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의당은 여성주의 정당?
    ‘여혐·메갈 사태’ 등 젠더 이슈에 제대로 대응 못해
        2017년 02월 23일 07:0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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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여성주의 관련 강좌나 책에 대한 관심이 높다. 평일 오프라인 강좌를 듣기 위해 평소보다 10배 이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현상’도 벌어졌다. 일상적인 여혐에 반응하지 않았던 이들이 강남역 여혐 살인사건, 메갈리아 논쟁 등을 겪으면서 페미니즘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입을 열고 행동하고 발언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성주의가 더 이상 소수의 담론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들이다.

    지난 해 정의당을 휩쓸고 지나간 ‘여혐 논쟁’의 여파는 여전하다. 중식이 밴드부터 메갈리아 사태가 당을 뒤흔들었던 모습을 환기해보면 정의당에 ‘여성주의 정당’이라는 간판을 붙이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는 당 안팎으로 나온다.

    메갈 논쟁은 어느 정도 잠잠해졌다. ‘박근혜 게이트’가 나라 전체를 휩쓸었고 대선도 코앞이라, 모든 눈과 귀가 여기에 쏠렸다. 문제가 해결돼서라기보다 시간이 논쟁을 덮은 것이다. 정의당의 여혐 논쟁은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모르는 불씨인 셈이다.

    이런 상황들을 종합해 보면, 정의당의 여성주의 정책과 활동에 대한 고민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원내 유일 진보정당으로서의 선명성을 위해, 지지율을 위해, 시대의 흐름을 빠르게 따라가기 위해서라도 정의당은 선제적으로 여성주의에 대한 깊은 고민과 정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여성

    정의당 여성위원회와 성평등부가 주관해 2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진보정당 여성정책과 여성주의 활동의 평가와 과제 토론회’에서도 이런 고민들이 고스란히 반영됐다.

    발제를 맡은 김원정 전 민주노동당 여성담당 정책연구원은 “지난 총선 당시 중식이밴드 사건을 시작으로 1년 가까이 정의당 안팎에서 논란이 된 이른바 ‘여혐·메갈 사태’는 젠더 이슈에 대한 진보정당의 개입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면서 “그러나 이번 사태로 그러한 현실에 대한 대응 역량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은 정의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사회에서 진보정당이 지향하는 젠더 평등의 상이 무엇인지, 그러한 이상에 가까워지는 것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전망하지 못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전 정책연구원은 “대중들에게 젠더 문제는 이미 너무 첨예한 갈등 요인이자 관심사가 되었지만, 진보정당은 ‘여성주의 정당’을 늘 말로만 해왔을 뿐, 어떤 의제로 ‘장사’를 해 본 적이 없다”며 “그래서는 이 예민해진 대중들에게 속절없이 휘말리거나, 아니면 반대로 외면을 당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정의당이 여성주의 정당이라고 천명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행보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메갈 사태에서 홍역을 치렀던 당 지도부 사이에서도 나온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토론회 축사를 통해 “정의당은 진보정당이고 여성주의정당이지만 한국사회 여성을 대변하는 정당이라기에는 현실은 초라하다”며 “정의당의 체계 및 문화, 정책과 공약이 여성주의를 잘 구현하고 있는지 우선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해볼 문제”라고 말했다.

    나경채 공동대표도 “‘자세와 태도만으로는 뿌리 깊은 여성 차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됐다”며 “자세와 태도를 뛰어 넘어 여성정책·여성주의 논의에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전 정책연구원은 “‘여성주의 정당’으로서 정의당의 비전과 계획을 제시하고 승인받는 것 외에 상황을 수습할 다른 방도가 없다면, 누가 어떻게, 어디서 그 논의를 시작하고 주도해 나갈 것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특히 “이럴 때일수록 정당에서 페미니스트 활동을 한다는 것이 ‘무엇을 한다는 것인지’ 페미니스트 그룹 내에서도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며 “성차별주의자 혹은 ‘여혐’들과의 언쟁이 아니라 정당 안팎의 제도와 민주적 절차들을 통해 부여된 권위와 힘을 구조적 수준에서 젠더 관계를 변화시키는 데 제대로 행사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제는 개개인의 머릿속과 입이 아니라, 말과 행위, 삶을 틀 지우는 젠더화된 구조와 제도에 주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의당 내에서 벌어진 여성주의 논쟁이 지난 20년 간 진보정당 내에서 여성정책과 여성주의 활동들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과정이 누적된 결과라고도 평가했다. 여성정책과 여성주의 활동을 위해 당 내부의 역량을 키우려 노력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 전 정책연구원은 “(진보정당에서) 페미니스트 정당 활동은 ‘여성사업’으로 축소되거나, 모든 당 내외 젠더 이슈에 대한 대응을 ‘여성사업’ 단위로 아웃소싱한 채 나머지 골간 조직은 책임을 방기해 온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면서 “20여 년 전 진보진영/진보정당 운동의 현실, 당시의 젠더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여성 세력화 관련 제도와 관행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의미한지, 여성 세력화를 위한 기존의 조직체계와 활동 방식이 여전히 적절한지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한 “선거 때마다 ‘여성’이라는 꼭지로 정책 공약을 나열하는 작업 외에, 이렇다 할 정책 생산이나 입법 활동 자체가 많지 않았다”며 “‘공약’의 틀을 넘어선 정책 생산, 정치 활동의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단 하나의 이슈라 하더라도 비판적인 젠더 이슈를 선점하는 세력이 될 것인지 아니면 정당 밖에서 제기되는 젠더 이슈에 가장 선명한 해법을 제시하는 위치를 점하는 세력이 될 것인지, 정부 영역과 비정부 영역을 넘나들며 어떻게 효과적인 정치활동의 경로들을 만들 것인지 등 활동 방식과 관련된 굵직한 판단들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유하라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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