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도 조기총선?
유럽 좌우할 주요국가 선거 이어져
    2017년 03월 20일 05:3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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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의 네덜란드 총선에 이어 4~5월의 프랑스 댓헌, 9월의 독일 총선 등 유럽의 정치지형을 좌우할 주요 국가의 대형선거들이 올해 이어진다. 그리고 이탈리아에서도 조기총선 움직임이 존재한다. 조기총선이 아니더라도 선거는 내년 2월이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상원의원 315명을 100명으로 줄이고 권한도 대폭 축소하는 등 의회제도와 시스템을 대폭 개혁하는 2016년 12월의 헌법 개정 국민투표가 59%의 반대로 부결된 이후 조기총선이 전망되었지만 예정대로 내년 2월에 실시될 계획이다.

국민투표 부결 이후 자리에서 물러난 민주당 렌치 전 총리는 4월 중으로 당 대회를 개최해 늦어도 하반기에는 총선을 실시해 재집권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권과 총리 후보에 도전하는 안드레아 오를란도 법무장관 등 경쟁자들이 촉박한 일정을 내세워 거세게 반발함으로써 총선은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렌치 전 총리도 조기총선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으나 한발 물러선 상태다.

최근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40% 이상을 득표한 제1당에 의석수의 55%를 배정하는 선거법은 합헌, 40% 이상을 득표한 정당이 없을 경우 결선투표를 하도록 한 조항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또한 개정될 선거법으로 선거를 치르도록 함으로써 오성운동(M5S) 등 야당들은 즉각적인 조기총선을 요구해왔다.

야당들이 조기총선을 요구하는 이유는 국민투표 부결 이후 집권 민주당과 렌치 전 총리의 지지율이 급락한 반면, 오성운동의 지지율은 민주당과 접전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탈리쿰(Italicum)’이라고 불리는 선거법은 제1당에게 무조건 과반수 의석을 보장하는 것은 위헌이라는 문제제기를 받아왔다.

집권 민주당과 렌치 전 총리가 상원을 상징적인 수준으로 개혁하려는 시도는 하원과 상원이 동일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고질적인 제도 탓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하원은 제1당에게 55%의 안정적인 과반수 의석을 보장하지만, 상원은 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배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원에서 통과된 법률이 상원에서 수개월에서 임기가 끝날 때까지 표류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렌치 전 총리가 헌법 개정 국민투표를 추진할 당시만 하더라도 우호적인 여론이 반대보다는 더 높은 편이었다. 하지만 국민투표가 공식화되자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과 극우정당인 북부동맹(FN)이 헌법 개정을 반대하고 나서고 좌파세력과 마시모 달레마 전 총리 등 민주당 일부에서도 반대에 나서면서 유보하던 유권자들이 대거 반대 의사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의석 축소와 세비 삭감 등을 주도하면서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던 오성운동이 반대로 돌아선 것은 국민투표가 통과될 경우 차기 총선에서 민주당이 재집권할 것을 우려한 이유가 크게 작용했다.

또 정당들의 반대 운동만이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렌치 총리가 등장할 당시에는 젊고 열정적이고 변화를 대변하는 이미지로 상당한 지지를 보냈지만 고용 불안과 실업의 증가, 침체된 경제 등의 현실은 여전하면서 그 또한 기성 정치권의 한 명으로 인식된 측면도 크다.

2013년 총선의 승자는 제1당을 차지한 민주당이 아니라 오성운동이었다. 그동안 원외정당에 불과했던 오성운동은 630석의 하원의석 중에 109석, 315석의 상원의석 중에 54석을 차지하며 거센 돌풍을 일으켰다.

인기 코미디언 출신의 베페 그릴로가 만든 오성운동은 처음부터 원내진입을 목적으로 하는 정당으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기존 정치권에 신물이 난 국민들을 상대로 베페 그릴로는 블로그를 개설해 비판하는데 주력했다. 이를테면 온라인에서 정치폭로를 하는 것이 원래의 주 목적이었다. 베페 그릴로의 정치폭로는 단시간에 국민들의 인기를 끌었으며 이내 비판의 목소리는 광장으로 집결했다.

그릴로

베페 그릴로 오성운동 창설자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비판하는 수백만 명의 목소리들은 온라인을 넘어 광장으로 쏟아져 나왔지만 2008년 총선에서도 베를루스코니는 다시 3선의 자리에 올랐다. 분노한 베페 그릴로와 지지자들은 공공 수도, 인터넷 무료화, 공공 교통수단, 지속 가능한 개발, 생태 등 다섯 가지를 당의 전면에 내세우고 오성운동을 창당했다. 2012년 지방선거에서 몇몇 기초단체에서 승리를 거둔 오성운동은 베를루스코니의 전진이탈리아(FI)과 렌치의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이듬해 총선의 발판을 마련했다.

마테로 살비니가 이끄는 극우정당인 북부동맹과 마찬가지로 오성운동 역시 유럽회의주의를 당의 노선으로 하고 있다. 북부동맹이 유럽연합(EU) 탈퇴를 주장하는 반면, 오성운동은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것이 차이점이다. 유럽연합의 단일화폐인 유로(EURO)를 사용하는 대신에 이탈리아의 기존 화폐인 리라화로 돌아가자는 입장이다. 유럽연합 내의 자유로운 이동은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유럽연합 내에서 3번째로 최대 채무국인 이탈리아의 채무상환을 거부해야 한다는 것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그래서 이탈리아의 오성운동은 유럽에서 이민 문제를 매개로 급부상하는 극우파 정당과 동일시할 수는 없는 좌우를 넘나드는 정치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렇지만 극우파 정당들이 기존의 중도좌/우파 정당 모두를 기성체제에 안주하는 기득권세력을 규정하며 대중들의 불만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한 행태를 보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유럽의회 내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극우파 정당인 영국독립당과 함께 같은 정치그룹을 구성하여 유지하다가 철수하기도 했다.

하여튼 좌우를 넘나드는 포퓰리즘 행보에도 불구하고 오성운동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지난해 6월 실시된 로마시장 선거에서 오성운동은 최초의 여성시장인 바르지니아 라지를 당선시키는 등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에는 집권 민주당과 오차범위에서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어 내년 2월이든 올해 하반기든 오성운동이 집권할 것이라는 섣부른 예측도 나오고 있다.

기자회견하는 사상 첫 여성 로마 시장

로마시장에 당선된 오성운동의 바르지니아 라지

오성운동의 장밋빛 미래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단시간에 당이 급성장했지만 당의 아래로부터의 의사결정구조는 취약하거나 미비한 것이 단적인 예다. 베페 그릴로의 1인 체제와 대립하던 하원의원들의 탈당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오성운동이 베페 그릴로의 1인 정당”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를 당의 핵심가치 중에 하나로 내세우고는 있지만 정작 당의 주요결정은 베페 그릴로의 의견이 과도하게 관철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베페 그릴로의 목소리’가 당론으로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의식해 베페 그릴로는 자신이 직접 정치(의원)를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지만 차기 총선에서 1당에 오를 경우 총리에 오를 것이라는 언론들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있다.

당의 성장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공직에 진출한 부작용도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오성운동이 로마시장 선거에서 전면에 내세운 것은 ‘공공교통(트램)’과 ‘환경(청소)’이었다. 트램조차 정체가 일어나는 교통과 최악의 쓰레기청소 문제는 로마의 고질적인 문제였다. 하지만 라지 시장이 의욕적으로 임명한 환경국장이 다른 사건의 뇌물수수와 연관되어 경찰의 수사를 받은데 이어, 인사책임자인 또다른 최측근이 부동산개발 비리로 업자와 구속되는 일이 발생했다.

라지 시장은 국민투표 부결 운동을 전면에서 이끌며 스타 정치인에 떠올랐기 때문에 차기총선에 악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여러 차례 혐의를 받은 인물을 인사를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을 강행한 것도 당내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사태가 커지자 베페 그릴로는 로마시의 주요인사권을 당 지도부가 직접 행사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라지 시장이 반발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치경험이 부재한 인물들이 갑작스럽게 주요공직을 맡아 발생한 문제라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차기 총선에서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지만 민주당의 앞날도 순탄치만은 않다. 국민투표 부결 이후 재빠르게 측근인 파올로 젠틸로니에게 총리 자리를 사임한 렌치는 당대회를 통해 당을 조기에 수습하고 조기총선을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반대파들에 의해 저지된 상태이다. 당 지도부 회합을 통해 예정대로 선거를 치르기로 의견을 모았지만 또 다른 악재가 터졌다. 피에르 루이지 베르사니 전 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일단의 좌파들이 탈당해 신당을 결성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공산당 주류 세력을 배제하고 중도좌파를 중심으로 창당된 민주당은 베르사니가 당을 이끌었지만 집권을 하기 위해서는 더 우회전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유권자들 사이에서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30대의 젊은 피렌체 시장이었던 렌치가 이런 경향들을 대표해 베르사니를 2선으로 후퇴시키고 당을 장악한 후 총리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전후 최악의 이탈리아 경제침체를 해결할 기획이 없었던 렌치와 우파들은 유럽의 중도좌파들이 걸었던 길을 답습했다. 긴축과 노동조건의 후퇴로 민주당에서 등을 돌린 블루칼라의 틈을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오성운동이 파고 들고 있다. 베르사니는 민주당의 오류를 사과하고 중도좌파 정당의 재건을 약속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의 시선은 아직 싸늘하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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