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기업·학교·정부 공동책임
    학생 신분 이유로 노동부 등 현장실습생의 노동권 외면해
        2017년 03월 16일 01:1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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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달 23일, 특성화고 콜센터 현장실습생이 감정노동과 연장노동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다. 감정노동, 청소년·여성노동, 방송통신업계 비정규 노동, 저임금 노동, 재벌일가의 일감 몰아주기 등 모든 노동적폐가 총집합된 참사였다.

    ‘콜센터 현장실습생 참사’와 같은 일은 지난 7년간 1년에 한 번 꼴로 벌어졌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이들을 값싼 노동력으로 취급하는 기업과 취업률에만 혈안이 된 학교, 직무유기 수준으로 수수방관하며 부처 간 책임전가만 바쁜 정부, 여론이 쏠리지 않는 사안엔 눈길도 주지 않는 국회에 책임이 있다.

    LG유플러스고객센터(LB휴넷)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와 유가족,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등은 15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회견 참석자들은 침통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고 유가족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몇몇 의원들도 눈물을 보였다.

    이날 기자회견은 이미 고인이 돼버린 홍 모양을 애도하는 묵념으로 시작됐다.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인 이학영 의원은 “어른들의 잘못으로 수많은 젊은 청년들이 산업 현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어른으로서 면목이 없다”며 침통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이 의원은 “학교는 전공과 관련 없는 열악한 실습현장으로 우리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고, 정부는 방관했고 회사는 적은 비용으로 힘든 업무를 맡기며 이윤만 추구하고 있다”며 “실습생 신분에서 정규직이 됐는데도 자살을 선택하고 있는 상황이 세계 GDP 순위 11위 경제대국인 대한민국 청소년의 노동현실”이라고 말했다.

    콜센터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관련 기자회견(사진=이학영 의원 페북)

    특성화고 현장실습제도는 졸업 전 학생이 취업하고자 하는 회사의 업무를 체험하며 향후 진로 구체화하기 위한 취지에서 만들어졌다.

    홍 양은 특성화고에서 애완동물학과를 전공했다. 졸업 후 애견센터 취업하거나 애견센터 창업을 고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현장실습으로 투입된 곳은 콜센터 내에서도 감정노동의 강도가 가장 세 ‘욕받이’ 부서로도 불리는 해지방어부서였다. LG유플러스 가입을 해지하려는 고객을 설득해 가입을 계속 유지하게 하는 일이다. 여기에 더해 해당 통신사가 판매하는 상품까지 판매해야 했다.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야근을 해야 했고, 상품을 많이 팔지 못하면 상사로부터 질책을 받고 나머지 공부를 해야 했다.

    지난 2015년 감사원이 발표한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 자료에 따르면, 파견형 현장실습을 실시한 학생 중 20.5%가 전공과 무관한 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했다. 당시 감사원은 실내디자인건축 전공학생이 전화상담 전문 업체에서 실습했던 점을 지적하며 교육부에 현장실습을 전공과 연계시키도록 요구한 바 있다.

    현장실습생은 1일 7시간 근무, 합의 하에 1시간 연장근무를 허용한다. 회사의 출퇴근 기록에도 8시간만 근무한 것으로 돼있지만 홍 양이 부친과 나눈 문자메시지를 보면 그 이상의 노동을 강요받아온 것을 알 수 있다.

    임금 문제도 있다. 고용노동부는 현장실습생이 회사와 현장실습 표준협약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이 계약에 따르면 홍 양은 월 임금 160만 5천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회사는 수습기간 110만원, 수습이 끝나면 130만 원 정도의 임금을 주는 내용의 이면계약 형식의 근로계약서를 따로 만들었다.

    연장노동과 표준협약보다 낮은 임금 지급은 직업교육훈련촉진법 위반은 물론 시간외수당조차 제대로 지급되지 않은 불법이다. 공대위는 회사 내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던 모든 노동자들에게 이러한 이면계약이 동일하게 적용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학교에서 현장실습 계약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나온 건 단 2번이다. 그 마저도 담임교사는 현장에서 실습계약이 잘 지켜지고 있다고 기록했다.

    공대위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한 학교와 비용절감 차원에서 실습생을 활용하려는 기업의 이해관계 탓에 현장실습은 여전히 ‘저임금-장시간 일자리 조기취업’에 머물고 있다”며 “기업과 정부가 가해자고, 고인은 이 같은 제도의 피해자”라고 비판했다.

    을지로위 소속 유은혜 의원도 “교육부가 취업률이라는 양적인 결과만 가지고 학교를 평가한 것이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 양의 아버지는 기자회견이 진행 되는 내내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듯했다. 국회에 정부에 진상규명과 제도 개선을 촉구한다는 발언을 하기 위해 마이크 앞에 섰을 때에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할 정도였다.

    그는 “어린 딸은 자기가 살림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돈을 벌어서 애견센터를 차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딸은 5개월 만에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 왔다”며 “딸이 그렇게 된 후로 집안은 쑥대밭이 됐다. 그런데 회사나 교육청, 누구하나 아무런 말이 없다”고 말했다.

    희망연대노조 위원장인 박대성 공대위 공동대표는 “이 사건과 관련된 정부 부처와 회사는 유가족과 고인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도 없었다. 모두 개인적인 죽음이라고 치부하고 있다”며 “진심어린 사과부터 하는 것이 이 사건 해결의 출발”이라고 말했다.

    공대위는 LB휴넷은 물론 원청인 LG유플러스가 지금이라도 홍 양에 대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과 공식적인 사과, 재방방지대책을 제시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공대위는 “학생 신분의 노동자라는 이유로 현장실습생의 노동권을 외면해온 고용노동부의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하고 교육부는 전공 불일치 문제 등 감사원의 조치사항이 학교 현장에서 원활하게 이행되지 않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헸다.

    유은혜 의원은 “이 많은 학생들이 현장실습에서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은 어른들의 책임이고 재발하지 않도록 을지로위는 관련 상임위 위원들이 각각의 관련 부처와 원인을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교문위에서도 관련 부처와 현장 실습생의 실습여건 개선을 포함한 법적 기준과 환경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점검하고 대책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학생이 죽음에 이르기 까지 과정에 사측과 교육부의 무성의한 태도에 대해서도 을지로위 차원에서 점검하고 유가족에게도 진정한 사과하도록 노력하겠다”고도 했다.

    이날 회견엔 이학영·강병원·유은혜·문미옥 의원 등이 참석했다. 을지로위는 국회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등 관련 상임위 위원들을 중심으로 ‘LG유플러스 실습생사망사고 대책팀’을 구성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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