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한 노동운동가의
    딸과의 행복한 3년 산행
    [책소개]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한석호/레디앙)
        2017년 02월 04일 01:0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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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덤으로 큰 깨우침을 얻었다. 자식을 아이로 남기면, 자식은 부모 인생의 의무고 짐이 된다. 벗으로 세우면, 든든한 동반자가 된다. 자식을 부모의 판단과 지시로 움직이는 객체로 취급하면, 진심을 얻지 못한다.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로 존중하면, 자식은 진심을 줄 뿐 아니라 부모의 진심까지 알아준다. 직접 체험하며 깨달았다. – <본문 중에서>

    가난한 노동운동가의 행복이 가득한 책

    노동운동 판에서 한석호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가 30년 동안 노동 현장에서 온갖 궂은 일 마다하지 않고 해온 유일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살아온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노동운동 판 사정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싶은 사람이,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이런 대답을 듣기 십상이다. “한석호한테 물어 봐.”

    돌아가신 신영복 선생께서 말씀하신 머리에서 가슴, 가슴에서 발로 가는 먼 여행의 비유를 빌어 말하자면 한석호는 발이 바쁜 사람이다. 가투 선봉대, 사수대, 조직쟁의국 등 한석호와 뗄 수 없는 ‘직무’를 표현하는 용어는 과격한 노동운동의 상징으로 얘기되지만 기실 과격한 것은 자본과 권력이었다. 그가 과격한 것에 맞서 오랜 기간 최전선에서 투쟁하면서 쟁취하고자 했던 것은 더불어 함께하는 일상의 행복이었다.

    『누리야, 아빠랑 산에 가자-고교생 딸과 함께한 입시산행 3년』은 중년의 노동운동 활동가가 한석호가 전해 주는 행복 이야기다. 활동가로서의 바쁜 생활에도 불구하고 고등학생 딸과 함께한 3년 동안의 동반산행을 기록한 책이다. 딸과 아빠는 산에 오르면서 산 이야기, 삶 이야기를 함께 나눴고, ‘대학 합격 전술’을 같이 상의했다. 딸이 산행을 통해 자연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깊어지는 대목을 서술하는 대목도 인상적이다. 이렇게 딸과 아빠는 북한산을 중심으로 도봉산, 사패산, 안산, 지리산을 40차례 가까이 오르내렸다.

    누리야

    다이어트 50%, 아빠 사랑 40%, 산 사랑 10%

    고교생 딸과 3년 동안 산에 오르는 것은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일은 아니지만, 딸에 대한 사랑은 보편적이다. 어느 아버지가 그렇지 않겠는가. 소중한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삶이 그다지 만만치 않다는 것은 어른이면 아는 일이다. 수많은 난민들이 목숨을 걸고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면서 찾고자 하는 것이 바로 보통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다. 우리가 모르고 지나가는 행복이다. 독자들은 가난한 노동운동가의 일상 속 행복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빠랑 산에 가는 이유가 다이어트는 15퍼센트나 20퍼센트 정도고, 40퍼센트는 아빠랑 대화하면서 정을 나누는 거야. 이젠 산에 안 가면 안 될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다시 물어보니까, 이렇게 대답했다.

    “다시 말할게. 내가 산에 가는 이유는 다이어트 50퍼센트, 아빠 좋아서 40퍼센트, 산이 좋아서 10퍼센트야.”

    내 얼굴에 함박미소가 번졌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대부분 제 아빠와의 대화에 건성이거나 피한다는데, 나는 고등학생 딸과 대화를 하고 등산도 함께하는 아빠였다. 복 받은 인간이었다. – 본문 중에서

    진짜 가난은 가족의 먹고 사는 것을 책임지는 가장의 가난이다. 가장은 엄마도, 아빠도, 소녀도, 소년도 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한석호는 가난한 가장이다. 원고의 곳곳에서 가난이 배어나온다. 감추려 하지도, 강조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가난을 살고 있으니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혼자 꺼이꺼이 우는 가장의 모습에는 우리 사회의 수많은 가장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네 식구가 오랜만에 고깃집에 둘러앉아 서로 고기를 권하며 정작 자기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는 어른들의 모습을 묘사한 장면은 뭉클하다.

    행복은 성적순도 지갑 두께 순도 아니다

    이 책의 저자는 자기 집의 현관문과 안방 문까지 열어 그 안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가 우리를 집 안까지 들여보내 줌으로써 그 역시 우리 안 깊숙이 들어와서 공감을 만들어 낸다. 행복은 성적순도 지갑의 두께 순도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꾸밈없이 말해 준다.

    학원 보내달라는 딸, 웬만하면 보내 주자는 아내, 돈이 없어서 못 보내겠다는 남편. 주변에서 이 소식을 안 몇몇 사람이 도움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결국 저자는 ‘공부동냥’으로 딸을 학원에 보낼 수 있었다. 사교육과 선행학습을 비판적으로 보던 아빠가 자신의 딸의 문제로 맞닥치자 후퇴할 수밖에 없던 사정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딸이 중3이던 작년 어느 날이었다. 문화다양성포럼의 후배 권오성이 사정을 딱히 여기고 친구를 소개했다. 셋은 동네 술집에서 만났다. 퉁퉁한 작은 키에 후덕한 인상의 원장 김신은 사정을 듣고서 쾌히 승낙했다.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다른 부모가 알면 항의할 수 있으니 어디에도 얘기하면 안 됩니다. 또 무료라면 아이가 학원에 소홀할 수 있으니 매달 1만 원씩 내야 합니다.”

    학원은 해방촌 옆 후암동이었다. 나는 거듭 고개를 숙였다. 딸아이는 공부 동냥을 하면서 수학에 재미를 붙였고, 떨어지던 성적이 향상됐다. 내가 선행 학습을 만류하지 못한 첫 번째 이유였다. – 본문 중에서

    이 책은 또 지금도 무대 위, 밝은 조명 아래가 아니라, 연단의 옆이나 뒤쪽에서 또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조명발 받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수많은 활동가들의 이면, ‘달의 뒤편’처럼 보이지 않는 그들 삶의 이야기를 자세하고 솔직하게 묘사한 기록물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목숨보다 더 사랑하는 딸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한다. ‘세월호 가족들이 아이들을 편하게 보내고 활짝 웃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 하겠다’는 다짐이다. 그는 지금 민주노총 사회연대위원장으로 그 가족들과 오랫동안 ‘동고동락’하고 있다. 세월호 아이들과 저자의 딸은 동갑내기다. 저자는 자신과 특별한 인연으로 이 세상에서 만난 딸에 대한 사랑의 의미를 확대해, 자신이 하는 운동의 대의와 등치시킨 셈이다.

    노동운동가로 불리지만 한국의 보통 아빠 중 한 명인 저자는 딸과의 3년 산행이 자신에게 가져다 준 행복과 교훈이 얼마나 차고 넘치는지 이 책에서 숨김없이 실토하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모든 딸바보 아빠들에게도 이런 기쁨과 행복이 충분히 가능하니, 한 번 해보시라고 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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