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견형 현장실습 바꿔야
    취업률 지표 집착 '사회적 타살' 유발
    "실습생 권리 보장 대안적 직업교육계획 마련해야"
        2017년 04월 03일 04: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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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초 특성화고 재학생이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계기로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교육당국이 특성화고 학생들의 노동과 인권 문제는 뒤로 한 채 양적 지표인 취업률에만 목을 맨 것에 따른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이 잇따른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대책회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등은 3일 오전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무권리의 특성화고 현장실습 방치한 교육당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전공과 무관한 현장실습을 거부할 권리, 현장실습 관련 정보를 요청하고 들을 권리, 위험하다고 생각할 때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실습은 더는 없어야 한다”며 “정부는 파견형 현장실습을 당장 멈추고, 실습생의 권리가 보장되는 대안적인 직업교육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했다.

    현장 실습

    특성화고 현장실습 관련 서울교육청 앞 기자회견(사진=유하라)

    이날 같은 시각 전남, 인천, 광주, 충남, 대구교육청 앞에서도 노동·시민사회·청소년단체들의 동시다발적으로 기자회견이 개최됐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생의 반복적인 죽음과 사고의 근본적 원인이 제도 자체를 취업률 제고를 목적으로 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이들은 전국 각지에서 시도교육청을 상대로 1인 시위, 언론 기고, 정보 공개 청구 등의 직접적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교육당국은 ‘상시적 관리체계’, ‘지도·점거 강화’ 등의 원론적 수준의 대책만 나열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 단체들은 “학생들은 교육의 의미를 상실한 현장실습으로 쫓겨나 학생으로도, 노동자로도 존중받지 못하다 다치고 죽어가고 있다”며 “그럼에도 교육당국은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하는 안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현장 실습생의 자살, 사고로 인한 사망·상해 사고는 7년간 1년에 한 번 꼴로 벌어졌다. 이 때마다 교육당국은 개선책을 발표했지만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이슈를 덮기 위한 땜질식 처방만 내놨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5년 현장실습 문제가 세상에 처음 알려진 후 이듬해 현장실습 정상화 방안이 나왔지만, 2008년 학교 자율화 조치로 최소한의 개선 조치도 무력화됐다. 2011년엔 기아차 현장실습생이 뇌출혈로 쓰러진 후에도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하고 야간 노동을 제한했지만 2014년 폭설로 공장 지붕이 내려앉아 야간 교대노동을 하던 현장실습생이 사망했다. 2016년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강화돼 표준협약서 체결과 노동시간 제한에 대한 벌칙조항이 신설됐지만 이번엔 현장실습생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가 발생했다.

    문제는 교육부, 교육청, 학교의 관리감독 부실로 노동 현장에선 대책안이 유명무실이라는 점이다. 올해 초 전북 전주시 LG 유플러스 고객 상담을 대행하는 LB휴넷에서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사망한 것 또한 마찬가지다.

    회사는 법에 따른 표준협약서와 다른 저임금 이면계약을 맺었고, 1일 7시간(합의 하에 1시간 연장근무 허용) 노동은 지켜지지 않았다. 표준협약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를 관리·감독해야 할 학교는 현장에 단 2번 나와 실습계약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취업률이라는 양적인 결과만 가지고 학교를 평가하는 교육부, 취업률 높이기에만 혈안이 돼 학생들의 노동·인권은 외면한 학교, 비용절감을 위해 현장실습생을 소모하는 기업의 ‘사회적 타살’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현장실습2

    교육도, 노동도 아닌 현장실습생의 무권리 상태는 한 학생의 자살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동대문구 특성화고를 졸업한 김도현 씨도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해 현장실습 당시 “우리는 사람이 아닌 기계였다”고 털어놨다.

    2년 전 11월에 현장실습생 신분으로 방위산업체에 취업을 한 김 씨는 “처음 겪어본 근무현장은 참혹했다”며 “일하면 일할수록 부조리하다고 느껴져 퇴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는 “계약서에선 130만원으로 계약했으나 실수령액은 80만원 정도였다. 4년차 선배는 4년을 쉬지 않고 일해서 버는 돈이 고작 120만원 이었다”며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저녁 7시까지 12시간 근무를 했지만 기계를 돌려야 한다는 이유로 점심도 3시, 4시에 먹기 일쑤였다”고 전했다. 또 업체에서 내준 기숙사엔 냉장고, 이불, 식탁 등 변변한 식기와 가구도 없어 실습생들이 모두 사비를 털어 구입해야 했다.

    김 씨는 “퇴사 후 학교에 돌아가니 3~4명 정도의 친구가 넋 나간 부랑자처럼 누워있었다. 선생님들은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학교는 특별한 교육도 없이 우리를 그저 방치해뒀다”고 지적했다.

    저임금, 장시간 노동을 견디지 못한 대부분 학생들이 학교에서 연계해준 업체를 그만 뒀다고도 했다.

    김 씨는 “졸업 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도 현장실습생으로 취업해서 그 회사에 계속 다니는 친구는 4, 5명 정도이고 40명에 달하는 친구들은 알바를 하는 등 시한부 인생으로 군대 갈 일만 기다리고 있다”며 “그러나 그 40명 친구들이 나약하고 사회 부적응자이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교육당국은 현장실습 실태를 모를 리 없다. 알면서도 방치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동·시민사회·교육·청소년단체들은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는 특성화고 파견형 현장실습 제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소할 방안을 제시하고 ▲파견형 현장실습을 당장 멈추고 대안적인 직업교육계획 마련하고 ▲산업체는 실습생, 훈련생, 인턴, 교육생 등의 이름으로 행하는 모든 노동자의 노동인권을 보장하라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7대 선언 및 3대 요구운동’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 운동엔 당사자인 안전하고 건강한 현장실습을 바라는 특성화고 학생과 졸업생들이 직접 참여할 예정이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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