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른들은 몰라요
    [메모리딩의 힘-7] 동화는 원래 '가족독서용'
        2012년 08월 15일 03:4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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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록과 책 한권,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만 덜렁

    어른들은 몰라요 아무것도 몰라요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러는 건데
    언제나 혼자이고 외로운 우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주세요
    – 동요 <어른들은 몰라요> 노랫말

    두 살, 네 살배기 아들들을 키우면서 자연스럽게 동요를 자주 듣게 되는데, 아주 익숙한 동요이지만 노랫말들이 새롭게 다가왔다. 특히 <어른들은 몰라요>의 노랫말은 가슴이 아프기까지 하다. 아이와 부모를 보면 ‘동상이몽도 이런 동상이몽이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독서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아이들의 생각을 엿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 때도 이런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메모 리딩’ 프로그램은 일종의 독서 놀이인 셈인데, 아이를 주인공으로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지금까지의 교육은 다분히 부모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아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기 위해 애썼다. 프로그램이 끝나고 ‘도윤이’라는 친구(만5세)에게 편지를 한 장 받았는데 대부분의 어린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이 표현되어 있었다. (그림 2-1참조)

    그림2-1. 메모리딩 프로그램이 끝나고 도윤이가 직접 써 보낸 편지

    특히 “구몬은 나 혼자 해야 하는데 이건 엄마랑 같이 해서 정말 즐거웠어요”라는 부분을 읽을 때는 기쁘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다.

    내 조카의 독서록이 생각났다. 얼마 전 조카의 집에 갔을 때 조카의 책상 위에 독서록이 놓여 있었는데, 엄마는 독서록 작성을 했는지 계속 확인을 했다. 이 일을 떠올리면서 독서록을 작성하는 조카에게 감정이입을 해보았다. 아래는 조카의 입장이 되어 써본 글이다.

    이번에는 <강아지똥>을 읽게 되었다. 동화를 읽는 것은 재밌지만 독서록을 쓸 생각을 하니까 답답하다. 솔직히 아직도 독서록을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친구들의 독서록을 봐도 그저 그렇다. 독서록의 빈칸을 혼자서 채워야 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막막하다.

    메모리딩 프로그램을 하면서 아이의 독서교육할 때의 고민을 써달라고 엄마들에게 요청했는데, 대부분은 “우리 아이가 책 읽기도 좋아하고 글밥도 제법 생겼는데, 독서력이 높아졌는지는 잘 모르겠어요”였다.

    독서에 재미를 붙여서 책을 놓지 않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의미’가 있는지 걱정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대개 재미와 의미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다. 부모님들의 이런 생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부모님 자체가 빠져 있거나 깊이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화는 원래 ‘가족 독서용’

    동화의 고향인 독일 이야기를 해보자. 동화의 원조 격으로 추앙받는 것은 그림 형제(독일의 형제 작가, 언어학자. 형은 야콥(Jacob Ludwig Carl Grimm, 1785-1863) 동생은 빌헬름(Wilhelm Carl Grimm, 1786-1859))가 편찬한 <그림 동화책>이다.

    그림 형제는 독일이 자랑하는 언어학자이자 사전편찬자였다. 형제는 독일의 정체성을 오롯이 모아내기 위해서 흘러 다니는 옛 이야기를 집대성해 <어린이와 가정을 위한 동화 모음>을 편찬하였고, 아울러 독일어 사전을 편찬했다.

    작품집에는 200여 개의 동화가 소개되었는데, 제목과 같이 어린이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가족과 함께 읽는 것이 ‘동화’의 진면모다. 때문에 독일에서는 ‘동화읽기 방법론’이 크게 발달돼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제목에 담겨 있는 ‘가정’이라는 단어다. 동화책이 우리나라에 ‘번안’되어 소개될 때는 바로 ‘가정’이라는 개념이 사라져 버렸다.

    그림 동화에는 인간사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담겨 있다.꿈과 성공, 성장, 사랑도 있지만 배신, 질투, 살인 등 어두운 부분도 많이 있다. 동화책을 읽는 연령대의 아이들도 인생과 세상의 ‘맨얼굴’을 어느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는 취지이다.

    이 이야기가 바다 건너 우리나라에 오면서 맨얼굴이 사라지고, 어른들이 보여 주고 싶은 모습만 남게 되었다. 바꿔 말하면 우리나라에 소개된 동화는 어린이의 것이 아니라 ‘어른의 것’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예컨대 ‘백설공주’가 어떤 식으로 왜곡되었는지 살펴보자. 원래 제목은 <슈네비츠현(Sneewittchen)>인데, 여기서 Snee는 하늘에서 내리는 눈, witt는 하얗다는 뜻, chen은 자그마하다는 뜻으로 이루어진 옛 독일어다. “하얀 눈 아이”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즉, ‘백설’은 틀리지 않지만, ‘공주’는 전혀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 소개될 때 왜 <백설공주>로 이름이 바뀌었는지 조사해 보았다. <하얀 눈 아이(Sneewittchen)>는 일본어로 <시라 유끼 히메>(白雪姫, しらゆきひめ)라고 하는데, 시라는 ‘희다’ 유끼는 ‘눈’, 히메는 ‘공주’를 뜻한다. 이것을 놓고 보면 동화의 원래 취지와도 상당히 멀어졌을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는 지식과 문화에 있어서는 아직도 일본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뇌 과학과 아동심리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현대의 뇌 과학과 아동심리 연구의 결과물들을 보면 당시 그림 동화가 얼마나 과학에 기초한 올바른 관점이었는지 알 수 있다.

    아동심리학자이자 언어학자인 앤 덴스모어 박사와 하버드대학교 신경학자이자 소아과 의사인 마거릿 바우만 박사는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와 다양한 치료 사례를 통해 연구한 결과보고서인 하버드대학교 성장발달 연구 프로젝트 보고서 <사회성 발달 보고서>(지식채널)를 보면 아이의 연령별 성장 상태가 기록되어 있다.

    연구에 따르면 한 돌만 지나도 아이들은 이미 분노, 슬픔, 즐거움, 두려움, 흥미, 놀라움 등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생의 두 번째 해에는 죄책감, 부끄러움, 난처함, 자부심 등을 드러내는 것이 가능해진다. 걸음마 단계의 아이는 자신의 감정과 상황적인 맥락을 연결시킬 수 있게 된다.즉, 무엇이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지 알게 되어 그 행복감을 모방하기도 한다.
    만 세 살이나 다섯 살의 사이의 아이는 우정을 형성하고 자신의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운다.
    만 네 살이 되면 다른 아이의 감정을 알아차리기 시작하고, 자신도 같은 정서로 반응할 수 있다. 하지만 과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대신 또래 친구의 정서 상태에 적응함으로써 관계를 맺어간다.
    – <사회성 발달보고서>, 71면

    이것은 아이를 직접 키우지 않거나, 키우더라도 가까이 두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지 않으면 좀처럼 알기 어려운 사실이다. 이런 과학적 연구 결과에 따라 메모 리딩 프로그램은 만5세에서부터 적용하고 있다. 만5세는  한마디로 ‘알 만한 것은 알 나이’인데 어른들은 너무 어리게만 바라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이들에게 독서교육을 시키는 부모의 바른 자세를 알 수 있다. 아이가 읽는 책에 대해서 부모가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함께’ 읽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그리고 <보물선>이라는 이야기처럼 아이는 주인공인 ‘배’, 부모는 배를 띄우는 ‘바다’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부모의 적극적 개입은 아이의 독서력을 망치는 주범이 될 수 있다는 점은 교육자와 아동심리 전문가들이 줄곧 경고하고 있다.

    바다처럼 넓은 품으로 아이를 끌어안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보다 더 책을 많이 읽고, 아이가 하는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 다음 이야기에서 다룰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다.

    필자소개
    오승주
    제 꿈은 어린이도서관장이 되는 것입니다. 땅도 파고 집도 짓고, 아이들과 산책도 하고 놀이도 하고 채소도 키우면서 책을 읽혀주고 싶어요. 아이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해주고, 아이가 자라는 동안 함께 하고 아이와 함께 아파하며 아이가 세상의 일원으로 우뚝 설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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