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한의 청소노동자들,
    직접고용으로 봄을 열자
    "대선 때마다 공약, '공공부문 정규직화' 이번엔 지켜져야"
        2017년 04월 05일 05:2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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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됐지만 우리 사회 곳곳은 여전히 혹한기다.

    노동현장에서의 청산해야 할 제1의 적폐는 불평등과 차별의 집약체인 간접고용 비정규 문제다. 특히 중장년 여성 노동자가 대부분인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노동환경, 고용불안, 저임금, 인권침해 문제는 노동적폐의 상징이다.

    청소노동자들이 휴게실이나 밥 먹을 공간조차 없어 화장실 한 쪽 구석에서 점심을 해결하거나, 관리자들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금품을 요구당한 일은 수차례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여기에 대해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마지막 보루라는 파업을 통해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열악한 노동조건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관리자들의 성추행과 모욕적 언행에 대한 증언은 끊임없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청소노동자는 40만 명에 이른다. 업체가 변경되면 이들은 언제든 거리로 내쫓길 수 있다. 매해 고용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을 용역업체는 물론, 공공기관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업체들은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조건 개선에 의지가 없다. 원청인 공공기관은 청소노동자에 대한 인사권이 없다며 고용불안과 저임금 문제를 방치한다. 여기엔 인건비로 예산을 줄이고자 하는 속내가 숨겨져 있다. 용역업체와 공공기관이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나약한 신분을 악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공공운수노조,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소노동자에게도 봄을 열어야 한다”며 직접고용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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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소노동자 직접고용 촉구 기자회견 및 집담회 모습(사진=곽노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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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들은 “반복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에도 청소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 규모는 확대되고 있다”며 “필요한 것은 공공부문에서부터 상시지속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을 명확히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 2011년 홍익대 등 청소노동자 문제가 이슈화되자 정부는 공공부문 청소·경비 등 용역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위해 ‘용역근로자 보호지침’을 발표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있으나 마나한 지침이다.

    정부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시중노임단가를 적용받는 청소노동자의 비율은 45.5%로 절반도 미치지 못한다. 적용율이 이처럼 낮은 원인은 정부에 있다. 기획재정부는 공공기관 및 정부부처의 청소노동자 시중노임단가 준수를 위한 예산을 삭감했다. 정부가 정한 지침을 지자체가 어기도록 정부가 강제하는 셈이다.

    정부는 해당 지침을 잘 준수하는지를 경영평가에 반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총점 100점 중 보호지침 여부에 배정된 점수는 고작 0.2점(~0.4점)이다. 시중노임단가 예산 편성 등 여건도 만들어주지 않는데다, 경영평가 점수도 미미하니 지자체로선 저임금 문제를 다소나마 해결할 수 있는 시중노임단가를 지킬 여력도, 이유도 없게 되는 것이다.

    국립국악원 청소노동자들은 이날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부족한 예산을 감안해 연장수당을 줄이고자 변형근로에까지 동의하며 3년을 일했지만 기재부는 올해 최저임금도 미치지 못하는 예산을 편성했다.

    이미한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공공서비스지부 국립국악원분회장은 “인내의 3년이 지났음에도 예산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오늘부터 국립국악원 용역 노동자들은 파업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이 분회장은 “기재부는 2017년 비선실세 최순실 관련 예산으로 65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편성하면서도 용역노동자들의 임금예산은 동결했다”며 “최저임금도 줄 수 없는 돈을 예산이라고 편성했나. 법을 어기라고 강요하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인가”라고 비판했다.

    그는 “용역 노동자가 처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생계를 위협하는 저임금”이라며 “공공부문 정규직 노동자와 임금 격차는 커지고 임금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간접고용 제도 자체에 대해서도 “사용자 책임 증발시켜 일터를 지옥으로 만드는 비인간적인 제도”라고 규정했다. 이 분회장은 “여성 청소노동자가 남성이 소변을 보는 모습을 마주볼 수밖에 없도록 설계된 프레스센터 화장실은 거짓말 같은 현실”이라며 “성추행, 폭언, 금품 요구, 카메라를 이용한 노동 감시로 인권이 썩어가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세계 1등 공항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인천공항의 청소노동자들의 사정은 더 심각하다.

    오순옥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 환경지회장은 “12년 연속 1위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위해 날마다 공항을 쓸고 닦았던 노동자들은 용역업체 변경으로 인해 거리로 내쫓길 위험에 처 했다”고 말했다.

    용역업체가 변경되면서 이들은 고용승계가 아닌, 신규채용 형태로 재고용되는데, 용역업체들이 흔히 사용하는 방식으로 재면접을 진행하고 조합원을 중심으로 불합격, 해고 통보를 했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업체변경 하루 전 문자로 이 사실을 전달받았다.

    오 지회장은 “현장에서 조합원들을 괴롭혀 노조의 규탄의 대상이었던 관리자들은 용역업체가 변경됐음에도 그대로 일하고 있다. 오히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해고 될 위기”며 “노조를 무력화하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원청인 인천공항공사는 인사권이 없다며 청소노동자들의 해고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 그러나 노조는 이번 해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은 공사의 정원 감축에 있다고 보고 있다.

    오 지회장은 “이 사건의 핵심은 용역 근로자 보호지침을 준수해야 할 인천공항공사가 먼저 정원을 줄이면서 해고를 유도했다는 것”이라며 “인천공항 공사와 용역업체가 수년간 인천공항을 지켜온 노동자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변화의 조짐은 있다. 올해 초 국회가 203명의 청소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했다. 서울, 광주 등 지자체에서도 청소 및 시설관리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했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비정규 문제 해결이 예산이 아닌 사용자와 정치권의 의지의 문제라는 점을 보여줬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청소노동자들이 쉴 공간조차 없이 일하는 사회가 계속된다면 정권교체가 두 번이든, 세 번이든 이뤄진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라며 “청소노동자들을 8대 공공직역으로 승격하고 정당한 임금 지불과 휴식공간을 만드는 환경미화원법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덕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 또한 “공공부문부터 정규직화 하겠다는 공약은 대선 때마다 나왔지만 한 번도 지켜진 적이 없다”며 “올해는 꼭 공공기관부터 바로잡아서 정규직화하고 환경노동자들이 현장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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