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스바트의 마르크스
    [유럽도시이야기] 두 번째 체코 행
        2017년 02월 15일 02:2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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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다시 체코다. 크리스마스 휴가 시즌이 되면 독일에서 문 연 곳을 찾기 힘들다. 대학 도서관도 일주일 이상 문을 닫으니 집에만 있지 않으려면 필자도 어딘가로 떠나야 했다. 이번엔 체코의 유명한 휴양도시 카를로비 바비(맑스 방문 당시 독일명 칼스바트)로 향했다.

    이 두 번째 여행은 프라하 출신의 독일 작가 에곤 에르빈 키쉬(Egon Erwin Kisch 1885-1948)가 이끌 것이다. 그가 쓴 에세이 “칼스바트의 칼 맑스”(1946)에 근거해 휴양도시 칼스바트를 소개하고, 그곳에서 보낸 맑스의 휴양기록을 필자의 여행경험에 비취어 조명해보고자 한다.

    체코1사진 : 카프카의 친구였던 키쉬의 생가인 두 마리 황금곰의 집 전경. 뒤로 프라하 화약탑이 보인다. 프라하 출신의 키쉬야말로 프라하에서 칼스바트로의 여행을 안내해줄 적임자이다.

    맑스가 처음 칼스바트에서 휴양하기로 생각을 품은 시기는 1870년이었다. 1867년 자본론 초판을 출간한 이후 프랑스어 번역본과 독일어 수정판의 출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지나치게 과로하면서 맑스의 건강상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었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음주 등으로 인한 지방간 등의 병세는 친구 엥겔스의 불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주치의 굼페르트 박사 제안으로 영국의 온천도시 해로게이트(Harrogate)를 다녀왔지만 차도는 없었다.

    비록 국경을 초월한 세계 모든 노동자의 이론적 스승이었던 그였지만, 따뜻한 모젤강변의 트리어(Trier)에서 태어난 맑스에게 이국의 온천수는 효용이 없었던 모양이다. 이에 굼페르트 박사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칼스바트로 휴양을 갈 것을 권했고, 엥겔스는 맑스에게 여행 경비로 40파운드를 쾌척한다. 당시 노동자의 일년 임금의 10~20파운드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40파운드는 상당한 거액인데, 이는 엥겔스가 1869년 회사 지분을 동업자에게 매각하면서 충분한 자금적 여유가 생겼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맑스의 칼스바트 행을 가로막는 방해물들은 상존했다. 무엇보다 보불전쟁 및 파리코뮌으로 인해 유럽 대륙은 대단히 혼란했고 맑스와 사회주의에 대한 공포는 한껏 가중되었다. 돈을 선지불한다 해도 무사히 칼스바트에 도착한다는 보장이 없었다. 두 번째 문제는 자본론의 불어본 작업을 도중에 멈출 수 없었던 맑스의 일중독 증상 때문이었다. 셋째는 바로 금전적 문제였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맑스는 상시적으로 금전 부족에 시달렸고, 그다지 돈을 아끼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바다 건너 1000Km 이상 떨어진 칼스바트로 휴양을 떠나는 일은 -앵겔스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금전적으로 무척 부담되는 일이었다.

    그의 칼스바트 행이 현실화된 것은 최초의 제안을 받은 지 무려 4년이 지난 1874년의 일이었다. 막내딸 엘리노어의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고 그녀의 담당의사가 칼스바트 휴양을 강권하자 맑스도 더 이상 여행을 미룰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모를 추방을 대비해 맑스는 출발 전 영국 여권을 신청했지만, 여권 발급은 그가 “왕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되었다.

    다소간 불안한 마음으로 맑스는 1874년 8월 15일 막내딸과 함께 도버해협을 건너 칼스바트로 출발했다. 여행은 그의 우려와 달리 별 탈 없이 진행되었고, 맑스가 칼스바트에 도착한 건 출발 일주일 후인1874년 8월 22일이었다. 그의 숙소는 성(城)온천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언덕 위의 <하우스 게르마니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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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하우스 게르미니아는 몇 차례 근본적인 개보수를 거쳐 오늘날 5성급 호텔인 올림픽 팰리스로 운영되고 있다. 맑스는 이 건물 1층에 머물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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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910년에 개보수 되었음을 보여주는 연도표시. 이 과정에서 맑스가 머물던 시절의 모습은 대부분 사라져버렸다.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 걱정되었던 맑스는 호텔의 숙박자 명부에, “런던에서 온 챨스 맑스(Charles Marx), 연금생활자”라고 적었다. 연금생활자는 도시세(Kurtaxe)를 두 배로 내야했지만, 맑스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그렇게 했던 것이다. 산 중에 둘러싸인 보헤미아의 쾌적하고도 청명한 여름 공기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맑스는 편지를 통해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자신의 칼스바트 휴양생활을 보고한다.

    “우리 둘은 규칙에 따라 엄격히 생활한다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매일 7잔을 마셔야 하는 훌륭한 온천수원으로 간다네. 앞 잔과 뒤 잔 사이에 항상 15분의 간격을 두고, 그 사이에 오르락내리락 하며 경보로 걷지. 마지막 잔을 마시고 1시간 동안 산책을 하면, 마침내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다네. 잠자리에 들기 직전에는 차가워진 온천수를 한잔하고. 나는 매일 물만 마시는 반면에, 막내딸은 매일 1잔의 필스너 맥주를 마시는 통해 매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본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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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1900년경 온천수원의 모습을 담은 우편엽서. 하늘로 용솟음치는 온천수를 컵에 담아주는 여성 노동자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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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맑스가 매일 온천수를 마셨을 것으로 추정되는 슐로스-콜로나데(Schloss-Kolonnade). 필자도 6일 동안의 체류기간 동안 이 주랑(柱廊)의 온천수원에서 하루에도 몇 잔씩 온천수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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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64도의 물이 24시간 뿜어져 나오는 슐로스-콜로나데의 온천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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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칼스바트의 온천수 전용컵. 손잡이에 빨대가 달려있어 컵을 기울이지 않고도 편안하게 온천수를 마실 수 있다. 맑스도 이러한 전용컵으로 하루에 7잔의 온천수를 마셨을 것이다.

    칼스바트가 위치한 보헤미아 지방은 맑스가 그토록 먹고 싶어했던 맥주의 천국이다. 필스너 맥주의 기원인 도시 필젠도 이곳에서 불과 8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가련한 맑스와 달리 필자는 칼스바트의 진귀한 필스너 맥주를 양껏 마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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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칼스바트의 명물인 약초주 베혀로브카(Becherovka)의 옛 공장 자리에 위치한 수제맥주집의 풍경.

    2편에 계속.

    필자소개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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