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과 사회적 경제, 새로운 상상
공동체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 가능할까?
    2017년 02월 13일 03:2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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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와 삶터가 분리된 근대

현재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터와 삶터는 서로 분리된 공간이다. 공간의 분리는 근대의 기획이다. 마치 낮과 밤처럼 두 개의 공간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완전히 다른 논리가 작동한다. 일터는 자본주의적 효율성의 가치로 배치되며, 삶터와 단절된다. 일은 삶으로 인식되지 않고, 삶을 위해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할 수고스러운 행위가 된다. 하지만 삶터 역시 생활의 터전이 되지 못하고 친밀성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공동체는 이 친밀성의 공간을 확장한 것이며, 근대의 기획으로 인해 소외된 삶을 극복하기 위한 가치를 중심으로 인식된다.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에 대한 후원의 공간이자, 경쟁적 삶으로 인한 피해를 극복하기 위한 치유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공동체는 여전히 사회의 본류가 되지 못하고, 일을 중심으로 배치되는 파편화된 배후지에 불과하다. 이러한 관계의 역전이 가능할까? 삶이 일을 위해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삶을 위해 배치되는 관계가 가능할까? 사회가 경제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사회에 내포되는 관계가 가능할까? 삶이 전면적으로 펼쳐지는 공간으로서의 공동체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관계성이 만들어져야 가능할 것이다.

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사회적 경제

사회적 경제란 무엇일까? 사회는 관계 맺기에 의해 형성된다. 그런데 경제 자체가 이미 교류 관계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는 현재의 경제 관계에서는 배제된 관계의 복원, 관계성의 풍부화, 새로운 가치관계의 창조 등을 말한다고 봐야겠다. 경제적 교환관계를 뛰어넘어 사회적 교환관계의 실현, 사회적 신뢰에 기초한 경제, 또는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다.

어떤 표현이든 친밀함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가 그 밑바탕을 이룬다. 즉 사회적 경제는 사회적 공동체를 빼놓고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리고 공동체의 본류는 역시 마을이다. 수많은 가치로 공동체를 만들 수 있지만, 마을은 다양한 가치와 생활기반을 가진 타인들이 교류하면서도 공통의 정체성을 형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경제를 뜻하는 이코노미의 어원인 오이코노미아는 가정관리를 의미한다. 이코노미를 번역한 한자어인 경제는 경세제민을 줄인 말이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 제가라는 말은 씨족공동체였던 마을을 다스린다는 의미이다. 이렇든 저렇든 경제라는 말은 옛날에는 이윤이나 부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사람을 중심에 두었다. 자본주의가 나타나면서 사람 사이의 관계가 중심이 되지 않고, 돈이 돈을 만들어 내는 물질간의 관계가 기본축이 되었다. 공동체는 내부의 경제 기능을 상실한 채 외부 경제에 종속되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는 이 관계를 재역전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지구화된 경제 체제에서 과연 공동체의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경제가 가능할까? 늘 그래왔듯 이상주의자의 꿈에 불과하지 않을까? 그러나 자본주의의 한계가 현실로 나타나면서 사회적 경제, 공동체 경제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것이 옛날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면 시대착오적일 뿐만 아니라 힘을 가지기도 힘들 것이다. 새로운 전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회고적 관심이라면, 경제 사정이 나아지면 금방 시들해 질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사고하고 실험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게다가 그것은 기존의 토대 위에서 자랄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공동체에 대한 꿈이 함께 존재하는 기묘한 상황에서, 이들을 함께 묶어내는 체제를 만들 수 없을까?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는 구호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엿보는 상상을 자극했던 것처럼,

마을 공동체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

공동체는 대단히 신축적인 개념이다. 작은 마을일 수도 있고, 지구촌 전체를 의미하기도 한다. 하지만 공동체란 개념을 관통하는 요소는 공통의 연대의식과 호혜적 관계이다(김찬동, 서윤정, 2012). 공동체에 대한 논의는 여러 각도에서 진행되어 오고 있지만, 지역이란 요소는 공동체의 다양한 모습을 규율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이며, 지역공동체가 여전히 우리의 생활 속의 문제들을 가장 강력하고 포괄적으로 담지하고 있다.

공동체 의식의 구성요소는 지역사회 구성원으로 소속되어 있음으로 인해 받게 되는 충만함, 욕구의 충족과 통합, 지역사회 주민들과 함께 한다는 구성원 연대의식, 지역사회와의 일체감 및 지역사회와 구성원 상호 간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호영향의식, 그리고 지역사회 및 구성원들과 친밀한 느낌을 가지는 정서적 친밀감으로 정의할 수 있다(성희자, 전보경, 2006).

공동체 의식은 ‘구성원들이 가지는 소속감, 구성원들이 집단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으며 일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 구성원들의 욕구가 함께 헌신적인 노력을 통하여 충족된다는 공유된 믿음, 그리고 구성원들이 역사와 장소, 시간 및 경험을 공유하고 있고 공유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 또는 헌신’이라고 정의하고 있다(김경준, 1999).

이처럼 학자들이 말하는 공동체의 구성요소에는 충족감, 연대감, 소속감, 정서적 친밀감, 일체감, 관계지향성, 상호영향의식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예로부터 마을이 경제적 단위로 비롯되었음을 상기한다면, 지역공동체 역시 경제를 제외하고 사고할 수는 없다.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면서 공동체는 파괴되고, 공동체의 기반인 신뢰 역시 파괴되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을 위해서는 마을에서 분리되었던 경제를 다시 품어야 한다.

지역화례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 충남 홍동, 전주사회적경제박람회, 경기 성남, 영국 브리스톨의 지역화폐

사회적 경제 생태계와 지역화폐

모든 사람은 한 가지 이상의 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품은 자본주의 경제 바깥 영역에 있다. 즉 쓸모없는 품이다. 자본주의 경제,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자본주의 기업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품은 죽어 있을 뿐이다. 대학교 아니라 대학원을 나오더라도, 백수로 있는 한 그는 무능력자일 뿐이다. 알음알음으로 자신의 능력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겠지만, 교환수단인 법정화폐를 얻지 않고서는 살길이 막막할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지역화폐가 등장하였지만, 아직 성공한 사례를 찾기 힘들다. 그리고 상당수의 대안화폐들이 지역화폐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로는 지역화폐가 아니라 공동체 회원 간의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공동체 화폐에 그치고 있다. 지역화폐가 되기 위해서는 지역 내에서 신뢰를 받고 있는 조직(기업, 단체)들이 발행하고, 회원이 아닌 누구라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신뢰는 평판에 기반하고 있어서, 지역 주민들의 평판에 의해 그 화폐의 가치가 결정될 것이다.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에서 만들어 내는 재화와 용역이 가장 적합하다. 내가 사용한 능력이 세금을 내는데 사용될 수 있다면, 또는 수도나 전기를 사용하는데 쓰일 수 있다면 지역화폐의 유통은 걱정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기관들이 현실적으로는 없다. 그래서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처럼 지역 내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우선적으로 시도할 수 있다.

한 마을기업에서 발행한 화폐가 여러 사회적 경제 조직들을 거쳐 유통되다가 최종적으로는 최초에 발행한 마을기업에서 청산될 수 있다면 그 화폐는 지역 경제에 생기를 넣어주고 사라지는 것이다. 하나의 화폐만 있어야 할 이유도 없다. 다만 화폐 간 교환비율을 고려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이다.

기술적 진보가 주는 가능성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회적 경제조직(사업)과 마을공동체(사업)은 별개로 진행된다. 오히려 경제를 화폐관계로 인식하는 바람에 공동체에 경제적 관계를 설정하는 것은 마치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식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공동체는 신뢰와 호혜의 관계, 경제는 화폐적 관계로 이분해서 바라본다. 그러나 마을 공동체가 자본주의적 경제의 배후지, 즉 경쟁에서 탈락한 자의 공간, 치유의 공간으로 남아있지 않고, 새로운 관계의 형성을 위한 실험 공간이 되기 위해서는 경제를 품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실험은 한 사람(단체)의 선구적 노력으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지역화폐들은 그것으로 얻고자 하는 품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잠들고 있다. 그러나 아주 많은 실용적인 품들을 얻을 수 있다면 유통이 되지 않을 리가 없다. 이 점에서 최근의 기술적 진보들은 아주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집단적으로 참여하여 거래를 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는 이미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지역은 직접 얼굴을 대하지 않더라도 쉽게 평판을 확인할 수 있는 많은 장치가 있다. 또한 기술적 진보는 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러저러한 번거로움도 아주 쉽게 해결하도록 만든다. 이를 사회적 경제에 어떻게 효과적으로 활용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아 있을 뿐이다.

아직 생태계를 이룰 수 있을 정도로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충분하게 존재하고 있지는 않다. 좀 더 많은 조직들, 그리고 좀 더 다양한 조직들이 만들어져야 비로소 이 실험이 본격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를 지역공헌기금을 조성하는 노력에 그치지 않고, 지역경제 생태계를 이룰 수 있는 방안을 꾸준히 탐구했으면 한다.

(이 글은 경기도 따복공동체지원센터의 작은연구사업으로 만든 보고서 일부를 수정한 것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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