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세계 여성의 날
    '100 대 64', 한국 남녀의 임금격차
    3시 조기퇴근 시위...“싸우는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
        2017년 03월 08일 07: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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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저출산 위기에 정부는 성차별적 제도 개선과 사회인식 전환 대신 ‘가임기 여성지도’를 내놨다. 이는 역설적으로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보편적 시각을 잘 보여준다.

    109년 전인 1908년 미국의 1만 5천여 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정치적 평등권과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벌인 시위를 벌였다. 이 날을 기념해 UN이 제정한 날이 3월 8일 여성의 날이다.

    100년이 지났지만 여성들은 남성이 아니라 ‘여성’이라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차별을 경험한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임금 격차, 비정규직에 몰려있는 여성노동자. 결혼, 임신, 출산으로 경력단절은 여성의 삶의 일부분이고, 가사와 자녀 양육은 온전히 여성의 몫인 ‘독박육아’까지. 그런데도 여전히 ‘역차별’이니 ‘여성 상위 시대’라는 기만적 말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흘러 다닌다.

    100대 64. 남녀의 임금격차다. 남자가 100만원을 벌 때 여자는 고작 64만원을 번다는 뜻이다. 노동시간으로 환상하면 여성은 오후 3시부터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남녀 임금 격차는 OECD 회원국 중 15년째 1위다. 회원국 평균(100:85)의 2배에 달한다. 세계경제포럼이 발표에도 우리나라의 성 격차 지수는 144개국 중 116위로 최하위권 수준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임금의 36% 만큼 떼먹히는 현실에 항의하기 위한 여성 노동자들이 일손을 놓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정당과 시민사회 13개 단체로 꾸려진 ‘3.8조기퇴근시위 3시 STOP 공동행동’은 이날 오후 3시 광화문 광장에서 전국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했다. 여성노동자들은 “명백한 차별의 증거, 성별임금격차를 해소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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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 여성의 날 집회의 모습들(이하 사진은 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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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 안 낳으면 이기적이고, 임신하면 회사에 해되는 나쁜 여자라고?
    “소란스럽고, 예민하고, 싸우는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

    앞서 조기퇴근 시위가 있기 직전인 오후 2시 30분, 같은 장소에선 민주노총 주최의 사전대회도 열렸다. 직장 여성 차별이나 성폭행 문제 등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해온 개인과 단체에 대한 시상식이 진행됐다.

    부천 원정복지관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은주 경기일반노조 조합원도 수상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동료가 임신을 하자 회사가 내뱉은 폭언들, 성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도움을 요청한 후 지역사회 단체에서 돌아온 외면에 대해 털어놨다.

    “가정 일로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냐. 이래서 가임기 여성은 잘라야 한다” 이 조합원의 동료가 임신 사실을 알리자 회사가 한 첫 마디였다. 임신을 한 동료는 고개 숙여 죄송하다 말했지만 회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료는 극도의 스트레스로 점점 야위어갔다.

    이를 본 이 조합원이 조직에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회사는 그의 사과 요구가 “조직을 분란시키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임산부라 예민하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임산부를 선동했다”고도 했다. 복지관의 관장도 박근혜 퇴진 투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같은 편끼리 보기 안 좋다”고 했다.

    이 조합원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원정사회복지관의 여성차별은 한국사회 일상화된 문제”라고 지적했다.

    사내에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이 조합원은 부천 지역사회에 이 사건을 공개했다. 그러나 지역사회 단체에선 ‘사소한 일로’ 나서지 말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정사회복지관의 대표가 민주화 운동을 했던 분이고, 부천 지역에 공을 많이 세웠기 때문에 그의 업적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여자들이 아이 안 낳는다고 이기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일터에서 임신을 하면 해고 위협에 내몰리게 되고 조직에 피해를 주는 가해자가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성차별적 노동환경을 그대로 둔 채 가임기여성지도와 여러 대통령 후보들이 내놓은 여성 출산 장려 정책은 기가 막힌다. 여자들을 출산의 도구로 본다는 생각만 들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조합원은 “여성들의 일상적인 성차별, 모성권 침해 문제는 누군가에겐 사소할지 모르지만 여성들은 늘 굴욕적이며 삶을 앗아가는 일”이라면서 “박근혜 정권이 없는 세상이 봄이 오는 것이 아니라, 여성 노동자 삶을 앗아가는 여성차별이 없는 세상이 진정 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저는 소란스러운 여자가 됐다. 예민하고, 조직을 분란시키고, 조직을 무너뜨리는 여자가 됐다. 그러나 싸우는 여자가 세상을 바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노동자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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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자가 무슨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해?”

    이어진 ‘3시 STOP’ 집회에선 성차별 문제를 겪은 현장 발언들이 넘쳐났다. 게임업계에서 근무하는 서하나(가명) 씨는 구직 단계부터 여성이 겪어야 하는 차별에 대해 풀어놨다. 서하나 씨는 이날 조기퇴근에 실패해 지인이 그의 글을 대독했다.

    서 씨는 “‘기업이 얼마나 합리적인데, 같은 능력인데 여자가 임금을 더 적게 받으면 다 여자 뽑지’ 성별 임금 격차를 얘기하면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그런데 기업은 절대 합리적이지 않다”고 운을 뗐다.

    지난 2015년 서 씨는 면접관에게 희망 연봉을 말하고 엉뚱한 대답을 들었다. “아니 여자가 돈을 그렇게 많이 받아서 어디다 써요?” 그래서 서 씨는 “그러면 남자는 어디다 써요?”라고 되받았다. 면접관도 지지 않고 “남자는 2~3년차 되면 쓸 데가 생겨요”라고 말했다. 다시 서 씨는 “여자는 돈 더 많이 들어요. 미용실 커트만 해도 남자는 7천원, 여자는 9천원이에요”라고 반박했다. 서씨는 “속옷만 해도 남자는 하나만 사면 되지만 여자는 두 개나 사야 해요”라고까지 말하려다가 참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서 씨는 “제가 머리 길다고 염색할 때 기장 추가 비용 드니까 연봉 더 쳐준다는 회사 본 적 없다. 그런데 남자한테는 배려가 넘친다”고 비꼬았다.

    서 씨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어디로 갔나. 기업은 합리적이지 않다”며 “성별이 아닌 사람의 경력과 능력에 맞는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그런 날이 올 때까지 우리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분노하며 일하자”고 말했다.

    조기퇴근 공동행동은 선언문을 통해 “꿈을 가지라고 배웠고, 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취업전선에 선 여성들이 목도한 것은 고용차별이었고 외모차별이었고 젠더폭력이었다”며 “여성노동자 6명 중 5명은 최저임금선에서 생존을 도모하고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은 ‘경단녀’로 호명되며 저임금·불안정 노동으로 밀려난다”고 전했다. 이어 “싸구려 노동력 취급을 받는 우리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은 말 그대로 ‘벼랑 끝’”이라고도 했다.

    이들은 “여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차별과 착취를 당해왔지만, 여성은 끈질기게 싸워 권리를 쟁취하고 세상을 바로잡는 힘이 있다. 그렇게 여성은 참정권을 얻었고, 이제는 세계 최고의 권력자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외치고 있다”며 “한국의 일하는 여성들은 문제를 문제라 말하며 끈질기게 싸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성노동자들은 집회가 있었던 광화문광장을 시작으로 보신각을 거쳐 서울고용노동청, 청계로 방면으로 행진을 진행했다.

    이들은 마무리 집회에서 ▲성별 임금격차 해소 ▲일 돌봄 쉼의 균형 ▲여성에게 안전한 일터 ▲불안정노동에 대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 여성노동계 4대 의제를 제시했다. 공동행동은 이러한 의제들을 중심으로 대선의제 10만인 서명운동에 돌입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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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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