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변신은 무죄?
[텍사스 일기] 미국의 총기문화③
    2017년 02월 06일 09:00 오전

Print Friendly

앞 회의 글 미국의 총기문화

 1.

찰턴 헤스턴(1923-2008)을 아시나요?(사진1) 영화 십계와 벤허의 주인공을 맡았던 배우지요. 근육질의 몸매에 훤칠한 189cm의 키. 36살 되던 1959년 벤허의 주인공 역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마초적인 이미지와 지성적 면모를 겸비한 독특한 캐릭터로 우리나라에서도 팬이 많았지요. 이 전설적 대 배우가 총기 문화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있어도 엄청 있습니다. 인생 말년에 NRA 회장을 지내면서 미국의 총기규제 반대운동에 결정적 기여를 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사진 1

정부의 통제와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통 리버테리언(libertarian)이라 부릅니다. 이들의 정치관은 동전의 양면을 지닙니다. 권위주의적 통제에 격렬히 반대하면서도 공동체적 참여를 거부하는 개인주의가 그것입니다. 헤스턴의 인생에서 이 두 가지 특징이 교차해서 나타납니다. 젊었을 때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종차별 반대시위에 참여하는 등 매우 리버럴한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성향이 영화 출연작에서도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1968년에 방영된 원조 <혹성탈출>이 그렇지요. 블랙홀에 들어갔다가 수천 년 후의 미래시점에 핵전쟁으로 황폐화된 지구로 돌아온 우주조종사. 가죽 팬티만 두르고 (원숭이들이 만든) 모든 체제와 권력에 대하여 시니컬한 조소를 팍팍 날리던 찰턴 헤스턴 기억나시지요? 60년대 초반 존 F 케네디의 당선을 적극 지지했고 인종차별과 베트남 전쟁을 반대한 것도 같은 연장선상이지요(사진 2). 하지만 1980년대 레이건 집권기가 시작되면서 그는 극적인 변신을 보입니다. 노골적인 극우파로 말입니다.

사진 2

미국의 모든 진보적 운동과 개혁적 정치인에 대하여 헤스턴이 날린 독설은 지금도 유명합니다. 예를 들어 1995년 터진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섹스스캔들을 두고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딸 가진 사람은 자기 딸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들 권리가 있다”. (얼마나 클린턴이 미웠으면) 르윈스키의 아버지가 클린턴을 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1997년 12월 자유의회재단(Free Congress Foundation) 연설은 그 정점이었습니다. 이 연설에서 헤스턴은 노골적으로 여성을 비하하고 동성애자를 경멸합니다. 그리고 거듭해서 흑인에 대한 인종적 멸시를 늘어놓습니다. 미국을 세운 사람도 헌법을 만든 사람도 백인인데 미국의 그런 전통이 혼탁해졌다 강변합니다. 미국은 백인 남성이 총을 들고 세운 나라이니 지금도 마음대로 총을 사용할 권리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백인우월주의에다 한술 더 떠 지독한 남성우월주의까지 결합시킨 거지요.

그는 오랫동안 NRA 부회장으로 재임하다가 마침내 1998년에 NRA 회장에 당선되어 5년 임기를 채웁니다. 이 시기는 미국 역사에서 총기규제 반대 운동이 가장 격렬했던 시기로 기록되지요. 특히 2000년 조지 부시 2세가 대통령에 선출된 해가 그랬습니다. 찰턴 헤스턴이 이끌던 NRA는 부시를 위한 맹렬한 선거운동을 펼칩니다. 산하의 정치행동위원회(PAC : Political Action Committee)를 통해 무려 1,100만달러에 달하는 정치자금을 공화당에 전달하는데, 이는 해당 선거에서 정치자금을 기부한 모든 PAC 중 5위에 해당됩니다.

같은 해 NRA 총회에서 그가 벌인 해프닝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됩니다. 인터넷에 아직도 패러디물이 가득할 정도입니다. 그는 연설 도중 갑자기 오른손에 소총을 잡더니 그것을 머리 위로 번쩍 치켜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외쳤지요. “싸늘하게 식은 내 손에서(From my cold dead hands) 총을 뺏아 가라!” 총기소유 자유를 막으려면 자기를 죽여야만 할 거란 뜻입니다. 죽음을 무릎 쓰고 총기규제를 주장하는 엘 고어의 당선을 막겠다는 선언입니다. (사진 3)이 그 장면을 찍은 겁니다. 이 사진은 이후 미국의 진보세력에게 극우주의자들의 독기에 가득찬 공격성의 상징이 됩니다. 반대로 총기소유를 찬성하는 보수세력에게는 자유와 자존의 심볼로 아로새겨졌고 말입니다.

사진 3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대표적 결과가 총기난사 사건입니다. 미국은 가장 빈번하게 대형 총기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입니다. 사건마다 그 잔혹성에서 충격을 던집니다. 다른 나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기는 합니다. 예를 들어 2011년 노르웨이의 아네르스 베링 브레비크가 저지른 사민당 청소년 캠프의 총기난사가 그렇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전방초소에서 가끔 군인들의 총기사고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이 다른 나라와 뚜렷이 구별되는 것은 거듭하여 되풀이되는 반복성에 있습니다. 우발적이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암종이라는 거지요.

유명한 사건만 들어보더라도 콜럼바인고등학교 사건(1999년, 13명 사망), 버지니아공대 사건(2007년, 32명 사망), 코네티컷 샌디훅 초등학교 사건(2013년, 28명 사망) 등 손에 꼽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특히 큰 문제는 사회적 최약자이자 위험에 무방비 상태인 어린아이를 대상으로 하는 범죄가 기승을 부린다는 겁니다. 2006년에서 2010년까지 4년 동안 총기난사로 숨진 어린이 숫자가 무려 561명에 달한다는 FBI 보고서가 나올 정도니까요.

이러한 참극에 찰톤 헤스턴이 치켜든 소총이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사진 4)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난사 사건을 소재로 <볼링 포 콜럼바인>이란 영화를 찍었습니다. 그 중 한 장면에 말년의 찰턴 헤스턴이 나옵니다. 감독은 그의 집을 찾아가서 이렇게 묻지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몰살을 당했는데 아직까지도 총기 자유를 부르짖겠습니까?” 헤스톤은 이때 병으로 몸이 불편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눌한 말투로 횡설수설하다가 그냥 집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사진 4

헤스턴 이야기를 왜 이렇게 길게 하냐고요? 박물관 진열대를 무심코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기 때문입니다. 2000년 NRA 총회에서 찰턴 헤스턴이 치켜들었던 바로 그 소총이 스프링필드 이 시골 총기박물관에 떡하니 진열되어 있었던 겁니다. <사진 5>가 그가 평생을 애지중지했던 총, “날 죽이고 총을 가져가라” 외치며 하늘로 치켜들었던 샵스 모델(Sharps Model) 1877년 형 라이플입니다. 소총 아래의 설명문에 그가 행한 연설 대목이 두꺼운 활자체로 박혀있는 걸 보십시오(사진 6, 7).

사진 6

사진 7

그 유명한 소총을 이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2.

3회에 걸친 글을 마무리하면서 미국 총기문화 특징을 역시 3가지로 요약하고 싶습니다. 첫째는 가상의 공포심입니다. 미국인들이 그처럼 많은 총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뭘까요. 필요할 때 수시로 사용하기 위해서? 그보다는 사람들 무의식 속에 불특정 다수에 대한 일종의 공포심이 자리잡고 있는 게 아닌가 판단됩니다. ① 다들 총을 가지고 있으니 위험하다 → ② 나도 총이 있어야 안심이 된다 → ③ 다들 총을 가지고 있으니 위험하다… 이런 심리적 악순환이 끝없이 되풀이되는 거지요.

냉정히 말하면 이건 일종의 사회적 히스테리입니다. (존재하지도 않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공격을 상정한 다음 선제적 방어수단을 찾기 때문이지요. 그래야 마음이 놓이니까 말입니다. 광범위한 총기 애호문화를 통해 사회 전체의 과장된 폭력적 분위기를 고도화시킨 다음, 그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자기방어논리로 다시 총기 소유를 확산시키는 순환구조. 이런 사회에서는 당연히 다음과 같은 신화가 통용됩니다. 1)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2) 약한 짐승이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것은 당연하다. 이 같은 사회심리적 원형(archtype)이 확산되고 역사적으로 공고화된 것이 결국 미국판 정글자본주의요 미국식 대외정책인 것은 아닐까 하는 거지요.

이 나라가 치른 침략전쟁 가운데는 위와 같은 가상공포를 잠재우기 위한 선제공격이 적지 않습니다. 카스트로 암살을 시도하다 대실패로 끝난 1961년 쿠바 피그만 침공이 그랬지요. 화학무기라는 엉터리 공포를 확산시킨 후 감행된 (물론 배경에 정교한 경제적 패권주의가 깔렸지만) 이라크 침공도 같은 범주입니다. 저는 이러한 선제적 폭력성이야말로 대서양 연안 13개주에서 시작되어 서부 개척과 인디언 학살로 뻗어나간 이 나라의 역사, 그리고 군사력을 통한 제국주의적 반식민지 경영으로 확장된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뿌리라고 믿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특징은 총기문화가 지닌 계급적, 인종적 성격입니다. 부산에서 영어 가르치는 트라이(Trei)라는 미국 사람이 있습니다. 고향은 테네시 주 멤피스. “너희 나라가 위험한 나라 아니냐?”라는 질문에 그가 웃으면서 이런 답변한 기억이 납니다. 자기가 미국에서 살아온 평생 동안 주변에서 총 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그런 이미지는 모두 할리우드 영화 때문에 생긴 거라고.

실제 와서 살아보니 그의 말은 일면은 진실이었고 일면은 거짓이었습니다. 트라이처럼 대도시 교외의 안전지대에 사는 백인 중산층은 실제로 일 년 내내 총기 사고를 한 번도 못 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경제파탄으로 도심이 공동화(空洞化)된 디트로이트 도심 슬럼가에 사는 흑인 집단에서도 과연 그럴까요?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2010년의 경우 미국 전역에서 총기 폭력으로 낭비된 세금이 5억 달러를 넘습니다(Urban Institute 자료, 사진 8). 총을 맞았는데 왜 세금이 들어가느냐고요? 대부분 피해자들이 개인의료보험이 없어 치료비를 못 대기 때문입니다. 총상환자 치료비 총액의 73퍼센트가 메디케이드(medicaid) 등의 공영보험으로 지불된다는 겁니다. 대다수 총기사건 피해자들이 빈곤층이라는 반증이지요. 그 가운데 43%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젊은 남성(15세~24세)들입니다.

사진 8

그렇다면 어떤 인종들이 총기사고를 가장 많이 저지를까요? 아무리 찾아봐도 관련 통계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교도소 수감자 비율로 부분 유추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2004년 미국 법무부 자료는 이렇게 밝힙니다. 인종별로 보자면, 20대 후반 남성의 감옥 수감 비율이 흑인은 12.6%군요. 백 명당 13명이 감옥에 갇혀있다는 뜻입니다. 히스패닉은 3.6%, 그리고 백인은 고작 1.7%입니다. 자, 이제 미국에서 누가 주로 범죄를 저지르고 (그 와중에) 총을 쏘고 맞는지 짐작이 되시나요? 가난한 유색인종들입니다. 이 나라의 총기문제가 매우 뚜렷한 계급적, 인종적 특징을 띄고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세 번째 특징은 경제적 차원에서 찾아집니다. 인종문제, 의료 문제와 함께 미국 사회의 3대 핵심 모순으로 지칭되는 것이 총기문제인데, 여기서 간과하면 안 될 것이 있습니다. (의료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이슈가 기실은 “돈”에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겁니다. 미국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주요 개념 중 하나가 “군산복합체 국가” 아닙니까. 국내 총기산업 규모는 새 발의 피입니다. 한국으로, 대만으로, 사우디 아라비아로 줄기차게 팔려나가는 엄청난 고가 첨단 무기가 이 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한번 떠올려 보십시오.

독립전쟁과 개척시대의 자기보호 필요성이라는 역사적 당위를 지녔던 총기문화가 이제는 변질된 겁니다. 대중매체를 통한 폭력적 사회분위기의 시뮬라크르 형성을 통해 군산복합체로서 미국 경제를 떠받치는 강력한 <문화적 기제>로 작동하는 거지요.

한걸음 더 나아가 주목해야 할 것은 1980년대 이후 고도화된 경제적 양극화와 총기문화의 상호 관련성입니다. 미국에서 전국적 뉴스를 탄 최초의 무차별 총기 살인은 1966년 7월에 일어났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에서 말이지요. 텍사스 오스틴대학 종탑에 올라간 해병대 출신 찰스 호이트만이 주변 행인을 향해 소총을 조준 사격한 것입니다. 21명이 죽었고 28명이 총상을 입었지요. 그러나 이 같은 대량살인이 빈번해지고 본격화된 것은 1980년대 이후부터입니다. 2011년 기준으로 전체 총기살인 횟수는 80년대에 비해 두 배 이상 줄어들었습니다. 그런데도 대형 총기난사는 왜 거꾸로 압도적으로 늘어나고 있을까요?

저는 1980년 레이건 집권 이후 본격화된 약탈적 신자유주의와 대량살인과의 연관성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투기적 금융자본의 번성, 빈부격차 고착화와 무차별 총기난사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는 뜻입니다. 가족, 지역공동체, 종교 등을 통해 유지되었던 사회적 연대감이 빠른 속도로 해체된 것이 미국의 지난 30년입니다. 당연히 병적 자기소외와 사회부적응 현상의 만연이 수반되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피폐와 분열들이 결국 대형 총기난사 사건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추신) 여행기가 너무 심각하지요? 송구합니다.^^ 멋진 풍광 올리고 맛있는 음식을 소개하는 여행기야 다른 곳에도 많이 있으니, 조금 다른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입니다. 하지만 다음번 글은 조금 다를 겁니다.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에 있는, 세계 유일의 “락앤롤 명예의 전당” 이야기니까요. 드디어 엘비스 프레슬리와 마이클 잭슨의 현란한 춤동작을 만나보실 기회가 왔습니다.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