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에 대한 오해
[탐구, 진보21] 과학과 인문학의 이분법적 분리는 잘못
    2012년 08월 15일 04:0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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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째 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 다수가 수학은 기능적인 학문, 인문학은 인성과 관련된 특별한 학문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인간의 사유체계는 크게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4~5만년 전 후기 구석기 이후 인류 공동체가 급성장하면서 죽음과 매장, 다산과 풍요에 대한 고민이 조각, 동굴 벽화 등으로 표출되던 시기이다. 이 시기 사람들의 생각은 애니미즘, 토템 등 원시 신앙이나 신탁이니 비의와 같은 주술 등으로 표현되었다.

현재의 관점에서 보면 주술, 굿 따위가 별 것 아닐 수 있지만 당시로 보면 인류 공동체를 지배하던 사유체계의 주류였다.

두 번째 시기는 1만년 전 신석기, 농업혁명이 시작되면서 인류 역사가 격동하던 시기이다. 이전 시기 사유 체계의 근간이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있었다면 두 번째 시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이동했다. 그 만큼 인류가 자연으로부터의 직접적인 위협으로부터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시기는 생산력이 발전하고 공동체 사이의 갈등과 통합이 본격화되면서 사유의 중심이 인간의 본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로 발전했다. 그리고 그러한 사유의 성과를 바탕으로 고대제국과 고대종교가 성립되었다.

그리스 고전문명, 중국의 제자백가, 인도의 불교, 오리엔트의 조로아스터교나 기독교 등이 비슷한 시기(이를 흔히 축의 시대라고 부른다)에 출현하고 비슷하거나 동일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들 고등종교나 사상은 신석기, 농업혁명 이후 인류가 직면했던 문제 즉 인간의 본성,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등을 사유했고 그 성과를 바탕으로 고대 제국이 성립되었다.

세 번째 시기는 17세기 과학기술 혁명과 함께 시작된다. 뉴턴 물리학은 인류 사유체계에서 자연과학적 사고가 새로운 추동력이 되는 시기를 열었다.

17세기 이래 자연과학적 성과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다. 그리고 자연과학적 성과는 단순히 해당 분야를 뛰어 넘어 과거에는 철학의 영역이었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 최근 최첨단의 철학논쟁이 생물학, 물리학 등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문학은 인간적인 특별한 무엇이고 수학이나 공학은 사회의 물질적인 측면과 관련된 기능적인 지식이 아니다. 각각은 특별한 시기 인류 공동체가 직면했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사유 체계의 갈래들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시기 중요한 것은 현재 인류가 어떤 사유 체계를 필요로 하는가이다.

현재 인류 문명은 과학기술에 의해 급격히 발전하고 있다. 과학기술적 성과를 저변에 깔면서도 한 시대를 규정하는 기본 열쇠가 사회인식에 있었던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국의 제자백가 시대에는 철기시대를 배경으로 유가, 법가 등이 경합했다. 그러나 지금은 인간관, 사회인식과 함께 과학기술적 성과들이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시대 변화를 강제하고 있다.

08년 이후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하나의 주제라면 SNS의 발전과 그에 따른 네트워크의 발전이 또다른 맥락이다. 양자는 과거처럼 과학기술의 발전(철기)를 배경으로 깔면서 다양한 사회인식이 경합하는 양상이 아니라 과학기술의 발전이 보다 빠르고 그와 맞물려 사회경제적 갈등이 굴절되어 표출되는 양상이다. 따라서 시대를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전제로 사회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이 결합되어야 한다.

수학자이자 철학자, 자연과학자였던 데카르트

지는 덕에 선행한다. 시대와 인간에 대한 통찰에 기초해서만 올바른 법, 제도, 도덕에 대해 논할 수 있다. 그가 아무리 고매한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전근대 왕조적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면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표면적으로 인간과 인간사회 문제를 다룬다고 인간적이고 인본적인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시대의 추세에 맞는 사유체계의 주류를 섭렵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시기 수학과 과학에 대한 이해는 올바른 도덕과 가치관을 논하는 선행공정이다.

수학은 자동차 정비와 같은 기능적인 학문이 아니다. 인류 문명과 함께 해온 사유체계이고 21세기의 고도 과학기술사회라면 인류의 사유체계의 중심이다. 문제는 과학기술에 대한 공부보다는 사회제도에 대한 탐구, 과학기술공학자보다는 법률가들이 중심이 되는 낙후한 인식, 사회 시스템이다.

필자소개
민경우
전 범민련 사무처장이었고, 현재는 의견공동체 ‘대안과 미래’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서울 금천지역에서 ‘교육생협’을 지향하면서 청소년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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