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재구성 위한 세가지 질문
    [기자 생각] 진보정치 재구성과 재건 가능한가?
        2012년 08월 13일 06: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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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 왜 변해야 하는가? : 진보정치 공멸의 위기 인식 필요

    역사는 ‘우연을 가장한 필연의 연속’이라는 말이 있다. 지금 통합진보당의 내분과 진보정치의 빅뱅이 진행되는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들은 현재의 분당과 빅뱅의 흐름을 조준호 혹은 참여당계의 의도와 음모가 깔려 있는 진보정치 파괴 공작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신당권파들은 구당권파들이 진보정치 위기의 주범이고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는 패권 세력이라고 규정한다. 진보신당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외부의 진보세력은 그들의 내분과 갈등에 대해 구당권파, 신당권파 모두가 진보정치를 위기에 몰아넣은 공동 책임이 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과연 이 사태에서 자유로운 자 누구인가? 없다. 누구에게 좀 더 많은 책임과 원인을 돌릴 수는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책임의 비중과 주범을 규정하고 낙인찍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의 존재 자체가 위태로워지고 공멸에 처한 상황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그 인식에서 진보정치의 혁신, 변화, 재건의 몸부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정치세력, 운동세력들은 자신의 논리적 이념적 정당성을 갖고 있다. 그것이 없으면 세력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정당성과 올바름은 그들 ‘내부의 성원’이 아니라 그 ‘외부의 대중’에게 끊임없이 검증받아야 한다.

    정치와 운동의 영역에서는 대중들에게 보여지고 이해되고 비판 혹은 지지받는 모습이 정직한 자신들의 모습이다. 대중의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다. 그 관계를 부정한다면 정치와 운동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된 분파들의 자기 정당성 고집과 무한 경쟁밖에 남지 않는다.

    지금 통합진보당 사태의 후과와 파장은 진보정치의 공멸로 드러나고 있다. 국민들은 물론이고 진보정치의 주요 기반이었던 노동자 민중 속에서도 진보정치에 대한 회의와 냉소가 점차 확산되고 있다.

    통합진보당이라는 울타리 내에 있던 세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보정치라는 공통의 이름을 사용하고 그것으로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던 모든 진보정치 세력을 대상으로 한 냉소이고 비판이다.

    이것에 대한 답변이 “우리는 아니다. 우리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이 되어서 안되고, 그런 논리로 피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 사태는 진보정치 내부에서 서서히 쌓여가고 있었던 패권주의의 논리, 정파 중심적 조직운영, 진보의 정체성에 대한 희석과 약화, 보수정당의 지분 정치와 정치공학적 습성에 대한 모방들이 폭발한 것이다.

    그리고 그 부정적 관행과 문제점들에 대한 집착이 가장 강한 집단이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였던 것이다. 결국 그들이 진보정치의 가장 큰 기득권 세력이었기 때문에 그 과거의 관행의 변화와 단절에 대해 가장 소극적이고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구당권파들은 억울할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모순들과 문제점들이 폭발할 때 변화의 폭발에 저항하거나 소극적일 때 역사와 운명은 무자비하게 다가온다. 그렇게 구당권파는 진보세력에서 가장 패권적이고 가장 문제적인 집단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와 신당권파의 대립을 선과 악, 상식과 비상식의 대립으로 볼 수 없는 것이다. 신당권파를 선한 집단이자 상식적인 집단이라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질문은 진보정치가 대중으로부터 외면받고 부정당하는 상황, 진보정치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서 진보정치의 부정적 관행을 어떻게 혁파하고, 선거공학과 지분정치가 아닌 대중적 진보의 정체성과 가치를 어떻게 올곧게 세울 것이냐, 그런 가치가 살아있는 새로운 집을 어떻게 다시 지을 것이냐 라는 질문이다.

    둘,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는가? : 진보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재건축이어야

    새롭게 변화를 모색할 때 두가지 길이 있다. 비유하자면 리모델링과 재건축이다. 그 둘의 차이는 기둥과 골격을 두고 외양을 새로 정비하는 것이냐, 기둥과 골격까지 새롭게 다시 세우느냐의 차이이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 개조하고 혁신하고 새롭게 하겠다는 것이 구당권파들의 논리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잃어버린 대중들의 신뢰, 노동자 민중의 지지를 복원할 수 없다. 그 만큼 위기는 근본적인 것이다.

    통합진보당의 골격은 진보정치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대중화 노선을 통해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정당, 수권가능한 진보정당이라는 논리로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공학적 통합이라는 골격에 근거하였다.

    이질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상충하는 세력들의 단순 합산으로 덩치를 키우고, 그 커진 덩치가 대중화 노선이라고 생각한 꼴이다.

    그러나 그 이질성은 진보의 정체성을 희석시켰고, 진보정치의 부정적 관행과 문제점들은 단순 통합이라는 조직의 골격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런 공학 정치와 덩치키우기 식의 왜곡된 진보정치를 주도했던 이들이 구당권파였다. 그런데 이들은 다시 통합진보당을 리모델링해서 가자고 주장한다.

    부실 건축물의 외양만 고쳐서 사람들에게 살자고 하면 그것은 범죄 행위이다. 부실의 원인을 제거하고, 골격과 기둥이 무너졌다면 새로 집을 짓는 것이 현명하고 책임있는 행위이다.

    그래서 통합진보당 신당권파의 새 정당 창당 움직임에 대해 참여계 주도의 개량화된 정당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구당권파나 그 동조 세력들의 전형적인 적반하장 논리이고 자기 정당화의 옹색한 논리일 뿐이다.

    마치 자신들이 진보운동의 정신을 견지하는 세력이고 진보운동에 침투하여 진보정치를 개량화, 우경화시키는 자유주의세력 참여당 계열에 맞서 싸우는 것으로 포장하려고 하지만 이것은 대중과 진보적 대중들을 우롱하는 행위이다.

    바로 그들 구당권파들이 참여당과의 통합을 가장 광폭하게 추진하였고 마치 그것이 진보정치의 대중화, 집권 가능한 정당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석기 의원이 비례대표 경선에서 자랑스럽게 바로 자신이 국민참여당과의 통합을 통한 집권 가능한 진보정당 노선을 설파하고 사람들을 설득한 전략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대중들이 그 기억들을 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보는 게다.

    진보정치와 진보운동을 재건축할 때는 깊고 튼튼하고 폭넓게 재구성해야 한다.

    깊어야 한다는 것은 진보정치의 뿌리인 노동운동의 혁신과 연계해야 하고(노동운동과 무관하거나 별개로 진보정치를 사고하는 것은 부실화의 지름길), 튼튼하다는 것은 명망가 개인의 정치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조직 민주주의에 기반해야 한다는 것이고(지도자의 리더십과 개인 정치에 조직이 좌우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 폭넓어야 한다는 것은 통합진보당 내의 세력 재편이 아닌 진보정치 전체의 재구성, 재건축(정체성과 가치에 근거하여 진보정치의 주체를 확장하는 것은 필요)이 되도록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셋,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 공통의 지반 위에서

     지금 진보정치 재구성, 새로운 진보정당의 창당을 반대하는 세력은 통합진보당의 구당권파와 그 동조 세력이다. 그렇다면 그 외의 세력과 주체들은 통합진보당 혁신모임에 참여하는 통합연대, 참여당 계열, 인천연합, 비연합 자주세력과 민주노총의 산별대표자들과 노동운동의 주요세력인 국민파 중앙파 현장파 그리고 진보신당과 녹색당과 같은 통합진보당 외부의 정치집단들이다.

    이들 중에는 통합진보당 구당권파와 다른 의미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에 동의하지 않는 세력들도 있을 것이다. 좌파정당이 목표이기 때문에 우경적 세력과는 절대 함께 할 수 없다는 이유로 별도의 당을 추진한다는 목표를 가질 것이다.

    이들과 통합진보당 구당권파를 제외하고 상당한 이념과 노선의 스펙트럼을 가진 통합적 진보정당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반면 통합진보당 vs 진보신당 녹색당의 구도에서 더 세분화되고 분화된 서너개의 복수 진보정당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있다.

    이 상황의 미래에 대해 예측하거나 어느 한 길이 올바르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진보정치의 재구성이 제기되는 현 상황에서 각 세력들이 함께 하는 정당이 될지, 아니면 각각의 당으로 더 분화할 지를 가늠하는 것은 서로 ‘공통의 정치적 정책적 지반’을 가질 수 있느냐는 질문이 먼저 제기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통합연대의 3자 통합이 파탄이 난 결과는 참여당이라는 이질적 세력이 참여했기 때문이 아니다. 어떤 진보정당을 지향할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와 공통지반을 확인하고 공유하는 과정이 없이, 총선과 선거 정치에서의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만이 공통 지반으로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 지반이 붕괴하였기 때문에 파탄의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지금 주요 정치 세력들간에 공통의 지반 형성이 가능한지, 최소한의 정치적 컨센서스가 가능한지를 확인해야 한다.

    어떤 가치와 지향, 정책이 새 정당의 ‘진보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이 필요한 것이다. 이것은 정당의 목표이기도 하고 정당의 성격과 기반의 문제와도 연관된다. 북한 문제나 애국가 같은 예민한 쟁점들도 가치와 정책적 맥락에서 재정리해야 한다. 또 하나는 대선에 대한 후보 전술, 야권 연대, 권력 참여 등의 문제도 공통의 지반 위에서 논의할 수 있는 지 확인되어야 한다.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야권 연대와 권력 참여가 모든 정치활동의 기준이자 목표가 되어 버린다면 그것은 구당권파들의 정치적 입장과 하나도 차이가 없다. 다만 민주당 등 다른 세력에게 우리가 더 의미있고 상식적인 파트너라고 내세울 것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진보정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효율적인 파트너가 되기 위한 리모델링에 다름 아니다.

    또한 민주당 등과의 연대에 대해서는 도덕적으로 정치적으로 용인할 수 없다는 논리, 민주당 뿐만 아니라 통합진보당 내의 어떤 세력과도 함께 할 수 없다는 주장, 심지어 민주노총도 분리시키고 좌파노총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분파의 논리이지 대중적 진보정치를 지향하는 세력의 논리일 수는 없다. 그들에게 좌파와 진보라는 것은 다른 세력과 공유할 수 없는 자신들만의 독점물일 뿐이다.

    이런 정치전술과 관련한 이슈와 쟁점은 진보의 가치라는 기준에 근거해서, 또는 독자적 진보정당의 성장과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독이 되는가라는 기준에 근거해서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되는 것 중의 하나가 진보정치의 재구성이라는 플랜은 주요 정치세력, 주요 개인과 집단들이 책임져야 할 역할이 분명히 존재하지만 마치 대중들, 현장의 노동자들, 진보정치의 지지자들을 구경꾼으로 전락시켜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상층과 하층을 나누는 이분법은 잘못된 것이지만 몇몇 세력들의 합종연횡이나 정파들의 이합집산으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사고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요 정치세력들의 공통의 지반을 만들고 확인해야 한다는 점은 정파들의 협상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대중과 노동자 민중 속에서 하나의 독립적인 진보정당으로 서는 것이 설득력과 신뢰를 얻고 정당성을 확인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그래서 다시 노동자와 노동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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