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실습 고교생,
    쓰다 버리는 기업 소모품 아니다
    LG, 감정노동과 실적압박 강한 곳에 실습생 투입
        2017년 03월 07일 05: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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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졸업을 앞둔 여학생이 통신사 고객상담센터 현장실습을 하다가 감정노동과 강제적인 연장노동 등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복수의 매체에 따르면 사망한 여학생 A씨는 지난 1월 23일 오후 1시경 전북 전주시 아중저수지에서 발견됐다. A씨는 전날 오후 저수지 인근에서 친구와 만났다가 헤어진 후 이날 다른 친구에게 “죽어버리겠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특성화고등학교를 다닌 A씨는 지난해 9월 8일부터 전주에 있는 LG유플러스 고객 상담을 대행하는 LB휴넷에서 콜센터 현장실습생으로 5개월 가까이 근무했다. 3학년 2학기가 된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취업 연계형 실습이었다.

    담당 부서는 ‘세이브팀’라 불리는 해지방어부서로 고객이 해지를 요구하면 이를 막는 일을 주로 했다. 고객센터 내에서도 폭언과 실적 압박 등 감정노동이 가장 심한 부서라고 알려져 있다. 이 업체에서 일했던 전직 노동자들도 해당 부서에 대해 “그곳은 사람 일할 곳 아니다”라고 할 정도다.

    앞서 이 업체 해지방어부서에서 근무한 한 노동자도 지난 2014년 10월, 실적 압박과 감정노동에 대한 괴로움을 호소하며 “회사를 고발한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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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3월 6일 19:06 해지방어부서 모습. 상담노동자들은 이 시간까지 남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A씨는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회사에 심하게 질책을 당하고 하루 콜수를 채우지 못하면 연장 노동도 강요당했다.

    LG유플러스 고객센터(엘비휴넷) 특성화고 현장실습생 사망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에 따르면, 이 업체는 상품 해지를 방어하는 데 실패한 ‘해지등록률’을 집계한 뒤 순위를 매겨 사무실 입구에 게시했다. 상담 노동자들에게 목표 해지등록률을 할당하고 이 목표치를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두고 성과급을 매겼다.

    상품 판매 실적도 강요당했다. 매일 팀별로 판매할 상품이 할당되고 회사에서 정한 할당량을 다 팔지 못하면 남아서 공부를 하고 가야 했다. 해지하고자하는 고객의 마음을 돌리는 것도 모자라 동시에 상품 판매까지 강제해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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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대위 규탄 회견과 고객센터 앞에 마련된 희생자 추모공간의 조화들(사진=공대위)

    A씨가 더 괴로웠던 건 고객들의 폭언보다 상사의 실적 압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A씨의 아버지는 B씨는 이날 오전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해지) 방어를 못하면 상사들한테 많은 압박을 받는 것 같았다. 집에 와서 ‘소비자들한테 많이 욕도 얻어먹고 심한 소리 들으면 몇 시간 울었다’고 그런 소리를 몇 번 했다”며 “딸이 ‘자기가 소비자 입장이 되면 그럴 수가 있는데 상사들이 위에서 압박하는 건 정말로 못 참겠다. 스트레스가 너무나 쌓인다’고 했다”고 전했다.

    B씨는 “회사에서 (실적이 좋지 않으면) 직원들을 모아놓고 ‘그까짓 것도 못하냐’, ‘왜 이따위로밖에 못하느냐’ 그런 안 좋은 소리를 했다는 것을 딸의 친구들에게 들었다”며 “딸이 죽기 3~4일 전에도 엄마한테 ‘회사 그만두고 싶다’, ‘사직서를 내야겠다’는 말을 했다고 들었다”고도 했다.

    A씨는 상품 판매 1등을 할 정도로 실적도 좋았다. 그러나 A씨가 상사의 압박과 고객의 폭언 등 고된 감정노동을 견디며 손에 쥔 임금은 10월 86만원, 11월 116만원, 12월 127만원, 1월 137만원이었다

    B씨는 “딸의 일 있고 난 뒤에 10여 일 있다가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월급이 남았다고 찾아가라고. 94만 2천 얼마를 넣었더라”고 전했다.

    A씨의 아버지는 회사가 딸을 비롯한 현장실습생들을 ‘소모품’처럼 여겼다고 말했다. 감정노동이 심해 콜센터 장기근무자들도 가기 꺼려하자 그 부서에 실습생을 투입했다는 것이다.

    영업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단 몇 개월 만에 그만두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는 증언도 나왔다. 실제로 지난해 특성화고 실습생 십 수 명이 해지방어부서에 배치됐지만 6개월도 되지 않아 모두 그만두고 지금 단 2명, 전체 부서로 봐도 10명밖에 남지 않았다. 이 업체는 새로 일할 사람을 소개하면 소개해준 사람에게 소개비로 25만 원을 준다는 홍보까지 했다.

    공대위가 이 업체에서 아직 근무하는 이들에 대한 상담을 진행한 결과, 전원이 감정노동에 대한 스트레스와 전공과 일치하지 않는 업무 탓에 겪는 진로의 불안정함을 호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대위는 이날 오전 전주 LG유플러스고객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들은 특성화고 학생이라는 이유로 사실상 사회적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었다”며 “현장실습에서 이들의 전공은 고려되지 않았고, 실습을 나가서 어떤 일을 겪는지도 관심 밖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교육청은 아직까지도 몇 명이 LG유플러스 고객센터로 실습을 나갔는지, 몇 명이 중간에 되돌아왔는지, 이들이 왜 되돌아왔는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이정미 정의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현장실습 고교생의 과로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기업은 현장실습생을 단순히 값싼 인력 취급하고, 일선학교들은 취업률 숫자만 신경 쓰며,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련기관은 현장실습에 대해 제대로 된 모니터링을 하지 않아 벌어진 ‘구조적 참사’이며 예고된 ‘비극’”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현장실습 중인 미성년자는 1일 7시간, 1주일 35시간 초과 근무를 할 수 없고, 당사자 합의가 있어도 1일 1시간 1주일에 5시간의 연장근로만 허용한다는 현행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을 언급, “불법적인 강제 연장근로가 있었는지에 대해 교육부와 고용노동부 등 관계기관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실습생

    사진 설명 :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지난해 10월 25일, 수습기간이었던 A씨가 저녁 7시가 다돼서도 퇴근하지 못하고 아버지와 나눴던 문자 내용 캡처 이미지/ 새로 일할 사람 데려오면 돈 준다는 홍보글 / 상품판매는 기술지원부서에서도 이루어지고 있음. 각 상담노동자 책상에 판매할 목표치가 적혀있다/ 사무실 입구에 세워져 있는 해지 방어 실적표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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