갈등, 당과 의원단, 당내 갈등이 발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원내활동 전략은 의원, 보좌진, 당 간부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적용된다.

    ‘거대한 소수’의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만들어갔다. 전농과 강기갑 의원의 강력한 연대로 펼쳐냈던 쌀 재협상 운동과 미국산 쇠고기 반대운동, 장애인운동과 최순영 의원의 연대로 만들어낸 ‘장애인교육법’, 임대주택 임차인운동-당 경제민주화본부-이영순 의원의 연대로 만들어낸 ‘부도임대아파트법’, 건설노동조합-단병호 의원-이영순 의원의 연대로 만들어낸 ‘건설산업기본법’. 이 외에도 학교급식, 무상의료, 파산자, 주민소환제, 재벌-삼성 문제, 비정규직 문제, 한·미FTA 문제 여론화 등 진보정당이었기에 가능했던 정책과 이슈들을 입법화하고 사회적으로 알려내는 역할을 해냈다.

    누구는 이런 결과에 대해 열린우리당이 여당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당치도 않는 소리다. 기존 ‘보수’정당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차별 개선과 권리 요구에 대해 ‘떼쟁이’로 취급하며 무시해왔다. 진보정당의 주장은 소수라고 무시한다. 하지만 사회운동과 진보정당이 연계되어 시민사회의 반향을 만들고 그 운동의 대표성을 진보정당이 가지게 되었을 때 보수정당들은 진보정당도 사회운동도 무시하지 못한다. 소수일지라도 정당경쟁체제에서 경쟁력을 갖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의석수가 훨씬 적어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이 5명이었던 18대 국회에서도 확인한 바다.

    ‘내부세계’에서 벗어나 대중들과 함께하는 새로운 진보정치를 준비하자

    2016년 국회의원 선거와 거대한 촛불운동을 거쳐 조기대선을 맞이하면서 진보정치세력이 분열된 현실을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진보정치의 흐름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연대보다는 각자도생으로 나아가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실패’의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한 접근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제도정치를 강조하는 측에서는 운동의 탓으로, 운동을 강조하는 측에서는 제도정치의 우경화 탓으로 돌리며 자신의 논리를 앞세우고 있다. 게다가 진보정치세력 내 불신의 장벽은 민주노동당 분당 경험이 없는 젊은 활동가들에게도 재생산되고 있다. 마치 과거 진보정치의 경험 그 자체가 현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불행을 일으킨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대한 촛불운동을 거치며 한국사회 변화를 요구하는 급진적인 ‘목소리’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제 갈등으로 얽혀진 진보정치세력의 ‘내부세계’에서 벗어나야 할 때다.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제들, 한반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위기를 바라볼 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담론 마련과 전략을 고민해야 할 때다. 각자의 이익이 아닌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내기위한 태세를 갖추었을 때 현재를 지배하는 과거의 복잡한 문제들을 풀 수 있는 방법이 보일 것이다.

    * 정경윤: 민주노동당과 관련하여 17대 국회 이영순 국회의원 정책보좌진 4년, 18대 국회 이정희 국회의원 정책보좌진 2년 7개월의 활동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지난 2월 민주노동당 입법활동에 관한 사회학 박사논문을 마쳤다. 현재 당적은 통합진보당 강제해산 이후 없는 상태이다.

    필자소개
    사회학 박사(전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정책보좌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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