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지리적 유물론,
자본주의는 어떻게 시간·공간 지배하나
[책소개]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창비)
    2017년 04월 09일 11:15 오전

Print Friendly

“손에 잡히지 않고, 담을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지만, 매우 강력한 힘.” 이처럼 모호한 자본이라는 개념을 추상적 분석이 아닌 구체적 현실을 통해 그 누구보다 명쾌하게 풀이해주는 세계적 석학 데이비드 하비. 세계의 작동원리를 독창적 시선으로 날카롭게 분석해온 그의 40여년 지적 이력이 총결산되었다. 『데이비드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The Ways of the World)은 지리학자이자 맑스주의 이론가인 하비가 평생을 통해 발표한 저술 가운데 핵심만 추려내 한권의 단행본으로 엮어낸 논문선집이다.

30대 때부터 최근까지 집필해온 수십편의 글 중 직접 엄선한 이 책의 논문 열한편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지배해왔는지, 왜 우리가 “공장 대신 도시”에서 변혁의 열쇠를 찾아야 하는지, 우리가 맑스를 읽는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미국의 주도권 상실과 중국의 일대일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등 굵직한 질문을 정면으로 응시한다.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주의는 우리의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지배해왔는가

20세기 100년간 미국의 시멘트 소비량은 45억톤, 이에 반해 2011년부터 단 2년간 중국의 시멘트 소비량은 65억톤. 통념으로는 예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변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반복되고 있다. 하비는 전세계 곳곳에서 전개되어온 도시화, 특히 중국에서 엄청난 규모로 진행되는 도시 인프라의 구축과정에 주목한다. 이 지리적·공간적 현상은 사회의 운용방식과 따로 떼어 분석할 수 없으며, 자본축적 과정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다.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논제이자 1970년대 이후 하비의 일관된 연구 목적은 “과잉축적의 문제가 어떻게 무분별한 도시화와 그에 따른 사회적 고통으로 이행하게 되는가”다.

지리학자로서 학계에 처음 발을 내디딜 당시 하비는 기존 지리학 이론작업에 철학·통계학·수학의 관점을 적극적으로 접목했다. 뒤이어 미국 볼티모어의 존스홉킨스대학 교수로 부임하고는 당시 전세계를 휩쓴 68혁명을 목도한다. 혁명의 여파에 휩싸인 도시를 경험하며 하비는 연구의 방향을 180도 뒤집는다. 「지리학에서 혁명적 이론과 반혁명적 이론」은 볼티모어의 경험을 토대로 미국 대도시의 게토 형성이라는 문제를 다루는데, 여기에서 하비는 도시의 토지이용에 관한 기존 틀을 대신하여 맑스주의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같은 혁신적 사고는 1970년대 초반까지 실증주의만을 연구방식으로 삼아온 지리학계를 뒤흔드는 논쟁의 시발점이 된다.

하비는 지체하지 않고 맑스주의를 재구성하는 도전에 뛰어든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리학」에서는 기존 맑스주의에서 이론화되지 못한 ‘공간’ 개념을 풀이하면서 지리학과 맑스주의 사이에 다리를 놓고자 했다. 맑스는 자본축적 과정에서 공간이 무엇을 생산해내는지, 즉 하나의 공간이 한 사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이해했지만 이를 부차적으로 다뤘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마치 바통을 이어받듯 하비는 자본-공간 문제를 좀더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자 했고, 맑스주의의 핵심부에 ‘공간과 공간관계’ 개념을 도입했다. 이 글은 주로 자본축적 과정에서 교통·공간이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시간에 의한 공간의 절멸’ 개념으로 규명하며, 더 나아가 자국 내 무역을 넘어선 해외교역이 자본축적에서 수행하는 역할을 설명한다.

“가장 유효한 전략은 우리가 처한 사회 현실을 합당하게 해석하기 위해 실증주의, 유물론, 그리고 현상학의 특정 측면이 중첩되는 이해의 영역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 중첩을 가장 분명히 탐구하는 것은 맑스주의다.”(40~41면) 「자본주의적 도시과정」은 맑스주의의 공간 관념을 여러 도식과 개념화를 통해 체계적으로 종합한다. 다시 말해 자본이 생산과 소비 과정에서 어떻게 순환하고(1차 순환), 과잉축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도시 인프라 건설 등으로 어떻게 옮겨가며(2차 순환), 노동력 재생산 및 기술개발 측면에서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어떻게 활용되는지(3차 순환)를 명쾌하게 해설한다. 하비의 자본순환론은 이후 맑스주의 체계 구축에 크게 기여하며 특히 자본축적의 지정학을 해석하는 기본 틀로서 자리매김했다.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리학」과 「자본주의적 도시과정」이 기존 맑스주의 개념을 분석하는 데에 초점을 맞췄다면, 「기념비와 신화」는 역사적 사실 해석에 기반을 둔 독특한 글이다. 하비는 프랑스 빠리의 싸끄레꾀르 대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을 1871년 빠리꼬뮌 등장과 붕괴 전후의 사회상황에 대입하면서, 도시화를 알고자 할 때 자본의 흐름 같은 거시적 변동 말고도 “시민권, 소속감, 소외, 결속, 계급을 비롯한 집단적 정치형태”에 주목해야 함을 여러 예시와 함께 역설한다.

하비의 ‘역사지리적 유물론’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1980년대 후반 포스트모더니즘이 미국을 중심으로 유포되고 있을 때 하비는 이를 해석하는 주효한 틀을 제기한다. 맑스주의뿐 아니라 인문학 전반에서 하비의 명성을 높여준 「시공간 압축과 포스트모던 조건」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모더니즘과 단절되는 것으로 이해한 당대의 풍토를 비판하며, 이를 “후기 자본주의 또는 유연적 축적체제의 상부구조로 이해”(614면)하는 관점을 제시한다. 당시 소개한 ‘시공간 압축’ 개념은 모더니티와 포스트모더니티의 속성을 명쾌하게 해명해준다. 단지 교통 및 통신 기술이 발달하면서 시간적 거리가 단축되는 것이 아니라, 자본이 유통되며 순환하는 기간이 줄어들면서 시간과 공간의 성격 자체가 변화하고 이로써 “우리가 세상을 표현하는 방법”마저 바뀌게 되었고, 즉흥성과 일회성이 일상의 주요 덕목으로 등장했다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와 시공간과 자본의 성격이 어떻게 극적으로 변화했으며 그것이 물질적으로는 어떻게 재현되었는지를 살펴야 포스트모더니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관리주의에서 기업주의로」는 하비의 논문 중 가장 많이 인용된 글이다. 그만큼 하비가 말하는 ‘기업주의 도시 거버넌스’ 즉 1980년대 탈산업화 이후 나타난 도시 지배구조의 특징과 이에 따라 지방정부들이 택하는 전략은 현대 정치의 주요 과제다. 포드주의에서 포스트포드주의(유연적 축적체제)로 물적 토대가 전환함에 따라 도시 거버넌스는 규제(관리주의)에서 경영(기업주의)으로 돌아선다. 후기 자본주의의 이와 같은 구조전환이 만들어낸 사회적·정치적 변화는 무엇이며, 급기야 지금의 ‘신자유주의’를 만들어낸 ‘유연적 축적’이 어떻게 탄생했는지가 소개된다.

환경 이전에 자연이 있었다. 하비 또한 자연의 가치를 논하며 인간이 자연에 어떻게 화폐가치를 매겼는지를 이야기한다. 「환경의 본질」은 자연의 가치에 관한 두가지 입장, 즉 자연에 화폐가치를 부여하는 방식과 자연에 가치가 내재한다는 방식 모두를 비판한다. 이른바 ‘도덕공동체’가 바탕을 두는 심층생태학이나 하이데거 사상 등 다양한 생태주의가 가진 한계를 지적하는데, 여기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데까르뜨적 이분법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변증법적으로 사고하는 삶의 방식이다.

‘투쟁적 특수주의’라는 하비의 개념은 특정 계급이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기 위해 싸우면서, 더욱 보편적인 입장이나 거시적·장기적 고려 없이 자기 고유의 목적만을 내세우는 경향을 가리킨다. 「투쟁적 특수주의와 지구적 야망」에서 하비는 옥스퍼드대학 교수 시절에 자동차공장 파업의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경험을 레이먼드 윌리엄스의 소설에 비춰 성찰한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느끼는 갈등은 여전히 생생히 들린다. 파업노동자의 이해를 반영하는 입장에서 벗어나 그 지역의 환경과 산업구조 변화를 고려해 좀더 보편적인 입장을 반영해야 한다는 요지는 지금의 다양한 사회갈등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신제국주의」는 맑스의 ‘시원적 축적’ 개념을 현대 자본주의로 확장하여 적용한 ‘탈취에 의한 축적’ 개념을 통해 서구 선진국뿐 아니라 한국의 신자유주의화 과정 그리고 중국의 경제성장 과정을 풀이해준다.

하비의 ‘자본순환론’이 맑스주의를 비롯한 경제이론 전반에 기여했다고 평가받는 이유 중 하나는 ‘금융이론’ 덕분이다. 「금융위기의 도시적 근원」은 과잉축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자본이 신용체계를 어떻게 도입·개진하고, 허구의 개념인 ‘금융’이 어떻게 실질적으로 재현되는지를 설명하며, 특히 금융이 부동산 자본과 결합하여 어떤 문제를 유발하는가를 고찰한다.

근래의 세계 금융위기가 대부분 부동산시장의 혼란을 거쳐 하나의 ‘도시위기’로 나타나는 것은 부동산이 얼마나 투기적 금융과 깊이 연관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중국이 위기의 충격을 무마하기 위해 막대한 부채를 부담하면서까지 도시 인프라를 우후죽순 쌓아올리는 현상은 자본주의 도시화가 결국 “잉여가치 창출을 위한 과정일 뿐 아니라 창출된 잉여가치를 재흡수하는 장이 된다”(619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비는 도시화에서 발생하는 잉여가 도시 노동자의 몫이 되지 못하는 현실을 지목하며, 이 잉여의 재투자에 대한 여타의 권리가 노동자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의 진화」에서는 자본이 이 같은 문제를 극복하고 끊임없이 진화하는 궤적을 소개하며, 그 궤적 내의 일곱가지 고유한 ‘활동영역’을 선보인다. 기술과 조직형태, 사회적 관계, 제도적 및 행정적 편제, 생산과 노동 과정, 자연과의 관계, 일상생활과 종의 재생산, 세계에 관한 정신적 개념화가 바로 그것이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식의 환경결정론은 틀렸다

하비의 40여년 연구여정은 도시화 이후 발생하는 현상들을 분석하는 것을 뛰어넘어 “현상들의 근원에 자리잡은 무한한 자본축적”의 맥락과 구조를 밝혀내 그 대안을 모색하는 데 바쳐졌다. 이 모색은 작게는 지리학 패러다임을 혁명적으로 바꾸는 한편, 맑스주의에서 간과되어온 “공간적 역동성에 관한 이론적 틀” 즉 하비 자신의 “역사지리적 유물론”을 완성하는 토대가 된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식의 환경결정론이 자연과 문화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오류를 범했다면, 하비의 유물론은 ‘지리’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대적 개념으로서 현대의 자본을 어떻게 재생산하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핀다. 하비의 눈길은 중국을 향한다. 중국의 필사적인 개발이 만들어낼 지리적 변화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미래 자본주의 논쟁의 향방 또한 바뀔 것이다. 우리가 하비의 ‘세계를 보는 눈’을 배워야 할 이유다.

“당신의 책은 지리학, 인류학, 경제학, 문화비평 중 어디에 속하는가.” “그 전부다.” 데이비드 하비의 ‘그 전부’를 이 책에 모았다. 이십대 후반 지리학계의 연구방법론 혁신을 제안하며 하나의 센세이션을 일으킨 청년 학자에서부터 수십년간 맑스이론을 강독해온 유연한 맑스주의자를 거쳐, 중국의 무한팽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역설하는 노년에 이르기까지 하비가 걸어온 연구여정이 드라마틱하게 담겨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