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싹은
상식의 예상 뚫고 나온다
[왼쪽에서 본 F1] 거대정당과 강팀
    2017년 04월 05일 09:2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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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2월 28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한 심상정 정의당 대표에게 손석희 앵커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선 가능성과는 현실적으로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그럼에도 출마하는 이유는 뭐라고 여쭐까요?”

문제의 질문은 이후 심상정 대표의 반격과 손석희 앵커의 질문 취소로 이어진 과정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에서 위 질문의 옳고 그름을 논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적지 않은 사람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은 해 봅니다. 소수 정당에서 현재 지지율도 높지 않은 후보가 출마해도 당선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상식적인 예상은 얼핏 ‘당연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물론 꼭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대세는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나 이길 것 같은 사람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꼭 잘못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아무런 사전 정보가 없더라도 텅텅 빈 식당보다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식당을 선호하는 것에 대해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필자는 반골 기질이 있어서 종종 반대의 선택을 하기도 하지만, 다수의 사람이 저와 같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3월 24일 호주에서 막을 올리는 2017시즌 F1 월드 챔피언십에도 사람들의 비슷한 반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계에 유력한 거대 정당이 있는 것처럼, F1에도 상위권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강팀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이 새 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거둘 것이라는 ‘상식적인 예상’에 이견이 많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최근 3년 동안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며 2위와의 격차를 크게 벌렸던 메르세데스가 2017시즌에도 다시 한번 손쉽게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할 것이라 믿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챔피언뿐 아니라 상위권 순위를 ‘메르세데스-레드불-페라리-윌리암스’와 같은 식으로 미리, 몇 달 전부터 못 박아 이야기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시작도 하기 전에 결과를 미리 재단해버리는 경우도 자주 목격했습니다.

2017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강세를 보였던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2017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강세를 보였던 메르세데스와 페라리

그런데, 이런 ‘지극히 당연해 보이는’ 예상은 적절한 것일까요?

최근 F1에선 ‘몇 년 동안 한 팀이 압도적인 전력을 과시’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지난 3년간 최강자는 메르세데스였고, 그 이전 4년 동안은 레드불이 가장 강했습니다. 2000년대에는 페라리가 5년, 르노가 2년 동안 계속해서 양대 챔피언 타이틀을 휩쓸었습니다. 1990년대의 르노나 1980년대 중후반의 맥라렌도 몇 년 동안 F1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기도 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메르세데스가 보여줬던 막강한 힘은 2017시즌에도 그들이 여전히 강력하리라고 예상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5km의 써킷 한 바퀴를 달리면서 0.1초의 시간을 단축하기 힘든 F1에서, 메르세데스는 2위 팀과 0.5초에서 1초 이상의 큰 격차를 계속 유지해 왔습니다.

30~40%의 승률로도 챔피언이 되는 F1에서 메르세데스는 3년 연속 90%의 승률을 자랑했습니다. 이런 기록들을 봐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전히 메르세데스가 강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의회 선거에서 탄탄하기 그지없는 보수층의 지지 기반과 선거 결과를 예상하는 것과 비슷해 보입니다.

많은 사람의 ‘상식적이고 당연하게 여겨지듯’ 콘크리트 지지층이 건재한 이상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란 예상처럼, 여전히 가장 강력한 엔진을 보유하고 가장 튼튼한 엔지니어 진용을 갖춘 메르세데스가 최강자로 군림하리라는 예상 역시 당연해 보입니다. 현역 최고의 드라이버라고 불리는 루이스 해밀턴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강팀이 계속 강력함을 유지한 역사가 긴 만큼, 몇 년 동안 최강의 전력을 유지하던 팀이 갑자기 몰락한 역사도 적지 않습니다. 꼭 몰락이 아니더라도 최강 팀이 3~4년 정도의 시간 동안 서서히 힘이 빠진 경우는 더욱 많습니다. 어떻게 보면 강팀이 계속 강할 것이라는 보수적인 예상이 ‘순진한 생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바꿔서 말하면, 결코 변할 것 같지 않던 경쟁 구도가 한순간 확 바뀌는 것 때문에 F1과 같은 스포츠가 매력을 가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다른 스포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예상은 예상일 뿐’,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 가지 상황을 뜯어보고 살펴보면, 어디선가 예상하지 못했던 변화의 싹이 자라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상식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 만능은 아니겠지만, 상식적인 예상에 목을 매는 것이 꼭 바람직하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상식이 상상력을 제한하고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2017시즌 극심한 고전이 ‘예상되는’ 맥라렌

2017시즌 극심한 고전이 ‘예상되는’ 맥라렌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F1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했던 맥라렌이, 2000년대 중후반에도 F1 최강자의 자리를 놓고 매년 경쟁을 이어가던 맥라렌이, 최근 몇 년간 중위권에서도 경쟁하기 힘들 정도로 몰락하리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아쉽게도 재기를 기대했던 2017시즌을 앞두고, 맥라렌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습니다. 저를 포함해 맥라렌의 선전을 기대하는 F1 관계자와 팬 모두에게 더없이 힘든 시간입니다.

프리-시즌 테스트에서 맥라렌의 혼다 파워 유닛(엔진)이 여러 차례 말썽을 일으켰기 때문에, 적어도 시즌 개막 직후에는 하루 이틀에 고쳐지기 힘든 큰 문제를 안고 있는 맥라렌의 선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엔진의 문제는 고치기 힘들다는 것을 포함해 지금 맥라렌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모든 ‘상식적인 예상’이 빗나가길 바라는 면도 없지 않습니다.

안타깝게도 약팀, 혹은 약팀처럼 전력이 와해된 팀이 좋은 성적을 바라는 것은 단순히 상식을 벗어나는 것뿐 아니라 욕심일 수도 있습니다. 헛된 꿈을 꾸는 것이 전혀 도움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절대 안 된다.’라고 단정하기 전에, 무언가 이 상황이 바뀔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그 방법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포기하면 그때가 바로 시합 종료가 될 테니까요. F1 팀에 속해 챔피언십의 무한 경쟁에 나선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포기할 생각이라면 애초에 경쟁에 나서지 않았을 테니까요.

예상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그 예상을 단정적으로 믿어버리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니까요. 1년 전 오늘 저는 ‘1년 후에 대통령이 탄핵당하는 상황’은 단 0.01%의 가능성도 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이번 주말 펼쳐질 F1 그랑프리의 결과도, 올 시즌 F1 챔피언십의 최종 결과도, 저와 많은 F1 전문가의 예상을 크게 벗어날지 모릅니다. 예상은 예상일 뿐이어서 다행입니다.

(F1 2017시즌 개막전 호주 그랑프리에서는 페라리의 세바스찬 베텔이 우승을 차지했다. 메르세데스의 4년 연속 시즌 개막전 우승이 좌절되고 페라리가 7년 만에 개막전 우승을 차지한 것이다 – 편집자)

필자소개
윤재수
2010년부터 지금까지 MBC SPORTS, SBS SPORTS, JTBC3 FOXSPORTS에서 F1 해설위원으로 활동. 조금은 왼쪽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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