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배층의 분열과 그 원인
    출구 없는 세계 자본주의 장기 위기
        2017년 02월 14일 05: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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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국내에서의 “박근혜 게이트”와 미국에서의 “트럼프 취임 정국”을 지켜보면서 상전 국가와 그 준식민지 사이의 모종의 상황적 유사성을 발견하곤 합니다.

    국내 같으면 삼성 등 재벌들이 “사드 배치”라는, 저들과 중국 사이의 “비즈니스”를 방해하는 박근혜 주변 사기단의 결정에 반발하면서, 재벌 언론들이 박근혜 주변과 관련되는 “천기”들을 누설시키기 시작한 것이 사태의 발단이었습니다.

    서로 유착돼 있는 권·재·언(권력, 재계, 언론)의 “이너 써클”에서야, 애당초부터 박근혜씨가 사실상 대통령이 아님을 뻔히 알고 있었는데, 재벌들의 돈으로 좌우되는 사기단이 국정을 장악했다는 사실을 피치자들에게 밝혀주면 온 나라를 쇼크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도 알고 있었죠. 결국 이런 “천기누설”은, 한국 사회의 실제 지배자인 재벌로서는, 더 이상 유효한 도구가 아니라고 판단되어진 박근혜/최순실을 폐기처분할 수 있는 하나의 방식이 된 것입니다.

    한데 지금도 지배층의 어떤 세력들이 박사모 시위를 계속 후원해주고 있는 것만 봐도, 박근혜 폐기 처분은 지배층 전체의 공통된 “공론”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회의 주인들이 심각하게 분열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탄핵반대

    탄핵 반대 집회 자료사진

    바로 이와 동시에 상전국가 미국에서 또 하나의 정치드라마가 실생활에서 연출됩니다. 대부분의 금융업 대기업이나 하이텍 기업, 그리고 다수의 언론과 “명문대” 교수 등 특권층의 “지식인”들이 멀리하고 멸시해온 “천민 자본가”의 전형인 트럼프가, 모든 예상들을 뒤엎고 선거에서 이긴 것입니다. 스릴러 같은 선거 과정 중에서는, 그가 석패를 당할 경우에 이를 인정하지 않고 그의 지지자들의 대규모적 반항 행동을 조직할 것까지 공공연하게 협박하는 등 미국 정치에서 보기 드문 “탈법”의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사실, 엘리트들이 분열되지 않고서는 선거 절차를 불신하고 실력행사를 하겠다는 말은 나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가 가져온 분열의 핵심은 물론 그가 대중 기반 획득용으로 이용해온 반이슬람, 반이민 수사는 아니었습니다. 규모나 심도는 다르지만, 이슬람 국가로부터의 이민에 대한 강도 높은 통제라든가 “불법체류자”에 대한 단속 등을, 오바마 행정부도 사실 해온 것이죠. 트럼프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억압적인 반소수자 정책을 가일층 심화시켰을 뿐입니다.

    핵심은 세계화 지향과 보호주의 지향 자본의 분열

    분열의 핵심은 “보호주의” 문제이었습니다. 트럼프가 대표하는 실물 부문 내수형 기업 소유자들은, 내수의 기반인 대중들의 구매력을 경향적으로 저하시키는 생산시설의 해외 이전이나 국내 생산을 파산시키는 저가 소비품의 수입 등에 회의적입니다. 생산시설이 중국에 가고 중국의 저가 소비재가 들어오는 이상 미국 국내 노동자들이 고임금 제조업 일자리를 잃어 저임금 서비스업 종업원으로 전락돼 그 구매력을 잃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기업가들의 보호주의적 지향은, 해외 하도급 생산과 수출로 이윤을 늘리는 <애플> 같은 하이텍 기업으로서 전혀 희망적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결국 “세계화” 지향의 실리콘벨리와 국내 구매력 기반의 붕괴로 부동산가격이 언젠가 다시 폭락될 것을 우려하는 건설업자 사이의 대결은 이번 미국에서의 트럼프와 반트럼프 대치의 핵심입니다.

    이 상황에서 언론사의 대부분이 반트럼프 진영에 속하는 것도 분열의 깊이를 보여주는 한 징표죠. 미국 언론들이 미국 대통령을 이렇게 심하게 때리는 것은 사실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이죠. 지능이 나쁜데다가 트럼프 이상의 반동적 정치노선을 걸었던 부시도 이 정도로 언론 뭇매를 맞지 않았죠. 보호주의자가 아니었으니까요.

    유럽의 극우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미국 트럼프, 프랑스 르펜, 독일 페기다, 스웨덴 민주당

    지배층의 분열은 한국이나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전혀 아닙니다. 브렉시트를 앞두고 영국의 재계와 정계가 심각하게 분열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습니다. 프랑스의 “국민 전선”이나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 스웨덴의 “스웨덴 민주주의자” 등 반이민 극우 정당들의 최근의 발흥도 지배층 분열의 현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세 정당의 공통점은 바로 유럽연합 내지 유로화에 대한 회의적 입장인데, 일각의 지배세력들이 이런 정당들을 키우는 데에 일조한 것을 보면 세계화 일변도의 자본계급의 노선이 상당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극우정당들이 정치적 자본을 축적하는 방식은, 무엇보다 노동시장의 개방, 즉 이민을 반대하면서 일각의 백인 중하층 사이에서 그 세를 확산시키는 것입니다. 한데, 저런 정당들을 후원하는 자본세력 입장에서는, 노동시장의 개방보다는 화폐 발행에 대한 주권이나 자본의 세계적 유통을 어디까지 자율화시켜야 하는가는 훨씬 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지배층 분열의 원인은 뭘까요? 기본적으로 세계 자본주의의 장기 위기입니다. 세계 공황/침체는 이미 9년째인데도 그 어떤 본질적인 시장 상황의 개선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성장은 있어도 매우 둔하고, 여태까지 세계경제의 견인차라고 믿었던 중국마저도 2017년 성장률 예측은 6%뿐입니다. 구미권이나 일본에서는 내수시장은 얼어버렸고, 달러가치로 치면 세계 무역량도 최근 몇 년간 내려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국가에 의해서 훨씬 더 잘 조절되는 덕에 1930년대 대공황보다 쇼크는 비교적 덜하지만, 그래도 장기화된, 출구가 보이지 않는 침체의 상황은 유사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총자본으로서 분명한 출구전략이라고 보이지 않죠. 특히 금융자본은 여전히 세계화 전략을 선호하지만, 실물 부문에서는 가면 갈수록 자본가들의 보호장벽에 대한 호소의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최근에 예컨대 유럽에서 중국 등 외부 철강 생산자에 대한 예외적으로 높은 반덤핑 관세를 징세한 것도, 그런 경향을 반영하죠. 상당수의 자본가들이 다시 국민국가의 보호 우산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하고, 그만큼 세계화 지지세력과의 충돌도 불가피합니다.

    장기 위기 속에서는 총자본은 분열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저들도 이 상황을 어떻게 본격적으로 개선시킬 수 있는지, 실은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사실 그런 위기와 계급적 적대자의 분열이야말로 급진세력으로서는 만나기 쉽지 않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단, 이 기회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반자본 세력들부터 이 위기로부터의 탈출의 전략을 잘 세워서, 구체화시켜 잘 대중화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소개
    박노자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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