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도 막아
소녀상도 이전 요구, "누구의 정부?"
    2017년 02월 28일 04:1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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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역사를 잘 알고 반성했을 때에, 그 다음에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과거 일은 덮어놓고 앞 일만 내다보면 앞으로 고꾸라질 뿐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상임대표 단체로 있는 강제징용 노동자상 건립 추진위원회(노동자상 추진위)가 28일 오전 용산역 광장에서 개최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설치 거부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한수 할아버지는 강단 있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말하며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에 눈 감는 우리 정부에 대한 일침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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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사진은 유하라

발가락뼈 부서져가며 강제노역, 아리랑 부르며 눈물…
“미래 세대에 물려주지 않으려면 아픈 역사 기억해야”

김한수 할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당시 영문도 모른 채 나가사키 미쓰비씨 조선소에 끌려간 강제징용 피해자다. 올해 99세인 김한수 할아버지는 여전히 그 당시에 설움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느닷없이 연안읍에 목재 정리할 일이 있다고 해서 트럭에 탔는데 갔더니 목재는 없고 사람만 100여명이 모여 있었다. 다들 나처럼 일거리가 있어서 왔다고 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보니 일본 헌병이 우리를 빙 둘러싸고 있었다. 그때 머리털이 쭈뼛 서더라. 일본에 도착해서 나가사키 역에 판잣집으로 갔다. 볏짚으로 채워진 이불을 덮고 잤다.

일본에 끌려가선 항공모함에 쓰는 큰 파이프를 달궈서 꼬부리는 일을 했다. 하루는 그 빨갛게 달궈진 것이 엄지발가락으로 떨어져서 뼈가 다 바스러졌다. 그랬더니 왜놈이 뼈 하나 부러진 건 일하는데 지장이 없다고 하더라. 그날 같이 끌려온, 이미 세상을 떠난 내 친구가 나를 업고 산을 올라갔는데 그게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아리랑 노래를 불렀다. 나라 없는 민족이 돼서 이 모양으로 고생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라가 없으면 그 국민은 돛대 없는 배와 같이 방향을 잃는다.”

노동자상 추진위는 김한수 할아버지와 같은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를 기리기 위해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추진해왔다. 이미 지난해 8월 일본 교토시 단바망간기념관에도 노동자상을 건립한 바 있다. 당초 노동자상 추진위는 이날 용산역 광장에서 노동자상 제막식을 개최할 계획이었다. 용산역은 일제강점기 때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일본으로 끌려가기 전에 집결했던 역사적인 상처가 있는 장소다.

그러나 정부가 노동자상 건립을 거부하면서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국토교통부가 부지 협조 불가 입장을 밝혔는데, 그 이유가 ‘국가소유 부지’라는 것과 ‘한일관계를 고려한 외교부의 반대’ 때문이다. 결국 일본 정부의 뜻을 대변해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이유와 같다.

김한수 할아버지는 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하는 정부를 향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역사라는 것은 우리 국민들이 서로 알고 심각하게 느껴 미래에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라며 “반대하는 이유를 좀 알려 달라. 여기 김한수라는 사람이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다. 노동자상 건립에 반대하는 사람이 누군지, 나하고 면담 좀 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이희자 태평양 전쟁 희생자 유족회 대표도 참석해 노동자 건립을 반대하는 우리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 대표의 부친은 일제 강점기 때 군무원으로 강제동원돼 중국에서 생을 마감했다. 그는 29년째 강제징용 피해자들을 기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용산역은 일제시대 때 수많은 청년들이 일본으로 끌려간 아픔의 현장”이라며 “반드시 용산역에 그 흔적을 남겨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피해자 수십만 명의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모든 가족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용산역 한 쪽엔 조선인을 가둬두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가둬놓고 어느 지역에서 몇 명 보내라 하면 그 창고에서 사람을 꺼내 보낸 거다. 우리 정부는 그런 일들을 하나도 기억하고 알리려고도 하질 않는다”며 “노동자상 건립을 반대하는 외교부는 누구를 위해 반대하는 것인가. 일본 위한 것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지금도 너무 늦었고, 정부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용산역을 오가는 모든 이들이 노동자상을 통해 당시를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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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을 대변할 수 없는 정부, 물러나라”

위안부 소녀상 이전 공문에 이어 노동자상 건립까지 가로 막은 우리 정부를 두고 “누구의 정부인가”라는 탄식은 모두에게서 나왔다. 아픈 역사를 기억하는 일은 정부가 권장하고 나서야 할 일이지만, 우리 정부는 일본이 불편한 기색만 나타내도 아픈 역사를 덮기 바쁘다.

이창복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상임대표의장은 “젊은이들이 청춘의 꿈을 안고 인생 계획 세워야 할 때에 전쟁터, 군수공장, 광산으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하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고 비통했을까. 인권, 자존심, 명예를 다 빼앗긴 노예적 삶을 살았던 그들을 다시 기억하면서 미래를 개척하고자하는 것이 노동자 상 건립의 취지”라고 말했다.

이 의장은 “이 사업은 정부가 허락을 넘어 권장해야 할 일”이라면서 “그럼에도 협조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다. 당신들의 잘못된 정책, 관행,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더 이상 우리 국민을 대변할 권한이 없는 정부다. 그런 정부는 물러나야 한다”며, 우리 정부의 시대착오적 행태를 강력하게 규탄했다.

“우리는 여전히 나라 잃은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26년째 수요시위를 이어가고 있는 정대협도 참석했다. 정부의 노동자상 건립 반대는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요구하는 행태와 같다. 강제징용 피해자 기리는 일도, 위안부 소녀상을 지키는 일도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운운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이게 나라인가. 성노예 피해자뿐 아니라 수많은 희생자들은 여전히 절규하며 눈을 감고, 절규하며 거리에 서 있다. 이게 독립된 나라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윤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의 말을 인용해 “‘여러분은 나라 잃은 세상에서 살아봤나. 그런데 여전히 우리는 나라 잃은 세상이서 살고 있는 것 같다. 편안하게 발 붙일 수 있는 곳이 없다’했다”고 전했다.

윤 대표는 그간 우리 정부가 일제강점기 피해 국민들에게 행해온 일들을 모두 나열하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는 “과거사 청산하라고 했더니 한일협정으로 피해자의 피고름을 돈으로 팔아 해치운 박정희, 공식 사죄 받으랫더니 지난한 세월의 투쟁의 역사를 단돈 십억 엔에 팔아치운 박근혜, 과거 역사를 잊지 말고 올바르게 교과서에 기록하고 추모비와 박물관을 건립해 후세들에게 아픔 반복하지 않도록 힘쓰라 했건만 소녀상 치우겠다고 약속한 윤병세, 아베에 면죄부 준 2015 한일 합의. 그리고 오늘 국가가 해도 모자랄 노동자상마저도 세울 수 없다는 외교부, 이게 어디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한민국 정부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가 싸우지 않으면 용산역에서 강제징용 노동자들이 줄지어 기차를 타는 그 모습을 정부는 덮으려 할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역사가 우리를 깨울 수 있도록, 다시는 빼앗긴 역사를 살지 않도록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징용, 오늘의 문제이다”

양대 노총을 주축으로 하는 노동자상 추진위는 기자회견문을 통해 “오늘 우리는 정부의 ‘거부’로 인해, 노동자상 제막식을 대신하여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우리의 의지는 결코 꺾을 수 없다”며 “오는 8월 15일 광복절을 즈음하여, 우리는 반드시 서울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설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강제징용은 어제의 문제이자, 동시에 오늘의 문제이기도 하다”며 “그렇기에 우리는 ‘3.1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퍼진 날, 조선인들을 끌고 가기 위한 집결지였던 용산역 광장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건립하고자 했다”고 배경을 전했다.

노동자상 추진위는 “(정부의 노동자상 건립을 거부 이유는) 결국 강제징용 문제를 국가가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며 “일제 강점기 역사와 당시 조선 민중들의 참혹했던 고통을 기억하는 것은 민족의 주권을 지켜나가야 할 정부 당국의 당연한 의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올바른 한일관계를 위해서도, 일제 40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진실규명과 사죄, 배상이 이행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고 덧붙였다.

노동자상 추진위는 “주권을 잃은 국가에게 미래는 없다”며 “‘강제징용노동자상건립추진위원회’를 더욱 확대하고, 일제 강점기 역사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실천과 투쟁을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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