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망월사로 가족나들이 하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⑪]나들이
        2017년 03월 10일 08:56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앞 회의 글 ‘첫 중간고사 무사히 통과’ 

    5월 17일 부처님 오신 날, 딸과 내가 늦잠을 잔 때문에 정오가 돼서야 길을 나섰다. 행선지는 망월사였다. 할매는 해마다 사월 초파일이면 조계사를 들르곤 했는데, 올해는 망월사로 바꿨다. 일흔 셋인 할매 건강이 더 약해지기 전에 망월사를 함께 구경할 겸, 딸내미 산행을 이을 겸, 가족나들이 겸, 내가 제안한 것이었다.

    소월길에서 버스를 탔고, 시청역에서 전철로 갈아타 망월사역에 내렸다. 우리 가족은 나들이 때도 항상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자가용이 없었다. 내가 감옥에 있을 때 잠깐 있었다고는 했다. 복지국가 운동을 하는 오건호가 아내에게 넘긴 건데, 주차해 놓은 상태에서 화물차에 들이받혀 폐차시켰단다.

    집에 차가 없는 이유는 유별난 내 탓이었다. 지금 시대는 사회운동을 해도 웬만하면 자가용 굴릴 형편이 되었다. 활동비를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주는 곳에 머물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툭하면 안정된 활동을 박찼다. 나같은 운동가를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곳을 찾아 떠돌아다녔다. 할매에겐 참 미안한 노릇이었다. 할매는 종종 혀를 찼다.

    “지 애비 막노동해서 대학 보내 놨더니 데모만 하고 차도 없고. 쯧쯧.”

    무릎 안 좋은 할매를 고려해 쉬엄쉬엄 올랐다. 부녀가 앞섰고 고부는 따랐다. 덕제샘에선 물을 한 바가지씩 마시고 갈증을 달랬다. 다들 물맛 좋고 시원하다 했다. 절까지 2시간 걸렸다. 망월사는 포대능선 바로 밑에 자리 잡고 있기에 절에서 바라보는 도봉산 풍광이 참 좋았다. 금강문에서의 경치가 절경이었다. 할매는 감탄했다. 방향 잘 잡았다 싶었다.

    3시가 넘었는데도 우물 앞에선 보살들이 공양을 보시하고 있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 시간을 넉넉히 잡은 듯했다. 비빔밥을 받아 지장전 앞마당에서 배를 채웠다. 딸은 내 무릎을 베개 삼아 누웠다. 아내는 커피를 받아다 마셨다. 맛이 이상하다며 내게도 맛보라 하더니, 다 마시지 못하고 버렸다. 커피인 듯 숭늉인 듯 밍밍했다. 할매는 공양초를 들고 관음전에 들어가 삼배를 했다.

    그런 뒤 우리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절을 둘러봤다. 망월사는 신라 시대에 터 잡은 사찰이었다. 평소엔 접근이 어려운 천중선원 마당도 열려 있었다. 영산전까지 놓치지 않고 둘러보았다.

    한1

    사진처럼 할매와 아내의 중심에는 늘 딸이 있다. 망월사 천중선원을 배경으로

    하산 길에 다시 덕제샘에 들러 물을 마셨다. 마시고 보니까 안내판에 부적격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걸 발견하고 다들 웃었다.

    “사람 몸속의 세균이 기본적으로 1~2킬로그램이라는데, 그깟 대장균이 몸속에 더 들어간다고 뭔 탈나겠어?”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딸과 나는 원효대사의 해골 설화를 주고받았다.

    원효가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구법의 길을 가던 중이었다. 산에서 자다 갈증을 느꼈고, 컴컴한 어둠 속에서 바가지에 고인 물을 마셨다. 물맛은 달콤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바가지는 해골이었다. 물은 해골 안에 고여 썩은 빗물이었다. 원효는 뱃속이 메스꺼워지며 토했다. 그러다 한순간 깨달음을 얻었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였다. 모르고 마실 땐 달콤했는데 알고 나서 구역질이 일어난 것은 마음 때문이라는 불교의 도를 터득했다. 굳이 당나라까지 가서 구도할 이유가 사라졌다. 원효는 의상과 헤어져 신라로 돌아갔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아이가 할매 옆에 붙어서 부축했다.

    “우리 손녀가 최고야, 최고. 밑에 동생 하나 더 있어야 되는데. 형제가 없으면 커서 외로워 안 돼. 니 애비 에미는 내가 알아서 다 키워 준다고 하는데도 하나 더 안 만들고.”

    “괜찮아 할머니, 걱정하지 마.”

    망월사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도봉산역 맞은편의 먹자촌으로 이동했다. 단출하면서도 알찬 나들이였다. 집에 돌아온 할매는 다리가 아파 화장실 좌변기에 앉는 것도 어려웠단다.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