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된 전통?
    주객 뒤바뀐 신년인사회
    [진보 구의원] 내가 큰절하는 이유
        2017년 02월 20일 10:3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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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신년 초에 지역은 ‘인사회’로 바쁘다. 동방예의지국이니까 그런지 인사하자고 사람들이 모인다.^^ 그런데 모두 모여 인사를 나누는 것은 좋지만 관이 주도하는 신년인사회에 대해 나는 부정적이다. 옛날식, 동원식 행사 느낌이 물씬 난다. 정치인은 말하고, 관청은 말하고, 주민은 듣는다. 뭐 내가 속한 구로구에 국한된, 또 내 관점에 국한된 생각일 수도 있지만, 좀 상큼하게, 주민이 주인이 되도록 바꿔 볼 수는 없을까?

    1라운드. 구청 주관 신년인사회

    1월 1, 2주 중에 구로구 전체가 모이는 신년인사회가 열린다. 큰 공간을 빌려서 약 1000명 이상의 지역주민들이 참여하는 인사회다. 간혹 서울시장도 참여하고, 구로구에 있는 거의 모든 단체의 회장님, 총무님, 회원님들이 대거 참석한다. 지역 내 모든 분야 모든 인물들을 총 망라한다고 보면 된다. 이 행사에는 초대장이 발송되는데 이 초대장을 받은 분들은 지역사회에서 어느 정도 유지(?}, 명망가(?), 오피니언 리더(?) 임을 인정받는 분위기다. 그래서 간혹 초청장이 안 왔다며 서운해 하는 분들도 계시다.

    인사회는 말 그대로 인사회다. 인사의 수준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뉜다.

    소개하고 그 자리에서 인사하는 그룹(주로 지역 어르신, 교육계, 종교계, 주민자치계 등 단체 대표자),

    소개하고 앞으로 나와서 마이크를 잡고 따로 인사하는 그룹(주로 정치인),

    ‘여러분이 진정한 주인이십니다’라는 이야기를 듣지만 주로 박수를 치고, 개별적으로 아는 사람들끼리 인사하는 그룹(대부분의 참여자), 이 그 세 부분이다.

    먼저 내빈들을 소개하고 그분들은 자리에 서서 인사를 한다.

    교육계, 종교계, 주민자치계 등등 한 100여분 쯤 소개 하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는 관공서 의전 순서대로 지역 국회의원, 구의회 의장, 시의원들이 쭉 나와서 인사하고 한마디씩 한다. 구의원도 나와야 하고, (경우에 따라) 유관기관장들도 나와서 인사를 해야 하니 십수 명이 순서대로 마이크를 잡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구청장이 제일 길게 마이크 잡고 지난해 구정과 새해 구정에 대해 각종 성과와 청사진을 설명한다. 그리고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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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청과 정치인들의 손쉬운 인사의 장?

    정치인들에게, 다음 선거에 출마하려는 사람들에게 이 자리는 아주 중요한 기회다. 유력 지역단체장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역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 자리에 모이니 만큼 자신의 색깔이나 이미지나 정책을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도 한다. 자기 단체의 활동을 알리는 기회기도 하다. 구청은 구청 자랑을 실컷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이 신년인사회는 언로(言路)가 막힌 주민들이 자신들의 현안을 직접 어필하는 장이기도 하다. 아주 가끔 커다란 피켓을 들고 행사장에서 시위를 하기도 하고, 유인물을 뿌리는 사람들을 볼 수도 있다. 몇몇 사람들은 ‘새해 인사하는 좋은 자리에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주장을 지역사회에 전달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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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두 입장으로 모두 신년인사회에 참여해 봤다. 구의원으로서 인사 드리러 가 봤고, 구의원이 되기 전에 ‘구로구청 방문간호사 해고 반대’ 투쟁을 하면서 큰 현수막을 들고 이 자리에도 가봤다. 2012년 초였는데 당시에 박원순 시장이 구로구청에 직접 왔었고 플랭카드를 보고 한마디 언급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렇게 언급이라도 되면 구청은 더 신경을 쓰게 되고 잘 하면 해결의 기회가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자리에 오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대상이다. 객이다. 구정이 궁금해서, 정치인들의 말을 듣고 싶어서 오는 경우도 있겠지만 다수는 ‘그냥’, 또는 ‘안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오는 경우일 것이다. 마이크를 잡은 분, 소개된 분들에게는 신년 인사회일지 모르겠으나 대다수에게는 새해 첫 ‘동원’이 아닐런지?

    2라운드. 동별 신년인사회와 샅바싸움

    이런 신년인사회가 끝나면 새해 인사를 다 나눈 것이냐? 아니다. 다음으로는 동별로 이와 비슷한 행사가 쫙 진행된다. 규모만 작다뿐이지 하는 방식은 거의 비슷하다. 이제 구 신년인사회에서 인사를 못 드린 좀 더 작은 단체들도 동 행사에는 큰 주체로 참여할 수가 있다. 구로구에는 15개 동이 있는데 오전에 1개동 오후에 1개동 신년인사회를 한다고 해도 주말 빼면 약 2주는 신년인사회로 구로구 전 동을 돌게 된다. 구청장 입장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소개 순서와 범위, 인사말씀 유무를 놓고 정치세력 간 암투(? 약간 농담섞어서^^)와 권력투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보통 구청의 의전관례를 보면 지역 국회의원, 원외지역위원장, 구청장, 구의회 의장, 시의원, 구의원 순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구청장은 주최측 ‘장’이니 맨 앞에 하기도하고, 메인 타이밍에 하기도 하고 한다.

    국회의원을 소개하고 인사하는 마이크를 주고 나면 그 다음으로 상대당 원외 위원장들은 어떤 순서로 어떻게 소개 할 것이냐? 정의당 같은 소수정당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노동당 같은 원외정당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런 걸 놓고 샅바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이게 구 마다 동네마다 다 제각각 다르고 기준이 없다. 그러니 때론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 구로구는 내가 정의당 소속이고 이전에 노동당 소속이었다 보니 정의당 노동당까지는 모두 동등하게 의전하는 것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강북구 같은 경우는 안 그래서 올해 크게 이슈가 된 적이 있다.(오마이뉴스 기고 참조). 아마도 지역마다 다 제각각일 것이다.

    ‘뭐 그거 인사 한 번 하는 게 그렇게 중요하냐?’라고 볼 수도 있지만 지역사회의 주체로 인정받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도 있고(나중에 항의방문이나 성명서 하나에도 힘의 비중이 다를 수 있다), 신년인사회 기준에 따라 한 해의 의전 방향이 정해지기도 하니까 그냥 물러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본 행사에 들어가서도 기 싸움은 이어진다. 구청장과 집권당(구청장 소속정당)은 얼마나 잘했는지를 이야기하고, 야당 위원장들은 나와서 무엇이 부족했는지와 대안을 어필하게 되니 1년 농사를 앞둔 샅바싸움이 신년인사회에서부터 시작된다.

    주객전도. 주민보다는 구청홍보, 내용보다는 의전

    동 신년인사회는 주민들의 직접 건의와 의견 수렴 시간이 메인이다.

    국회의원, 시의원, 구의원 인사 다 끝나면 구청장이 ‘스티브 잡스’처럼 나와서 원샷 받으며 예쁘게 잘 만든 피피티로 구정현안을 소개한다.

    ‘이 지역 숙원사업인 oo은 이렇게 처리하고’
    ‘##는 저렇게 하고’
    ‘@@는 어려움이 있지만 돌파할 것이고’
    블라블라블라~~’

    그리고 나서 주민들로부터 민원이나 정책조언 등 직접 의견을 받는다.

    원래는 간단하게 현안과 진행상황 소개하고 관련해서 주민의견 듣고, 민원 듣는 게 핵심인데… 구청 활동 홍보가 너무 장황해 진다. 앞서서 정치인들이 인사하고, 자기 자랑하고, 견제하고 한바탕 했으니 여기까지만 해도 2시간 가까이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린다. 그런 후에 주민들 의견을 손들고 받기 시작하는데… 행사가 1시간 넘어가기 시작하면 지루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는가? 한 두 분씩 빠져나가는 주민들도 계시고, 정작 주민 이야기는 많이 못 듣거나, ‘시간관계상 동사무소 통해서 해 주시기 바란다’는 이야기로 서둘러 마무리되기도 한다. 주객이 바뀐 것이다.

    각 동사무소는 2-3시간 짜리 행사 준비하는데 몇 주… 많게는 한 달 이상 준비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준비하면서 현황도 정리하고 부족한 것도 챙겨보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그래도 과도하고 비효율적이다. 가장 바쁜 연말연초에 ‘인사회’라는 2~3시간짜리 행사 준비하면서 그럴 필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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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의 각 봉사단체들도 바쁘게 행사를 준비한다.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 안내를 하기도 하고, 본행사가 끝나면 간단한 다과회가 있는데 이 음식에도 정성에 정성을 쏟는다. 부녀회, 봉사단 이런 곳에서 새벽부터 나와 탕평채를 만들기도 하고, 전을 부치기도 하며 깔끔한 상을 준비한다. 그런데 막상 구청장은 일정 문제로 건배 한 번 딱 하고 다음 일정으로 향한다. 뭐 구청장만 드시라고 차린 건 아니니 남은 사람들이 감사히 잘 먹으면 되지만 그러기엔 준비하신 분들의 고생과 노고가 너무나 아깝다. 다과회니 더 간단해도 될 법 한데..

    예전에 초등학교 때 장학사 학교방문 온다고 하면 오랫동안 청소하고, 공부 잘하는 친구들 시켜서 질문하는 연습도 하고 그랬는데 ‘막상 당일 날 장학사는 우리 반에 안 왔던.. 왔다 간지도 몰랐던’ 그런 느낌?

    군대에서 사단장 한번 스쳐지나간다고 하면 수주일 동안 막사 광내고, 대답하는 연습하고, 역할 분담해서 각종 연습 하고서는 실제로는 ‘사단장 한 10분 차 마시고 훅 나가는’ 그런 느낌?

    과도하고 비효율적이고 주객이 전도된 모양새다.

    민주주의, 민생정치. 주객 위치를 바로잡는 것부터

    허례, 의전, 격식보다 실질적인 정치, 실질적인 행정, 주민 목소리가 더 중요하다. 내년에는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이번 행정사무감사 때 따지고 바꿀 생각이다.

    주민들 불러 모아놓고 실컷 구정 홍보하고(심지어 일방적이다), 정치인들 인사하는 게 메인이 되어버린 신년인사회 이제는 좀 바뀌어야 한다.

    주민들의 인사와 나눔과 의견 개진이 주가 되도록 하던가, 아니면 아예 없애고 평소에 찾아가는 인사, 찾아가는 보고회를 하던가 하면 더 좋지 않을까? 굳이 새해 인사를 드리고 싶다면 각 단체마다 연초에 총회도 하고, 시산제도하고, 시무식도 있고 한데 그곳에 찾아가서 인사드리고 보고 하는 게 더 낫지 않은가?

    내가 신년인사회에서 별말 하지 않고, “‘시간 길어져서 지겨우시죠? 늘 초심으로! 말이 아니라 발과 행동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큰절 올리고 얼른 들어가겠습니다”하고 꾸벅 큰절만 올리고 단상에서 내려온 것은 ‘큰절로 튀어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런 ‘인사회’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자 바꾸겠다는 약속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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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소개
    김희서
    정의당 구로구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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