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제 위기의 해법,
    세상을 양적이 아니라 질적으로 바꿔야
    [사회주의 토론] 엄중한 경제정세와 변혁의 불가피성
        2017년 04월 04일 01: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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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문제를 바라보는 두 개의 관점

    이 세상에 완전히 객관적인 인식은 없다. 우리는 주관적 인식에서 출발하여 끊임없이 객관적 인식인 진실과 진리를 찾아 나간다. 사람들은 자기가 처한 사회·경제적 처지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세상을 서로 다르게 바라보고 생각한다. 전태일은 “경험에 입각한 양심의 소리가 진리다”라고 말했다.(1) 현재의 세상은 평등한가(equal)? 공평한가(equitable)? 정의로운가(righteous)? 이에 대해 상층부 엘리트와 밑바닥 서민대중의 생각은 많이 다르다.(2) 처지와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본가는 자본가의 입장에서, 그리고 대개 보수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사람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도 자기가 처한 입장에서 생각한다. 그들에게 사람은 곧 경제인(homo economicus)이다. 그러나 인간이 역사상 언제나 경제인이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근대에 들어와서야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생겨났다. 칼뱅교 교인들이 한 예다. 또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경제인인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다보니 노동자와 농민들도 어쩔 수 없이 경제인처럼 살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은 본성적으로 이기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경제인처럼 보이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다른 한편으로 그런 경제인이 되기를 거부하는 지향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살자”는 이름을 가진 정당이 있는데, 그 정당 이름처럼 더불어 사는 사람은 경제인이 아니다. 그런데 노동자들은 그렇게 더불어 사는 삶을 원한다.

    인간의 본성이 경제인이라고 바라보는 관점에서 연구된 경제학이 부르주아(도시의 부자들) 경제학이다. 그 원조는 아담 스미스다. 오늘날 우리나라 학교에서는 경제학을 가르치면서 거의 그런 부르주아 경제학만 가르친다. 반면에 착취당하는 노동자 입장에서 경제를 바라보면서 연구한 경제학은 노동자 경제학이다. 그 원조는 그 유명한 털보 칼 마르크스다.

    이 자리에 기업 경영진도 있고 사내하청회사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는데, 오늘 경제에 대해 강의하면서 어떤 관점에서 얘기하면 좋을까? 공평하게(?) 두 가지 경제학을 다 원용해서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경제현실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구조적·장기적인 것은 마르크스 경제학을 주로 원용하고, 현상적·단기적인 것은 부르주아 경제학을 주로 원용하겠다.

    세계경제는 장기간에 걸친 대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늘날의 한국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오늘날의 세계경제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 속의 갈라파고스 섬(3)이 아니다. 세계 6~8위에 드는 교역국이다.(4) 또 무역의존도가 100% 내외로 세계적으로 가장 높은 축에 속한다.(5) 자본·금융시장 개방 정도도 매우 높다.

    오늘날의 세계경제를 알기 위해 필요한 핵심어(key word)는 경제대공황 또는 대불황이다. 2008년 미국 5대 투자은행인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한 사태로 월가가 붕괴한 이래(6) 햇수로 10년째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유럽 여러 나라들은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그리스가 가장 심하게 재정위기를 겪었지만, PIGS(7) 같은 다른 여러 나라들도 그 비슷한 위기를 겪었다.

    Lehman Brothers

    엘리트들은 이 경제위기를 처음에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들에게만 국한된 현상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래서 중국이나 인도 같은 신흥국 시장에서 경제가 활발하게 성장하고 있으므로 그 덕분에 선진국 경제들도 곧 회복될 거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이른바 탈(脫)동조(decoupling)론이었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도 미국을 위시한 선진국 경제들은 회복되지 못했다. 일본은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초장기적으로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여기에서 탈출해 보겠다고 아베노믹스(세 개의 화살 운운)가 나왔지만 그것도 묘약이 되지 못했다.(8)

    이렇게 되면서 거꾸로 선진자본주의 경제의 불황 때문에 신흥시장 나라들의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7% 밑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다시 선진국 경제들에 악영향을 미쳤다. 특히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과 한국 및 중국에 중간재를 공급하는 일본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명박근혜 정권이 747이니 474니 했지만 모두 목표 미달에 그친 데는 이런 외적 요인도 일정하게 작용했다.(9)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산업국들이 장기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면서 이들 나라에 석유를 비롯한 1차 상품을 공급하던 경제들이 급전직하했다. 2016년에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부자 나라가 국채를 발행한다고 나섰다.(10) 러시아도 디폴트 위기를 겪었다. 베네수엘라와 나이지리아 같은 산유국들도 국가부도 직전으로 내몰렸다.

    그러면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이상한 정책과 현상들이 쏟아져 나왔다. 경제가 제로(0%) 성장인 것은 불황이니까 그렇다 하더라도, 헬리콥터로 돈을 마구 뿌리는데도 소비자 물가가 마이너스로 굴러 떨어지는가 하면(11), 이것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마이너스로 낮추는 기현상까지 등장했다. 돈이 돈을 버는 것이 자본주의 원리인데, 돈이 돈을 벌기는커녕 돈을 저절로 까먹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자본주의 체제는 문을 닫아야 한다. 이자를 주지 않는데 어떤 경제인이 돈을 은행에 맡기겠는가? 은행에 돈이 들어오지 않으면 은행은 문을 닫아야 한다. 은행 없는 자본주의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래서 최근 미국을 비롯해서 금리를 올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경제성장이 멈추더라도 자본주의 원리는 일단 살리고 보자는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금리를 올리게 되면 전 세계적으로 불황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세계경제포럼의 슈밥 회장의 발언을 시작으로 경제이론의 대가라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4차 산업혁명이 경제위기에 대한 대안이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설사 대안이라고 해도 그 산업혁명이 효과를 내려면 상당한 시간이 지나야 하는데 당장이 급하다. 더구나 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면 할수록 거대 초국적기업에게는 신규투자 및 이윤증식 기회가 생기겠지만, 각종 인간노동이 로봇이나 인공지능에 의해 대폭 기계로 대체됨으로써 육체노동과 정신노동 가릴 것 없이 노동자들의 총고용이 줄어들고 총수요도 줄어들 것이다. 이에 따라 경제가 생산한 부가가치 총량(총노동시간)(12)은 오히려 줄어들 가능성이 많다.

    왜 이런 암울한 현실이 생겨나고 있는가? 경제전문가나 정치인들이 좋은 정책을 내놓아서 경제를 회복시킬 수 없는가? 답은 “없다”이다. 지금의 이 장기적 경제위기는 20세기의 자본주의 쇠퇴기 백년을 거친 다음에 찾아온 말기적인 위기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지니고 있는 체제 고유의 내재적인 모순이 곪고 곪아서 터진 것이기 때문이다. 기계화·자동화로 인해 평균 및 한계 이윤율은 낮아질 대로 낮아져 있어서 금리는 제로이고 돈은 넘치는데도 투자할 곳이 없고(13), 신자유주의로 분배가 양극화될 대로 양극화되어 노동자 대중의 소득과 소비수요가 바닥에 이르러 있어서 생산을 확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종전처럼 신용 제공으로 소비를 진작시킬 수도 없다. 세계인구의 대다수인 노동자들이 빚을 너무 많이 지고 있어서 돈을 무이자로 빌려줘도 빌려가서 소비할 여건이 안 되기 때문이다.

    상상하기도 싫은 해결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전쟁을 통한 생산수단과 생활수단의 대량파괴다. 그러나 이것을 선택해도 인류를 멸망시킬지언정 자본주의를 살릴 수는 없을 것이다. 인류 즉 노동자 없이 자본이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위험성을 쉽게 배제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순수한 인격체가 아니라 자본이 인격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위험한 곳이 바로 우리가 사는 동북아다. 그리고 한반도다. 지금은 미 제국주의의 세계 패권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는 국면이다. 잠재적인 다음 패권자는 중국이다. 그런데 미 제국주의는 중국과 직접 대결하는 데는 부담이 크지만 한반도에서 국지전을 벌일 수는 있다.(14)

    한국은 결코 예외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박근혜가 탄핵·구속돼 정치적으로는 봄이 오고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 문제를 단지 자본가계급이 노동자·민중의 투쟁을 잠재우기 위해 겁주려는 과장일 뿐이라고 봐서는 안 된다. 냉엄한 현실이다.

    경제전문가들이나 정치지도자들은 그 동안 우리나라 경제는 세계적인 불황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성장세를 지속할 것처럼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한국은 오히려 미국이 금리를 인상할 경우 가장 타격이 우려되는 나라로 지목되고 있다. 미 금리인상은 신흥국 경기를 침체시키고, 이들 나라에 대한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한국경제에 타격을 가할 것이다.(15)

    위기의 징후는 이미 오래됐다. 조선·해운산업이 오래 전에 사실상 파산했다. 그 동안의 경제성장은 이명박의 4대강과 최경환의 부동산 경기부양 등 인위적인 부동산 투기 붐 조성에 힘입은 바가 컸는데, 더 이상 그런 독약 처방을 사용할 수도 없다. 부동산 가격에 거품이 너무 많이 끼어 있어서 가격이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전세 가격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그 동안의 잘못된 정책으로 가계부채가 급히 증가해 2016년 말 1,566조 원에 이르렀다는데(16), 이런 상태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면 대대적인 가계파산이 일어날 위험이 크다. 이렇게 되면 IMF 사태에 버금가는 시스템 붕괴 상황이 올 수도 있다.(17)

    한진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도 한국경제의 앞날은 어둡다. 성장잠재력이 추세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에서는 한 세대 이전부터 출산인구와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해 왔다. 그러데 우리나라도 출산율은 10년 넘게 세계 최저이고 신생아 숫자도 작년 40만 명 아래로 떨어졌다. 2017년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한다. 한편 평균연령은 계속 높아져서 노령인구는 절대숫자에서나 비율에서나 계속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 생산인구 감소로 생산이 늘어나지 않고 인구구성의 노령화·고령화로 소비도 늘어나지 않아서 경제성장이 멈추면서, 백약이 무효인 일본처럼 될 것이다.(18)

    이런 형편에 대통령이 되어 보겠다는 자들은 하나같이 제4차 산업혁명을 경제위기의 대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변혁적인 대책 없이 제4차 산업혁명을 추진한다면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몇몇 초국적 기업은 잘 살아남겠지만(19) 국내경제(20)는 고용감소·소비감소로 더 빨리 더 심하게 악화일로를 걸을 것이다.

    촛불

    해법은 세상을 양적이 아니라 질적으로 바꾸는 것,
    세상 사는 목적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촛불혁명으로 우리 민중은 자본독재 정권을 물러나게 했다. 역사적인 쾌거다. 그러면 이제 많은 엘리트들이 얘기하는 것처럼 정권교체만 잘 하면 만사가 잘 풀려나갈까? 아니다. 탄핵도 정권교체도 세상을 바꾸는 역사적 과정의 끝이 아니고 시작일 뿐이다. 악폐와 적폐를 철저히 청산해야 하고, 나아가 박정희 정권이 만들어낸 천민적 자본주의 체제인 헬조선을 해체하고 변혁해야 한다. 이는 많은 진보적인 인사들이 거듭 역설하고 있는 바다.

    세상을 바꾼다니 천지개벽을 하자는 것인가? “대개혁”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혁명을 했으면 좋겠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천천히 가야지… 그러나 “개혁으로 천천히 가든 혁명으로 빨리 가든 어쨌건 바꿀 것은 확실하게 바꿔야 한다.” 그게 개량이 아닌 변혁이고, 촛불의 민심이다. 촛불민중은 변혁을 원하고 있다.

    첫째는 재벌이다. 4대 재벌, 30대 재벌이 밀실에서 담합하여 나라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곳에 무슨 미래가 있겠는가? 또 정치의 최대과제로 다들 양극화 해소니 평등 실현이니 하는데, 재벌이 독식하는 경제 패러다임 아래서는 모두 다 어림없는 일이다. 그들은 지대추구자 집단이다. 그들의 수입은 생산활동과 관계가 없다. 생산활동에서 만들어진 가치를 노동은 물론 노력도 없이 차지한다. 최순실 같은 임대업자가 그 전형적인 예다.(21)

    둘째는 각종 불의의 폭력를 휘둘러 온 폭압적 국가기구다. 이것들을 청산해야 한다. 정치검찰은 해체되고 검사장도 교육감처럼 국민이 직선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앙정보부의 후신인 국가정보원(국정원)을 해체해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은 국가 안의 국가로 무소불위의 권력기관인 중앙정보부가 ‘음지’에서 통치한 체제다. 이들은 그와 동시에 민중 탄압과 특혜 제공으로 재벌 같은 지대추구자들을 도와주면서 그것에 빨대를 꽂고 기생해 온 기생충들이다.

    경제를 걱정하면서 자본과 국가 쪽만 주목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 쪽도 주목해야 한다. 아니, 그쪽을 더 중시해야 한다. 세계적으로나 국내적으로나 노동자가 가난해서 수요가 없고, 수요가 없어서 불황에서 회복하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이 구조적 과잉생산/과소소비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또 안심하고 결혼하고 자녀 낳아 키우고 할 수 없어서 인구가 줄고 그에 따라 성장잠재력이 저하하고 있지 않은가? 자본주의가 자연사적으로 쇠퇴·사멸하지 않기 위해서도 이런 과잉 착취를 중단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노동기본권을 확실하게 보장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통해 자신의 권익을 자유롭게 신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 현행 노동법은 단결권 제한, 교섭권 제한, 쟁의권 제한 등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하는 악법이므로 전면 개정돼야 한다. 부당노동행위는 엄중하게 처벌돼야 하며, 그것을 담당하는 근로감독관은 별정직으로 채용해야 한다. 노동문제는 일반법정이 아니라 특별법정에서 일반 민사관계가 아닌 노사관계로 특별한 기준에 의해 다뤄야 하며, 손배·가압류 같은 비인간적인 제도는 폐기돼야 한다. 노동시간은 대폭 단축되고(예컨대 일주일에 나흘 또는 하루 6시간) 청년들에게 양질의 일자리가 많이 제공돼야 한다. 실업, 질병과 노후 등 비노동 기간에도 기본(기초가 아니라!)생활이 보장이 돼야 한다. 교육, 의료와 주택은 사회적·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같은 나쁜 관행은 완전히 사라져야 한다. 노동자에게 경영 참여권이 보장돼야 한다. 이윤분배권도 보장돼야 한다. 등등…

    이렇게 경제체제를 대폭 뜯어고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하다. 그래야 경제도 살고 사람도 살고 나라도 산다. 그러면 위에서 말한 것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원리적으로 침식하는 변혁 없이 경제민주화로 분배를 개선하는 정도로써 실현할 수 있을까? 이윤이 획득되고 증식되는 한에서만 생산과 투자가 이루어지는 자본주의 경제의 원리를 부분적이든 대대적이든 상당한 정도 희생시키지 않고는 결코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의 원리에 따를 경우, 위에서 말한 것 같은 개선이 이루어지면 이윤 몫이 줄어들면서 착취도와 이윤율도 대폭 낮아질 것이며,(22) 그에 따라 투자와 생산도 축소될 것이다. 그러면 분배율은 개선돼도 노동자에게 돌아오는 분배량은 줄어들 것이다. 자, 어떻게 할 것인가? 성장을 선택할 것인가 분배를 선택할 것인가? 노동자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이다. 성장을 선택하면 분배율이 악화되고 분배 개선을 선택하면 성장률이 떨어져서 돌아오는 빵의 크기가 줄어든다. 자본가 입장에서도 진퇴양난이기는 마찬가지다. 성장을 위해 높은 이윤율을 추구하면 분배가 개악돼 과잉생산/과소소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할 될 것이다. 반면에 대대적인 분배개선을 받아들이면 이윤획득과 증식을 기대하는 만큼 이룰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현재처럼 낮은 이윤율과 낮은 노동소득이라는 조건 하에서는 이윤이 목적이 되는 자본주의적 경제운영 방식으로는 경제의 성장도 분배의 개선도 실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경제에 대해 근본적으로 다른 발상법으로 접근해야 한다. 경제활동의 목적이 자본주의에서처럼 이윤(잉여가치)이나 더 많은 화폐소득(교환가치) 획득이 아니라 사람에게 꼭 필요한 사용가치를 생산하고 분배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자연환경이나 인간노동 자체가 더할 수 없이 귀중한 사용가치이므로 이를 잘 보존하고 아껴서 사용해야 한다. 더 이상 노동력과 자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23) 이런 새 원리 아래서는 경제의 성장을 무제한적으로 추구할 수 없다. 필요한 만큼만 양적으로 경제를 성장시켜야 한다. 반면에 동일한 재화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과 자연을 최대한 절약하는 것이 경제의 새 원리가 되어야 한다.

    경제에 대해 이렇게 질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기 위해서 우리 노동자들도 자기 삶의 모습을 깊이 성찰하고 가치의식을 근본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사람이 ‘사회인’이어야지 ‘경제인’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적으로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아야 하고, 혼자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잘사는 삶을 추구해야 한다. 혼밥·혼술·혼행· 비혼·고독사 같은 비인간적 상황은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

    이처럼 세상을 바꾸는 문제는 단지 자본주의를 체제내적으로 크게 개선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촛불혁명을 기존의 가치체제 안에서 개선되는 ‘국민혁명’에 머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현 정세의 특수성을 충분히 평가하지 못한 것이다.(24) 앞에서 보았듯이 지금 우리 민중이 세상을 바꾸자고 얘기할 때 그것은 “대개혁”처럼 자본주의 가치체계 안에서 이러저런 지점을 양적으로 크게 바꾸는 것으로는 실현될 수 없다. 비록 “생각처럼 쉽지 않고 매우 어렵기는 하지만” 경제의 목적 자체를 자본주의와 질적으로 다른 것으로 바꾸는 것, 즉 사회주의적 원리를 도입·확대·전면화하는 것, “변혁”하는 것으로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우리가 현 시기에 변혁/혁명 이념으로서 사회주의에 대해 매우 큰 관심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김승호 대표가 3월말 강의한 내용을 수정 보완하고 각주를 달아서 보낸 글이다. <편집자>)

    <참조>

    1. 마르크스는 “사람들의 의식이 그들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사회적 존재가 그들의 의식을 규정한다.”고 갈파했다. 또 칼 만하임은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에서 “인간의 사유는 그 존재에 의해 구속된다.”고 주장했다.
    2. 기회주의적 변신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최고위 지식인 자크 아탈리는 최근(3월17일) <중앙일보>에 기고한 「아탈리 칼럼」에서 “엘리트를 겨냥한 조롱이 유행처럼 되어 버린 요즘은 엘리트라는 말 자체가 모욕이 되어 버렸다”면서 “응당 지니고 있어야 할 권위조차 잃고” 마는 프랑스의 오늘날의 사회풍토를 비판하고 자신의 처지를 자괴했다. 시와 소설을 비롯하여 수십 권의 책을 저술한 경제학자인 그는 사회당 미태랑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역임했는데, 우파인 사르코지 대통령 하에서 성장촉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그에게는 우파냐 좌파냐 하는 정체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지배계급 엘리트의 일원이라는 정체성이다.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3. 태평양 남미 쪽 적도 주위의 외딴 군도로 에콰도르 본토에서 1천여 km 떨어져 있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이 1835년 동식물의 생태를 조사한 후 생물 종(種)의 진화에 대한 영감을 갖게 한 곳으로 유명하다. <찰스 다윈 연구소>가 있다.
    4. 수출액이 2015년 6위에서 2016년 8위로 떨어졌다.
    5.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나라는 무역의존도가 300%를 넘지만, 도시국가라서 무역중개 비중이 절대적인 특수성을 갖고 있어서 다른 국가와 단순 비교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6. 경제활동의 이런 급격한 붕괴를 경제학적으로 ‘경제공황(panic)’이라 한다. 일반적 용어로는 공황과 그에 잇따른 불황을 ‘경제위기(crisis)’라고 한다. 20세기 이후 부르주아 경제학은 자본주의 체제의 변호론으로 전락해서 공황이라는 말 자체를 잘 쓰지 않는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황금기에 자신만만하게 “이제 공황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7.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영어 머리글자를 연결해서 한 단어로 만든 말. 여기에 아일랜드와 영국을 합쳐서 PIIGGS라고 부르기도 한다.
    8. 무제한적으로 돈을 푸는 양적 완화, 대규모 국채발행을 통한 적극적인 재정적자 지출, 공격적인 성장전략 등 세 가지 정책을 한 세트로 추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정책 추진으로 경제성장을 회복시키지는 못했으나 시스템 붕괴는 막았다고 평가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런 인플레 정책으로 인위적으로 엔저를 조성, 한국산 상품에 대한 일본산 상품의 가격경쟁력을 제고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는 일종의 근린궁핍화 정책이었다.
    9. 747은 이명박의 대선 공약으로 7% 경제성장, 1인당 4만 달러 소득, 7대 경제강국을 말한다. 474는 박근혜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목표로 1인당 4만 달러 소득, 고용율 70%, 잠재성장률 4%였다.
    10. 사우디는 2016년 10월 175억 달러 규모의 달러 표시 국채를 발행해 글로벌 시장에 판매했다.
    11. 이렇게 성장과 물가가 동시에 마이너스로 악순환을 그리는 것이 대불황 때나 볼 수 있는 그 무서운 디플레이션이다. 일본은 20년 넘는 장기불황 과정에 이것을 겪었으며, 지금도 그 위험에 노출돼 있다.
    12. 노동가치론에 의하면 연간 총가치생산물은 연간 지출된 총노동시간이다. 이것은 다시 <노동자 총수 ✕ 1인당 연간 총노동시간>이다. 이것은 큰 틀에서 부르주아 경제학의 부가가치 총액 즉 총 생산국민소득에 대응한다. 그러나 꼭 일치하지는 않는다. 부르주아경제학의 총 생산국민소득에는 물적인 생산에 투하된 노동이 아닌 비물질적인 서비스 노동이 계산에 포함된다.)
    13. 30대 재벌들이 보유한 7백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사내유보가 이것을 보여 준다.
    14. 미국의 랜드(RAND)연구소는 작년 8월 미국이 가상적국 중국과 전쟁을 벌일 경우 누가 이길 것인가, 또 두 나라는 각각 어떤 피해를 입을 것인가에 대한 보고서를 내놓았는데,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자신들의 계획대로 진행해 결정적 승리로 이끌 것으로 확신할 수 없다”고 전망했다. 한편, 북한 정권이 붕괴할 경우 중·미 간에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상태에서 어느 일방이 군사적 개입을 하게 되면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15. 중국 등 신흥국에 대한 수출의존도가 57.5%다.
    16. 한국은행 발표치. 이는 GDP의 95.6%에 달한다. <디지털타임스> 3월 31일자 참조.
    17. 요즘 한국경제에 퍼팩트 스톰이 다가오고 있다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미국 보호무역기조 강화, 중국의 무차별 사드 보복, 민간소비 위축 등에 이어 최근 미국의 금리인상까지 가세하면서 우리 경제가 ‘퍼팩트 스톰’에 휘말린 모양세다. 특히 미극 금리인상은 현재 13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를 증폭시켜 내수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경제를 위협하는 악재임이 분명하다.”(<EBN> 3월18일자)
    18.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2017년 1월) ‘한국이 직면한 도전 – 일본으로부터의 교훈’이라는 보고서를 냈는데, 저출산과 고령화에 의한 경제활동인구 감소, 성장잠재력의 하락, 생산성 향상의 부진 등 최근 한국경제의 상황이 20년 전 일본과 비슷하다는 게 골자였다.
    19. 한국의 거대 재벌은 초국적자본이다. 『재벌, 한국의 지배하는 초국적 자본』, 박형준(2013), 참조
    20. 오래 전부터 초국적자본의 시대가 되면서 ‘국민경제’라는 말이 ‘국내경제’라는 말로 대체되었다. 연간 총생산의 계산도 국민(national)총생산이 아니라 국내(domestic)총생산으로 계산해 발표한다.
    21. 최순실은 재판부에게 직업을 임대업자라고 답했다. 그리고 독일의 단골 미용실에서는 한국의 24위 재벌 회장이라고 소개됐다. 이런 데서 보듯이 재벌회장과 부동산 임대업자는 지대추구자인 점에서 질적으로 동일하다.
    22. 지출된 총노동시간인 총가치량은 이윤몫과 임금몫으로 크게 나눠진다. 이윤몫은 다시 기업가 이윤, 지대, 이자로 분할된다. 이윤몫 ÷ 임금몫=착취도. 이윤율 = 이윤몫 ÷ 투자액(임금몫+불변자본 즉 물적자본 가치). 따라서 임금몫이 커져서 착취도가 낮아지면 이윤율은 낮아진다. 이윤율이 심하게 낮아지는 것은 자본에게는 독이다. 그러므로 분배의 획기적 개선은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는 불가능하다.
    23. 인간노동과 자연환경이 심하게 파괴되어 지속불가능하게 되고 있다. 전자의 결과가 저출산과 인구감소이고, 후자의 결과가 공해와 지구온난화다.
    24. <한겨레> 신문 「남재희 칼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양적 혁명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을 실현하자는 것이고, 질적 혁명은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흑백 구별 없이 만인에게 똑같이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이나 양성평등을 구현하자는 것은 양적 혁명에 해당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위하여 정책적 실험을 하자는 것은 질적 혁명에 해당한다. … 우리의 촛불혁명을 우선 양적 혁명 단계로 볼 수 있다. … 다만 혁명의 역학이 양적 혁명에 그칠까 하는 것이다. … 이 질적 혁명의 문제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매우 어려운 과제다.”라고 썼다.
    필자소개
    전태일노동대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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