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
    “법은 평등하지 않고 상식은 무너져”
    유전무죄 무전유죄…대한민국 법치의 맨얼굴 드러나
        2017년 01월 19일 01: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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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은 평등하지 않았고, 상식은 또 한 번 무너졌다. 법원은 재벌 앞에서 멈춰 섰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이끈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은 법원이 19일 새벽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이 같이 논평했다.

    법원의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기각은 재벌총수일가의 오랜 적폐를 도려내는 첫 관문에 제동을 건 결정이라는 평가다. 이 부회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가 진행된 시점부터 모든 언론과 여론은 구속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여론도 여느 때와는 달랐다. ‘삼성이 흔들리면 경제가 망한다’는 재계의 흔해빠진 논리도 이번엔 먹히지 않았다. 경제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박영수 특검의 뜻에 모두가 공감하는 분위기였다.

    법원의 결정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재벌도 공범’을 외치던 광장의 시민들에게 허탈함과 분노를 안겨준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망언을 다시 한 번 확인해준 꼴이기 때문이다. 이날 아침부터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엔 조의연 판사, 기각, 이재용 부회장 등이 오르내렸고 SNS엔 조의연 판사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똑같은 이유로 풀어준 이력 등을 거론하며 ‘재벌 기각 판사’라고 비판하고 있다. 정당들도 일제히 사법부의 판단을 규탄했다.

    이재용 구속영장 기각한 조의연 판사
    “법률적 평가 둘러싼 다툼의 여지 있다”, “구속 사유 인정 어렵다”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조의연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새벽 5시경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서 “현 단계에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조 부장판사는 “뇌물범죄의 요건이 되는 대가관계와 부정한 청탁 등에 대한 현재까지의 소명 정도, 각종 지원 경위에 관한 구체적 사실관계와 그 법률적 평가를 둘러싼 다툼의 여지, 관련자 조사를 포함해 현재까지 이뤄진 수사 내용과 진행 경과 등에 비춰 이런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의 심문은 전날(18일) 오전 10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2시20분경 끝났다. 그로부터 무려 14시간 만인 이날 새벽 5시 구속영장 청구 기각 결정을 했다.

    이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위한 자금의 대가성과 부정청탁 입증을 자신했던 박영수 특검은 공개적으로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검 대변인인 이규철 특검보는 이날 오전 긴급 브리핑에서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 결정은 특검과 피의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에 있어 견해 차이 때문으로 판단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필요한 조치를 강구해 흔들림 없이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부연했다.

    이 특검보는 영장 재청구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수사 방향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특검은 이 부회장에 대해 430억원대 뇌물공여, 97억원대 횡령, 국회 청문회에서의 위증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문형표는 구속하고 이재용은 풀어준 사법부의 모순적 결정

    법원의 이러한 결정엔 모순이 있다. 앞서 법원은 특검이 1호로 수사대상에 올린 문형표 보건복지부 전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재용 부회장 승계과정에 중요한 사안이었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 국민연금공단을 동원했다는 것이 입증돼서다. 이 결정으로 국민연금은 6,000억 원의 손실을 본 반면, 이재용 부회장 등 총수 일가는 직·간접적으로 가장 큰 이익을 봤다. 그럼에도 법원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해서만 구속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당 상무위에서 “삼성과 이재용의 행위는 단순히 법을 어긴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 재산인 국민연금에 큰 피해를 끼쳤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는 범죄행위”라며 “국민연금의 이해할 수 없는 합병 찬성을 주도한 혐의로 법원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과 모순되는 결정”이라고 지적했다. 사법부의 이번 결정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위원이었던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오전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많은 사람들이 구속됐는데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영장을 기각하는 것이 과연 형평에 맞는지 반드시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윤관석 민주당 대변인 또한 국회 브리핑에서 “대통령은 탄핵되고, 최순실은 구속되고, 관련 혐의를 받고 있는 문형표 장관도 구속되고, 삼성만은 불구속으로 건재하다”며 “법원이 재벌개혁, 정경유착 근절 등의 변화의 물줄기를 차단하고 말았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내에서도 이 부회장 영장기각은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구속영장 발부 판단은 유죄 입증을 떠나 범죄의 중대성, 증거인멸의 가능성이 있을 때에도 가능하다. 법조계 등 대다수가 법원이 당연히 구속영장을 발부할 것이라고 본 이유다.

    ‘이재용 부회장 구속영장 발부 촉구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한 단체 중 하나인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소장대행 김성진 변호사는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김성덕입니다’에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구속영장 발부는) 유죄판결을 받을 만큼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재용 씨는 위증으로 국회가 고발도 한 상황이다. 그렇다면 뇌물죄 입증 정도를 떠나서 죄를 범하였다는 상당한 이유는 있다고 보인다”며 “법원의 구속사유에 대한 판단에 대해서 납득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또한 “정상적인 법리상의 판단을 기준으로 본다면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느냐’ ‘이 사람의 범죄가 중대하냐’ 이 부분인데 증거인멸의 우려는 분명히 있고, 실제로 자신이 지배하는 임직원들의 진술과 증거를 조작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사람 아닌가”라며 “그런 정도의 사실관계에 비춰봤을 때 특검의 영장청구는 당연한 것이고 법원까지도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심사하는 기준에 비춰봤을 때는 영장발부가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대한민국 법치의 맨얼굴
    “대한민국의 권력 순위 제일 위가 어딘지 비로소 명백해졌다”

    대한민국 법치의 맨얼굴을 드러낸 사건이다. 회사에 2,400원을 적게 입금한 버스기사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전날 사법부의 판단과 개인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에 막대한 손해를 끼친 이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법부의 결정은 상징적이다.

    심상정 정의당 상임대표는 “사법부가 ‘유전무죄 무전유죄’ 대한민국 법치의 맨얼굴을 또 다시 내비쳤다”며 “스스로가 개혁 대상 1호임을 자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기각한 오늘 새벽, 대한민국의 치외법권이 어딘지, 대한민국의 권력 순위 제일 위가 어딘지 비로소 명백해졌다”고 지적했다.

    노회찬 원내대표 또한 “삼성에게는 안도감을 주었을지언정 국민들에게는 열패감을 준 결정”이라며 “사법부가 ‘돈도 실력’이라는 정유라의 말을 실현시켜준 셈”이라고 했다.

    윤관석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재벌대기업 앞에 서면 왜 법원은 한없이 작아지는가”라면서 “국민들은 서민들에게는 너무도 가혹한 대한민국이 재벌·대기업에게는 어찌도 이리 관용적인지 통탄할 지경”이라며 강한 유감을 표했고, 고연호 국민의당 수석대변인 직무대행은 논평에서 “재벌에 무릎 꿇은 사법부, 법의 준엄함을 스스로 포기했다”고 말했다.

    “법은 평등하지 않고 상식은 또 무너졌다”

    국회 내 박 대통령 탄핵과 재벌총수에 대한 특검의 과감한 수사와 구속영장 청구는 광장의 시민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사법부의 이러한 결정을 받아들고 가장 허탈한 감정을 느끼는 쪽도 대규모 촛불집회를 이끌어 온 노동·시민사회계다.

    퇴진행동은 긴급논평을 내고 “법은 평등하지 않았고, 상식은 또 한 번 무너졌다. 법원은 재벌 앞에서 멈췄고, 이재용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고 절망했다.

    이어 “최지성, 장충기, 박상진 등 뇌물범죄에 연루된 삼성 수뇌부에겐 구속영장조차 청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미 범죄 혐의에 대해 말을 바꾸고 위증까지 드러난 이재용에게 아예 삼성이라는 거대조직을 총동원해 증거인멸을 하도록 날개를 달아줬다”고 질타했다.

    퇴진행동은 “구속영장이 기각되었다고 이재용의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재용을 비롯해 정몽구, 신동빈, 최태원 등 재벌총수들은 ‘돈이 실력’인 세상을 만든 주범이다. 법원이 국민의 분노를 외면하겠다면, 우리는 광장에 모여 범죄집단 재벌총수 구속처벌을 더욱 강력히 촉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는 13차 촛불집회에선 법원에 대한 규탄의 목소리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노총도 “재벌체제를 수술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단 한 걸음도 전진 할 수 없다. 범죄자 재벌총수 구속은 분명한 그 출발이어야 한다”며 “자본권력 앞에 무너진 사법부가 내다버린 정의는 촛불이 광장에서 다시 살려낼 것”이라고 경고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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