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안전 중대재해 기업과
    정부 책임자 강력 처벌 법안 발의
    노회찬 "재해 책임 묻지 않으면 참사는 언제든 재발”
        2017년 04월 12일 05:5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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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참사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가 받은 형량은 고작 7년, 청해진해운은 선박기름을 유출한 혐의만 적용돼 벌금 1천만 원만 선고받았다. 세월호 불법 증축, 과적 등을 눈감은 해양수산부 공무원들은 정직과 감봉 정도의 내부 징계에 그쳤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는 5463명으로 이 중 사망자만 1143명에 달한다. 그러나 주요 제조사 전 대표들은 징역 7년을 받았고 심지어 존리 전 옥시 대표에겐 무죄가 선고됐다. 옥시가 받은 벌금은 허위 광고표시에 대해서만 고작 1억5천만 원이다. 관련 부처 공무원들은 아예 처벌도 받지 않았다.

    매해 최악의 살인기업으로 선정되는 현대중공업에선 지난해만 13명이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다. 이러한 죽음의 행렬은 계속되고 있지만 이 기업이 처벌 받은 사례를 비롯해 기업 내 노동자 안전을 위한 혁신적인 방안을 내놓는 일은 없었다.

    이처럼 시민·노동자에 대한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과 정부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는 ‘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안(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이 12일 발의됐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습기살균제, 세월호, 구의역 등과 같은 사회적 참사를 일으킨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는 물론 정부 관계자도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게 된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 제정연대, 민주노총,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위험에 대한 비용이 노동자·시민 모두에게 전가되고 있는 현실에서 생명과 안전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기업과 정부 관료는 반드시 처벌돼야 하고 엄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며 “강력한 처벌이 있어야 재해의 예방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재해에 대한 기업과 정부 책임을 처벌할 수 있는 법안이 발의된 것은 처음이다. 매해 시민사회 노동단체를 중심으로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을 통한 기업처벌법 제정 운동이나 중대재해에 관한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관한 발의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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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발의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이 법안을 대표발의한 노회찬 원내대표는 “세월호 참사 3주기, 우리에게 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제대로 처벌하는 법안이 필요하다”며 “세월호, 가습기살균제 참사와 같은 중대재해 재발 방지를 위해서라도 기업의 안전관리 의무를 명확히 규정하고 이를 위반할 때엔 경영자와 기업에게 무거운 책임지게 하는 입법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은 산안법 등 재해로부터 노동자와 시민을 보호할 목적으로 제정됐으나 뿔뿔이 흩어져있던 법안을 하나로 묶은 특별법이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엔 이미 ‘기업살인법’이 일찍이 도입된 바 있다.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공동대표는 미국 존슨앤존슨 사태를 거론했다. 이 회사 제품을 사용하고 난소암 판정을 받고 사망한 피해자 1명에게 법원은 우리 돈으로 620억 원을 물어주라고 판결했다. 배상금 57억 원과 징벌적 손해배상금이 더해진 금액이다. 반면 한국에서 가습기살균제 사태로 피해를 본 400여명의 소송 액수는 100억 원에 그친다.

    강 공동대표는 “한국 소비자들은 이런 피해를 당했을 때 다른 나라와 환경이 너무 대비된다”며 “우리나라에선 가습기살균제와 같은 일이 벌어져도 법을 싹싹 긁어모으고, 수백명의 피해자의 총합으로 처벌해도 고작 7년”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상한제 없는 징벌적 손배를 도입하고 중대재해법을 통해 기업이 처벌받아 재발이 방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함재규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노동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은 무용지물이다. 여전히 노동자들은 기업에 의해 타살 당하고 있다”며 “그러나 죽음의 가해자인 사업주들은 과태료 고작 2천만 원, 시정명령 등으로 책임을 면피하고 있다. 만약 그동안 돈 몇 푼으로 끝나지 않고 인신 구속이 됐다면 이 지경까지 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적은 액수의 벌금은 기업이 언제든 안전 규정을 위반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벌금보다 불량 제품을 팔아 남기는 영업이익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기업에 로비를 받고 안전하지 않은 제품의 판매를 허가한 공무원들을 형사 처벌할 규정도 없으니, 소비자는 언제든 옥시와 같은 제품을 사고, 세월호와 같은 배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재해를 일으킨 기업에 대한 벌금과 처벌 수위를 대폭 높이고, 기업에 부역한 공무원까지로 확대하는 필요한 이유다. ‘중대재해 기업처벌법’도 처벌 수위를 높이고 범위를 확대하는 이러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이 법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에게 2가지 의무를 부과한다.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중이용시설 및 공중교통수단을 기업이 소유하고 운영·관리하는 경우에 이를 이용하는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에 대한 위험방지의무와 사업장에서 취급하거나 생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해 시민·노동자 등 모든 사람이 위해를 입지 않도록 할 위험방지의무다.

    만약 사업주 및 경영자가 이러한 의무를 어겨 사람이 사망한 경우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억원 이하의 벌금을, 상해를 입으면 5년 이하의 유기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기업에 대한 처벌도 수위가 대폭 높아졌다. 원료를 취급하거나 결함이 있는 제조물을 제조해 사람을 사상에 이르게 하면 기업엔 최대 10억 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특히 기업의 경영책임자 등이 명시적·묵시적으로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지시했거나 기업 내부에 위험 방지 의무를 소홀히 하도록 조장, 용인, 방지한 경우 전년도 수입액의 1/10 범위 내에서 벌금을 가중하도록 했다.

    여기에 더해 처벌대상자 범위를 공무원까지 확대했다. 지금까지 벌어진 사회적 참사의 사례를 보면, 안전 의무를 위반하는 기업과 이를 봐주는 공무원으로 결탁으로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관련 공무원이 안전 문제와 관련해 의식적으로 직무를 유기해 사람이 죽거나 상해를 입으면 1년 이상의 지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안순호 416연대 공동대표는 “청해진해운은 수명기한 다한 폐선인 세월호를 수입해서 더 많은 승객을 태우고, 화물량 위해 증축하고, 과적했다. 그리고 관련 공무원들은 무리한 출항을 허가했다”며 “304명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기업과 핵심 경영자, 직원들은 관련자들과 직무관리를 소홀히 한 관계당국 연관 공무원들에 대한 처벌은 극히 미약했다. 심지어 해경이나 해수부 관계자들 중엔 승진 사례도 있다”고 비판했다.

    안 공동대표는 “직·간접적으로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책임 묻지 않으면 참사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며 “공무원과 관계 당국의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했을 때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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