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대 경찰 교도소 - 폭력의 민영화②
    By 문석
        2012년 08월 15일 05:1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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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번에 게재한 문석 <씨네21>편집장의 폭력의 민영화에 이은 글을 게재한다. 이후에도 각종 민영화와 관련한 영화를 소개할 예정이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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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의 고유 영역으로 간주됐던 분야의 민영화에서 가장 첨단을 차지하는 쪽은 민간군사기업일 것이다. 미국의 민간군사기업이 본격화된 것은 2001년 9.11 사태 이후다.

    그 이전에도 블랙워터(현Xe), 다인코프, M.P.R.I, CACI 같은 기업이 존재했지만 이들이 본격적으로 외부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9.11 이후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면서부터다.

    레이건 시대의 이란-콘트라로부터 그 뿌리를 찾는 견해(<정부를 팝니다>, 폴 버카일 지음, 시대의창 펴냄)도 존재하지만 민간군사기업이 ‘산업’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체감케 한 것은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통해서였다.

    민간군사기업의 기원을 따지자면 용병 제도를 언급할 수밖에 없다. 그 역사를 쫓아가다 보면 고대 로마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할 테지만 현대적 의미의 용병이 대두된 것은 1970년대 로디지아(현 짐바브웨) 내전 때부터다.

    영국 식민지였던 로디지아는 과거 남아프리카공화국과 유사하게 대다수인 흑인들이 소수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었는데, 점차 흑인들의 영향력이 거세지고 냉전의 분위기 속에서 소련의 지원이 이뤄지면서 1960년대부터 흑인 반군의 저항이 두드러지게 된다. 대립이 격화되면서 소수 백인 정권은 외국으로부터 용병을 수입해 반군과 맞서려 한다.

    하지만 흑인들의 지속적인 저항에 백인들이 외국으로 피신하고 고용인이 없어진 용병들마저 떠나면서 로디지아는 1980년 짐바브웨 공화국으로 독립하게 된다. 로디지아 용병이 중요한 것은 현존하는 민간군사기업의 주요 인물에 당시부터 용병으로 활약하던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디지아 용병에서 영감을 얻은 대표적인 영화는 <지옥의 특전대>(The Wild Geese, 1978, 감독 앤드루 V. 맥라글렌)를 꼽을 수 있다. 리처드 버튼, 로저 무어, 리처드 해리스, 하디 크뤼거 등 당대를 풍미하던 마초 남성배우들이 떼거리로 출연한 이 영화는 진지하다기 보다는 <람보>나 <코만도>에 가까운 액션오락영화다.

    영국의 사업가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 리처드 버튼을 중심으로 용병을 고용해 현 정권을 무너뜨리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권을 수립하려는 이야기를 그리는 이 영화에서 이들 백인 용병들은 말 그대로 일당백의 능력을 발휘한다. 실제로 아프리카 용병들의 전투력은 대단했던 것으로 알려지는데 1997년 시에라리온 내전에 투입된 용병 150명은 반군 15,000명을 제압했다고 한다.

    그렇다 해도 <지옥의 특전대> 시리즈는 보지 않는 편이 당신의 정서에 좋을 듯하다. 비슷한 영화들은 많다. 아프리카 정권을 제멋대로 거꾸러뜨렸다 세웠다 하는 용병부대 이야기<은밀한 거래>(The Dogs of War, 1980, 감독 존 어빈), TV시리즈에 뿌리를 두고 있는 용병부대의 코믹액션영화 <A특공대>(The A-Team, 2010, 감독 조 카나한) 등등. 물론 마찬가지로 권하기는 어려운 영화들이다.

    <섀도우 컴퍼니>(Shadow Company, 2006, 감독 닉 비카닉, 제이슨 부르크)는 민간군사기업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다큐멘터리다. 이 다큐멘터리는 용병에 관한 짧은 역사로 이야기를 시작해 이라크 전쟁 등에서 활동했던 여러 민간 군인(또는 용병)들의 이야기를 통해 현대의 민간군사기업을 조명한다.

     

    이 다큐에 따르면 민간군사기업은 50개국에서 활동 중이며 시장 규모는 연 매출1000억 달러 수준이다. 이들은 자국 정부의 군사 컨설턴트로 활동하거나 다른 나라 군대를 훈련시키고 요인 경호도 한다.

    가장 큰 문제는 민간군사기업 소속 전투병인데, 이들은 국가 소속이 아니라 기업 소속인 탓에 군의 통제 바깥에 있다. 때문에 이라크 전쟁 당시 블랙워터 등 민간 군인들은 민간인을 학살하기도 했고 포로들을 학대하기도 해 물의를 일으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용병을 더욱 과감하게 기용하고 있다.

    <섀도우 컴퍼니>에 따르면 1991년 걸프전 때만 해도 정규 군인 대비 민간 군인의 비율은 100명 1명 꼴이었는데, 이라크 전쟁에서는 10명당 1명 꼴이 됐다. 게다가 이들 이라크에 배치된 전투 분야 민간 군인의 숫자는 2만명이 넘었는데 이는 영국군 등 연합군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다. 게다가 미군 특수부대원의 평균 연봉이 7만 달러인 데 반해 민간 군인의 연봉은 20만 달러 이상이다.

    이처럼 민간 군인들이 급증한 데는 <섀도우 컴퍼니>가 말하듯 냉전 종식 이후 군인들의 가치가 하락한 탓도 있지만, 미국 정부가 “처음부터 민간 계약자 없이는 수행할 수 없는 규모의 작전을 세워두었”(<정부를 팝니다>)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최대의 민간군사기업 Xe(옛 블랙워터)를 실체를 파헤치는 책 <블랙워터>(제러미 스카힐 지음, 삼인 펴냄)에 따르면 “국방부를 해방시키고”, “국방부 자체로부터 국방부를 구해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도널드 럼스펠드(포드 대통령,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각각 국방부 장관 역임)의 방침이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럼스펠드는 신자유주의의 태두 밀턴 프리드먼의 사상을 신봉해왔던 인물로 군 민영화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다.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이 자신의 러닝메이트로 조지 H. W. 부시를 선택한 것에 대해 프리드먼이 “레이건의 선거 캠페인 뿐 아니라 집권 기간 동안 최악의 결정”이라고 비판했겠는가. 프리드먼은 “그(럼스펠드)가 레이건의 뒤를 이어 대통령을 맡았어야 했고 그랬다면 부시-클린턴 시대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면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결국 럼스펠드는 부시 대통령 정권에서 대대적인 군 민영화를 주도했다. 여기에는 군수기업인 핼리버튼 CEO 출신 딕 체니 부통령의 역할도 대단했다.

    아무튼 <섀도우 컴퍼니>는 용병과 민간군사기업의 실체를 가장 생생하게 접할 수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다. 보다 심층적인 내용이 아쉽긴 하지만 이들 기업 관계자들의 다양한 시각들과 체험담은 다른 곳에서는 접할 수 없는, 확실히 흥미로운 내용이다.

    현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에서는 민영 교도소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1980년대 미국의 와켄허트를 필두로 미국교정회사(CCA), 덴마크의 그룹포팔크는 이 분야 3대기업이다(<미친 사유화를 멈춰라>(미헬 라이몬, 크리스티안 펠버 지음, 시대의창 펴냄).

    민간교도소의 첫 번째 문제는 이윤을 최대치로 끌어올리기 위해 생산성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는 것이다. 교도관 한명이 맡아야 하는 수감자 수는 갈수록 늘어나고 개인 평균 임금 또한 바닥으로 내려간다. 교도관에 대한 수감자의 폭력사고가 증가하고 교도관이 수시로 이직하게 되는 상황은 그 뒤를 따르게 된다.

    시설에 대한 투자도 이뤄지지 않는다. 교도소 업자에게 죄수란 곧 돈(정부로부터 지원금이 나오므로)을 의미한다.자연스럽게 범죄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보다는 단순 수용에만 신경을 쓰게 된다(“시장경제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다. 어떤 기업이든 항상 다시 오는 단골을 만들려는 성향을 가지는 것이다”-<미친 사유화를 멈춰라>).

    <데스 레이스>(2008, Death Race, 감독 폴 W.S. 앤더슨)는 이 같은 교도소 민영화에서 영감 받은 영화다. 이 영화의 전제는 2012년 미국 경제가 붕괴되면서 실업률과 범죄율이 동시에 치솟으면서 교도소가 민영화된다는 것이다(제작진은 이미 자기 나라에서 진행 중인 현실을 잘 몰랐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만 하면 시대적인 흐름은 제대로 담은 셈인데, 이제부터가 문제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교도소에서는 죄수들을 드라이버로 고용해 말 그대로 죽음의 레이스를 펼친다. 이것이 죽음의 레이스인 이유는 룰이 없기 때문이다. 레이스 도중 기관총과 미사일을 발사하든, 상대방의 차를 받아버리건, 그래서 상대 레이스가 죽어나건, 아무 상관이 없다. 가장 먼저 결승점에 도착하기만 하면 된다.

    이 같은 폭력성 덕분에 죽음의 레이스는 폭발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고 교도소는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다. 여기에 교도소의 음모에 휘말려 아내와 아이를 살해했다는 누명을 쓴 남자 젠슨(제이슨 스타뎀)이 가담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참으로 B급영화적인 상상력이 판치는 오락액션영화라 더 이상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잔인한 액션을 좋아하는 관객에게는 심심풀이로 나쁘지 않을 듯하다.

    군대와 교도소가 민영화되는데 경찰이라고 괜찮을까. 현재 전 세계에는 수많은 민간경찰이 존재한다. 물론 이미 상당수 나라의 다종다양한 분야에서(한국에서는 청원경찰이라고 알려진 형태로) 활동 중인 민간경찰은 대부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관할이 아닌 민간 영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영국에서는 경찰의 민영화에 대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특히 민간군사기업 G4S는 런던 올림픽 경비 업무를 맡을 뻔 했으나 경찰 민영화를 우려하는 시민들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이 맥락에서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면 당신은 센스쟁이다. 바로 <로보캅>(1987, RoboCop, 감독 폴 버호벤) 말이다. 가까운 미래 미국 디트로이트는 금융 붕괴와 끊이지 않는 범죄로 도시 기능이 마비되기에 이른다(SF 장르에서 즐겨 우려먹는 설정이다).

    이때 OCP라는 대기업이 등장해 경찰 업무를 대행하기로 시와 계약을 맺는다. 디트로이트 구도심 바깥에 델타 시티라는 지역의 재개발을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이 기업은 도시에 만연한 범죄를 소탕하기 위해 ED-209라는 로봇을 개발한다.

    하지만 이 로봇은 테스트 도중 끔찍한 사고를 일으킨다. 이 덕분에 회사에서 동시에 진행 중이던 또 다른 프로젝트가 힘을 얻는다. 그것이 바로 ·로보캅 프로젝트‘다. 사람의 신체에 로봇을 이식해 사이보그화 하는 이 프로젝트의 첫 번째 실험 대상은 알렉스 머피(피터 웰러)다. 그는 이 도시의 어둠을 지배하고 있는 갱단과 맞서다 사망하게 되는데, OCP는 그를 부활시켜 로보캅으로 만든다.

    사이보그건 순수 로봇이건 OCP가 기계로 인간을 대체하려는 이유는 자명하다. OCP 내부에서 이뤄진 ED-209 발표회장에서 회사 간부는 이렇게 말한다. “뭔가 더 필요합니다. 연중무휴인 경찰관 말입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엄청난 화력을 멋지게 사용하는 경찰관 말입니다.”

    기계 경찰은 산업현장에서 인간을 대체한 모든 기계와 마찬가지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게다가 이 기계 경찰은 인건비도 받지 않고 노동조합도 결성하지 않으니 회사로서는 환영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뒤의 이야기는 많이들 아실 터. 머피가 이상하게도 기억을 되찾으면서 기능에 이상이 생기고,마침내 OCP와 대립하게 되면서 사태는 걷잡아질 수 없게 된다.

    후반부 로보캅과 ED-209의 대결은 당시로서는 긴장 넘쳤던 대목이다(하지만 최첨단 CG에 길들여진 현재의 눈으로 보자니 그때의 특수효과는 안습 수준이다). <로보캅>은 파격과 도발을 좋아하는 폴 버호벤의 영화답게 극단적인 폭력이 악취미처럼 넘실거리는 영화이긴 하지만, 전 분야에서 민영화가 대대적으로 이뤄졌던 대처와 레이건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 또한 엿보여 여전히 재미를 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몇 가지 묵시록적인 장면도 흥미롭다. 인공 심장을 홍보하는 ‘민간 영리 병원’이나 멕시코 마약집단이나 파키스탄과의 전쟁이 실감나게 체험되는 비디오 게임의 광고 화면 등은 버호벤이 아예 작정하고 당대의 신자유주의와 군산복합체를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

    필자소개
    중앙일보 기자로 있다고 영화가 좋아서 씨네21로 이직하여 현재 씨네21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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