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이념의
부활과 실천을 위하여①
[사회주의 토론] 노동계급의 과제
    2017년 03월 17일 11:1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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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 일본 등 전 세계적으로 극우파의 바람이 거세다. 현재의 자본주의 질서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극우파 득세의 원동력이다. 여기에는 기존의 주류 중도 좌/우파 정치세력들의 무능 또는 기존 질서 옹호에 대한 반감도 작용하고 있다.

진보진영과 좌파진영에서는 이런 현실과 노동자, 대중들의 불만이 어디에서 기인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근본적이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 특히 현실 분석과 이념적 전망에 대한 고민이 부재하거나 미흡하다. 오히려 현실성, 현실주의라는 이름하에 중도주의로 수렴되는 경향이 강하다. 급진적이고 근본적이고 이념적인 전망을 제시하고 대중과 결합하려는 노력에 대해서는 오히려 고립된다는 우려가 과잉된 상태이다.

이에 현재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와 흐름, 대중들의 불만과 분노가 형성되는 지점, 좌파와 사회주의 세력이 고민해야 할 이념적 전망과 현실적 전략, 세계의 진보적 흐름 속에서 연대하고 교류해야 할 실천 운동들 등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본격화될 필요가 있다. 

진보진영과 좌파세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현실주의와 중도주의가 아니라 혁신된 사회주의, 급진화된 사민주의, 대중들의 급진화라는 점을 명확히 하되, 이를 당위적으로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토론과 소통, 연구와 분석 속에서 확인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사회주의 토론>이라는 코너를 신설한다.

김승호 ‘전태일을 따르는 사이버노동대학’ 대표가 월 1회 정도의 시론을 게재할 예정이다. 자본주의의 위기와 모순, 사회주의와 사민주의 등 이념적 전망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공간이기에 누구라도 참여가 가능하다. 고민과 생각은 나누면 풍부해지고 넓어진다. 많은 이들의 적극적 참여를 부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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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그가 해결할 수 있는 과제만을 제기한다. 자세히 관찰해 보면 과제 자체가 그 해결의 물질적 제 조건이 이미 현존하거나 또는 적어도 생성과정에 있다고 간주되는 때에만 출현하기 때문이다.” _ 칼 마르크스,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1859) 서문 중에서

자본주의는 쇠퇴기 안에서 심각한 축적위기 즉 체제위기를 맞고 있다. 그러므로 자본주의 변혁/혁명을 노동계급의 당면과제로 적극 받아 안아야 한다.

자본주의는 지금 2008년 월가 투자은행 붕괴로 시작된 대불황의 늪에서 10년째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자본축적의 심각한 위기이다. 그러면 이 축적위기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어느 국면에서 일어난 위기일까? 자본주의 생산양식은 지금 자신의 생성·발전·쇠퇴·종말의 과정 가운데 어느 국면에 처해 있을까?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은 이 문제에 대한 인식에 따라 현재의 자본축적 위기에 대해 노동운동을 비롯한 사회운동의 대응 기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뉴욕 증권거래소

뉴욕 증권거래소의 모습

상승·발전 국면의 자본축적 위기라면 축적체제의 이러저런 개혁을 통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쇠퇴 국면에서 일어난 위기라면 단순한 자본축적의 위기가 아니고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위기로 파악되며, 혁명과 변혁을 통한 다른 생산양식으로의 이행을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말은 상승·발전하는 국면에서는 자본주의 변혁과 혁명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는 뜻은 아니다. 더욱 적극적이고 더욱 대담하게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자본주의가 상승·발전 국면에 있던 19세기에 마르크스는 사회주의 혁명을 주장하고 추진했다.

그가 1848년 프랑스와 독일의 혁명이 실패한 이후 1850년경에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대한 연구에 몰두한 것은 자본주의가 성숙하기 전에는 사회주의로의 변혁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혁명을 이끌 이론을 가지지 않고는 혁명을 성공시키기 어렵다고 보고 그 작업에 몰두한 것이다. 그러했기 때문에 그는 1850년 말경 경제공황이 다가오자 혁명을 촉진하기 위해 서둘러 정치경제학과 자본주의 생산양식을 이중적으로 비판하는 책을 발행했다. 그리고 1860년대에는 제1인터내셔널을 통해 혁명적 실천에 뛰어들었다.

현재의 위기는 일반적으로 우연적인 요인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고유한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이해된다. 즉 전 세계적 범위에서 과잉축적/과잉생산과 과소소비의 불균형이 구조화되고 심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불균형이 심화된 것은 지난 한 세대 동안 신자유주의 세계화 정책이 추진된 결과다. 그 신자유주의 세계화 추진은 또 2차 세계대전 이후 채택된 케인스주의/신식민주의라는 노·자 간, 제국주의 모국과 신민지 종속국 간 타협 모델이 1970년대에 들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다.

즉 한편으로는 자본이 과잉 축적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고도화되면서 이윤율 저하 경향이 나타나자, 이를 극복하려고 착취도 강화(신자유주의와 정보화)와 자본·상품 교역의 전면적 확대(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통한 상쇄 정책을 강하게 추진한 데 따른 것이다.(1)

그러면 이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의 역사 안에서 어디쯤 위치하는가? 이 착취·축적 패러다임은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따라서 자본주의가 곧 진보라고 주장되던 상승국면에 해당되지 않는다. 노동자·민중은 대처나 레이건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진보적이라고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적이고 나아가 반동적이라고 생각한다. 케인스주의 패러다임이 지배적이던 황금기까지만 해도 자본주의가 진보적이라는 인식이 다소 존재했지만 신자유주의 시대에 와서는 그런 인식은 사라졌다. 자본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신자유주의를 진보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주 예외적이다. 그런데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일색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는 더 이상 진보적인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된다.

자본주의가 진보적이라는 인식은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들면서 깨지기 시작하여 제1차 세계대전, 1930년대 대공황,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크게 무너졌다. 이 시기에 접어들면서, 자본주의 생산양식이 생산력의 측면에서 계속 힘차게 발전하면서 생산관계의 측면에서도 사회적으로 진보적이어서 폭력에 의거하기보다 헤게모니에 입각하여 노동자와 인류를 지배하던 그런 시기가 종언을 고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는 쇠퇴기에 접어들었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레닌은 그 유명한 『제국주의론』(1916)에서 자본주의가 최고 단계(the highest stage)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의 앞날에는 쇠퇴하고 소멸하는 일만 남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런 인식은 노동자나 진보적인 지식인들에게 많이 읽히는 책인, 미국의 유명한 노동운동가 레오 휴버만의 대공황 한 가운데인 1936년에 나온 책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Man’s Worldly Goods)』에서도, 또 2차 대전 직후인 1946년에 나온 영국의 유명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모리스 돕의 책『자본주의 발전 연구(Studies in the Development of Capitalism)』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런 자본주의 쇠퇴론은 다소 주춤했다. 자본주의는 국내적으로 국제적으로 대폭적인 개혁을 했다. 국내적으로는 노동계급에게 소득분배를 양보하는 케인스주의 개혁을 했고, 국제적으로는 식민지에게 형식상 독립을 허용하고 약간의 자본주의 발전을 허용하는 신식민주의 개혁을 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는 1970년대 중반까지 30여 년간 황금기를 맞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자본주의가 아직은 쇠퇴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생겨났고, 자본계급은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를 통해 진보성을 회복하고 지속될 것이라는 이데올로기를 확산시켰다. 이들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주의 이념의 종언을 선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황금기도 한 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안으로는 착취의 개선과 폐지를 요구하는 노동계급의 치열한 투쟁을 겪었으며(’68혁명!) 밖으로는 신식민지 나라들의 민족해방운동과 경제·자원 민족주의 도전을 맞아야 했다. 이처럼 수정자본주의의 진보성은 한계가 많았고 착취·수탈을 당하는 노동계급과 식민지 약소민족의 저항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자본의 축적을 제한했다. 이윤율은 저하했고, 투자 기회는 축적된 화폐자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것이 19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생경한 형태의 축적위기를 낳았고, 이 축적위기에 대한 돌파구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였다. 그러므로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자본주의가 수정 자본주의를 통해 계속 상승·발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단계에 접어든 이래 장기적으로 계속 쇠퇴하고 있다는 것을 재확인시켜준 것이었다.

그 신자유주의형 쇠퇴기가 또 한 세대에 걸친 다음에 찾아온 것이 이번 경제 대공황과 대불황이다. 쇠퇴기에 찾아온 위기이므로 이 위기 속에서 자본주의의 최종적(terminal) 소멸이 진행될 가능성이 많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아직 충분히 쇠퇴기에 접어들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지만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지 못하고 또 지속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를 수 있다. 선진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의 쇠퇴가 오래, 그리고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일반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 또 그런 영향을 받아서 쇠퇴의 징후가 더한 후발자본주의 나라들에서도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광범하게 일어날 수 있다. 중남미에서는 10여 년 전부터 이미 그런 움직임이 겉으로 드러나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적 조건 하에서 사회주의 경제가 세계적 분업으로부터 배제되지 않고 상승 발전할 수 있다. 게다가 지난 시기 사회주의 혁명의 실패로부터 얻은 교훈도 커서 성공을 도울 수 있다.

자본주의

2009년 영국에서의 G20 반대 시위. ‘자본주의는 고장났다’는 슬로건 (출처: 노동자 연대)

최근에 접한 한 책 『자본주의의 탄생(The Birth of Capitalism)』에서도 자본주의가 지금 쇠퇴기에 접어들었는지가 논의된다.(2) 이 책에 따르면 기 브와(Guy Bois)라는 프랑스 역사학자는 신자유주의 실험이 여전히 득세하고 있던 2000년에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징후로 바라봤다고 한다. 기 브와는 중세 후기의 봉건제 위기(feudal crisis)에 대한 설명의 결론 부분에서 그 당시의 봉건 위기와 지금의 자본주의 위기를 심도 있게 비교했으며, 그런 비교를 통해 역사적 조망에 입각하여 현 상황의 엄중함을 제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현 상태는 중세 후기의 위기와 같이 지속되는 대량 실업, 증가하는 불안정성, 폭력 및 사회적 한계화(marginalization)로 특징지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그 두 시대는 모두 기존 상층계급 엘리트들이 공모하여 만들어내는 문화영역에서의 비합리성의 폭발이 주요한 특징을 이룬다고 한다.(3)

한편, 자본주의 역사를 패권 교체의 역사로 설명해 온 세계체제론의 저명한 학자인 지오바니 아리기(Giovanni Arrighi)도 근년에 펴낸 저서에서 새로운 견해를 내놓았다. 브와와 비슷하게 아리기는 그 동안 최근의 자본주의의 금융적 국면의 등장을 새로운 패권 세력의 출현을 예비하는 쇠퇴의 징후로 보았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일본이 새로운 패권자로 등장할 거라고 예측했었다.(『The Long Twentieth Century』, 1994) 그러나 근년의 저서『북경에서의 아담 스미스(2007)』에서 그는 일본 대신 중국을 새로운 패권자로 내다봤다.

그리고 보다 중요하게, 그는 지금 단지 미국 자본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위기에 처했음을 인정했다. 그는 중국이 새로운 패권자가 되는 이유로, 중국이 새롭고 우월한 자본주의 패권 형태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중국이 서구의 에너지-자본 집약적인 경제들에 견주어서 시장에서 더 경쟁적일 뿐만 아니라 더 지속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즉 생태적 위기가 서구의 경제들을 공룡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향후에도 전 지구적 시장경제는 지금과 다른 형태로 지속될 수 있겠지만 자본주의와 정치적 패권 체제에 기초한 시장경제는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국이 비자본주의적으로 나아갈 거라는 아리기의 예측은 에누리를 해서 들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예측은 현재의 자본축적 위기가 단지 낮은 이윤율과 수요 부족 문제에서 발생한 단기성 위기가 아니라 에너지 부족과 생태·환경적 지속가능성 및 전 지구적 통치가능성 등에서의 위기를 포함한 보다 장기적인 위기라는 점에 대한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4)

그리고 이상에서 살펴본 것이 우리가 변혁/혁명 이념으로서 사회주의에 매우 큰 관심을 가져야하는 첫 번째 이유다.

<각주>

1. 이번 경제대공황과 대불황에 대한 본격적인 인과분석은 다른 기회에 하기로 하겠다.
2. Henry Heller, The Birth of Capitalism: A twenty-First-Century Perspective, 2011 by Pluto Press.
3. 위의 책 246쪽.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비합리성을 예찬하는 문화의 전형적인 경우다.
4. Adam Smith in Beijing: Lineage of the Twenty-First Century, 2007, Verso. 위의 책 287쪽에서 재인용.

필자소개
전태일노동대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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