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럽 극우파의 선봉,
    프랑스 국민전선 급부상
    [유럽 극우파5]마린 르펜, 결선 유력
        2017년 02월 22일 04:4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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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극우파-4 독일을 위한 대안

    NON! 2002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 일제히 등장한 문구였다. 극우정당인 국민전선(FN)의 장 마리 르펜이 공화당의 자크 시라크에 이어 2위로 결선투표에 진출하면서 프랑스 전역은 르펜 반대(NON!)을 외쳤다. 현직 총리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은 3위로 밀려나는 충격적인 결과였다. 사회당 후보가 결선에 오르지 못한 것은 전후 최초의 일이었다.

    르펜의 당선을 막기 위해 조스팽은 즉각 시라크 지지를 선언했다. 심지어 극좌정당인 노동자투쟁당(LO)도 공개적으로지지 선언을 강요받았다. 모든 정당들이 선거운동에 나서면서 시라크는 역대 최고의 득표율로 화려하게 엘리제궁에 입성했다.

    2017년 프랑스대선에서 정확히 15년 만에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이번에는 장마리 르펜의 딸인 마린 르펜 국민전선 당수가 지지율 1위를 놓치지 않으면서 결선 진출이 유력해지고 있다. 현직 대통령인 사회당의 올랑드는 한자리 수의 지지율을 기록하면서 일찌감치 불출마를 선언해야했다. 사회당의 당원들은 예상을 뒤엎고 당내에서 좌파그룹인 브누아 아몽을 후보로 선출했다. 아몽은 집토끼를 다시 모으면서 두 자리 수의 지지율을 회복하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결선 진출은 요원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르펜과 공화당 프랑수아 피용의 2파전으로 전개될 것으로 생각했던 선거는 뜻하지 않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다시 안개속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에마뉘엘 마크롱이 피용을 턱밑까지 따라잡는 것에 이어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2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하고 있다. 마크롱은 올랑드 밑에서 경제장관을 지내며 반 노동정책을 주도하다 탈당한 후 직접 대선 후보로 나서 기존 정당에 실망한 유권자들을 흡수하며 단숨에 3파전을 형성했다. 마크롱에게는 또 다른 행운도 뒤따랐다.

    피용이 후보로 선출된 지 얼마 후 횡령 혐의로 경찰의 소환조사를 받으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부인과 자녀들을 허위로 보좌관에 등록해 세비를 횡령했다는 것이다. 피용이 직접 해명에 나섰지만 후보를 사퇴해야 한다는 여론은 오히려 높아졌다. 그 기회를 이용해 마크롱이 근소하게 2위로 역전에 성공했다. 공화당에서는 알랭 쥐페 전 총리로 후보를 교체하자는 여론이 다수 의견이지만 피용은 완주를 다짐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여론조사들을 종합하면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이 22~26%, 무소속의 마크롱이 20~22%, 유탄을 맞은 공화당의 피용은 18~20%를 기록하며 3위로 추락했다. 마크롱이 2위로 결선에 진출한다면 최초의 무소속 대통령이 탄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마크롱의 약점은 고소득, 고학력에 지지층이 몰려있고, 블루칼라와 비정규노동자들의 지지는 낮다. 한마디로 지지층의 충성도가 높지 않아 공화당이 전열을 가다듬는다면 언제든지 역전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직 대통령인 사회당의 올랑드 지지율이 4%(여론조사 역대최저)까지 추락하면서 당내에서 불출마 선언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자 올랑드는 이를 수용했다. 브누아 아몽이 출마했을 때만 하더라도 모든 여론조사는 당내 결선에 오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예상을 뒤엎고 당원들은 아몽의 손을 들어주었다. 아몽은 빠르게 지지율(15~17%)을 회복하고 있어 혼전을 3파전이 아니라 4파전으로 몰고 간다면 극적인 결과도 기대할 수도 있다. 최근 <21세기 자본>으로 유명한 파리 경제학대학 토마 피케티 교수가 아몽 정책총괄로 참여하면서 탄력을 얻고 있다.

    좌우 모두를 단결시킨 2002 프랑스 대선

    전후 피해가 극심했던 프랑스는 급격한 노동력부족에 시달렸고, 문제해결을 위해 이민청을 설치하고 북아프리카에서 이주민을 받아들였다 (불법)이주민이 수백만 명을 넘어서자 반 이민, 반 이슬람 정서가 급격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주도하던 반 이민운동과 군소 극우조직을 모아 장 마리 르펜이 1972년 국민전선(FN)을 창당했다.

    장 마리 르펜은 프랑스 남부 해안도시에서 어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의 영향인지 알 수 없지만 어려서부터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에서 불법으로 들어오는 이주민에게 적대적으로 행동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도 극우 학생조직을 주도하고 리더로 활동했다. 유럽의 극우정당의 지도자들이 어느 정도 나이가 든 다음에 우파에서 극우파로 변신하는 것과는 달리, 젊어서부터 뼛속까지 극우주의자였다.

    반(反) 유럽연합·반(反) 난민을 전면에 내건 국민전선은 조금씩 지지기반을 만들어 나갔지만 정당명부제가 없는 프랑스에서 하원에 진출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기회가 온 것은 유럽연합이 의회를 창설하면서였다. 결선투표가 필요 없는 1984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10석을 획득하면서 국제무대에 먼저 진출했다. 1997년 지방선거에서 자신의 연고지인 남부 4개시를 장악하며 전국득표율 15%를 획득했다.

    국민전선은 30년 동안 하원 진출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지만, 경기 침체와 높은 실업률을 모두 유럽연합과 이주민의 탓으로 돌리며 저소득층 노동자를 파고들었다. 저소득 노동자의 지지를 끌어온다는 것은 중도좌파 사회당의 지지층을 잠식하는 것을 의미했다. 공화당 시라크 대통령 아래 좌우동거정부를 이끌고 있는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총리는 경제성장을 위해 전통적인 좌파정책을 하나씩 후퇴시키기 시작했다. 조스팽의 신자유주의 정책 도입과 복지 후퇴는 조금씩 노동자의 이탈을 불러왔고, 국민전선이 이를 잠식했다.

    2002년 대선에서 결선 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루었지만 이후 국민전선 지지율은 오히려 하락했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주요하게는 당의 창업자이자 당수인 장 마리 르펜의 극단적인 행동 때문이었다. 길거리의 극우주의자들은 환호했지만 당 안의 정치인들 생각은 달랐다. 하원으로 가기 위해서는 세련된 극우 이미지가 필요한 시대라는 여론이 다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장 마리 르펜은 누구의 도전을 받아 물러난 것이 아니라 당내 여론에 밀려 스스로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그의 뒤를 이은 사람은 딸인 마린 르펜이었다.

    프랑스1

    마리 르펜 국민전선 당수

    결선 진출이 유력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극우파 정치인의 자녀로 태어났다고 극우파가 되리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마린 르펜은 어릴 적 충격으로 인해 일찌감치 부친을 따라 극우주의자의 길로 들어섰다. 1976년 부친과 살던 아파트에 폭탄테러가 일어났다. 극우파가 테러를 당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닌데다 정당의 지도자를 향한 것이어서 프랑스 전역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밤중에 침대에서 폭탄소리에 놀라 깬 마린 르펜은 고작 8살이었고, 이때의 기억을 영원히 잊을 수 없었다.

    십대에 일찌감치 국민전선에 입당한 마린 르펜은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한 후 변호사로 활동했다. 변호사 자격을 딴 것은 독특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불법 이주민을 색출한 후 법정으로 끌고 가 프랑스에서 추방하는 것이었다. 해마다 수만 명이 밀려드는 이주민에 비하면 법정에서 추방시키는 숫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마린 르펜은 멈추지 않았고 극우주의자들은 그런 그녀에게 환호를 보냈다.

    당에서 마리 르펜은 부친보다 독보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노르 파스 칼레에서 지방의원에 당선되며 실력을 입증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당 지도부격인 집행위원을 거쳐 부당수 자리까지 올랐다. 부친이 당내 여론에 밀려 2선으로 후퇴하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 당수에 오른 마린 르펜은 당을 세련된 극우정당으로 탈바꿈시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극우정당에서 난무하는 나치 문양이나 홀로코스트(유대인학살) 부정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었다.

    그녀의 이런 ‘캐비어(?) 극우전략’은 예상 외의 성공을 거두었다. 세련된 이미지에, 위험할 정도의 극우정당이 아니라는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좌우 모두에서 표를 끌어 모으며 2012년 대통령선거에서 부친에 이어 또다시 결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속속 등장했다. 비록, 3위에 그쳤지만 640만 표(17.9%)를 획득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같은 해 실시된 하원의원 선거에서 마침내 당선자가 나타났다. 당의 간판인 마린 르펜조차 정당명부제가 없는 프랑스의 선거 탓에 번번이 낙선의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이 해 하원의원 당선자가 나왔다. 당선자는 마린 르펜의 조카인 마레샬 르펜이었다. 그녀의 선거구인 프로방스의 보클뤼즈(Vaucluse)는 스위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모두 인접한 곳이라 난민 문제에 민감해 있었다. 중도우파를 지지하던 남부 우파들이 대거 국민전선으로 넘어왔으며, 추가 당선자를 내지는 못했지만 남부 곳곳에서 두 배 이상의 득표율을 올렸다. 일종의 전략 선거구에서 마레샬 르펜이 당선되었지만 그녀 나이가 22살이었기 때문에 ‘르펜’이라는 집안의 후광도 작용했다.

    럽의 극우정당 지도자들이 코블렌츠에서 모여 올해 있을 선거에 공동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럽의 극우정당 지도자들이 코블렌츠에서 모여 올해 있을 선거에 공동대응을 논의하고 있다

    “램프의 요정은 다시 램프로 돌아가지 않을 것” 독일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코블렌츠에 모인 유럽의 극우정당 회합에서 네덜란드 자유당(PVV)의 빌더스 대표가 외친 일성이었다. 극우주의와 포퓰리즘이 유럽에서도 거세게 몰아칠 것이라는 확신의 목소리였다. 이 회합에 참석한 사람은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자유당의 빌더스, 독일대안당(AfD)의 프라우케 페트리, 오스트리아 자유당의 빌림스키 등이 참석했다.

    이들이 기지로 삼고 있는 곳은 유럽의회 내의 교섭단체인 민족자유그룹(ENF)이다. 교섭단체에게는 수천만 유로의 보조금이 주어지는데 극우정당은 이를 이용해 당선자를 늘리고 조직을 확대하는데 사용하고 있다. 이날 회합의 목적은 올해 실시될 선거에 공동대응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3월 15일에 실시될 네덜란드 총선에서 자유당은 제1당이 유력시되고 있고, 4월에 있을 프랑스 대통령선거에서 마린 르펜도 결선에 진출할 전망이다. 가을에 실시되는 독일 총선에서 독일대안당은 대거 원내진입이 확실하다.

    유럽 극우정당의 약진은 더 이상 미풍이 아니다. 결선에 오르는 것이 확실한 마린 르펜이 어느 정도의 결과를 보여 주는가 하는 것이 전 유럽의 관심사이다. 현재까지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누구와 대결하더라도 마린 르펜이 패배한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부친이 좌파표의 분산에 따라 턱걸이로 결선에 진출한 반면, 마린 르펜은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고 있으며 지지율은 계속 상승해 30%에 육박하고 있다. 프랑스 15년 만에 다시 더 위험한 적신호가 켜졌다.

    프랑스좌파는 지금

    프랑스 대선후보에는 중도좌파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외에 유력한 지지율(8~10%)을 얻고 있는 좌파당의 장-뤽 멜랑숑이 뛰고 있다. 현재대로라면 아몽도, 멜랑숑도 결선투표에 진출하는 것은 불가능할 전망이다. 아몽이 당의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맹추격에 나서고 있기 때문에 좌파당과 선거연합을 한다면 결선에 진출하는 것이 유력할 전망이다. 하지만 극우정당의 르펜이 대통령에 당선되든, 무소속의 마크롱이 당선되든 1차 투표에서 멜랑숑이 아몽의 손을 들어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2008년 11월 프랑스 랭스에서 열린 사회당 전당대회는 폐막도 하기 전에 대규모 탈당설이 나돌았다. 집권에 목마른 사회당이 계속해서 오른쪽으로 이동했으며, 급기야 당 대회에서 아내 가장 우파인 세골렌 루아얄의 ‘정치노선 E’안을 채택했다. 노선이 채택되었다는 것은 루아얄이 대통령후보로 선출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위기를 느낀 좌파들은 브누아 아몽의 C안을 중심으로 단결했다. 멜랑숑과 마르 돌레즈의 ‘강조점’그룹과 ‘투사들의 힘’그룹이 자신들의 안을 폐기하고 아몽의 C안을 지지한 것이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풀린 중도파 등과 일부 좌파들도 루아얄의 당선 가능성에만 모든 것을 걸고 있었다. 아몽의 C안은 결선은커녕 4위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야했다.

    멜랑숑의 ‘강조점’그룹과 ‘투사들의 힘’그룹이 탈당해 좌파당을 결성했다. 정당명부제가 없는 프랑스의 선거제도로 좌파당은 대표정치인 멜랑숑(상원)과 마르 돌레즈(하원)등 총 4석을 차지하고 있다. 9년 전 겨울에 아몽과 단결했던 멜랑숑은 완주를 선언한 상태다. 아몽이 혼전을 만들지 못한다면 무소속의 마크롱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기록을 세울 전망이다. 아몽은 빠르게 과거의 지지율을 회복하면서 추격에 나서고 있지만 두 달의 시간으로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필자소개
    인문사회과학 서점 공동대표이며 레디앙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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