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의 공과 과, 그가 사는 길
    [대선 후보 인상비평⑤] 국민의당 안철수
        2017년 04월 03일 08: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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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가 탄핵된 후 구속 수감되었다. 2016년 늦가을부터 시작하여 2017년 2월까지 진행된 ‘촛불’은 거대한 역사(役事)를 이루어 낸 대한민국 민주주의 초유의 역사(歷史)가 되었다. 단 한 건의 입건도 없는 완벽한 비폭력 투쟁의 승리다. 두말할 것도 없이 촛불을 든 시민들이 일등공신이다.

    그 촛불의 힘을 업은 상태에서 이렇게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몇몇 공헌이 있었다. 그것을 한번 거슬러 가 살펴보자. 헌재가 탄핵 결정을 하기에는 박영수 특검의 성역 없는 수사와 구속 기소에 충분한 증거 확보가 있었고, 그 박영수 특검이 성사되기에는 여소야대를 이룬 2016년 4월 13일의 20대 총선이 있었다. 이 총선에서 야당이 승리하기에는 안철수가 이끈 국민의당의 공헌이 결정적으로 컸다. 결과적으로 안철수가 중도표를 많이 확보하지 않았다면 여소야대의 정국이 이렇게 성공적으로 올 수가 없었다. 그런데 분명한 공(功)이 안철수에게 있기는 한데, 그가 그것을 온전히 받을 자격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20대 총선이 있기 전 문재인과 민주당은 호남에서 지지를 크게 상실했고, 전국적으로도 민주당의 지지는 상당히 많이 흔들렸다. 호남에서는 현역 의원 대거 물갈이 분위기가 터져 나왔고, 전국적으로도 혁신 요구가 봇물 터지듯 했다. 이 개혁의 요구에 호남 의원들은 노골적으로 저항하였다. 그들은 필사적으로 민주당을 마비시켰고, 그 과정에서 호남 소외론을 불 지르면서 지역 감정을 부추겼다. 그들의 반동에 문재인은 무능했다. 그 결과 민주당은 무기력하게 나락으로 떨어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탈당해서 나갔고, 그들이 다 빠져 나간 뒤부터 문재인은 당을 추슬렀고, 상당 부분 성공하였다. 이후 본격적으로 두 당의 경쟁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구태 세력을 등에 업은 안철수에게 호남의 유권자들이 적극 지지를 주었다. 안철수가 제3당의 리더로 우뚝 섰다. 그의 기회와 족쇄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안철수는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거의 마무리 된 현 시점에서 안희정을 지지했던 과거 박근혜 혹은 새누리 지지자들, 민주당에 속해 있지 않은 비문 중도 성향의 사람들, 경선 과정에서 문재인 열성 지지자들의 편협함과 야수적 공격성에 질린 사람들의 상당수가 자신을 지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충분히 일리 있는 분석이라고 본다. 그러다 보니 3월 31일에는 문재인과 안철수의 양자 대결이 이루어지면 문재인과 안철수는 각각 41.7% 대 39.3%로 오차범위 내 접전을 벌인다는 리서치앤리서치 여론조사까지 나왔다. 주로 종편이 주도해서 띄우는 여론 만들기로 보인다.

    조사 자체야 과학적으로 했다면 무슨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그런 구도는 그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모순이다. 이런 구도가 이루어지려면 안철수와 홍준표, 유승민과 단일화를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설사 그게 이루어지고 안철수가 이겨서 최종 후보가 된다 하더라도 상황이 안철수에게 유리하게 될 것은 없다. 구 여당의 대표가 되는 순간 호남표는 모조리 다 빠져나간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안철수 측이 요구하였듯, 두 당이 후보를 안 낼 가능성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특히 홍준표가 중도 사퇴를 하겠는가? 대선 이후 총선이 3년도 안 남는데 대선 후보를 내지 않거나 중도에 사퇴한다? 대선이라는 게 다음 총선을 위해 조직을 정비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당의 사업인데, 후보를 내지 않거나 사퇴한다?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조사에 의해 안철수는 냉정함을 잃고 착각의 늪으로 빠져 들어갈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에 대한 사면 검토 발언이다. 기자의 질문에 대해 대답하는 차원에서 안철수는 국민의 뜻이 있으면 (이미 공약에서도 밝혔듯이) 사면조사위원회에서 검토하겠다, 라고 발언한 것은 실언이다. “지금은 기소도 안 된 재판 이전의 상태라 그 문제를 언급한다는 것 자체가 부적절합니다.”라고 잘라 말했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발언이 정치력이 짧은 안철수의 단순한 실언일까? 그는 자신이 박근혜를 사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보수층에게 추파 던지듯 던진 것일 수 있다. 그런 계산을 하지 못하고 한 순수 실언이면 그는 아직도 정치 초년병이고, 그걸 계산해서 던진 것이라면 현실의 구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욕심을 과하게 내는 바람에 게도 잃고 구럭도 잃을 공산이 크게 되어 버릴 비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철수

    안철수가 소위 대구경북 표를 잡으려면, 안타깝지만 호남표를 잃게 된다. 아주 단순하지만 예외 없는 분명한 현실적 계산이다. 그런데 더 안 된 것은, 그가 그렇게 추파를 던진다고 해서 대구경북의 지지자들이 이미 ‘전라도’당 후보인 안에게 표를 줄 양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현재의 한국 정치의 지역 구도는 문재인에게는 매우 유리하게 작용한다. 안철수가 지난 총선에서와 같이 또 다시 ‘호남 차별’ 문제를 꺼내면서 문재인을 공격한다면, 안철수는 호남에서 상당한 효과를 보겠지만, 부산 경남은 물론이고 대구 경북에서는 완전히 초토화될 수도 있다. 그래서 그는 지난 총선 때와 같이 지역주의를 관에서 다시 꺼낼 수도 없다. 그런데 그것을 꺼내지 않고서는 대구경북에서는 그는 ‘전라도’ 당 후보로 인식된다.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다. 안철수에게 이 모순의 구도는 이런 상태로는 극복될 수 없다고 본다. 그의 정치 생명이 바로 그 지역 구도 위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에는 문재인에 대한 증오심이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크고, 그 위에서 그가 정치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현재로서는 안철수는 정치의 제 1 목적이 문재인을 타도하기 위해서 하는 것으로 보인다. 선거의 대부분이 문재인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선거 전략상 네거티브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 네거티브라는 것은 포지티브와 섞일 때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오로지 상대방 험담으로만 일관된다면 플러스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마이너스까지 나게 되어 있다. 오죽했으면 ‘문모닝’이라는 조어로 – 새날 아침을 시작할 때부터 문재인을 비난하는 국민의당과 안철수 후보에 대한 비판으로 문재인 지지자들은 이렇게 비아냥거린다 – 상대방을 비판을 할까.

    더군다나 지금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직도 안철수에게는 ‘새정치’라는 각인된 타이틀이 대표 이미지로 남아 있다. 문재인을 떨어뜨리기 위해 하는 정치 이미지는 그런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더군다나 문재인에 대한 증오심 때문에 그는 이랬다저랬다, 소위 ‘간’ 보는 정치인이 된 점도 있다. 문재인이 보수표를 의식해서 박근혜의 질서 있는 퇴진을 외칠 때 안철수는 강하게 박근혜 구속을 외쳤고, 문재인이 촛불집회 나갈 때 그는 촛불집회를 거부했다.

    그의 문재인에 대한 증오심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니다. 지난 대선 때 도와 줄 만큼 다 도와 줬고, 미국으로 떠난 것도 당선될 문에게 부담 주기 싫어서였고, 사전에 연락까지 하고 그렇게 했는데 그 지지자들은 얼마나 안철수를 비난하고 악담을 퍼부었는가? 그때 왜 문재인은 나서서 그렇지 않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안철수의 억울함은 이해가 되지만, 그로 촉발된 증오심 때문에 결국 자기 정치를 하지 못 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정치를 좀 더 배우고 큰일을 하러 나왔어야 했다. 어떻게 하면 베풀고 폼이 나는지, 어떻게 하면 빼앗기고도 쪽 팔리지 않는지, 어떻게 하면 분노를 감출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없는 분노를 만들어서라도 폭발하는 것처럼 보이는지 등에 대해 천천히 배웠어야 했다. 정치의 언어와 레토릭, 사람과의 관계를 찬찬히 배웠어야 했다. 제대로 정치를 배운 사람도 헤쳐 나가기 힘든 최근의 정치적 상황은 학습이 전혀 되지 않은 안철수라는 욕심은 많지만 순수한 우량주가 뚫고 나가기에는 너무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정글이었다. 그러다 보니 너무나 말을 많이 바꿨고, 너무나 많은 실수를 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쉬운 것은 민주당에서 탈당을 한 것이다. 탈당하지 않고, 정치를 좀 배우면서 실력을 쌓아 갔으면 지금의 안희정이 차지하는 자리는 안철수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이제 안철수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냉정하게 계산을 해야 한다. 안철수는 어차피 호남의 맹주가 될 수는 없다. 이번 대선에서 문재인이 호남에서 적어도 60~70% 가량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다면 3년 후 총선에서 호남의 유권자들은 민주당을 지키려는 성향을 더 크게 가질 것이다. 그때가 되면 지역의 국회의원에 대한 물갈이 요구가 터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의 국민의당 호남 의원들은 큰 힘을 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지난 3월 13일 한 반기문 지지자 모임의 대표가 조직 차원의 결정이 되면 안철수 지지를 선언할 수 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안철수 후보도 미국의 트럼프 정부와의 관계를 잘 설정하기 위해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큰 역할을 해야 한다며, 그와 연대할 뜻을 밝혔다. 그 방향으로 가야 한다.

    현재의 한국 정치에서는 대구경북, 서울 강남, 노인 등으로 구성된 대한민국 보수와 호남은 양립할 수 없다. 사회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양립 못할 것도 없지만, 역사라는 요인을 무시할 수 없는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는 그렇다. 그러다 보니, 보수의 땅은 넓되 현재로서는 맹주가 보이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보수의 땅은 정치인 안철수가 살아온 삶이나 본인의 캐릭터와 비교할 때 훨씬 잘 어울리는 곳이다. 그 보수의 땅에 합리적 리더의 깃발을 세우는 것이 더 합리적 전술이다. 이번 대선 이후 차차기에 욕심을 둔다면 그 쪽을 공략하는 게 낫다. 단, 박근혜 국정 난동 세력과는 거리를 분명히 두고, 그 외의 모든 보수 세력을 아우르는 큰 틀을 짜서 그 중심에 서도록 판을 짜야 할 것이다.

    결국, 정치인 안철수가 사는 길은 이 글의 맨 앞에서 언급한 그 성립 불가한 모순의 구조를 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그 첫 걸음은 호남과 결별해야 하는 것이다. 보낼 사람은 보내고, 새로 맞을 사람 맞을 채비를 하는 게 정치다. 지금 당장 대선에 올인하되, 대선 이후를 보지 못한 채 눈앞의 대선에만 올인하는 정치를 하지 않기를 조언 드린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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