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교 생활에 적응하다-2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⑧] 일지
        2017년 02월 10일 04:3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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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 고교 생활에 적응하다1 링크

    4월 6일(토)

    딸은 미선과 명동에 나가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생일 맞은 친구들의 선물 때문이었다. 한데 미선에게서 못 간다는 연락이 왔단다.

    “그럼 가지 마라. 모르는 언니들이 뒷골목으로 부르면 어떻게 해.”

    “명동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일이 있겠어.”

    아내는 혼자 나가지 말라 했으나, 딸아이는 느긋했다. 내가 수행하기로 했다. 아내는 지방에서 수련회가 있어서 불가능했다.

    “아빠, 내가 너무 많이 돌아다닌다고 뭐라 하지 마.”

    딸은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 남성들 습성을 익히 알고 있었다.

    “아빠, 오늘 혜정이 선물도 살 건데 혜정이가 나보고 ‘너 선물로 4만 원 썼으니 나도 4만 원어치 해 줘’ 했어. 돈으로 줘도 괜찮다는 거야. 그래서 내가 ‘됐어 이년아’ 했지.”

    “맹랑한 가시나들.”

    딸은 말하며 웃었고, 나도 웃었다.

    “아빠, 내 월급이 얼만지 알아”

    동네를 나서는 길에 딸이 물었다. 용돈을 월급이라 표현했다.

    “3만 원 아닌가”

    “4만 원이야. 고등학생이 돼서 엄마가 1만 원 올린 거야.”

    친구들은 어떤지 궁금해서 물었다.

    “혜정이는 명절 때 받은 돈을 용돈으로 쓰고 있어. 애들마다 다 달라. 한 달에 10만 원 받는 애도 있고, 3만 원 받는 애도 있어. 용돈 없는 애도 있어. 나는 3만 원은 벅찬데 4만 원은 괜찮아. 용돈은 주로 학교 준비물과 군것질로 써. 큰 준비물은 엄마에게 돈 받아서 사고. 엄마가 고3이 되면 5만 원으로 올려 준대.”

    후암동 종점에서 202번을 탔다. 버스 안에서 딸이 말했다.

    “학교에서 신입생 대상으로 전교 7등까지 미국에 보내 주는데 디즈니랜드도 간대. 나도 정말 가고 싶은데 안 될 것 같아.”

    표정이 어두웠다. 보성여고는 성적 우수 학생 미국 연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올해는 2학기 중간고사까지의 국·영·수를 합산해 선발한다고 했다. 딸애를 위로했다.

    “그냥 최선을 다해 봐. 안 되면 할 수 없는 거니까 마음 상처는 받지 말고. 연연해서 스트레스 받지도 마.”

    “나도 거기에 목 매달 생각은 없어.”

    명동에 도착했다. 비가 부슬부슬 내렸고 날씨는 쌀쌀했다. 딸의 감기가 걱정돼 춥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했다. 자기 필요로 나온 거라서 추워도 춥다고 말 못 하겠지 싶었다. 딸이 점찍은 상점을 찾아 어지간히 헤매다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유네스코 뒷골목이었다. 중학교 때 유네스코반 동아리를 했던 딸은 위치를 알고 있었다. 딸은 혜정의 입술 크림과 혜선의 머리 기름을 샀다. 그러고 다른 상점에 들러 혜인의 스티커를 샀다. 혜정의 선물로 USB도 추가했다.

    “돈 대비해서 괜찮은 집이야. 유네스코반 때 친구랑 와서 먹었고, 엄마하고도 한 번 와 봤어.”

    용무를 끝낸 뒤에 딸의 안내로 떡볶이 가게에 들렀다. 우리는 치즈떡볶이 2인분에 튀김만두와 우동 사리를 추가했다. 가격은 1만 원이었다.

    “몸무게가 55에서 많이 늘었어.”

    떡볶이를 기다리는 동안 딸은 걱정했다.

    “너 뒷모습 보고 이미 알았어. 밤마다 뭘 먹는데 어찌 안 늘겠냐. 60키로까지 나가냐”

    “거기까진 아냐. 그러면 난 지금 다이어트 전쟁 하고 있을 거야.”

    딸은 맛나게 먹었다. 나는 젓가락 몇 번 대다가 말았다. 대신에 단무지는 혼자 거의 해치웠다.

    명동에서 빠져나오며 딸에게 물었다.

    “보성여고엔 옷 뺏고 물건 뺏는 아이들 없어”

    “우리 학교 일진 애들은 착해. 물건 안 뺏어. 왕따도 없어.”

    나는 안심했다.

    4월 7일(일)

    바람이 많이 불었다. 딸은 감기도 있고 숙제도 많아 산에 가지 않기로 했다. 혼자 다녀왔다. 1박 수련회를 마친 아내가 돌아와 있었다. 조금 있으니 피자 배달이 왔다. 할매가 손녀 먹이려고 돼지저금통을 헐어 주문했단다. 여성 3대는 맛있게 먹었다. 피자가 별로인 나는 막걸리에 돼지껍데기로 요기를 대신했다. 딸은 영어와 수학 숙제를 끝내고선 공부하기 싫다며 빈둥댔다. 그러다 남은 국어 숙제를 했다. 한국사 숙제는 내일 학교에 가서 한댔다. 뭔 숙제가 그리 많나 싶었다.

    4월 8일(월)

    딸의 감기가 나았다. 감기 걸린 애들은 자원봉사 빠져야 한다고 했다며 걱정했던 딸은 기뻐하며 등교했다. 퇴근해서 자원봉사 어땠는지 물었다.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의 자원봉사였어. 함께 놀다가 공으로 뺨을 세 차례 세게 얻어맞았어. 피곤해서 숙제도 안 했어.”

    4월 10일(수)

    봄이라 날씨 변덕이 심했다. 기온이 떨어져 쌀쌀했다. 자정쯤 귀가하며 막걸리와 아이스크림을 샀다. 할매와 아이는 아래층 안방에 엉켜 TV를 보고 있었다. 딸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10시 30분까지 야자하다 들어왔다 했다.

    “얘가 숙제 있다면서 빈둥대고 있다.”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숙제할 거라니까.”

    할매가 내게 일렀고, 아이는 계획을 밝혔다. 할매는 그래도 지금 하라고 독촉하다가, 아이가 못 한다니까, 그만두고선 올라갔다. 딸은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속도가 더뎠다. 새벽이 걱정된 나는 빨리 들어가 자라 했다.

    “아빠가 금방 이거 다 먹고 자라고 해 놓고, 왜 독촉해”

    딸의 역정에 말문이 막혀 대꾸를 못 했다. 딸은 아이스크림을 먹고 나서도 어쩌고저쩌고 한동안 잠들지 않았다.

    4월 11일(목)

    새벽 5시, 알람에 깨어 아이 방으로 갔다. MP3 자명종이 몹시 시끄러운데도 미동조차 없었다. 자장가로 들리는 모양이었다. 내가 끄려 했으나 이래도 저래도 안 됐다. 이웃집에 미안했다. 급하게 깨워 자명종을 멈추게 했다. 그리곤 보리차를 마시게 했다. 오줌도 누라 했다. 딸은 거실에서 공부할 거라며 나더러 들어가 자라 손짓했다. 덜 깬 몸짓이었다. 거실이 차가워 보일러를 올려주고 방에 들어가 누웠다. 잠이 쉽사리 오지 않았다. 거실에서 소리가 나는지, 잠든 건 아닌지, 귀를 열었다. 스윽 슥, 종이에 뭔가를 쓰는 소리와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다시 잠들었다가 깨었다. 딸은 등교 채비를 하고 있었다. 숙제는 다 했다고 했다. 딸은 제 엄마에게 졸린다고 하고선 집을 나섰다. 나는 혀를 찼다.

    ‘아이고, 한 명도 이런데, 둘 넘게 키우는 집은 어찌 견딜까. 그나저나 벌써 이리 힘들어 하면 고3 땐 얼마나 힘들까. 나라면 숙제를 안 하던가 대충하고 말 텐데.’

    밤에 귀가하니 모녀는 안방에 있었다. 딸은 11시까지 학교에 있다가 왔단다. 야자 시간에 국어와 한국사 공부를 했는데 집중이 되지 않았단다. 졸려서 그랬냐니까, 졸리진 않았다 했다. 오늘도 그냥 자고 5시에 일어날 거라 했다. 아내는 5시가 너무 빠르니까 6시에 깨우겠다고 했다. 나는 막걸리 안주를 뒤지려고 냉장고로 향하며 한마디 툭 던졌다.

    “어이, 뚱띵이. 빨리 자.”

    그 소리에 딸이 따라오더니, 익살스런 행동을 했다. 짓궂은 웃음을 잔뜩 품고서 입을 크게 벌렸다. 양발도 크게 벌리고 무릎을 살짝 접었으며, 양팔도 크게 벌리며 살짝 접었다. 그러고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번갈아 겅중대고 리듬을 탔다. 나를 툭툭 치기도 하면서, 뚱띵이 아빠를 연호했다. 영락없는 원숭이였다.

    “뚱띵이 아빠, 뚱띵이 아빠.”

    “아이고, 뚱띵아.”

    나는 킥킥대며 막걸리와 김치를 들고 안방으로 들어갔다.

    “어이, 뚱띵이 아빠. 뚱띵이 아빠.”

    딸내미는 계속 따라왔고, 나를 툭툭 치며 깔깔댔다.

    한1

    딸아이는 이 표정과 몸짓으로 겅중대며 나를 놀렸다. 2월 20일 산행에서

    나는 이웃집들 눈치에 호탕하게 웃지 못한 게 아까웠다. 한바탕하고서 딸내미는 제 방으로 갔다. 가슴 가득 온기를 품은 채 김치 쪼가리에 막걸리를 마셨다. 딸내미는 다시 안방으로 돌아와 숙제장을 봤고, 알람을 5시 55분에 맞췄다. 나는 54분에 맞췄 다. 그새 자정이 넘었다. 그만 자라 했다. 딸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냥 자면 안 돼! 이 닦고 자!”

    아내가 급히 따라가며 다그쳤다. 딸은 못 들은 척 침대에 누웠다. 아내가 옆에 누웠고 함께 키득거렸다. 이 닦으라는 실랑이가 이어졌고, 그래도 말을 안 듣자 아내는 이불을 걷어 방바닥으로 밀어 버렸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다.

    “빨리 안 닦아? 아빠가 그 방으로 간다!”

    결국 딸내미는 이를 닦으러 싱크대로 갔다.

    어디서 저런 재간둥이가 나왔을까 신기했다. 복덩어리고 하늘의 선물이었다. 극도로 고통스러울 때 와서 위무한 아가였다. 아이는 막내 동생이 죽고 나서 1년 뒤에 태어났다. 집안의 암흑을 단숨에 몰아냈다.

    한2

    아가가 온 뒤로 우리 집의 암흑은 걷혔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느 여름 북한산성 계곡에서

    4월 16일(화)

    딸이 과학 때문에 역정을 냈다. 내가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교과서는 학교에 있다며 참고서를 펼쳤고, 이해 못하는 걸 지목했다. 파원 움직임에 따라 파장이 다르게 나타나는 도플러 효과였다. 적색편이와 청색편이의 연관성도 어렵다 했다. 원자핵 형성에서 양성자, 중성자, 헬륨 원자핵, 수소와 헬륨 원자핵의 질량비 등에 관한 것도 어렵다 했다. 나는 내셔널지오그래픽 따위를 통해 익숙한 용어였어도, 바로 설명할 수 없었다. 내 학창 시절엔 배우지 않은 내용이었다. 배웠다 해도 기억에 없었다. 자신 없었으나 관련 장을 대강 훑었다. 그런 다음에 차분히 설명했다.

    “아~하. 이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혼란스럽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아빠가 보성여고 과학 선생 할까? 선생 바꿀까”

    내 농담에 딸은 낄낄거렸다.

    4월 20일(토)

    금천의 나눔학원에 데려가 수학 상담을 받게 하려고 했는데, 딸은 안 간다 했다. 하루 종일 밖에 있으면 안 된다는 이유였다. 포기하고 낮잠을 즐겼다. 일어나니 아이가 없었다. 한참 만에 들어왔다. 머리 깎는다고 나갔다가 돌아온 거였다. 길게 치렁대던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다. 수차 권해도 안 듣더니, 무슨 맘이 들었는지 결국 잘랐다.

    “아빠, 이뻐”

    딸은 머리를 매만지며 예쁜 짓을 했다.

    “이뻐.”

    짐짓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빠. 똑바로 잘 보면서 이쁘다고 대답해.”

    “아빠가 나가자고 할 때는 안 나간다고 하더니 하루 종일 밖에 있었잖아. 아빠 삐졌어.”

    딸의 독촉에도 나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딸이 내 앞으로 바싹 붙었다.

    “에고. 아빠 삐졌구나. 쭈쭈쭈, 우리 애기.”

    애교를 부리며 내 엉덩이를 툭툭 쳤다. 딸은 전에도 엉덩이를 툭툭 두드리며, “우리 애기 돈 버느라 힘들지, 에구, 에구” 하면서 웃긴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웃지 않고선 배길 수 없었다.

    “허허 참, 가시나, 잘 깎았어. 아주 이뻐”

    필자소개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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