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빼앗긴 우리 삶에도 봄은 오는가
환호 속 오열 세월호 유가족들 “왜 우리만 안 됩니까”
    2017년 03월 10일 03:49 오후

Print Friendly

혹한이 덮쳤던 광장에 봄이 왔다.

지난해 10월 29일,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농단이 만천하에 드러난 시기였다. 그리고 매주 시민들은 박근혜 탄핵을, 재벌 총수 구속을, 적폐청산을, 새로운 대한민국을 염원했다. 4개월간 광장엔 눈발이 날렸고 날씨는 영하까지 떨어졌다. 세찬 바람에 촛불이 위태롭기도 했지만 시민들은 꽁꽁 언 손으로 지켜냈다.

오전 9시, 출근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이었지만 안국역으로 향하는 지하철엔 사람들로 북적였다. 태극기를 손에 든 일부 시민들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는데”, “요즘 애들이 그렇게 된 건 전교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민주노총, 전교조, 정의당의 선동”이라며 촛불집회 자체를 폄하하는 말도 나왔다. 가방에 세월호 리본을 단 몇몇 시민들은 그들의 말을 가만히 듣고 있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탄핵 반대 집회와 탄핵 찬성 집회의 장소를 일러주는 벽보가 역사 곳곳에 붙어있었다. 탄핵 찬성 비상국민행동은 왼쪽으로, 탄기국 집회는 오른쪽으로, 벽보 앞에 선 시민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헌재 앞으로 향했다.

화살

이하 사진은 유하라

오전 10시, 탄핵 찬성 비상국민행동에 나선 시민들은 부부젤라를 불고 꽹과리와 북을 쳤다. 탄핵 인용을 확신하는 듯했다. 차벽 뒤로는 탄핵 반대 집회 측의 애국가 소리가 들렸다. 추위가 물러가고 봄이 온다고 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옷깃을 부여잡으며 찬바람을 막았다.

헌법재판소가 선고를 내리기로 한 오전 11시가 임박하자, 부부젤라와 꽹과리 소리가 멈췄다. 정확히 11시가 되고 “지금부터 2016헌나1 대통령 박근혜 탄핵사건에 대한 선고를 시작하겠습니다”라는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선고가 시작되자 거리는 고요해졌다. 탄핵 인용 예상이 압도적이었지만, 만에 하나의 불안한 마음으로 시민들은 퇴진행동 측이 설치한 전광판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부부젤라

1

2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주요 쟁점 대부분 인정
“박근혜, 최순실의 이권 추구를 도왔다”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 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이정미 대행은 이러한 말을 시작으로 선고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우선 헌재는 탄핵소추안의 가결 절차에 대한 박 대통령 대리인단 측의 문제 제기를 모두 배척했다. 탄핵 사유와 관련해, 박 대통령이 ‘비선실세’ 최순실씨와 함께 국민에게 부여 받은 권한을 사적으로 이용해 이익을 취했다고 판단했다.

숨죽이며 이정미 대행의 입을 바라보던 시민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헌재는 각종 인사자료, 국무회의자료, 대통령 해외순방일정, 미국 국무부장관 접견자료 등 공무상 비밀을 담고 있는 문건을 최씨에게 전달하고 최씨의 손을 거쳐 수정됐고 조정됐으며, 공직 후보자에도 최씨가 개입했다는 점 모두를 인정했다.

박 대통령과 최씨 주도로 대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한 돈을 받고 운영했으며 이를 통해 사적 이익을 취했다고도 판단했다. 이 밖에 최씨가 더블루케이 등을 설립해 이익을 취하는 데에 박 대통령이 도왔다는 주장도 받아들였다.

최순실-박근혜의 국정농단의 주요 쟁점에 대해 모두 인정한 것이다.

14

16

17

19

탄핵1

헌재 재판관 전원일치 박근혜 파면 결정…샴페인 터뜨리며 ‘환호’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
“대통령, 재임기간 전반에 지속적으로 헌법과 법 위배…사실 은폐”

“피청구인의 일련의 언행을 보면 법 위배행위가 반복되지 않도록 할 헌법수호의지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중략)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정미 대행이 22분간의 선고문 낭독을 마치며 이 같이 말하자, 눈물과 환호로 뒤덮였다. 모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만세를 불렀고, 멈췄던 부부젤라와 꽹과리 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길에 누워 서로를 부둥켜안고, 준비해온 샴페인을 터뜨렸다. 어떤 이는 고개를 숙인 채로 어깨를 흔들며 한참 동안 눈물을 훔쳤다. 지난 4년간에 고통과 절망을 조금이나마 씻어내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순간이었다.

이 대행은 “헌법은 공무원을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 규정하여 공무원의 공익실현의무를 천명하고 있다”며 “피청구인(박근혜 대통령)의 행위는 최서원의 이익을 위해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을 남용한 것으로서 공정한 직무수행이라고 할 수 없다으며, 헌법, 국가공무원법, 공직자윤리법 등을 위배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대통령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권한을 행사하여야 함은 물론, 공무 수행은 투명하게 공개하여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그런데 피청구인은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 대행은 “피청구인은 미르와 케이스포츠 설립, 플레이그라운드와 더블루케이 및 케이디코퍼레이션 지원 등과 같은 최서원의 사익 추구에 관여하고 지원했다”며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다. 이러한 피청구인의 위헌․위법행위는 대의민주제 원리와 법치주의 정신을 훼손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퇴진행동 법률팀장인 권영국 변호사는 탄핵 선고 직후 긴급 기자회견에서 “오늘은 마음껏 기뻐하자. 헌법과 법률의 엄중함으로 이 나라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국민이 일으켜 세웠다. 승리했다. 우리는 행진할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탄핵 인용됐지만…세월호 참사 방치한 책임 탄핵 사유론 거부
환호 속 오열하는 세월호 유가족들 “왜 우리만 안 됩니까”

탄핵 인용 결과에 모두가 환호하는 사이, 떠나간 아이들의 얼굴이 새겨진 현수막을 두른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들은 숨죽인 채 흐느꼈다. 헌재가 세월호 참사 당시의 박 대통령의 직무유기 등을 탄핵 인용 사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재는 박 대통령의 ‘정치적 무능’과 ‘정책결정상 잘못’, ‘직책수행의 불성실성’ 등이 소추 사유가 될 수 없다고 결론 냈다.

이 대행은 “세월호 침몰사건은 모든 국민들에게 큰 충격과 고통을 안겨 준 참사라는 점에서 어떠한 말로도 희생자들을 위로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피청구인은 헌법상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을 성실히 수행할 의무를 부담하고 있다”면서도 “그런데 성실의 개념은 상대적이고 추상적이어서 성실한 직책수행의무와 같은 추상적 의무규정의 위반을 이유로 탄핵소추를 하는 것은 어려운 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법재판소는 이미, 대통령의 성실한 직책수행의무는 규범적으로 그 이행이 관철될 수 없으므로 원칙적으로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정치적 무능력이나 정책결정상의 잘못 등 직책수행의 성실성 여부는 그 자체로는 소추사유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18

세월호 유가족들 모습

언제나 또렷하고 당당한 목소리로 ‘세월호 진실을 밝혀내자’, ‘힘을 모아달라’고 말해왔던 예은이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도 이날은 서럽게 오열했다.

유 집행위원장은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도대체 왜, 왜, 왜 세월호만 안 되나”라고 말했다.

그의 말 한 마디에 숨 죽여 훌쩍이던 유가족들은 일제히 소리 내어 울었다. 유가족들은 서로를 달랠 기운도 없이 오열했다. 탄핵 인용에 소란스러웠던 거리도 일순간 조용해졌다.

유 집행위원장은 “왜 우리 애들만 안 되나. 우리 애들 왜 죽었는지, 왜 죽였는지 그거 하나만 그거 하나만 알려달라는데 왜 왜 우리 애들만 안 되나. 그 시간에 박근혜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하느라고 우리 애들을 죽였는지 제발, 제발 알려 달라. 나 죽기 전에 그거 하나만 알고 죽게 해달라”는 호소로 발언을 끝마쳤다.

“이제, 여름을 준비하자”

청와대로 향했다. 헌재 앞에 모였던 약 1만명의 행진대오는 광화문 광장을 거치면서 2만명 까지 불어났다. 행진대오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서북청년단 조끼를 입은 한 남성이 행진 대오에 뛰어들며 잠시 혼선이 빚어지긴 했으나 시민들은 이 남성에게 “위험하니 다른 곳으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다시 청와대로 발길을 옮겼다.

개별 시민들은 주최 측의 방송차량을 앞서 나가며 “서민의 삶을 되찾자”, “탄핵은 시작이다” “박근혜는 감옥으로”등의 구호를 외쳤다. 청와대에 가까워지자 시민들은 걸음을 재촉하며 임을 위한 행진곡을 따라 불렀다. 수 십명의 카메라 기자들이 역사의 현장을 담아내기 위해 건물 옥상 곳곳에 올라가 연신 셔터를 눌러댔다.

헌재에서 청와대 100m 앞, 주최 측은 “탄핵은 했지만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지 못했다. 오늘 세월호 가족들의 눈물을 기억하자”고 호소했다. 아침의 찬바람은 사라지고 청와대 앞 거리엔 따뜻한 햇볕이 내리 쬐었다. 시민들은 세월호 리본이 묶인 태극기를 높이 흔들며 “여름을 준비하자”고 외쳤다.

21

22

23

25

탄핵2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