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무 살이 좋냐구요?"
    사서 하지 않아도 이미 고생길 청춘
    이 시대 스무 살의 현실과 고민, 그 한 단면을 보다
        2017년 03월 09일 10: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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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 얼굴에 기름이 번지르르한 정치인들이 하는 무개념 발언 중 하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의 프리퀄 버전이다. 이런 말들은 꼭, 젊어서 고생 안 해봤을 것 같은, 혈색 좋은 아저씨들이 자주 한다. “젊은데 못할 게 뭐가 있냐”라는 말도 있다. 젊은이답게, 패기 넘치게, 모든 일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거듭되는 실패와 좌절, 현실의 장벽도 교훈 삼아 자신을 발전 시켰어야 했는데 나는 참 부족한 젊은이인가보다 하고 다시 좌절감을 느낀다.

    쌓여가는 빚을 보며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일을 하는 20대의 사례를 만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들에게 고생은 사지 않아도 당연히 짊어져야 할 짐이다. 그렇게 나이 앞자리가 바뀌어도, 그들은 천만 원에 가까운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가야만 한다.

    스무 살은 정말 뭐든 마음만 먹으면 다 할 수 있는 나이일까. 고생을 정말 사서까지 해야 할까. 그들도 힘들고 아프기 때문에 그게 청춘이라고 생각할까. 2월 말, 입학을 앞두고 3명의 스무 살을 만났다. 2명은 대학에 가지 않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고, 다른 1명은 전문대학에 입학한다. 그들의 20대의 시작은 어떤지, 그들이 상상하는 그들의 미래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스무 살이 좋냐구요?”

    새벽 1시, 고기 냄새를 잔뜩 뒤집어 쓴 이들이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약속했던 것보다 1시간이나 늦은 시간이었다. “죄송해요. 한 테이블이 안 가서. 많이 기다리셨죠?” 웹툰 <패션왕>의 주인공 우기명의 머리스타일을 한 남자 A가 말했다. 남자 B는 통화를 하며 꾸벅 인사를 했다. A와 B는 함께 고깃집에서 알바를 한다. B는 서빙을 하고 A는 숯불 피우는 일을 한다고 한다. 치킨집에서 일하는 여자 C는 노란 머리색을 하고 두발 자유를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이제 막 10대의 터널을 벗어난 이들이다. 한창 술 마시고 놀겠구나 했는데, 보통 직장인보다 더 바쁘다. 그래서 술 마실 시간도 없단다. A에게 소주 한잔을 따라주니 단번에 벌컥 마셨다.

    “스무 살 되고 두 달이나 지났는데 아직 술을 두 번밖에 못 먹었어요. 알바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요.”

    월요일부터 토요일, 오후 4시부터 밤 12시 넘어서까지 알바에 묶여 있다. 부모님한테 손 벌리기가 뻘쭘해 알바비로 생활하고 있다고 한다. 누군가에겐 이들의 알바가 ‘용돈벌이’지만 그들 입장에선 ‘생계’인 셈이다. 용돈 받을 때보단 더 넉넉하긴 하지만 이젠 ‘시간’이 없다고 한다. 고등학교 땐 단체로 연극이라도 보러 갔는데 졸업하고 나니 이젠 하다못해 영화도 자주 못 본다.

    대학 입학을 앞둔 C는 대학 입학 첫 달은 학교 적응기라 한두 달은 알바를 쉬어야 해서 걱정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당분간만 용돈을 받아야 할 것 같다고 어렵게 말을 꺼냈는데 부모님이 흔쾌히 알겠다 해서 조금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요 화재거리는 알바였다. 거긴 시급이 얼마라더라, 시급이 센 대신 일이 ‘빡세다’더라, 거긴 사장이 변태다, 대신 저녁을 준다 등등. 그들만의 은밀한(?) 정보들이 오갔다. 세상물정 모르는 철없는 ‘아이들’의 대화를 상상했는데, 아니었다. 그들만의 대화 사이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나지 않았다.

    술집 주인에게 당당하게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술 마시기, 담배 사기, PC방에서 오후 10시 넘어서까지 게임하기, 운전면허 따기, 어학 학원 등록하기 등등. 지난날을 청산하고 뭐라도 새롭게 시작하기 좋고, 허황된 기대들이 전부 이뤄질 것이라고 굳게 믿는 나이가 스무 살 아닌가. 그래서 물었다. “스무 살 되니까 좋지?” 산통 깨는 질문이었다.

    “아뇨. 싫어요. 늦잠 잘 수 있는 거 말곤 좋은 거 없어요.” 말 끝나기 무섭게 대답이 나왔다. “이제 미래를 생각해야 하니까…” 이들에게 들어야 할 대답이 산더미 같은데, 반사적으로 “싫다”는 답변을 듣고 나니 문득 더 물어봐도 되나 걱정이 앞섰다. 스무 살에게 스무 살은 고생길의 시작인 나이였다.

    알바

    고깃집에서 알바를 하는 모습

    “집에 돈이 많아야 할 수 있는 일이래요…그래서 뭘 할지 모르겠어요”

    남자 2명은 대학을 가지 않기로 했고, 여자 1명은 대학에 합격해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한국에서 대학에 가지 않는 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대졸도 안 되는 게 취업인데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이름만 대면 알 법한 멘토라 불리는 이들이 몇 백 명의 대학생 청중 앞에 서서 “학력보다 능력인 시대”라고 떠들어대도 불안하다. 부모들이 억지로 그 큰 돈 들여 대학에 보내는 이유도 그런 불안 탓일 게다.

    대학에 가지 않는 A와 B에게 앞으로 뭘 할 생각이냐고 물었다. 갑자기 남자 B는 젓가락으로 안주를 뒤적이며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A는 “공부해야죠”라고 했다. 무슨 공부를 할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임기응변식 답변인 듯했다. 다시 B에게 재차 물었다. “모르겠어요…” 더 얘기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이들에게 미래를 추궁하는 것은 답 없는 문제를 풀어내라고 강요하는 일 같았다.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분위기는 고요 그 자체였다. 이제 더 무슨 얘기를 나눠야 할까 난감했다.

    그래서 좀 다른 질문을 했다. 진상 손님 험담이나 연애 얘기, 알바에 가지 않는 시간은 뭘 하고 지내는지 같은 일상적인 것들을 물었다.

    A는 “한 번은 손님이 가게에 우산을 두고 갔다면서 찾아와선 저한테 그걸 내놓으라고 하더라고요. 가게에는 없었거든요. 그러면서 제 멱살을 잡고 흔드는데…그래도 어째요. 손님이니까 가만히 있었죠. 나중에 사장님이 와서 말리고, 결국 그냥 돌아갔어요. 추워도 서빙 하느니 불 피우는 게 더 낫다니까요.”

    C는 “남자 사장님이 알바들 다 있는데 휴대폰으로 자꾸 비키니 입은 여자 사진을 봐요. 그러면서 저 보고 자꾸 덩치가 크다나 뭐라나.” 진저리를 쳤다.

    알바 가기 전엔 시간이 많이 나지 않아서 대부분 PC방에 가거나 잠깐 남자친구나 여자친구를 만난다고 했다. B는 아르바이트를 두 개나 하는 바람에 여자친구를 못 만난 지 2주가 넘었다. 아직 고등학생인 여자친구가 걱정이 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여자친구가 스무 살이 됐을 때 자신이 어떻게 달래주고 조언해줘야 하나 그런 고민이 든다고 했다.

    그런 저런 얘기들을 나누다보니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 모두 얼굴이 벌개져 있었다. 한 시간 전에 괜히 안주를 뒤적이던 B도 아까의 풀 죽은 모습은 좀 사라진 듯 했다. 그래서 다시 물었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나 공부가 있었니?” 갑자기 또 미안한 감정이 밀려왔다.

    A는 “솔직히 이제 와선 대학에 가고 싶기도 해요. 친구들이 오티(오리엔테이션) 갔다 와서 학교 얘기하는 거 보니까… 재수할까, 생각도 했어요.”

    우기명의 헤어스타일을 했던 A는 패션쇼 무대 감독이 되는 꿈이라고 했다. “그럼 패션 관련 학과 같은 거 들어가면 되는 거 아니야? 원하는 전공이 있으면 지금이라도 재수를 생각해봐.”라고 말했다. “그 일은 집에 돈이 많아야 성공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A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꿈을 접었다.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말하기를 유학도 다녀와야 하고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는 거다. 그래서 대학도 안 갔다. 대학 졸업한다고 꿈을 이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괜히 대학 등록금으로 집에 부담을 주기 싫어서였다. 나중에 인터넷 쇼핑몰이나 옷 가게를 차리고 싶은데 그 마저도 포화상태라 쉽지 않은 일이라 걱정이라고 했다.

    “현실적으로…”

    A의 말을 가만히 듣던 B도 입을 열었다. “친척이 자동차정비소를 하는데 거기서 일이나 배울까 하고요. 사실은 작곡을 하고 싶어서 피아노도 잠깐 배웠는데 집에선 성공하기 힘들다고…” B도 A와 비슷한 처지였다. 하고 싶은 게 있어도 돈이 많이 든다, 성공하기 어렵다, 그런 건 아무나 하냐는 어른들의 충고로 일찌감치 ‘현실’에 눈을 떴다는 것이다. 각자 상황은 달라도 이들은 자신의 미래에 대해 말할 때 공통적으로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A, B와 달리 대학생이라는 신분이 2년 더 주어지는 C는 어떨까. 좀 희망적인 얘기를 기대했다.

    “호텔리어가 꿈이었어요. 그래서 호텔관광이나 호텔경영 쪽 지원했는데 면접에서 다 떨어졌어요. 사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혹시나 해서 다 써본 거였어요.”

    담담한 말투였다.

    “그 과 입학 준비하는 애들 보면 전부 백만 원 가까이 되는 학원 다니면서 준비하거든요. 근데 저는 그렇게는 못했어요. 부모님한테 그걸 어떻게 달라고 하겠어요. 그래서 혼자 준비했죠. 인터넷도 찾아보고 학원 다니는 애들한테도 물어보고.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제가 제일 가고 싶었던 대학 면접을 보러 갔는데… 면접 보러온 애들 대부분이 명품백을 들고 왔더라고요. 저는 위 아래로 3만원도 안 되는 면접복 입고 책가방 들고 갔거든요. 제 자신이 어찌나 초라해보이던지”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한 듯 했다. 그래서 C도 결국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가고 싶었던 호텔과를 접고 세무회계를 배우는 학과에 들어갔다. 이유는 연봉이 높아서다.

    C도 ‘현실’을 말했다. “교수님이 그러는데 이쪽으로 취업하면 연봉 3000만원은 된대요. 교수님이 우리가 이 전공을 하는 건 행운이래요.” A는 C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더니 “나도 대학갈까”라고 말했다. C가 부러운 눈치였다.

    이제 그들은 묻지 않아도 자신들의 얘기를 풀어놨다. A는 군대 갈 걱정이 큰 모양이었다. 여자친구한테 차일까봐 그런가 보다 했더니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 얘기를 꺼냈다.

    “제가 대학에 안가서 할머니가 이제 나라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자 돈을 못 받아요. 그래서 알바라도 하는 건데…걱정이에요. 돈은 그렇다 쳐도 군대 가면 할머니 혼자 지내야 하니까…”

    A는 경찰 시험을 준비하는 형과 동생 두 명이 있다. 지난달엔 형이 다리에 생긴 염증 때문에 수술을 하는 바람에 알바로 번 돈 대부분을 써버렸다. 할머니에게 생활비를 조금 드리고 나니 자기 수중에 남는 돈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 달 내내 여자친구가 자신을 먹여 살렸다며 미안해했다.

    “그래서 결혼도 최대한 늦게 하고 싶어요. 형도 언제까지 공부할지 모르고 아래로 동생이 둘이나 돼서요. 현실적으로 결혼을 일찍 할 수가 없어요.”

    “요즘 애들은 놀지도 않아” 얼마 전까지 대학교 조교를 했던 동기가 한 말이다. 수업이 끝나면 다들 제 갈 길 가기 바쁘다고 한다. 알바 하랴, 영어, 자격증 공부하랴 놀 틈이 없다는 거다. 그래서 과 단독으로 추진하는 행사도 늘 텅텅 비어있다고 한다.

    이 시대의 스무 살은 부럽지 않다. 3명의 스무 살들을 만나고 나니 그랬다. 대학에 가건, 가지 않건 이들은 “현실적으로…”라는 말을 습관처럼 하면서 어른들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스무 살. 자정을 넘어서까지 하는 알바가 “힘들겠다”하면 “애들 대부분이 그래요”라고 받아치는 이들이다. 힘들지 않다고 말하진 않는다. 그저 다들 그러니까 받아들일 뿐이라는 거다.

    어른들의 말대로 현실적으로 꿈을 포기하고, 눈을 낮추고, 연봉이 높은 직장을 좇아가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어른들의 말을 들으니 “앞으로 뭘 해야지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 스무 살의 이야기다. 그래서 이들의 미래는 더 암담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과제이자, 현재마저도 무기력하게 만드는 동기가 되는 듯했다.

    이제 막 서른이 된 이들에게 20대에 가장 후회되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그 중 한 명이 답하기를,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랐다고 한다. 젊어서 고생 사서도 한다는, 젊은데 뭘 못하냐는, 현실을 직시하라는 그 깃털 같은 말 대신, 적어도 젊어서 한 고생의 열매가 이들의 손에 언젠간 돌아올 수 있도록, 그들이 행복한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주는 것이 어른들이 스무 살에게 해줘야 할 일 아닐까.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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