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 후보에게 드리는 편지
    안희정의 민주주의와 정당주의란 무엇인가?
        2017년 03월 28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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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지지자와 문재인 지지자 간의 네거티브 선거를 둘러싼 논쟁, 민주당 대통령후보 선출을 위한 현장투표 결과 불법유출을 둘러싼 논쟁, 대학생을 선거인단으로 동원한 사례를 둘러싼 논쟁으로 SNS가 떠들썩합니다. 70년 역사의 공당인 민주당이 아직도 민주적이고 체계적인 당내 시스템으로 당을 운영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겠지요.

    안희정 후보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보고 싶은 욕구가 생겼습니다. 민주당 대통령후보자가 되기를 희망하는 안희정이 민주당 선거인단에게 하고 싶은 말, 또는 차마 말할 수 없으나 내심으로 할 만한 생각을 떠올려 봤습니다. 그 안희정의 말과 생각에 제가 답을 하는 것이 제가 평소에 안희정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될 것 같습니다.

    첫째, 안희정이 문재인보다 본선 경쟁력이 더 뛰어납니다. 문재인은 민주당이 친노비노, 친문비문의 계파적 프레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문재인은 민주당 비문 호남정치인을 포용하지 못했고, 상당한 국민들에게 신뢰받는 민주당의 전 대표였던 안철수를 포용하지 못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어느 쪽이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것과 별개로 팩트가 그랬다는 것입니다. 문재인이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 반문비문 정치세력이 민주당 밖에서 결집할 것입니다. 그러나 안희정에게는 그런 반안비안 적대 정치세력이 없습니다. 아울러 보수층은 ‘문재인 대통령’은 불안해 하지만, 상대적으로 ‘안희정 대통령’은 불안해하지 않기도 하구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층은 대통령 선거에서 더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는 안희정을 충분히 지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유를 뒤에 말씀드리지요.

    둘째, 안희정은 대연정과 선의 발언이 곡해되었다고 생각되어 답답하겠지요. 대통령이 되어서 이 나라를 제대로 개혁해서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고 싶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국민의 대표자가 모인 국회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국민의 투표로 정당하게 구성된 현 국회의 정당 의석 분포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에 책임이 있는 정당이라 하더라도 ‘구체적 국가 개혁’에 동의한다면 과거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서 손을 잡을 수 있다는 말이겠지요. 의회에서 압도적 다수를 구성한다면 국가대개혁이 효과적으로 가능할 테니까요. 그러한 대화와 협상을 위해서라도 상대를 ‘절대 악’으로 규정한다면 대화가 가능하지 않겠지요? 그런 맥락에서 정치인은 정치적 경쟁자의 ‘선의’도 일단 존중하고 대화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합리적인 사고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왜 수용하지 못할까요? 안희정의 말처럼, 상대에 대한 분노와 미움을 부추기는 다른 민주당 정치인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것뿐일까요? 국민들이 안희정의 대연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다른 본질적 이유는 없을까요?

    셋째, 안희정은 노무현과 함께 민주당을 지키고 민주당에 충성한 정당주의자입니다. 정치인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이자 동업자는 안희정이지요. 비주류 정치인 노무현을 한국정치의 주역으로 밀어올린 2002년 민주당 국민경선의 ‘노풍’도 정치인 안희정이 노무현과 함께 했던 결과였지요. 그에 비해서 문재인은 정당정치 밖에서 정치인 노무현을 후원하던 오랜 민간인 벗이었지요. 문재인이 인간 노무현과 아무리 친밀하더라도 정치인 노무현의 동업자는 아니지요. 그러나 노무현의 정치적 유산은 문재인 후보가 대부분 승계했지요. 문재인은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중에 최측근에서 활약했고, 안희정은 대통령 선거 불법 자금 수뢰에 책임을 지고 감옥과 정치권 밖에서 머물려야했으니까요.

    그런데, 노무현을 지지했던 당원과 국민들이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인 안희정을 충분히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도 뒤에 말씀드리지요.

    안희정

    이제 제가 답을 할 차례군요.

    첫째, 문재인 후보가 대세인 듯하면서도 대세를 결정짓지 못하고 있는 이유, 그러나 1위를 계속 지키는 이유를 균형 있게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 탄핵과 조기대선으로 제1야당인 민주당을 대표해 온 문재인 후보에게 아주 유리한 국면인데도 문재인은 묘한 지점에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서 패배한 정치적 책임이 있습니다. 당대표로 재임 중에도 전술했듯이 비문 세력과의 갈등으로 당을 원활하게 이끌지 못했습니다. 당내에서 지지율 1,2위를 다투던 안철수 의원이 떠나가는 것을 막지 못하여 민주당이 분당되게 만든 책임도 있지요. 오죽 했으면, 당내 갈등으로 인하여 당 대표직을 유지하는 것이 총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총선 직전에 사퇴까지 했지요. 이런 약점이 있는 문재인의 리더십을 불안해하거나 반대하는 층이 넓게 존재하는 것이 아직도 지지율이 30%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반면, 지지율 1위 자리를 유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동안 문재인에 맞서서 대립했던 반문비문 정치인과 안철수가 새로운 정당정치 비전과 철학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민주당 지지층은 그들이 친문 패권을 공격하는 것은 그 패권을 자신들이 가지겠다는 권력투쟁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새로운 정당정치의 비전도 없는 반문비문 세력에게 민주당을 맡기는 것보다는, 노무현의 정치적 후계자이자 민주당의 주류인 문재인을 지지하는 안정적 선택을 했던 민주당 지지층이었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즉, 문재인과 경쟁하는 안희정은 문재인의 지위를 탐했던 비문과 다르게 정당정치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어야 했습니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지 당대표가 아니라는 형식적 논리로 회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소규모 캠프를 꾸리는 이유가 당의 힘으로 집권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던 안희정이었습니다. 안희정은 자유한국당과 싸움으로 날을 지새우는 정치를 거부한다고 말했지만, 아울러 무원칙한 계파 싸움으로 날을 지새웠던 민주당 내부를 못 본 척 했습니다.

    안희정은 자신이 ‘정당주의자’이고 ‘민주주의자’라고 강조했었지요. 그리나 안희정이 철학 있는 ‘정당민주주의자’라면 민주당을 포함한 여의도 정당정치의 비민주주의와 전근대성에 대해서 본질적 문제 제기를 했었겠지요. 정당 내부가 헌법이 명령한 민주적 시스템을 위반하고 특권과 불공정이 횡행하고 있다면, 그 정당이 어떻게 사회를 개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정당에서 특권과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한 패권주의와 계파주의는 종식될 수 없겠지요.

    안희정이 경선 참여를 선언 할 때 “동교동도, 친노도 뛰어넘을 것입니다. 친문도 비문도 뛰어넘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지요. 친문과 비문 모두를 뛰어넘어 민주당의 새로운 리더가 되기 위해서, 낡은 패거리 계파정치를 종식시킬 강력한 정당정치 개혁 비전이 있었어야 했습니다. 민주당원과 민주당 지지층은 유심히 관찰했던 안희정에게서 낡은 민주당을 혁신할 비전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불필요하게 모험하지 않겠지요.

    둘째, 안희정의 대연정 주장은 계속할수록 스스로 진의를 왜곡되게 만드는 제안입니다. 안희정은 국가개혁과제를 이루기 위해서 대연정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즉, ‘국가개혁’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대연정’이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무릇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은 한가지로 국한되지 않고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 또, 좋은 수단이라 생각했던 것이 변화된 상황으로 인해서 수단의 기능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가지 수단만을 계속해서 강조한다면, 원래의 목적인 국가개혁과제가 아닌 수단 자체를 목적화하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의심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안희정은 말합니다. “대연정을 제안했으면 어떤 국가개혁과제로 개혁을 할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 맞으나 두 달 내내 적폐세력과 손잡는다는 것이냐고 묻고 있다” 두 달 내내 개혁과제를 묻지 않는 것이 답답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개혁과제로 자유한국당과 대연정을 할 것인가를 말할 의무는 제안자인 안희정에게 있습니다. 목적을 말하고 최적의 수단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하니까요. 오히려 안희정이 두 달 내내 그것을 하지 않고, 수단인 대연정 제안의 정당성만 반복해서 옹호했지요. 가치 있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대연정이라는 수단을 고려할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것입니다.

    안희정은 다음 두 가지 중에 하나의 입장을 취해야했습니다. ‘국가개혁과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대연정도 고려할 수 있다는 제안과 비판에 대한 해명 정도에서 멈추어야 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대연정을 통해서만 이룰 수 있는 국가개혁 과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설득해야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의석 숫자의 합산이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대의’하라고 있는 것입니다. ‘대의’의 목적은 국민주권을 구현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국민의 대표자가 모인 국회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본래의 목적에 충실하지 않은 정당과 의원들을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하도록 돕는 것이 좋은 정치입니다. 국민들은 그렇게 박근혜 대통령을 국회에서 탄핵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분포된 정당별 의석 숫자에 의해서 결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인터넷, 정보통신, 과학기술의 획기적 발달은 ‘국민주권’의 더 온전한 구현을 위해서 국가 체제에 직접민주주의의 결합을 재촉하고 있습니다. ‘국민주권’의 구현이 민주주의입니다.

    안희정은 대연정 제안으로 보수층에서 기피하지 않는 정치인의 이미지는 얻었습니다. 그러나 민주당 지지층과 정권교체에 동의하는 70%의 사람 중에 문재인 후보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충분한 지지를 얻지 못했습니다.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계몽의 형식, 대중이 직관적으로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 정치인에게 함께 필요하겠지요. 그런데, 안희정은 전자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자기 확신의 과잉과 국민을 계몽하려는 엘리트 의식이 기회를 날려 보내고 있는 듯합니다.

    자신이 경험했던 정당의 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정당주의자’가 아니고, 자기 확신 속에서 대중을 계몽하려는 엘리트가 민주주의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셋째, 노무현은 누구나 순응하고 타협했던 본질적 모순에 저항했던 정치인이었습니다. 선거에서 낙선하는 것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정책과 노선이 아닌 지역으로 대립하는 정치를 끝내지 않고는 정상적인 정치, 정상적인 사회로 다가갈 수 없다는 신념을 실천한 것이지요. 노무현이 뿌린 씨앗들이 자라서 지난 총선에서 지역주의 투표 경향은 급격히 완화되었습니다.

    안희정은 그런 노무현을 닮았나요? 노무현의 측근이었다는 것이 노무현 정신을 소유할 자격이 되는 것은 봉건적입니다. 자신의 구체적 정치행위로 노무현 정신을 실천 계승하고, 아울러 노무현의 한계를 극복해야겠지요.

    정치에서 협상과 타협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불공정과 불평등이 심화되어 적폐가 범람하는 사회라면 정치인은 자신이 극복하고 싶은 적폐를 충분히 비판해야 합니다. 그 적폐의 실체를 국민에게 구체적으로 보고해야 합니다. 그것은 비생산적인 ‘분노’가 아니라 주권자를 향한 생산적인 ‘사랑’입니다. 주권자에게 바른 정보를 ‘제공’하고 주권자가 ‘판단’하게 만드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주권자와의 소통의 과정속에서 그 적폐를 극복할 비전을 제시해야겠지요. 그 비전속에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타협책도 수단으로 제시할 수 있는 것이지요.

    저는 대통령후보 경선에 출마한 안희정에게 그런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안희정은 ‘시대 교체’를 말합니다. 그 시대교체가 거대 양당 중심으로 형성된 ‘적대적 공존’을 끝내고 대화와 타협의 민주 정치로 나가자는 뜻인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극우주의자’를 ‘보수주의자’라고 불러준다고 ‘극우주의자’가 ‘보수주의자’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질적 모순을 덮고 대화와 타협이라는 수단만으로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박정희 개발독재체제를 지탱했던 그 사고관이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가 아니고 반헌법적인 ‘극우적 가치’라는 것을 시민들이 확인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이것은 한 사회의 민주적 수준을 높이는 시민이 만든 명예 혁명적 사건이었습니다. 한 사회의 민주적 수준이 높아질수록 대화와 타협의 정치 당사자들은 주권자를 존중하게 될 것입니다.

    촛불 시민 혁명의 직후, 시민의 민주적 열망이 분출되는 대통령 선거 직전, 누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국민 주권’을 고양하고 강화하는 것입니다. 정치권은 더 높은 수준의 국민 주권을 구현하기 위한 법률과 헌법의 정비를 논의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안희정 후보는 이 역사적 시기에 ‘국민 주권’과 ‘시민 정치’의 강화를 등한시 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에 낡은 여의도 정당정치 체제에 의한 대타협으로 국가대개혁을 해결하자고 외치고 있는 꼴입니다. 그것은 잘못된 수순입니다.

    노무현을 사랑했던 사람들, 한국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워왔던 국민들은 그런 정치인에게 감동받을 수 없겠지요. 그들에게 동의 받지 못한다는 것은 가장 큰 수단을 등한시하는 것이지요. 안희정 후보가 국가개혁을 위해 제시한 수단보다 훨씬 중요한 수단이지요.

    국민주권을 국가에 어떻게 관철되게 할 것인가, 정당이 어떻게 당원과 지지자의 민주적 의사형성에 기반하여 운영되게 할 것인가, 안희정 후보께서 고민하시길 감히 기대합니다.

    필자소개
    콜리젠스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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