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에정칼럼] 국제개발협력 활동의 상상력과 실행 시나리오
        2017년 03월 29일 10:5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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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에서 12시간 멀미와 먼지를 동반해야 도착할 수 있는 읍내, 거기에서 다시 험난한 오프로드로 4시간을 더 들어가야 나타나는 라오스의 소수민족 중학교. 당신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다. 여긴 지원 사업의 첫 과정인 현지조사 현장.

    당신은 우선 이 학교의 난민 수용소보다 못한 학생 기숙사, 산 밑으로 내려가 길어와야만 하는 용수 상황, 세상에서 가장 전망 좋은 자연의 화장실, 학생들은 물론이고 교사들조차 교과서를 다 갖추지 못한 여러 가지 열악한 학교 상황들을 살폈다. 그러고 나서 교장에게 학교에 가장 지원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발전기요!”

    당신은 어떤 발전기를 지원할 것인가?

    얼핏 보아도 도움이 절실한 것투성이. 그렇지만 세 가지만 답하도록 한다. 교장은 다음으로 교과서를 비롯한 학용품과 컴퓨터를 꼽았다.

    당신은 좀 의아하다. 의식주가 기본인데 저 늑대 입김으로도 쓰러뜨릴 것 같은 기숙사와 몇 시간의 노동을 기울여 가까스로 충당하는 물보다 발전기, 학용품, 컴퓨터라? 그래도 수요자의 직접적인 요청사항을 듣는 게 우선이니 발전기를 지원하기로 결정한다. 자, 그럼 이제 당신은 어떤 발전기를 지원할 것인가?

    마을은 송전선이 지나간다. 그러나 학교는 전기를 연결해 쓰지 못한다. 초기 연결 비용뿐만 아니라 매달 전기요금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심지어 조사단이 묵었던 마을회관, 이장집도 두어 시간여 디젤발전기를 돌리지 않았나. 아, 그럼 디젤발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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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산골마을 사찰과 사찰에서 사용하고 있는 호롱불

    이건 좀 이상하다. 돈이 없어서 디젤발전기를 쓰는 건데 디젤을 사는 데도 돈이 들지 않나. 그뿐인가, 그 디젤을 사려면 읍내로까지 나가야 하고 읍내로 나가려면, 1박2일을 걸어갈 작정이 아니라면 오토바이를 타고 가야하는데 그럼 또 오토바이 연료는?

    돈과 에너지 빈곤의 악순환 고리다. 고리를 끊을 것이 필요하다. 외부의 투입이 필요 없이 지속적으로 생산과 이용이 가능한 재생가능에너지, 태양광, 태양광발전기다!

    태양광발전기는 진짜 지속가능한가?

    당신은 학교에서 발전기 다음으로 학용품과 컴퓨터를 꼽은 것도, 어렵더라도 자체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시간, 노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고 무릎을 친다. 더욱 태양광발전기 지원이 확실하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다.

    당신은 지속적으로 공여국의 기술, 상품, 서비스에 의지하도록 하는 구속성 원조에 대한 경계보다 태양광발전 설비와 자재를 한국에서 라오스로 운송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을 우려해 라오스 내의 재생가능에너지 회사에 태양광발전기 설치를 맡기기로 한다. 태양광발전기가 낯선 학생과 교사들을 위해 5일간의 설비 사용관리 교육을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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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오스 재생에너지 회사 기술자가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산골마을 어린이들

    라오스는 2007년 정부 공식 집계로도 47개 소수민족이 함께 사는 지역이다. 지배적인 민족인 라오족은 당연히 메콩 유역 평야지역과 도시 그리고 주요한 소읍들에 주로 분포한다. 전기가 들어가지 않는 오지에는 비교적 근래에 이동해온 고산족이나 대륙 동남아시아의 선주민으로 추정되는 소수민족들이 주로 거주한다. 이웃 마을에 다른 말을 쓰는 소수민족이 살기도 하고 한 마을 안에 서로 다른 소수민족들이 함께 살기도 한다.

    1975년 라오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고 나서는 국가형성의 중요한 작용으로 오지를 개척하고 산간 지역을 개발해 나가면서 라오족 분포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중요하게 이들 산간 지역에 학교를 만들고 교사들이 파견되면서 라오스어가 공용어, 중앙어로 자리 잡았다.

    과거 라오스의 교사임용제도는 중학교를 마치면 초등학생을,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중학생을 가르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식이었다. 지금도 전공과 관계없이 대학교를 졸업하면 고등학교 교사가 될 수 있고 대부분의 중등학교 교사들은 초급 교육전문대를 나온 상태다.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 없는 선생님을 영어를 가르치는 게 다반사고 읍내 중학교 학생도 방정식은 고사하고 소수점 계산도 잘 못한다.

    라오스 재생에너지 회사는 6명의 교사와 학생들에게 태양광발전기 유지관리 교육을 시켰다. 당연히 설치 회사에 1년 사후관리 책임까지 지웠으니 출구전략, 완벽하다?

    우리, 공대를 나와도 형광등 하나 못 간다고 한다. 일반 전기도 낯선데 태양광발전기? 유사 전공 교사라도 5일 보고 배운 것으론 어렵고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실제 닥치면 더욱 까마득해 질 것이 뻔하다. 학생들은 더 하다. 생전 처음으로 전깃불을 보게 된 학생들이 절대다수. 게다가, 우리가 처음 보는 어떤 물건의 사용법과 관리법을 영어로 배운다고 상상해보자. 그것의 이름, 부속 장치들의 이름이라도 제대로 기억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다행이 교사도 학생도 내용을 잘 이해해서 유지관리가 잘 되고 있다 하더라도 문제는 또 있다. 빠르게 느는 학생 수 덕에 라오스의 교사들은 산골학교에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학교로 옮겨가게 된다. 발전설비 유지관리 담당자로 태양광발전기 교육을 받은 교사는 그럴 만큼의 뛰어난 역량으로 새 산골학교 교장으로 가기 쉽다. 더욱 교육을 받기위해 선발된 학생들은 3학년이거나 못해도 2학년. 곧 졸업해 학교를 떠난다.

    그럼 족히 몇 십 년은 학교와 기숙사를 밝혀야 하는 태양광발전기는 어떻게 될까? 라오스 산골학교에 달랑 놓아주고 온 태양광발전기는 재생가능에너지원으로 진짜 지속가능할까?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라오스 산골마을에도?

    아, 사후관리 책임이 있는 태양광발전기 설치회사가 수도에 있는 걸 잊었다. 기본 1년 안에 주요 장비는 3년 안에 패널은 25년 안에 연락한다면 수리교체 해 줄 것이다. 그러나 전화 신호가 잡히는 곳으로 이동해서(라오스 산간 지역에서 전화 신호가 잡히는 마을은 흔하지 않다) 연락을 취하는 데만 한나절이, 문제를 해결할 장비와 부품 등을 챙기는 데 하루가, 읍내까지 오는 데 하루, 현장 학교에 도착하는 데 하루, 직접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또 한나절이 걸릴 것이다. 그럼 수도에서 온 기술자가 일을 마치고 돌아가기까지는 적어도 5일이 걸린다는 얘기. 산골학교는 다시 겪는 칠흑 같은 불편보다 다른 게 걱정일 것이다. 그 출장에 드는 돈은 어떻게 할까?

    대안은 지역 기술자다. 일반 전기 기술자도 없는데 당장 마을마다 태양광발전 기술자를 양성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마을과 가장 가까운 중심지, 읍내에 전문 기술자들을 두는 것이다. 다행히 읍내에는 직업기술학교가 있다. 전기 설비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전기과 학생들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들이 될 것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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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업기술학교 전기과 학생들의 태양광발전기 제작 실습 모습과 완성한 60W 이동식 태양광발전 시스템

    그래도 돈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가까운 읍내에서 친근한 기술자들이 온다 해도 그들에게도 출장비는 지불해야 하고 교체 장비 구입비가 든다. 고장이 아니더라도 인구가 자연스레 늘고 학생 수가 늘어나는 만큼 전등이 필요한 가구 수도 교실도 는다. 따라서 패널 용량도 커지고 5년 정도 수명으로 배터리도 교환해 주어야 한다. 최빈국 산골 마을 빈곤 가구들이 개별적으로 여기에 드는 돈을 충당하기는 어렵다. 당신은 어떻게 진짜 출구전략을 짤 것인가?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샥티 1996년부터 농촌 지역에 재생에너지 기술을 보급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당신과 같이 작은 크기의 가정용 태양광발전기를 보급하는 데 뛰어난 성과를 보이고 있다. 그라민 샥티가 이러한 과정에는 그라민 은행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시스템이 중요한 구실을 했다. 사용자들이 비교적 낮은 이율로 마이크로 크레디트를 이용해 발전설비를 손쉽게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라민 샥티는 SHS를 사는 사람이 15~25%의 보증금을 낸 뒤 나머지는 월 400~800타카씩 2~3년 동안 갚게 했다. SHS를 설치하면 달마다 등유를 사는 데 쓰던 400~500타카를 아낄 수 있다. 이렇게 아낀 돈으로 대출금을 갚을 수 있게 제도가 설계돼 가난한 방글라데시 농촌 주민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타이 치앙마이 협동조합은 2000년대 후반부터 지역 시민단체인 싸오힌 YMCA, 치앙마이 대학교와 협력해 축사에서 나오는 축분과 농부산물을 활용해 취사용 바이오가스를 생산하는 설비를 조합원 가구에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초기에 설비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얻은 기술을 다른 조합원에게 대가 없이 제공하거나 상대적으로 비싼 설치비를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면서 협동조합도 수익의 일부를 적립하는 상황을 주목할 만하다.

    재생가능에너지 설비를 보급하는 것이든 지역 기술역량을 개발하는 것이든 개발협력의 진정한 완성이자 출구는 자립적 경제 시스템으로 연계시키는 것이다. 라오스 지원사업 제안서, 계획서를 쓰고 있는 당신, 분명 이런 좋은 사례들을 인용해 멋진 출구전략을 세우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의 그 계획 라오스 산골마을에서 당신이 직접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면 마이크로 크래디트, 협동조합 선택하겠는가?

    당신이 지원활동을 하는 지역의 주민은 문맹에 가까운 소수민족들이 대부분인 산골마을이다. 더구나 빈곤 가구 중에서는 은행 계좌를 자신이 개설한(정책적으로 관계 기관이 개설한 경우는 있을 수 있다) 사람은 전혀 없을 테고, 어쩌다 무슨 일로 방문해야만 하는 경우라도 단층짜리 건물 앞에서도 압도당해 입구 계단에서부터 신발을 벗어들고 어찌할 바 모르는 사람들이다. 마이크로 크래디트라는 말은 고사하고 이자나 부채상환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라오족이라도 산골 사람들에겐 아무리 소액 빈민지원 프로그램이라도 금융은 멀고도 멀다. 가계부는 물론이고 마을회의, 반상회 장부도 쓰는 데가 드물다. 마을 사찰에 기부하는 금액을 꼼꼼히 적어 그때그때 공개하는 게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니. 사칙연산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출자금이니 배당금이니 엄격한 회계, 재무 역량이 기본이 되는 협동조합 활동은 가능할까?

    어쩌면 당신이 하는 단순한 지원사업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한 운동을 당신의 지원사업을 보조하는 도구로 쓸 생각인가? 라오스에 그라민 은행 같은 금융기관이, 현지에 협동조합이 시민단체가 있는가? 설마 당신은 당신의 지원사업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이런 것들까지 만들겠다는 것인가?

    장부를 작성하지는 않더라도 마을과 공동체를 위해 자금을 모으는 전통과 그에 대한 경험은 마을마다 이장이 있고 초등학교를 다녀 본 것처럼 일반적이다. 또 다행이 UN의 권고와 정부의 정책으로 라오스는 아무리 작아도 마을마다 초등학교가 있다. 그렇다면 사칙연산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문서를 작성할 줄 아는 교사가 마을마다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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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광발전기를 설치한 라오스 산골 초등학교 월요일 조회 모습

    당신이 하는 재생가능에너지 지원 활동은 각각의 빈곤 가구들 말고도 학교, 마을회관, 보건지소 등 공동체 공간들이 중요하게 포함된다. 마을 에너지 운영위원회 구성원으로 당연히 학교장, 이장을 비롯한 마을 지도자들이 참여하게 된다. 이들에게 마을 에너지 설비의 유지와 관리, 수리와 교체를 위한 간단한 적립금 모금과 사용 장부의 작성을 맡기는 방법이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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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교육청의 지원사업 담당자가 마을 이장, 여성연맹 대표, 초등학교와 중등학교 교장, 기숙사에 거주하는 교사 등 마을운영위원들에게 적립금 모금 및 사용 장부 기재 방법을 알려주고, 마을에 비치할 간단한 점검 도구와 필요한 문구류를 전달하는 모습

    마을운영위원회가 민주적이고 합리적으로 운영될지 까지 걱정인가? 그것은 그야말로 그 주연 배우들의 일. 당신은 가능한 주연들이 이해하고 스스로 실행 가능한 시나리오를 쓰기만 하면 된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재생가능에너지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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