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조합은 새로워질 수 있는가?
    "우리 내부에 적폐가 있다면 당연히 없애나가야"
        2017년 03월 28일 10:2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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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고까지 되면서 노동조합을 하는 이유가 뭔가?”울산에서 노동운동을 할 때 만난 현대자동차 해고자에게 한 질문이다. 1990년 현대중공업에서 골리앗 점거 투쟁이 일어난다. 노조 위원장 구속 등 자본의 탄압에 노동자들은 82미터 높이의 골리앗 크레인에 올라가 저항을 했다. 아마도 최초의 고공농성이었을 것이다. 이에 노태우 정권은 헬기와 군함, 전투경찰 등 그야말로 육․해․공군 모두를 동원한 전면적인 탄압을 펼쳤다.

    골리앗

    1990년 골리앗 크레인 농성을 벌이는 현대중공업 노동자(사진=금속노동자)

    지금도 그렇지만 현대중공업을 가려면 현대자동차를 지나야 한다. 그런데 전투경찰이 지나가는 길목을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막고 투쟁을 했다. 진압작전을 조금이라도 늦추려는 연대투쟁이었다. 하여 초기 해고자 17명이 발생했고, 그 중 친하게 지낸 한 명에게 물어보았다.

    “전 노동조합이 생기기 이전과 이후를 똑똑히 기억합니다. 삶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가 한 대답이다.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당시엔 현대기업의 경비원들은 특전사나 해병대 출신들이 많았다. 군화를 신고, 위풍당당하게 서서 고압적인 자세를 취하곤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노조가 생기기 이전엔 지각하면 경비원들이 토끼뜀을 뛰게 하고, 심지어 머리가 길면 기계를 들이대기도 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다.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주요 구호가 “인간답게 살고 싶다”였던 이유다. 그리고 30년이 지났다.

    기득권연합이 된 노동조합

    30년이 지나는 사이에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나마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정규직 노동자들도 불안한 처지이기 하다. 그러나 최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의 정규직과 2차 협력사 사내하청 노동자 간의 연봉 격차가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는데 무려 5배였다고 한다. 여기에 정규직만 누리는 복지까지 포함하면 격차는 더욱 커질 것이라고 한다. (시사인 3월 15일, ‘정규직 자본주의’ 신음하는 하층 노동자)

    이 글은 “대기업, 대학, 은행, 병원, 공기업 등 집합적 대형 사업장들이 외주화, 용역화, 간접고용 등 이른바 ‘신자유주의적 노동 유연화’로 하층 노동자를 양산해왔다. 그러나 다른 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국가와 대자본, 그리고 정규직 노조가 함께 만든 ‘기득권 연합’이 지금 체제의 형성에 톡톡히 기여했기 때문이다. 대기업과 은행 및 공기업의 정규직, 공무원, 교수 등 ‘노동신분제’ 상위 계층이 누리는 고임금과 직장 복지 혜택엔 비정규직 하층 노동자들의 희생이 상당 부분 포함돼 있다.”라고 분석했다. 정규직 노조도 기득권연합의 일원이라는 분석이 충격적이다. 부정할 수만은 없는 현실이기도 하다.

    반복되는 정규직 노조의 비리 보도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심심찮게 노조의 비리가 자주 보도되곤 한다. 항운노조 등 원래 그런 곳이야 그렇다하더라도 소위 민주노조라는 곳에서도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하여 충격이 매우 크다.

    “인천지검 특수부(부장검사 김형근)는 ‘한국GM’ 정규직 채용과정에서 채용청탁을 조건으로 돈을 받은 이 회사 전 노조지부장 정모(55)씨 등 전·현직 노조 간부 17명과 채용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챙긴 노사협력팀 상무 고모(57)씨 등 임원 3명, 성적을 조작해 합격시킨 인사팀 부장 등 31명을 근로기준법 위반과 업무방해,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고 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정씨 등 전·현직 노조 간부 17명은 협력업체 직원들을 상대로 2012년부터 지난해 상반기까지 모두 6차례에 걸쳐 1인당 2000만에서 7500만원까지 총 8억7300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GM 부평공장 정규직 346명 중 123명(35.5%)이 이 같은 채용 비리로 합격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월 7일자 조선일보 기사다. 이 회사에선 2016년 7월에도 1인당 7천만원에서 1억원의 현금을 받고 취업알선을 한 6명이 체포당하기도 했다. 여기만 그랬을까? 2014년 11월 기사를 보면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노조 전 간부 등이 채용을 미끼로 16명에 대해 9억 6천만원의 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지난해 6월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청년실업률이 1999년 이후로 역대최고치인 10.3%를 돌파하는 등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들의 눈에 노동조합은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단순히 몇몇 노조에서 벌어진 각종 비리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다. 30년이 지나는 사이에 노동조합이 기득권 세력이 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열 사람 중에 한 명만 조직되어 있는 노조 조직률 10%의 현실 속에서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데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합원들이 노조를 고충처리를 위한 문제해결사 정도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안의 적폐는 없을까?

    우리는 얼마 전 박근혜를 탄핵시켰다. 이제 구속 여부만 남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서 외친 것은 단순히 박근혜 퇴진만이 아니었다. 수십년을 유지해 온 각종 적폐의 청산을 통한 새로운 대한민국의 건설을 소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내부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안에 쌓여 온 적폐는 없는지 말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는 사회연대 전략을 수립하고 “조합원의 힘으로 새로운 10년을 연다”라는 기치 아래 새로운 모색을 하고 있다. 조합원들의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예산을 확보하고,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와 사회공헌활동을 체계적으로 진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올해는 노조 안에 ‘사회연대실’을 설치하고, 사회연대기금을 마련하여 이후 거점공간으로서 “함께하는 세상”(가칭)을 만들 구상이라고 한다.

    구체적으로는 1사업부 1 지역아동센터 자매결연을 추진하고, 중소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해하고 위험작업에 노출되어 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여 ‘찾아가는 건강버스’도 운영한다고 한다. 아파트 공동체 지원사업도 하고, 조합원들에게 사회연대실천 사업을 공모하고 사업비도 지원한다고 한다. 아직 완전한 모습은 아니지만 새로운 방향찾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와 비슷한 규모의 다른 노조에선 연말 성과급 700만원~1천만원 중 딱 한 번만 2만원씩 사회연대기금을 걷자는 제안을 심각한 반대에 부딪쳐 대의원대회에 상정조차 못했단 얘기도 들린다. 소위 좌파들의 반대가 컸다는 뒷얘기도 있다.

    우리 안의 적폐 청산이 먼저다

    광장에서 수많은 시민들을 만나며 그들에게 노조란 어떤 의미로 다가서고 있는지를 많이 반문해 보았다. 촛불 초기에 매일 광장을 지킨 것은 당시 파업 중이던 철도노조를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었다. 그 촛불이 있었기에 불길이 번져 나갈 수 있었다. 지난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저지를 위한 촛불과 달리 누구도 노동조합의 깃발을 내리라고 말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 이후 적폐 청산을 말하려면 한발 더 나가야 한다. 기득권자들의 횡포를 없애고자한다면 이미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우리를 먼저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우리에게 노조는 무엇이고, 왜 하는 것인지”를 자문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수많은 비정규노동자, 청년노동자들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며 살고 있음을 아프게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내부에 적폐가 있다면 당연히 없애나가야 한다. 그것이 박근혜 탄핵으로 시작되는 새로운 역사, 그 흐름에 함께 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충분조건이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전 정책실장. 정치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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