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의 인양,
    대한민국의 인양
    [기고] 각자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2017년 03월 27일 08:5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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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는 깊이 묻어둔 채 깨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그 앞에서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한참 동안 벅차오르는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렇게 2014년 4월 16일은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날짜가 되었다. 이제야 깊이 잠든 기억의 잔해들을 건져 올릴 수 있게 됐다.

    3년 전의 비극은 무력감과 분노를 동반했다. 저 안에서 살아있을지도 모를 생명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얼마나 한탄스러웠나. 국민들의 생명에 관심 없이 자신의 안위만을 고민하는 정권, 정치, 국가에 너무나 화가 났다. 그런 잔인한 풍경 앞에서 저마다의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국가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 역시 사라져 갔다. 어차피 국가의 공적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된 적은 없다. 혹여나 뒤통수를 맞지 않을까, 나에게 해를 미치지 않을까 불신하고 경계했을 따름이다.

    그렇기에 사회적 연대라는 개념은 이 사회에서 그다지 적절한 것이 아니었다. 다들 그저 이기적으로 살아남기에도 벅찼다. 가족 정도가 그나마 비루한 삶을 함께 버티는 관계였지만, 그조차도 많이 무너진 상태다. 결국 아무도 내 편이 없고 혼자 버티고 살아남아야 한다는 것만이 유일한 진실이 되었다.

    물론 그 와중에 능력 있는 누군가는 활로를 뚫어나갔다. 이해관계가 같은 이들이 모여 패거리를 만들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적 시스템을 전용했다. 청와대, 정치권의 계파, 관료, 재벌과 기업들 모두가 그랬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맥, 지연, 학연, 혈연으로 이어진 수많은 패거리를 형성하거나, 그 중 하나에 ‘선을 대는 것’을 성공이라 여겨왔다. ‘사회적 연대’나 ‘공정과 정의’ 따윈 현실의 생존 앞에서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했다. 세월호는 그렇게 달려온 한국사회의 끝이 어떤 지옥인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그렇다. 세월호야 말로 연대가 사라진 민주공화국의 무참한 결과였다. 그 어떤 공적 시스템도 세월호에 갇힌 생명들을 제대로 구해내지 못했고, 정부의 공보기능도 언론도 믿을 수 없게 되자 온갖 유언비어들이 범람했다. 그 모습은 ‘사회’라기보단 차라리 홉스의 ‘자연상태’에 가까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깊은 밤이야말로 곧 떠오를 태양을 예비하는 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세월호는 그야말로 전국민적 비극이었다. 모두가 아파하고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유가족에 비할 수야 없지만, 수많은 이들에게도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허나 그 아픔의 공유에서 새로운 연대의 가능성을 찾게 된다.

    신영복은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라고 말했다. 나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리본’을 가방에 달고 다니는 모습을 발견한다. 나 역시 리본을 달고 다니지만, 내가 내 리본을 보면서 울컥하며 기억을 재차 다짐한 적은 없다. 다만 스쳐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용하게 핀 노란 리본을 목격할 때마다 늘 작은 위로를 받았다. ‘저 사람도 잊지 않았구나, 나만 아픈 게 아니었구나.’ 그것은 개인을 넘어서는 집단적 연대의 감각이었다.

    그렇게 다들 잊지 않고 있었다. 3년의 시간을 넘어 ‘금요일에 돌아오도록’ 한 것은 촛불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를 인양한 것은 와이어가 바지선 따위가 아니라 촛불이다. 세월호의 아픔을 조용히 간직한 채 살아가던 시민들의 간절함이 촛불로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3년이란 시간동안 거리에서 눈물을 쏟으며 싸워온 유가족 없이 촛불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기실 4.19나 6.10과 같은 거리의 항쟁은 모두 어떤 무고한 죽음들이 그 계기였다. 그 역사를 통해 우리는 현대사를 관통해온 거대한 사회적 연대감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엔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었다.

    드디어 우리 사회는 시작 지점에 서게 됐다. 세월호의 인양 이후에도 수많은 거짓과 은폐 시도에 맞서야 한다. 공적 시스템을 농단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려 했던 ‘적폐’들을 청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경계할 것이 있다. 사적 이해관계의 패거리는 단지 재벌일가나 박근혜-최순실만의 것이 아니다. 혼자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에서 누구나 더러움 하나쯤은 묻히고 살아왔다. 적폐는 저 높이 있는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있다. 우리 사회가 청산해야 하는 건 바로 그것이다.

    그 과제의 핵심은 더 이상 혼자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각자 가방에 달린 노란 리본, 추운 겨울 손에 쥐었던 촛불을 잊지 않는다면 이는 충분히 가능하리라 믿는다. 그 기억이 사회적 연대의 감각을 늘 일깨워줄 것이다. 세월호가 침몰한 자리에서, 3년 후 세월호가 떠오른 바로 그 자리에서, 이제 새로운 민주공화국을 만들어나갈 때다.

    필자소개
    독자.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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