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세적 길드와 사법 독점
    [기고] 시민 스스로가 법의 주인으로 발돋움해야
        2017년 02월 08일 11:12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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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의 유럽 전역에 “길드”라는 상공업자 조합이 결성됐습니다. 길드가 추구했던 가장 중요한 이권은 시장의 독점이었습니다. 철공, 제과, 유통 등 각종 영역을 효과적으로 독점하기 위한 제도장치가 발전했고, 특정 요건을 충족한 자에게만 해당 분야에 종사할 자격을 부여하는 직업면허제도(occupational licensure)가 채용됐습니다.

    직업면허제도는 수세기 동안 길드의 폐쇄적 경제문화를 주도하며 시장독점의 당위를 시민의식 속에 깊이 각인시켰습니다. 그러나 18세기경 유럽 전반에 경제자유주의가 논의, 채택되기 시작하면서 그 위상이 크게 위협받습니다. 생산 및 공급자가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하고 경쟁함으로써 비로소 정당한 시장질서가 확립된다는 새로운 경제적 이상이 길드의 배타적 존립 목적과 정면충돌한 것입니다.

    장 자크 루소, 아담 스미스와 같은 당대의 지식인들은 구성원들의 담합, 불합리한 수당, 지대추구행위와 같은 시장독점의 폐해를 규명하고 이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자유사상가 라이샌더 스푸너의 경우 직업면허제도를 인간의 자연권인 직업선택의 자유를 유린한 봉건시대의 퇴행적 유물로 간주했습니다.

    직업면허제도는 지식계층의 비판과 대중의 외면을 받으며 몰락의 길을 걸었습니다. 기득권의 저항은 완강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종교, 문화,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지식의 전파는 영업비밀의 유출과 그것의 무한복제로 이어졌습니다. 길드가 보유했던 해당 분야들의 전문성 역시 보편지식의 영위로 말미암아 더 이상 종전의 권위를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기류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아 번창했던 독점분야가 바로 법조계입니다. 법조계는 전통적으로 직업면허제도가 도모한 폐쇄적 시장경제의 당위가 인정되던 몇 안 되는 특권의 영역이었습니다. 고시, 법학전문대학원과 같은 배타적 도제문화가 우리 사회 전반에 공고히 정착하고 용인되어 온 것 역시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수많은 길드의 운명과 마찬가지로, 사법독점 역시 시민의 지식수준과 정보공유기술의 비약적 발전이라는 시대의 도전을 피해갈 수는 없었습니다.

    구태여 “법은 상식의 최소한”이라는 유시민 선생의 어법을 빌리지 않더라도, 법이 상식에 기초한 규율의 집합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쉬쉬되어온 기득권의 골칫거리였습니다. 일반 대중은 이미 “계약”이 무엇이고, “사기” 혹은 “뇌물죄”가 어떻게 성립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설령 모른다 하더라도 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도처에 널려 있습니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강력한 검색능력, 통계 알고리즘과 같은 불리한 조건들이 끊임없이 축적되어 법의 진입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습니다. 신문, 텔레비전 등 미디어의 매개능력이 그 폐쇄성을 완화시키고, 기본교육과정은 법을 포괄함으로써 결국 그것의 전문적 권위를 박탈할 것입니다.

    요컨대 역사의 흐름은 시민들이 카페에서, 술자리에서 법과 그 일련의 규칙들에 대해 심층적이고도 자유로운 소통을 나눌 수 있는 사회구조적 기반을 마련할 것입니다. 이것은 사법독점이라는 마지막 중세적 길드의 몰락을 가리키는 중대한 이정표가 됩니다. 법을 독점한 소수의 엘리트들이 “이것이 법이다”라고 말할 때 “아니다”라고 반박할 수 있는 주체적 시민의식의 도래를 예견할 필연의 광경입니다. 법에 대한 특정 집단의 독과점 행위를 맹목적으로 수용했던 구시대적 태도를 타파하고, 자율적인 판단과 혁신으로 시민 스스로가 당당한 법의 주인으로 발돋움하는 새로운 사법적 이상을 펼칠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 전반을 지배해왔던 사법독점의 위상에 균열이 생기는 최초의 과정을 목격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에 공고히 각인돼있는 폐쇄적 사법독점의 당위가 촛불혁명이라는 시대적 기류 앞에 모래성처럼 무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의심은 국가정보원의 조직적 여론공작이 여직원 감금 사건으로 둔갑했을 때 이미 확증됐는지 모릅니다. 검찰이라는 법의 최고 권위자 앞에 일반 시민들이 일어나 “그것이 법이 아니다.”고 당당히 맞선 사실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선실세의 국정농단이 허위문건 유출로 무마됐을 때도, 130억 원대의 공짜 주식이 지음(知音)의 정성으로 전락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청와대와 대기업 간의 수천억 원대 뇌물거래를 우연의 일치로 몰아가려는 그들의 시도 역시 동일한 운명을 맞을 것이 분명합니다.

    “법을 모르는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라.”는 윽박지름에 시민들은 더 이상 겁먹거나 침묵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오히려 지금껏 사법독점이 법의 이름으로 자행할 수 있었던 오만의 실체를 이해하고 극복할 새 시대의 귀중한 원동력이 됩니다. 확신의 이유는 자명합니다. 사법독점의 와해, 나아가 그것에 대한 보편적 시민주권의 확립은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필연적 서사이기 때문입니다.

    필자소개
    미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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