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총선,
    극우파 강풍 한풀 꺾여
    제1당 예상 자유당, 2당 겨우 유지
        2017년 03월 16일 02: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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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의 총선은 4월 프랑스 대선(1차선거 4월, 결선은 5월), 9월의 독일 총선과 함께 유럽의 정치적 향방을 결정하는 3대 선거로 불린다. 또 이 세 나라에서는 극우파 포퓰리즘 정당들의 광풍이 거세다. 네덜란드 자유당, 프랑스 국민전선,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 극우파의 기세를 확인하고 유럽 정치지형의 변화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첫 선거가 15일(현지시간) 치러진 네덜란드 선거다. 이 선거에 대해 네덜란드에 거주하고 있는 최현주 씨가 글을 보내왔다. 개표가 최종 완료되지는 않았지만 선거 후 출구 조사에서 예측했던 자유민주연합 30~33석, 자유당 19~20석, 기독민주당 19석, 민주66 19석, 녹색좌파 14~16석, 사회당 14석, 노동당 9석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급박한 기고 부탁에도 글을 보내준 최현주 씨에게 감사 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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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는 촛불혁명이 진행되었던 지난 몇 달간, 유럽의 네덜란드에서는 극우파가 네덜란드의 제1당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의 먹구름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작년 여름 브렉시트로 시작된 우파 포퓰리즘의 바람은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트럼프의 당선으로 태풍으로 변했고, 이 태풍이 다시 대서양을 건너 유럽 대륙을 휩쓸지 모른다는 우려가 유럽 시민들의 머리를 누르고 있었다.

    극우파의 바람은 이슬람 극단주의의 테러사건이 터질 때마다 강도가 높아져왔다. 2015년 11월의 파리 테러 사건과 2016년 3월의 브뤼셀 테러사건, 12월의 베를린 트럭 돌진사건 등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위협이 유럽의 중심까지 위협하고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었고, 2000년대 초반부터 반 이슬람의 기치를 들어온 히어트 빌더스(Geert Wilders)가 이끄는 네덜란드 자유당이 주간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리는 지경까지 이르게 했다.

    빌더스는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네덜란드 3대 정당 중 하나인 자유민주연합 VVD의 촉망받는 젊은 정치인이었다. 그러던 2006년 그가 자유민주연합을 뛰쳐나와 자유당을 창당하고 당수가 되었다. 네덜란드 내 모로코 출신 이민 2-3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영향을 받아 급진화되고 이에 대한 본토박이 백인들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위협을 느끼면서 빌더스에 대한 지지도 점점 강해졌다.

    그가 이끄는 자유당은 네덜란드 네오 나치 집단의 지지를 받는 유일한 제도정당이 된다. 빌더스는 이런 극우단체와는 선을 그었지만 모로코 청년들, 이슬람, 폴란드 등 동유럽 이민자, 아랍과 아프리카 출신 난민, 남유럽의 그리스-이태리-스페인-포르투갈에 대한 가시돋힌 비판은 극우세력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는 브렉시트가 시작되기도 전에 네덜란드의 유로권 탈퇴, 국경 철통 감시, 네덜란드 체류가 거부된 난민에 대한 강제추방, 경제 후진국에 대한 개발지원금 폐지 등 대중들에게 화끈하게 들리는 주장을 먼저 해왔다.

    그런 그의 자유당이 여론조사 결과대로 제1당이 된다면 우파 정당들 몇 개를 끌어들여 네덜란드의 수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국민투표로 유럽연합 탈퇴를 밀어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에 많은 유권자들이 동조한다는 것 역시 영국에서 브렉시트 지지와 마찬가지로 네덜란드 사회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다.

    네덜란드는 중세 때부터 상업이 발전하였고, 중세 카톨릭으로부터 핍박 받던 신교도들이 핍박을 피해 도피하는 도피처였고 유대인들의 안전한 터전이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하여 신교도의 나라를 이루었고 타협의 전통이 강하며 60년대부터 유럽에서 가장 개방적인 문화를 키워왔던 나라였다.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알 듯이 안락사 인정, 매춘 합법화, 연성 마약 일부 합법화, 동성결혼 등이 다른 나라들 보다 한 발 앞서서 이루었었다. 그런 네덜란드에 빌더스 같은 정치인이 주목을 받는다는 것은 네덜란드 사회의 토박이 백인 대중들의 불만과 불안이 그만큼 팽배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달 전부터 선거가 본격화되면서 그는 제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10년 넘게 이슬람에 대한 모욕을 일삼은 탓에 언제나 암살의 위협에 놓여 있어서 국왕이나 총리보다 몇 배 더 많은 경호원의 보호를 받고 있고, 삼엄한 경비를 받는 안전 은신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그는 다른 정치인들처럼 전국을 누비며 유권자를 만나거나 네덜란드 선거의 꽃인 정당 당수 토론회에도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에 더해 선거 직전인 지난 주말 터진 터키-네덜란드 정부의 갈등 때문에 결정타를 맞았다. 터키는 작년 여름에 에르도간 대통령을 축출하기 위한 쿠데타가 실패하고 그후 에르도간 대통령이 반대파에 대한 대규모 숙청을 벌이고 개헌까지 추구하고 있는 복잡한 정치상황 속에 있다. 에르도간 대통령은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에 모여 사는 터키 이민사회의 지지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장관 두 명을 보내 헌법 개정 국민투표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했는데 네덜란드 정부는 이를 막았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하마터면 터키 대사관의 무장한 대사관 직원들과 네덜란드 경찰의 총격전이 벌어질 상황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터키 정부는 자기 나라 장관과 터키 출신 이민자의 만남을 막은 네덜란드 정부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였다. 양국 간 관계가 며칠 사이에 험악한 말다툼이 이어지고 악화되는 가운데 빌더스는 집권당의 마르크 루터 총리에게 터키에 대한 더 강경한 자세를 보이라고 비판했다. 네덜란드 토박이 백인들의 반 터키 정서를 이용해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여론은 마르크 루터 총리가 양국의 갈등을 적절히 관리했다고 보았고, 오히려 빌더스가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무책임한 선동을 한다고 보았던 것이다.

    결국 빌더스의 우파 포퓰리즘 바람은 한 풀 꺾였고, 3월 15일 총선에서 집권 제1당인 자유민주연합은 지난 2012년 총선에 비해 약 6%의 표를 잃었지만 제1당 자리를 지켰다. 빌더스는 바람이 한풀 꺾였지만 지난 총선보다 2% 정도 표를 더 얻었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패배자는 제2당인 사회민주주의 계열의 노동당이다. 총 150석의 하원에서 38석을 가지고 있는데 출구조사 결과 무려 29석을 까먹고 9석의 소수정당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영국 노동당처럼 2차대전 이후 늘 제1당 자리를 다투던 좌파의 대표주자가 역사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네덜란드

    개표율 77% 상황에서의 각 정당의 득표 (위부터 자유민주연합. 자유당. 기독민주당. 민주66. 사회당. 녹색좌파. 노동당 등)

    네덜란드는 입헌군주국인데 의원내각제를 하고 있고, 영국과 달리 지역구 없이 100% 정당명부제를 취하고 있다. 거기에 근래에 와서 정당들이 난립하여 10여개의 정당이 하원에 진출해 활동 중이다. 이런 다수당 체제에서도 노동당은 암스테르담과 로테르담 같은 대도시에서 유권자 1/3 정도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이번 선거에서 6% 대의 지지로 곤두박질쳤다. 선거 개표 방송은 계속 노동당의 치욕적인 패배의 원인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개표방송에 나온 정치인이나 언론인, 정치평론가들은 모두 현재 자유민주연합-노동당의 연정에서 자유민주연합의 정책에 끌려 다니면서 노동당의 철벽 지지자들이 모두 등을 돌렸다고 평가했다.

    노동당은 왜 이렇게 망하게 되었을까? 가장 큰 원인은 노동자 없는 노동당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좌우 연정에서 경제정책은 우파 정당에 맡기고, 우파 정책으로 인해 발생하는 빈부격차나 사회적인 갈등을 완화해주던 복지제도마저 후퇴하면서 노동당은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하는 우를 범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에 계속 지속되어온 그리스 위기, 남유럽 위기 등에서 네덜란드는 나름 선방했지만 복지제도는 계속 후퇴해왔고 중산층은 줄어들고 빈곤은 늘었다. 부자들의 지갑을 열도록 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매기겠다는 공약은 공염불이 되었고, 경제 회복의 열매는 고소득자들이 독차지하고 있다.

    한편 노동당에 등을 돌린 지지자들은 노동당보다 근본에 더 충실한 사회당으로 지지를 돌리지 않았다. 노동당 이탈표는 녹색계열인 녹색좌파당이나 자유주의 좌파인 D66, 중도 성향의 기독민주연합이나 소수 정당으로 흩어졌다.

    2차대전 이후 네덜란드 정치의 주인공 역할을 했던 노동당은 앞으로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노동당이 다시 살기 위해서는 과거 자신들이 일구었고, 현재 자신들이 무너뜨린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이 어디서부터 잘못 꼬였는지 되돌아보고 변화한 시대에 맞게 사회민주주의의 핵심을 다시 살려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하면 노동당은 한편으로는 녹색좌파당이나 D66같이 시대 변화에 자신을 적응시켜온 중도 성향의 정당에게 밀릴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사회당 같이 일상적인 대중정치활동으로 다져진 좌파 정당에 밀릴 것이다.

    밤늦게까지 선거 개표 중간 발표를 보니 이번에도 10개 이상의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고 적어도 4개 정당이 연합을 해야 과반수인 76석(전체 의석은 150석)을 넘는 다수파 연정을 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극우파의 약간의 득세, 우파 자유민주연합의 제1당 수성, 중도정당인 기독민주연합의 승리 등을 볼 때 네덜란드는 우파 성향의 연정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고소득자들에게 유리한 정책은 계속 갈 것이고, 복지제도는 점점 쇠퇴할 것이다. 좌파 정당들에게는 야당으로서 의사당과 사회 곳곳에서 우파에 맞서야 할 것이다. 노동당이나 사회당, 녹색좌파당 등 좌파의 정체성을 가진 정당들이 불리한 지형에서 자기 혁신을 통해서 다시 대중의 사랑을 받는 정치세력이 되 주길 기대해본다.

    필자소개
    네덜란드 거주 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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